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지역의 환경 파괴 문제는 여러 매체에서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오늘 스마트폰으로 Spb 뉴스를 보다가 기사가 하나 있어 스크랩해둔다.   

 

경향신문 2010.5.5 [주거의 사회학](3부) 주거와 정치·사회…③ 토건사회의 그늘 - 환경 파괴

ㆍ짓고 부수고 버리는 동안 멍든 산·바다, 석회석 채굴 26년 자병산, 110m 깎여
ㆍ돌산 깎아 자갈 만들고 마구잡이 바닷모래 채취, 생태계 파괴 심각

아파트를 지으려면 콘크리트가 필요하다. 콘크리트는 산을 깎고 파헤쳐 만들어진 석회석과 골재, 강과 바다에서 빨아올린 모래로 만들어진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동안 산과 해안선은 되돌릴 수 없도록 파괴되고 있다. 집들이 100년 이상 사용된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재개발·재건축은 20~30년 단위로 되풀이된다. 이러한 주택개발문화는 환경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땅도 병들게 하고 있다.

-2004년 9월 위성촬영된 자병산의 모습. 당시 20년째 석회석을 채굴하면서 주변 산림과 달리 헐벗은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 있다. | 구글어스 제공 

봄은 왔지만 자병산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지난 4월 초 찾은 자병산에는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고, 뿌연 흙먼지만 피어올랐다. 석회석 채굴이 시작된 지 26년.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었던 자병산은 본모습을 잃고 황폐한 돌산처럼 보였다. 자병산 능선에서 석회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환경단체 회원들은 ‘자병산의 눈물’이라고 표현했다.

강원 정선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첩첩산중 속 꼬불꼬불한 42번 국도를 지나는 관광객들은 왼편으로 나타나는 헐벗은 산자락에 놀란다. 녹음이 짙어가는 다른 산들과 달리 자병산은 26년째 석회석 채굴이 이뤄지고 있다. 1985년부터 올해까지 (주)라파즈한라가 이곳에서 채굴한 석회석은 1억4000만~1억5000만t이다. 약 220㏊에서 이 같은 양을 채굴하면서 원래 해발 872.5m의 자병산은 2010년 현재 760m 정도로 깎여나갔다. 시멘트 채굴이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30여년 후에는 50m가량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병산이 헐벗게 된 것은 아파트 건설에 필수적인 시멘트 때문이다. 70년대와 80년대 말 신도시 건설 등 전국적인 대규모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시멘트업체들은 별다른 제재 없이 석회석이 매장된 백두대간을 파들어갔다. 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 아예 제재조차 없었던 탓이다.

  

-강원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에 걸쳐있는 자병산에서 특수차량들이 석회석을 채굴하고 있다. 백두대간 보호법률이 제정 되기 전까지 석회석 개발이 마구잡이로 이루어졌다. | 백두대간보존회 제공

산림골재 채취량은 연도별 주택공급 실적에 따라 오르내렸다. 연도별 주택공급실적이 58만5382가구로 크게 늘어났던 2003년을 기점으로 살펴보면 2002년 5835만1000㎥, 2003년 6478만1000㎥, 2004년 6365만2000㎥에 달했다. 그나마 현장확인이 가능한 자병산의 경우 환경단체와 라파즈한라의 노력을 통해 석회석 채굴이 끝난 지역 중 일부를 주변 산림 수준으로 복구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주민, 환경단체와 협의해 허가받은 부분만 채굴한다. 백두대간보존회 김경한 사무국장은 “동해시 인근에서 ㅆ업체, ㄷ업체 등이 대규모로 석회석 채굴공사를 하면서도 현장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자병산과 달리 쉽게 볼 수 있는 곳도 아니어서 얼마큼 환경파괴가 진행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골재 채취로 인한 환경파괴는 자병산과 같은 큰 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작은 돌산들 역시 깎여나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콘크리트 재료로 강에서 퍼올리던 자갈이 80년대 들어 고갈되자 아예 산을 깎아내 건설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경기 양주에서는 (주)삼표산업이 86년부터 가납리 도락산 일대 59만여㎡에 대해 채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발파작업으로 인한 소음과 환경훼손 등으로 인해 주민들이 공사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삼표 측이 2037년까지 총 133만여㎡를 개발하는 안을 새로 추진하면서 주민들과 업체, 양주시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이작도 인근 해역에서 모래 채취선이 바닷모래를 퍼올리면서 바닷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 인천환경운동연합 제공 

주민들은 “도락산을 추가로 개발하는 것은 산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양주시도 ‘추가 개발은 안 된다’는 의견을 한강유역환경청에 전달한 바 있다. 김경한 사무국장은 “이름 없는 돌산 중에는 사라진 채 아무런 복원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곳도 있다”며 “강원도 동해 인근의 한 돌산은 소규모 업체가 개발하다 부도가 나면서 그대로 방치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폐해는 바다도 예외가 아니다. 80년대 건설붐에 따른 무리한 채취로 강모래가 소진되자 바닷모래까지 채취하기 시작했다. 염분을 없애면 건축자재로 쓸 수 있다지만 노태우 정부 당시 지어진 분당 신도시의 경우 소금기가 빠지지 않은 모래가 사용되면서 콘크리트 균열이 발생해 ‘불량자재’ 논란이 일었다. 현재 서해안의 모래 채취현장에서는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 섬 해변의 백사장이 축소되면서 주민들의 생활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지난 4일 찾은 인천의 송도신도시 인근 해변에서는 바닷모래 채취선이 한창 모래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인천 옹진군 앞바다에서 채취한 바닷모래가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옹진군 앞바다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한강 하구의 특성과 서울로 운송하기가 편리한 장점 때문에 바닷모래 전체 생산량의 약 60%를 쏟아내고 있다. 인근 섬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의 반대운동으로 2003년 한때 작업이 중단됐으나 2006년 초부터 채취가 재개됐다.

바닷모래 채취 작업이 바다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이유는 바지선에서 파이프를 통해 모래를 빨아올리고 바닷물은 그대로 흘러내리도록 하는 방식 때문이다. 어폐류의 주요 산란처인 모래가 빨아올려지면서 어폐류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물이 빠지면서 2차 오염까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천환경운동연합 조강희 사무국장은 “바닷모래 채취 이후 인근 해역의 어류가 4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더 이상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6·2 지방선거 인천지역의 후보를 단일화해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바닷모래 채취 금지를 넣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ps : 한겨레21 2010.01.22 제795호에도 자병산 관련 환경문제 기사가 있어 같이 스크랩한다. 석회암광산 관련 환경문제에서 자병산은 단골 손님인가보다... 

