-
-
중국의 황태자 교육
왕징룬 지음, 이영옥 옮김 / 김영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공부는 유희(遊戱)입니다. 정말 즐거운 놀이입니다. 억압과 강요에 의한 강제적 주입이 아니면 말입니다. 공부에 대한 인간의 유희본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저는 학습법 또는 공부법의 제1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동기부여'입니다.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깨치는 것이야말로 공부를 잘하기 위한, 즐기기 위한 시작입니다. 그 동기는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목표지향적인 동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재미입니다. 아이들을 잘 관찰해보면, 알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아는 것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 딸은 주말마다 한자 공부를 하자고 졸라댑니다. 가끔 익힌 한자를 식당 안내문이나 광고 전단지 등에서 확인하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래서 더욱 한자 공부를 시켜달라고 조릅니다. 지금이야 수학이든 한자든 여유있고 즐거운 놀이의 하나로써 배우니 그저 즐거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알아가는 재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면, 그래도 재미있어 할까요?
요즘 교육환경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비록 돈이 들긴 하지만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한정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황태자도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서민들은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열악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공부를 하려면 먼저 책을 손수 베껴야 했습니다. 이 책을 대나무로 엮고 등나무로 묶은 책 상자 안에 담아서 지고 날라야 했습니다. 공부하겠다는 의지 뿐만 아니라 힘도 필요했습니다.
겨우 글자를 베껴도, 그 글자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글자가 쉬워도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가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스승이 필요했습니다. 나라에서 세운 학교나 사숙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배움의 기회를 얻기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꼭 배워야겠다는 소년들은 수백수천리길을 스승을 찾아 걸어야했고, 덥든 춥든 책상자를 지고 날라야 했습니다.
반면 황궁의 황태자에게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국 최대의 도서관이 황실 안에 있었고 가장 뛰어난 스승이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의 결과는 생각보다 별무신통합니다. 『중국의 황태자 교육』을 보면 황태자 수업을 제대로 이수한, 똑똑하고 재능있는 본보기가 몇 안 됩니다. 심지어는 참다 못한 황제가 아들을 발로 차 죽여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청나라 8대 황제인 도광제의 황장자(아직 태자가 되지 않은 때라서 맏아들이라는 의미로 황장자라 함) 혁위는 지독하게 공부하기를 싫어했습니다. 혁위가 열일곱살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사부가 "대아가님, 지금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나중에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엄하게 이르자, 혁위는 화를 내며 "내가 황제가 되면 너부터 죽일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나중에 도광제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애초부터 그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던 도광제는 곧바로 명을 내려 그를 불러들였습니다.
혁위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를 알현하러 왔는데, 화가 난 도광제는 달려가서 발길로 걷어차버렸고, 며칠 후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도광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의지력이 강해 자신을 엄격하게 절제하고 향락을 멀리했고, 즉위 후에도 줄곧 공부하는 습관를 유지하고 소박한 옷을 입고 먹는 것도 검소하여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는 너무나 다른 아들, 아버지는 그것을 참지 못했나 봅니다.
역사상 최고의 사부집단을 거느렸던 이승건은 아버지 당태종에 위해 폐위됩니다. 청나라 강희제는 혹독한 방법으로 교육을 했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아들이 미쳐버려 결국 폐위되기에 이릅니다. 교육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황궁에서 배우는 황자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건이 좋았으나 그들에게는 배움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p.143)
배우려는 마음보다 가르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배워서 얻는 즐거움을 알기 전에 더 많은 양을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할 때, 공부에 대한 인간의 유희본성은 묻혀버리게 됩니다. 지상 최대의 서가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옆에 있는들 배우려는 마음을 갖게 하지 못한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국의 황태자 교육』을 통해, 중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읽을거리를,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국 교육의 역사를, 자식을 황제 이상으로 끔직하게 아끼는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