겨우 남은 자병산, 똑똑히 보라
[신백두대간기행 21.백복령∼닭목이재]
시멘트 채광으로 무너져내리는 산… 라파즈한라는 식목사업으로 환경 훼손 만회하려 

세상이 열리기 전인 까마득한 옛날, 마고할미가 살았다. 백두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한라산에 다리가 닿을 정도로 장대한 할머니에겐 아주 귀한 반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반지를 잃었다. 그 반지를 찾느라 온 땅을 헤집어 결국은 스스로도 헤집어놓은 땅속에 묻히게 됐다는 게 강원 영월 지역에 전하는 절벽의 유래다. 

 

» 자병산 석회석 채광 현장. 왼쪽 꼭대기가 자병산이 있던 곳이다. 

10년 전처럼 가는 내내 맑은 하늘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석회석을 캐내느라 절벽으로 변한 자병산에서 영월에서 들었던 마고할미 전설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왜일까? 저녁이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빛나 신령스러웠다는 자병산을 수백m 낭떠러지로 만들어버린 것이 탐욕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더 좋은 아파트와 더 빠른 고속도로를 향한 욕심은 자병산을 사라지게 하고 우리가 기대어 살아왔고 살아갈 수많은 산들을 파헤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병산을 찾아오는 길. 하루 종일 발길이 무거웠던 이유도 10년 전 만난 그 참혹함을 다시 봐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자병산으로 가던 날은 올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고 서쪽 바닷가 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대설경보로 바뀔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린 날이었다. 그러나 길을 떠나 동쪽으로 오는 내내 하늘은 맑았다. 바람조차 없어 쌓인 눈이 녹아내릴 정도로 기온이 높았다.

똑똑히 보고 제대로 전하라는 뜻인가? 10년 전 자병산을 찾던 날에도 며칠을 두고 내리던 비가 갑자기 멎었다. 다 잘려나간 자병산의 귀퉁이에 섰다. 10년 전 자병산에 처음 올랐을 때 섰던 자리보다 적어도 수십m는 더 낮아졌다. 다만 걱정하던 마루금 관통은 이뤄지지 않았다. “저기 나무가 없는 곳이 보이지요. 채광 허가를 받았지만 채광 직전 환경단체들의 요구로 채광을 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라파즈한라 최용호(49) 부장이 가리키는 사면은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나무가 없었다. 그 사면 뒤로 해는 이미 기울고 쌓인 눈으로 산은 푸르게 빛나며 백두산으로 가는 마루금을 연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이라 했다. 자병산은 사라졌지만 물은 어차피 낮은 데로 흐르니 다른 능선이 마루금을 잇는다. 그 마루금을 좇아 시선을 옮긴다. 왕관처럼 솟은 저 산이 석병산이고 그다음 하얗게 빛나는 눈밭은 지난해 여름 고랭지 배추를 키워낸 안반데기 어디쯤일 것이다. 저 언덕을 넘으면 대관령이 보일 터이고, 동양 최대 목초지라는 삼양대관령목장을 지나면 오대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강원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의 라파즈한라시멘트 공장. 과거에 달빛이 아름다워 ‘조울뜰’로 불리던 마을이 있었던 자리다. 

“이제 백두대간보전회와 더 이상 다툼은 없습니다. 상생의 관계지요.” 자병산은 백두대간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1990년대 백두대간 종주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은 잘려나간 자병산을 보고는 자지러졌다. 마고할미의 손톱 자국보다도 더 참혹한 생채기 앞에서 사람들은 백두대간을 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척 두타산 인근 주민들과 산악인들이 참여한 백두대간보전회가 앞장섰다. 채광을 중지하라는 요구와 기업활동을 방해하지 말라는 요구가 충돌했다. 백두대간보전회는 겨우 남은 자병산 정상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였다. 시멘트 산업이 과잉 생산으로 구조조정을 겪으며 기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했던 직원들이 맞섰다. 채광을 중지하면 당장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었다. 분규는 계속되고 기업과 환경단체의 골은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라시멘트가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그렇게 10여 년 이미 채광 지역으로 허가를 받아둔 백두대간 마루금까지는 확대하지 않는 선으로 한라시멘트가 물러섰다. 지역단체는 기존 광구를 중심으로 지하로 채광을 더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라시멘트 ‘에코 백두대간 2+’의 탄생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들먹이며 시멘트 생산을 독려한 탓에 시멘트 공장은 자산가치가 1조원이 넘을 정도로 커진데다 지역경제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문을 닫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지금도 옥계초등학교 재학생의 절반 정도는 라파즈한라시멘트 직원 자녀들이다. 석회석 채광 중지는 곧 옥계 지역 경제의 끝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2003년인가요 제가 보전회를 찾아갔어요. 환경 훼손을 인정했지요. 그렇다고 시멘트를 만들지 않을 수도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환경에 기여할 길을 달라고 했어요.” 최용호 부장이 설명하는 ‘에코 백두대간 2+’ 운동 탄생의 배경이다. 라파즈한라는 기금을 출연하고 시민사회단체는 실행 계획을 세워 진행하는 ‘에코 백두대간 2+’ 운동은 그동안 백두대간 훼손 지역 45ha에 나무를 심고 가꿔왔다. 지난해에는 대관령 인근 안반데기 지역에 시민단체인 ‘강릉 생명의 숲’과 함께 생태숲을 조성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나무를 심는 일과 함께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러주는 사업도 진행한다. 지금까지 35회에 걸쳐 학생 2500여 명이 현장에서 교육을 받았다. 환경부와 함께 행사도 벌이고 동부지방산림청의 숲가꾸기를 지원하는 것도 ‘에코 백두대간 2+’ 운동의 주요한 사업들이다.

채광지 현장의 복구사업도 모든 것을 투명하게 정리했다. 복구사업 자체를 외부 컨설팅을 받아 외부 기업이 진행하도록 하고, 다른 시멘트 기업에는 없는 광산복구모니터링위원회도 구성했다. 위원회에는 시민단체와 학계와 관계기관이 참가한다. 라파즈한라는 위원으로 참석하지 않도록 제도화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실행 가능한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백두대간보전회가 현장을 감시할 수 있도록 문도 열어놓았다.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작된 지역 및 환경단체 등과의 분규가 얼마나 많은 기회비용을 내게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1999년 이후 10년 만에 찾은 잘려나간 자병산 귀퉁이. 872m였던 산은 760여m로 내려앉았다. 앞으로 60여m 더 낮아질 것이라 했다. 귀퉁이만 남은 산 정상이 자꾸만 낮아지는 이유는 지하로 내려가면서 붕괴를 막기 위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 백복령 도로 중간쯤에 선 백복령 옛길 표지석. 강원 정선군 임계장으로 동해의 산물을 나르던 고갯길이다. 

산업역군에서 환경파괴자로, 아버지의 의무

아무리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겨울의 복판이다. 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면서 바람이 찾아온다. 강하지 않지만 견디기 어렵다. 바람은 막고 습기는 배출하는 고기능성 옷으로도 겨울바람은 견디기 어렵다. 이 추위 속에서도 발 아래 까마득한 곳에서 작업 차량들은 쉬지 않아 채광 지역에는 눈이 쌓일 틈도 없다. 저 분주함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의 의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아버지의 의무는 자신의 자리가 ‘산업역군’에서 ‘환경파괴자’로 변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의무다. 자병산은 사라지기 전에도 아버지의 의무를 다하려는 이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던 땅이다.

자연에 기대어 살던 시절 자병산은 대접받는 산이었다. 가뭄이 오래돼 천수답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게 되면 사람들은 제물을 싸들고 자병산에 올라 기우제를 올렸다. 노을빛이 닿으면 산 정상은 너무나 신령스러운 빛을 발해 ‘산계8경’으로 꼽히던 아름다운 자병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빽빽했던 도장나무도 “까마귀가 자병산 고욤을 마다하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넘치던 고욤나무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숲이 사라지면서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할 생명의 터전도 잃었다. 이제는 기억하는 이조차 없어 지명유래집 정도에나 남아 있는 자병산 인근 골짜기의 이름은 유난히 자연환경에서 따온 이름이 많다.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기 전 자병산 골짜기에는 9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이 중 80여 가구가 이어오던 삶의 터전을 시멘트 공장에 내줬다. 지금의 시멘트 공장 자리는 달빛이 유난히 아름다워 ‘조울뜰’(照月平)으로 불리던 마을이 있던 곳이라 했다.

자연은 사람이 없어도 존재하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다. 채광 지역의 일부지만 복원 활동도 성과를 내고 있다. 폐석에 흙을 덮고 다지고 기다리고 몇 번의 갈아심기를 반복한 뒤에야 석회석을 캐낸 사면에서 나무는 다시 숲을 이뤘다. 한쪽에서는 나무젓가락만 한 나무들이 겨울바람을 이기며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펼치고 있었다.

라파즈한라는 이제 환경 활동을 중요한 공익 마케팅으로 인식하고 있다. 적자를 내는 해에도 지역발전기금을 출연하고 장학재단을 유지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역의 민심은 1975년 한라시멘트가 들어서던 시절처럼 큰 기대를 걸지는 않지만 함께 기대고 살아가야 할 공동체로 라파즈한라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미 파헤쳐진 자병산 능선은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폐광 지역에 대체산업이 들어서 옥계면의 일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해주기를 희망한다. 일부에서는 그대로 수십 년간을 지켜보면서 자연천이에 의한 복구와 환경을 교육하는 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몇몇 환경단체는 법대로 원상 복구할 것을 주장한다. 이미 깎아낸 산을 다시 세우려면 또 그만한 흙과 바위를 어디선가 가져와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게다.

길어야 100년이면 석회석 바닥 드러내

기왕의 채광 지역 복구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석회석 자원도 100여 년 뒤면 고갈된다는 걸 함께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병산 지역은 현 상태의 채광을 유지하면 30여 년, 우리나라 전체로는 앞으로 100여 년이면 석회석이 바닥이 난다고 한다. 100년 이후에도 계속 태어날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동해·강릉=글·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 신백두대간기행 21.백복령∼닭목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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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다. 제목은 '연애의 정석, 죽거나 권태롭거나' 나름 요즘 땡기는 책들이 사랑에 관한 책들이어서 관심이 가는 내용이다. 특히 '간통죄' ... 도무지 '간통죄'라는게 어떻게 성립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눈에 쌍심지를 키고 처다본다. "그럼 넌 결혼한 후에도 바람을 핀다는 애기야"라며 ... 참 단순한 생각이다.   

  

내가 요즘 읽은, 또는 읽으려하는 책들이다. '열정으로서의 사랑'은 시작은 쉽게 했는데, 아주 어렵게 읽은 책이다. 아주 어렵다. 중간 중간 단편적인 내용들은 이해가 가지만, 그 얼개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책. 두번째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은 읽으려 준비중(?)인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예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초판본...표지가 좀...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열정으로서의 사랑 '류의 표지가 맘에 드는 편. 세번재 '사랑의 단상' 이 책도 꽤 두껍다.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듯... 하지만 올해 안에는 꼭 읽어보려 한다. 

다음 글은 블로그 글 전문이다.

ㅡ아내는 간통죄?!

내가 아직 학교를 다닐 무렵, 한번은 철학 선생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도덕적 논쟁’을 주제로 리포트를 써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리포트로 쓸 만한 사건을 찾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뒤졌고, 옥소리와 박철의 이혼을 보도한 기사를 읽던 와중 난생 처음 보는 단어를 만나게 되었다. ‘간통죄’, 이게 뭐지?

간통죄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즉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맨 처음 간통죄의 정의를 읽었을 때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남녀가 함께 살다 보면 바람이 날 수도 있는 거고 사랑이 식어서 다른 이성과 눈이 맞을 수도 있는 거지, 무슨 법원이 그런 사생활까지 간섭을 한단 말인가? 이건 명백한 프라이버시 아닌가? 나는 두 남녀의 감정싸움에 법이 개입을 한다는 사실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이런 법을 아직까지 철폐하지 않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역시 희한하고 괴상한 나라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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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_ "불멸의 사랑을 향한 맹세? or 서로의 육체에 대한 구속?"
 

그런데 그보다 더 희한하고 괴상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친구들은 내 의견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당연한 거 아냐?” 라고 대꾸하며 그런 생각을 하는 네가 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논리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신성한 결혼식을 올린 사람이 배우자 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생각하는 ‘결혼’은 법정에서 요구하는 결혼생활의 모범과 일치한다. 결혼! 결혼이란 신성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불멸의 사랑을 맹세하는 것이 결혼 아니던가. 신부는 눈부시게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랑은 점잖은 턱시도를 입고, 엄숙한 주례 앞에서 굳은 맹세를 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이 사람만 사랑하겠습니다.” 그런데 간통, 즉 배우자 외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평생 이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서약을 뻔뻔스럽게 어기는 것이다. 이미 정절을 버리고 육체가 더럽혀졌는데 어떻게 여전히 그 사랑을 고귀하다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려면 무엇보다도 순결이 필요하다. 너 이외의 사람과는 절대로 몸을 섞지 않겠다는 성스러운 맹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기혼자들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연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평생 사랑할 파트너를 만나기 이전에는 최대한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 결혼 첫날 밤,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혼을 한 커플이 얼마나 많은가. 덕분에 산부인과에는 아직도 처녀막 재생수술을 하러 온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식의 사고에서 강박증 같은 것을 느낀다. 결혼을 할 파트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하고, 섹스란 오직 부부의 침대 위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며, 가정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 그것이 죄악이 된다면, 결혼이란 ‘불멸의 사랑을 향한 맹세’가 아니라 오히려 ‘육체에 대한 구속’이 아닐까? 지금 사람들의 생각은 요컨대 이런 것이다. “1. 결혼 전에는 건드리지 않는다. 2. 결혼 후에는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고미숙, 『나비와 전사』, 218쪽) 이것은 육체에 대한 ‘사적 소유’에 가깝다.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에 깔린 이 독점욕과 소유욕, 전혀 신성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은 것이다. ‘순결’과 ‘결혼’이 진정한 사랑을 보증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단 말인가?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책이 한 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내는 그야말로 ‘Perfect’ - 매력 있는 얼굴에, 밤 기술 좋고, 남편과 취미가 똑같고, 집안일까지 완벽한, 그러나 결정적으로 ‘순결’과는 거리가 있는 여자다. 그녀는 분명히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애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더니 급기야는 새로운 애인과 한 번 더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한다. ‘순결’이나 ‘정조’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랑! 그렇다면 이 부부의 사랑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남자와 한 번 더 결혼했지만 여전히 아내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당돌한 아내는 틈만 나면 남편에게 일부일처제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실제로 이 혼인제도가 문명권에 정착한 것은 채 200년도 되지 않았다. 근대와 함께 도래한 이 제도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본성에 그리 적합한 제도가 아니라고 한다. 이는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바가 있다. 학자들은 “여러 상대를 원하는 성욕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본능”(데이비드 P. 버래쉬 외,『일부일처제의 신화』)이라고, 우리가 지금 고수하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모든 혼인제도 중 가장 어려운 것”(앞의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등 다양한 결혼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장 부자연스럽다는 일부일처제만이, 마치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온 천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일부일처제는 인간에게는 가장 부자연스러운 제도일지 모르지만 국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적합한 혼인제도이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우수한 인종을 최대한 많이 키워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결혼이나 가정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무분별하게 섹스를 한다면 국가는 애비 없이 태어나는 수많은 사생아들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인종론적, 인구론적 목적 아래 국가가 성性을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성性을 국가의 기초단위인 ‘가정’에 흡수하는 것이다. 가정을 사랑과 섹스를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런 사고를 주입시킬 수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결혼’을 신성하고 절대적인 의식으로써 그 위치를 부상시킨 다음, 그 신성한 사랑의 증거로 ‘순결’을 들이밀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순결만이 곧 진정한 사랑을 보증합니다. 몸을 깨끗이 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부부 사이의 성실한 관계를 유지합시다.”  그러나 결혼은 국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기본 단위이며 순결은 “연애의 열정과 성적 욕망을 결혼으로 흡수하기 위한 성정치학의 일환”(『나비와 전사』, 211쪽)일 뿐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일부일처제와 상관없는 결혼제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티베트에서는 아직도 결혼은 평생 세 번에 걸쳐서 해야 한다고 믿는 소수 민족들이 존재한다. 젊어서는 늙은이와, 중년에는 비슷한 또래와, 그리고 늙어서는 다시 젊은이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일부일처제의 척도로 이 소수민족을 바라보면 이 사람들은 전부 일생동안 간통죄를 2번 이상 저지른 사람들이다. 아니면 숱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서방과 마누라를 3번씩이나 갈아치운 성적으로 밝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부일처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워 ‘미개하다’느니, ‘여자 혹은 남자의 권리가 침해받는다’느니 말하며 이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육체를 ‘사적 소유’하려는 일부일처제는 미개하지 않은 제도인가? 만약 “결혼이 육체에 대한 사적 소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거나 사적 소유란 부도덕한 것이라는 윤리가 작동한다면”(앞의 책, 218쪽) 더 이상 아무도 결혼과 순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일처제의 안경을 벗고 티베트 사람들을 보라. 이것이야말로 정말 쌈빡한 결혼제도 아닌가!

또 다른 예도 많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20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인 조선시대의 혼인풍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떠올리는 조선의 성윤리인 수절이나 정절은 양반층에서나 통용되던 윤리일 뿐, 실제로 농촌사회에서는 개가가 아주 자유로웠다고 한다. 마음이 맞고 상황이 맞으면 같이 사는 것이고, 마누라가 죽었거나 밉살스런 장모님이 마음에 안 들 때는 도망가면 그만이고! 조선 후기 서민 가사의 대표작인 「덴동어미 화전가」는 그 생생한 증거가 되어 준다. 덴동어미는 만나는 남편마다 족족 재난을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서 저 세상 사람이 되는 바람에 60살까지 4명의 남편을 갈아치우는 상부살이 낀 여자이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덴동어미에게 어떤 비난도 편견도 갖지 않으며 오히려 상부(喪夫)를 할 때마다 이번에는 진짜 팔자 좀 고쳐 보라며 새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 너무나 쿨한 사람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단 한 가지, ‘생계’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온갖 재난에 맞서 싸우려면 개가를 해서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스러운 결혼? 순결? 이곳에서는 택도 없다.

물론 이는 전부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들이다. 본능에 적합하든 적합하지 않든 현재 우리가 추구하고 유지하는 것은 일부일처제이고, 여전히 성性은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된다. 만약 남편이 이 발칙한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한다면 그녀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내는 국가가 세워준 결혼의 기본적인 절차를 전부 무시했으며 정절이나 순결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불멸의 사랑도, 유일한 사랑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맞는 말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나 자신도 끊임없이 변하는데 사랑하는 마음 또한 그에 발맞춰 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유일한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연애를 해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지는 않는다. 애인을 사랑하는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고, 컴퓨터를 사랑하고, 음악과 쇼핑을 사랑하고, 강아지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한다. 여러 이성에게 동시에 사랑을 느끼고 동시에 교제를 하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두 번 결혼한 아내, 티베트 고원에 사는 소수민족들, 조선시대의 덴동어미, 간통죄를 고수하고 있는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전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의 사랑이 가짜인 것은 아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사랑에 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이나 순결이 진정한 사랑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가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불멸의 사랑도, 유일무이한 사랑도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진정한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결단코 ‘아니다!’ 따라서 결혼제도에 얽매이고 순결에 집착하는 것은 사랑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소유욕과 독점욕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일처일부제가 된다면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다처다부제는 안 된다는 법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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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질투>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 간통죄를 없애면 바람을 피워도 불법이 아니라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이로울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번번이 간통죄를 찬성하는 걸까? 어째서 내 친구들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단호하게 간통죄를 없애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걸까? 문제는 단순한 법의 존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내재되어있는 복잡한 무엇인가가 함께 얽혀 있다. 결국, 일부일처제란 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김해완(수유+너머) 
 

ps : 공감가는 내용이다. 나또한 이런류의 불손한 생각을 가진 사람 중의 한명이다. 참고로 위 글에 나오는 '나비와 전사'도 예전에 읽은 책인데, 이 책의 저자인 고미숙씨를 이 책을 통해 팬이 되었다. 어찌나 글을 재미나게 잘 쓰시는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도 재미있는 책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들추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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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앙대학이 두산그룹에 인수된 이후로 신자유주의 대학 개혁(개악)의 선두에 서고 있다. 이제 고려대학교는 중앙대학교에 비하면 한 수 아래인듯하기도 하다. 나도 한때는 '지리과 가면 뭐하나'라는 류의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난 그럼 '뭐 하긴 뭐해 지리 공부하지'라는 구차한 대답. 어차피 그런 류의 질문을 한 이들의 질문 의도는 나의 이런 대답을 요구한 것은 아닐 것임을 알지만 나의 다른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을 계속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읽는 책들도 부쩍 지리전공서적은 줄고 인문서적으로 손이 가고 있다. 그 어떤 이의 말처럼 '인문학은 우리 주위에 공기처럼 존재'한다는 확신이 든다. 

이와 관련해서 읽고 싶은 책이 두 권 있다. 공교롭게도 둘다 강신주씨의 저서이다. 언제나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지만...아직 구입도 하지 않았다. 나의 책 편력과 책 구입에 관대하던 아내도 아이의 성장에 따라 책이 '책'이 아닌 아이를 '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되면서 나의 퇴근길 못보던 책이 있나없나를 유심히 보는 듯하다. 얼마전에는 서재도 정리를 했다. 더이상 책을 가져올시 지금 있는 책이 하나씩 없어질 것이란 엄포도 놓았다. 큰 서재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갈때까지는 자제하고 구입한 책들은 학교 서랍에 모셔 놓아야 할 듯하다. ㅋㅋ

    

한겨레신문 2010.5.1 

우리 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주로 두 사람이 방 하나를 같이 쓰는 하숙집에서 기거했다. 내가 만난 ‘룸메이트’ 가운데 법대생이 둘 있었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이상수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학창시절 온갖 책을 가리지 않는 독서광이었고, 글을 잘 썼으며, 입을 열면 시정이 넘치는 말을 쏟아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오로지 고시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도서관에서 살았다. 나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그에 비하면 내 공부는 늘 산만했다. 어느 날 그가 나한테 왜 고시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도 그 질문이 뜬금없다고 느꼈던지 어조를 갑자기 힐난조로 바꾸었다.

불문과에서는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나는 고작 이렇게 대답했다. 불문학과니까 불문학을 하지. 대답이 아니라 대답의 회피였다. 그러나 저 고시생의 확실하고 단단한 신념 앞에서 내 공부의 내용과 목표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아득한 일이었다. 문제는 내 생애에서 이렇게 질문해오는 사람이 그 사람으로 끝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언젠가는 교육부의 관리가 프랑스의 불문학박사보다 한국의 불문학박사가 더 많다는 얼토당토않은 낭설을 티브이 방송으로 퍼뜨렸으며, 가끔은 대학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제는 영어 하나면 어디서나 통하니까 프랑스어 교육은 필요 없지 않으냐고 넌지시 묻는다. 교육부 관리의 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프랑스어 교육 불필요론 앞에서 나는 프랑스어가 무역이나 여행을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거나(실은 그런 일에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데, 상대방은 이어질 말을 듣고 싶은 기색이 아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현재 세계의 문화적·정치적 지형도의 형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프랑스어로 작성되었으며 지금도 작성되고 있는 많고도 중요한 문헌에 관해서는 말할 틈조차 없다. 그 질문은 처음부터 내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봉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사회의 발전에서 앞으로 오게 될 세계의 그림을 문학이 항상 먼저 그려왔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쩌면 자신의 세계관에 적대할 사람들을 불어불문학과에서 기르고 있다고 아연 긴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불어불문학과를 비롯한 유럽어문학과는 졸업 후 취직이 특별히 어려운 학과도 아니다. 대기업에 무더기로 취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계에서 연예계까지 각종 문화산업의 미묘한 자리에는 유럽문학과 출신들이 어김없이 끼어 있다. 다양한 장르의 문필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문학으로 함양한 개성과 재능을 토대로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영화감독, 작곡가, 디자이너도 적지 않다. 외국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효과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이 삶의 안팎에 퍼져 있으나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적다. 그 효과가 어디서 오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불어불문학과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설명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이 말은 해두자. 

어느 젊은 출판인이 교수신문에 칼럼을 기고하여, 근래 프랑스에서 발간된 인문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시급한데, 마땅한 번역자를 구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 까다로운 문장을 읽어내고, 그 의미를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지어, 이 서적들을 번역해낼 만한 소수의 사람들은 저 모욕적인 질문을 자주 받으며, 제 공부의 터전에 위기까지 느끼면서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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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법을 제정하고 바꾸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바꾸려 들고 있다. 그네들은 무조건 자기네 의견에 맞지 않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수과좌파 판사'라며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 씁쓸하다. 난 이런 사건이 한 사회의 '품격'을 보여준다고 본다. '품격' ...  

'법치'와 관련해서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법을 보는 법'과 '법학을 위한 투쟁'에 관한 책 소개글이다. 

법을 보는 법 - 독자들이 법 일반에 대해 궁금해 할 만한 질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법규범이 현실에 어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영화, 소설, 철학서의 여러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낸 책이다. 더불어 이 책은 정작 법으로 다스려져야 할 사람들이 법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독자 스스로 판별할 수 있도록 돕는, 한층 심화된 지식을 전달해준다. 일상생활에서 법적인 논란거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책은 광우병 쇠고기를 예로 들어 누군가 ‘내 맘대로 쇠고기를 먹고 내가 죽겠다’고 하는 태도는 왜 잘못되었는지, 사형 제도를 예로 들어 그 제도의 목적이 피해자의 복수심과 가해자의 경각심 모두를 해소하지 못하는 모순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왜 무효인 계약이 있는지, 전쟁을 할 때 왜 서로 법을 지키는지 등 다양한 법적 논란에 대한 체계적으로 해석한다. 또한 이 책은 중세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초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이상적인 권리가 구체적 현실에 어떻게 맞물려 현재에까지 이르렀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존 로크, 토머스 홉스, 칼 마르크스 등의 입을 빌린 역사적 해석은 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더욱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법학을 위한 투쟁 - 헤르만 칸토로비츠는 법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법의 흠결과 사회 발전에 따른 법의 현실 부적응성을 지적하면서, 법관의 자유로운 법 해석과 창조를 주장하는 자유법론을 정초하는 데 공헌한 독일의 법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법의 해석, 적용에 있어서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요소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법 자체만을 형식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개념법학(槪念法學)을 강력히 비판한다. 1906년 출간과 동시에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책으로, 법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강령적인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경향신문 2010.5.1 

법치 깔아뭉갠 한나라당 ‘판결 불복종’ 운동  

조전혁 의원이 법원 결정을 잇따라 무시하고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명단 공개에 집단 동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김효재·정두언 의원 등 15명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조 의원의 싸움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조 의원 혼자 골목길에서 좌파에게 뭇매를 맞게 해서는 안된다”며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동참하자고 제안했다.

정말인지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언동들이다. 집권 여당 의원이 한 사람도 아니고 조직적으로 법원 결정에 불복하자며 어깨를 겯고 나섰으니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하급심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2심도 있고 3심도 있다. 이런 절차를 밟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떼를 지어 판결문을 걷어찬다면 재판 제도는 애당초 둘 필요도 없다. 그러고도 법치를 얘기한다면 지켜야 될 법은 무엇이고 안 지켜도 되는 법은 또 무엇인가.

전교조 명단은 비밀도 아니지만 공개를 강요해야 할 정보도 아니다.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고 말고는 단체와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밝히라고 윽박지르는 곳은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사상, 신념, 노동조합 가입과 탈퇴, 정당 및 사회단체 가입과 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성생활·유전자에 관한 정보’ 등을 민감 정보로 규정해 공개를 금지시키는 내용의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해둔 상태다. 같은 당 내에서 한쪽은 노조원 명단을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로 보고, 다른 쪽에선 공개를 강행하니 이런 모순도 없다.

한나라당이 누가 봐도 무리한 전교조 명단 공개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6월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반(反)전교조’ 정서에 불을 붙여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진보 후보가 40%대 지지율을 보인 반면 보수 후보는 20%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온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여당의 애를 태울 만도 하다. 이미 한나라당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이번 선거를 전교조 심판으로 몰아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때를 맞춰 노동부가 전교조에 조합규약 시정명령을 내리고,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서고, 보수단체 회원들이 학교 앞으로 몰려가 ‘전교조 교사 담임거부운동’ 시위를 벌이는 것도 수상하다.

교육비리, 무상급식, 사교육 문제들을 뒤로 하고 전교조를 선거 쟁점화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전략이 얼마나 먹힐지는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 한나라당은 법원 판결에 저항하는 의원,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정당,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집권세력의 오만을 만천하에 보여줬다는 점이다. 

ps : 일부러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봤다. 명단 공개 거부 판결에 대한 기사는 나름대로 양쪽의견을 실고 있으나 사설을 보니 역시 논조를 알 수 있다. 이런 '류'의 사설을 읽을때마다 도무지 논리를 찾아 볼 수 없으며 억측과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씁쓸하다. ...   

동아일보 2010.5.1 사설

학부모는 '교원평가를 거부하는'교사 명단을 알고 싶다.

A중학교에서는 모든 교사가 동료 교사 평가에서 전 항목에 걸쳐 만점을 받았다. 공개수업 평가에 참가한 학부모들은 ‘도전 골든벨 수업’ ‘영상 수업’ 같은 수업 방식 때문에 도저히 교사평가를 할 수 없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올해 6, 7월 본격 실시되는 교원평가에서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일부 교사가 교원평가를 무력화하기 위해 인터넷에 이 같은 변칙적인 아이디어를 올려놓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카페 등에 ‘교원평가 강제는 교원에 대한 구조조정 시도’ ‘동료평가는 거부해도 괜찮다’는 거짓 정보를 올리며 다른 교사들을 선동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이 이렇게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하기 때문에 전교조 소속임을 그렇게 애써 숨기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교사가 학생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교원평가제는 교사의 경쟁력을 높여 학생들에게 더 양질의 교육을 하기 위한 제도다. 교사들이 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은 대충 가르치고 편하게 지내면서 봉급이나 챙기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도무지 이런 억측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교원평가를 거부하거나 뜻이 다르면 모두가 평가를 받기 싫어하는 무능력, 월급만 받아 챙겨먹는 양심없는 교사란 말인가? 그럼 과연 자기네들이 만든 법을 자기네들이 어기는 국회의원들이야 말로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그네들이야 말로 자기 존재 이유가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런 교사들을 솎아내지 않고 공교육 수준이 높아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 워싱턴의 미셸 리 교육감은 “학생을 가르치는 행위는 예술만큼 신성하다”면서 교사 개혁부터 시작해 성과를 내고 있다. 교원평가가 성공하려면 평가 결과를 인사와 급여에 반드시 연계하도록 해야 한다. (보수쪽 인사들이 많이 애기하는 미셸 리 교육감...참 많이 나온다. "학생을 가르치는 행위는 예술만큼 신성하다" 과연 이네들이 이런말을 할 자격이나 있다던 말인가? 예술처럼 '신성'한 행위에 평가를 매기고 또한 그것을 인사와 돈에 연계한다는 말인가? 가끔 보면 이네들은 한글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언 뜻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전교조는 ‘명단 공개는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부모가 빨치산을 미화할 정도로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교사에게 자녀 교육을 맡기고 싶겠는가. 어떤 부모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교사가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교원평가를 거부하는 것을 납득하겠는가.  (어떤 선진국이 그네들이 하려는 '교원평가'가 보편화되있다는 말인가? 물론 그네들이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미국의 일부 주들은 실시하려나 모르겠으나, 그 어떤 선진국도 보편화되있지 않다. 그리고 공무원의 월급이 부모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맞으나 내가 학교에 있는 부모의 세금이 나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세금에 의해서 나의 월급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교사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s : 제발 '상식'적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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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는 박성관씨가 종의기원 해설서(?)를 썼단다. 무려 900여페이지 분량의 제목이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 원전을 읽기 어려운 나같은 이들에게 좀 도전해 볼 만할 듯 하다. 

 

경향신문 2010.5.1 

딱딱했던 ‘종의 기원’ 친절해졌네  

ㆍ창조론 비판 다윈의 ‘불온한 명제’ 현대적 시각서 읽기 쉽게 해설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박성관 | 그린비

현대의 인문·교양서 독자들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대상이 칼 마르크스와 찰스 다윈이다. 요즘 나오는 인문·교양서들을 보라. 상당수가 마르크스와 다윈이 남긴 사상적 유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확인 또는 반박하거나 변주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흔들리면서 마르크스가 현실에서 새로운 호흡을 얻었고, 지난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였다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탄생 몇백주년이 됐다고 모든 사상가가 주목을 받지는 않는다. 그만큼 마르크스와 다윈이 인류 지성사에 남긴 충격이 컸고, 그 충격으로 만들어진 호수가 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마르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히말라야가 아무나 제발로 걸어서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듯 불세출의 사상가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칭송받는 그들의 저작을 독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고의 과정이다. 대체 대한민국에서 <종의 기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물학도들조차 몇페이지 넘기면 잠귀신과 맞닥뜨리고 만다는 그 책을 말이다.

창조론자들에게 세상 바깥의 완벽한 설계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쳐졌던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을 찰스 다윈은 무생물과 생물을 잇는 진화의 증거로 보고, 이를 증명해 냈다. 이 이미지는 다윈이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가 신이 천지를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태고의 날들(The Ancient of Days)’을 찢어버리는 것처럼 콜라주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통 사람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마침내 다윈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지은이는 사람들이 <종의 기원>을 읽지 않거나 읽는 데 실패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다윈이 증명한 진화론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교황조차 진화론을 더 이상 하나의 가설이 아니라 다양한 과학 분야에 의해 공통적으로 지지되는 과학 이론이라고 인정하는 판이다.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그러니 창조론을 대하장편소설 길이로 비판하는 책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종의 기원>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지은이는 다윈이 <종의 기원>으로 철저히 부숴버렸던 인간중심주의와 목적론(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자연 현상은 모두 특별한 목적이 부여돼 있다는 사고)이 현대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액면 그대로의 창조론을 믿는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봐도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다르고 훨씬 월등한 존재다’라는 표현을 떠올려 보자. 이 말에 스스럼없이 동의한다면 당신은 다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자칭 진화론자라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여기에서 바로 ‘인간은 결코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이 세상의 비밀은 거룩한 기원에 있지 않다’는 다윈의 ‘불온한’ 명제를 담은 <종의 기원>이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다윈은 주도면밀했다. 그리고 성실했다. 자신을 빼곤 모두가 창조론자 혹은 사이비 진화론자였던 시대에 일당 백이 아니라 일당 천, 일당 만으로 싸워야 했던 그는 책의 구성, 논증 방식, 세세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매우 신중했다. 이 책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과 반론조차도 <종의 기원>에 상세하게 수록하고 반박했다. 책을 집필하기 전 다윈이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것이기도 하다. 5번이나 개정판을 내며 초판의 문장을 75%나 손질했지만 다윈이 수십년에 걸친 연구에서 얻어진 확신을 결코 굽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들이다.

사실 진화의 장구한 흐름을 인간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생명의 창조와 진화를 둘러싼 논쟁은 상당 부분 논리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윈이 자신을 포함한 당대의 과학자들이 난제로 여겼던 주제를 제시하고,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 다음 상대방의 허점을 공격하고 자신의 가설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진화론에 관한 지식 외에도 고도의 지적·논리적 유희를 선사받게 된다.

한가지 문제는 ‘친절한 다윈씨’를 만나게 해준다고 장담하는 이 책 역시 분량이 900쪽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다. 분량에 압도당하지만 않는다면 <종의 기원> 원문을 3분의 1가량 인용하면서도 먹기 좋게 요리한 글솜씨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등 다윈의 후예들이 구축한 현대 진화론의 최전선을 한눈에 조망하며 즐기는 기쁨은 책 후반부까지 읽어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다. 3만2000원

 

한겨레신문 2010.5.1   

무한진화·인간소멸…‘불온한 다윈’을 복권하다 

현대진화론 토대 ‘종의 기원’ 재해석
10년 연구내공 녹여 ‘읽히는 책’으로
“일탈과 무한변화야말로 창조의 힘”

<종의 기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종의 기원>을 읽어본 사람도 거의 없다. 심지어 그 분야 전문연구자들조차도. 지난해는 찰스 다윈(1809~1882·사진) 탄생 200돌이었고, 그가 50살에 써낸 <종의 기원> 출간 150돌이어서 그에 대한 재평가, 칭송과 함께 숱한 관련서적들이 출판됐지만 아마도 그런 추세를 바꿔놓지 못했을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10여년간 이 고전을 읽고 강의해온 박성관(43)씨의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의 큰 장점은 우선 읽히는 책으로 다시 썼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발췌·요약본이나 쉽게 풀어쓴 안내서류는 아니다. 원전 내용을 3분의 1 이상 충실히 번역해서 옮기고, 원전의 여러 판본과 다윈의 다른 저서들, 국내외의 다양한 번역서들과 비교하면서,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도킨스, 기타무라 유이치 등 많은 연구자들을 불러내 의미를 되새기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꼼꼼하게 조언한 책은 ‘현대화’되고 더욱 풍성해졌다.

9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책이 단순한 해설서 이상인 것은 10여년간 10번 이상 이 책을 읽고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쌓아올린 박씨의 남다른 내공, 그리고 강렬한 현실비판적 문제의식이다.
  

» 찰스 다윈(1809~1882) 
 
사람들은 “창조론을 비판하며 진화론을 확립한 과학역사상 최고의 고전, 서구를 비롯하여 전세계를 뒤바꾼 혁명의 서” 등의 찬사를 받는 <종의 기원>을 왜 읽지 않을까. 박씨의 생각으로는, 학교 다닐 때 다들 배운 적 있는 진화론을 사람들은 얼추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막상 읽어보려 하면 150년이나 묵은 이 두꺼운 “고물탱이” 만연체 책을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것, 극소수가 의무감에서라도 가까스로 다 읽어냈다 한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다는 것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번역본이 있다 해도 도전해보기가 망설여지는 터에 좋은 번역본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은 바로 그런 난제들을 해소하고, 현대 진화론의 성과들을 토대로 <종의 기원>을 재해석해 보려는 독특하고 야심만만한 책이다. 지은이의 문제의식은 부제격인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에 응축돼 있다. <종의 기원> 초판본 제목은 <자연선택, 또는 생존투쟁에서 유리한 품종의 보존에 의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였다. 박씨가 새로 붙인 부제는 박씨의 창작이 아니라 <종의 기원> 본래의 문제의식을 되살려낸 것이다. 그중의 ‘인간소멸’이 암시하는 것은 150년 전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창조론, 절대자 신이 이 세상과 생명들을 창조하고 인간을 그 주인으로 세운 인간중심주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대한 부정이다. 그런데 다윈이 비판하고 부정한 것은 창조론만이 아니다. 그는 라마르크로 대표되는 당대 진화론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바로 이 점이 지은이의 문제의식과 직결된다. 당시 진화론자들은 천지창조와 생명현상을 창조주의 섭리로 설명해온 창조론자들과는 달리 태초에 물질이 있었고 그것이 진보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생명을 낳고 진화해왔다는 주장을 폈다.

다윈은 섭리도 법칙도 부정했다. 그는 법칙을 내세운 당시 진화론은 지향점이 예정돼 있는 목적론적 세계관, 인간중심주의로의 발전사관으로 이어져 결국 창조론과 다를 바 없는 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실제 당시 진화론을 편 과학자(박물학자)들 중엔 기독교 성직자들이 많았다. 다윈은 진화의 세계는 방향도 지향점도 없으며, 오직 모든 생명체들이 ‘개체의 차이와 변이’에 따라 무제한 다양하게 끝없이 진화해가는 ‘무상과 장엄’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자연법칙이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은 자연계의 다양한 현상들의 반영물일 뿐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한날에 태어난 그가 1831년 22살 때 군함 비글을 타고 5년간 세계를 떠돌며 목격하고 조사하고 수집한 방대한 자료들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종의 기원>은 20여년간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해낸 깊은 사색의 결과물이다.

그는 개체들이 무한번식을 거듭하면서 차이, 변이, 기형, 변종을 거쳐 어버이 종(원형)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것들이 가장 번성하고 마침내 종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종을 창출하는 것, 기존 질서와 계통의 한계를 돌파해버리는 일탈과 무한변화야말로 진화의 힘, 창조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엔 하등과 고등의 구분이 없고 모든 생명체는 각자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들 각자의 진화의 끝은 기존 종의 소멸과 새로운 종의 탄생과 번성이며, 진화는 그 무한과정이다. ‘인간소멸’은 바로 기존 종의 소멸과 새로운 종의 출현, 그들이 새로 펼칠 새로운 차원의 무상과 장엄의 세계를 암시한다. 그것이야말로 다윈이 19세기에 비춰준 “홀연한 빛”이었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은 미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시들고,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세상의 비밀은 거룩한 기원에 있지 않다는 그의 메시지는 유폐됐다. 부르주아들이 주조해낸 근대인들은 지난 150년간 다윈의 과학비판을 종교비판으로 좁히고, 자연선택은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으로 변형시켰으며, 생존투쟁과 상호의존은 생존경쟁으로 바꿔쳐버렸다. 그리하여 다윈은 종교비판가이자 부르주아 가치의 대변자로 전락했다. 당대의 기성 세계와 앎의 체계에 도전했던 다윈의 의문과 그 불온성은 거세당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과 지금의 개발·성장주의의 맥이 거기에 닿아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기존의 모든 앎의 체계에 의문을 품어온 지은이가 <종의 기원>에서 발견해낸 것이 바로 다윈의 의문과 불온성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을 가리키는 풍요로운 빛살이었다. 나는 이제 여러분과 함께 <종의 기원>을 새로 읽음으로써 그것을 소생시키고 싶다.” 10여년 벼려온 그의 다윈 공부 깊이와 폭이 예사롭지 않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ps : 한겨레신문 2010.5.1 박성관씨의 일부 인터뷰 기사이다. 브르주아적인 삶의 질서에서 벗어나자는 필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모든 존재는 고유하며 특별한 것”

■ 지은이와 함께 / ‘종의 기원’ 다시 쓴 박성관씨

군대에 갔다 온 뒤 전자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박성관씨는 직장생활 3년 만에 시들해져, “책 읽으며 자유롭고 재미나게 살기로” 작심하고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찾아갔다. 그때가 10여년 전인데, 혼자 공부하던 일본어를 배우려고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자신이 오히려 선생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고 했다. 그 무렵 우연히 <종의 기원>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근대를 넘어서는 탈근대성, 반근대성 쪽에 주목하다가 3, 4년 전부터는 인간 자체를 넘어서는 쪽으로 관심이 이동했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온 그는 “제도종교에 가입해 있진 않다”고 했다. “요즘 갈릴레이에 빠져들고 있고, 당분간 수학과 물리의 세계에서 노닐 것 같다.” 근대의 종교는 과학과 대척점에 있지만, 흔히들 사실의 세계라고 하는 자연과학에서 그는 초월적 요소를 발견했단다. “일상의 사실 자체가 내게는 초월적이며 멋진 것이다. 물질을 죽어 있는 걸로 간주하고 그 위에 생물, 그리고 또 그 위에 인간을 두는 것은 인간중심주의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은 인간소멸의 세계, 인간 초월의 세계를 담고 있다.”

“아주 가난하다”는 그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애 키우는 일이라며 “애 낳고 키우니까 오히려 생활비가 줄더라”고 했다. 아이를 낳을 때 산파 할머니한테 갔다. 병원 가는 것도, 검사받는 것도, 분유 먹이는 것도 모두 반대다.

“자본주의적 출생은 병원서부터 시작된다. 병원에 가는 순간 분유부터 기저귀까지 몽땅 거기서 주는 대로 써야 하고 그래서 절약해야 하는데, 그래도 없으면 부르주아한테서 빼앗아 오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것 좋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고. 육아를 하다보니 친구에게 전화도 하고 이웃을 방문하기도 하고 또 만나서 상담도 하게 되고 돈도 안 쓰게 된다. 부르주아들 누리는 것이 우리한테서 빼앗아 간 것이긴 하나 그걸 도로 찾아오겠다고 하는 게 옳을까.” 그보다는 병원·학교 등 지금의 부르주아 질서가 만든 것들을 더 근사한 것으로 바꿔가는 다른 삶을 추구하는 게 더 낫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이건희씨보다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대학도 부정하진 않지만 대학 바깥도 좀 어렵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 다양한 레벨의 공부를 대학에선 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학 바깥에 있으니까 내 맘대로 이런 저런 책도 읽을 수 있고, <종의 기원>도 그래서 만날 수 있었다. 대학 개조에 목숨 걸 것 없다. 그래봤자 대중의 호응도 없고. 그보다는 아예 다른 길을 가면서 대학도 여러 선택 가능한 것들 중의 하나로 만들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다양해져야 한다. 열두 번 더 다양해져야 즐겁고 여유롭게, 풍요롭고 다양하게 살 수 있다. 자본주의가 나쁜 것도 획일화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다 다르고 고유하며 특별한 것이다.” 거기엔 무생물까지 포함된다.

세계는 그 특별한 존재들이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호의존 관계 위에 서 있다는 것, 이를 자각한 새롭고 더 풍부한 삶을 위한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종의 기원>에는 그런, 우리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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