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0년 05월 26일 ‘내셔널지오그래픽’ 동해·일본해 대등 표기 

 

‘일본해(동해)’→‘동해/일본해’로 바뀌어
미국의 세계적인 지리학회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인터넷 지도 서비스에서 ‘동해/일본해’(East Sea/Sea of Japan)를 대등하게 병기하고 있는 것(사진)으로 25일 확인됐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2001년 1월 이후 줄곧 지도책과 벽걸이 지도 등에 ‘Sea of Japan(East Sea)’이라는 식으로 동해를 일본해 뒤의 괄호 안에 표기해 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인터넷 지도는 올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제공한 것으로, 멀티미디어 기술을 이용해 3차원(3D) 입체영상으로 보여주는 빙 지도(Bing Maps)에도 이런 병기원칙이 그대로 적용됐다.

프랑스 리옹3대학의 이진명(한국학·한국근현대사)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부터 발간해 온 엔카르타 지도를 2009년판을 마지막으로 내지 않고 있으며, 최종판에도 동해가 일본해 뒤의 괄호 속에 병기돼 있었다”면서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동해/일본해 병기는 앞으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것은 구글 어스가 2008년 4월부터 채택해 적용하고 있는 ‘현지어 명칭 우선 원칙’과 동일한 것”이라며 “현지어 우선 원칙은 바다에 접한 연안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우선적으로 대등하게 병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 사이트의 지도를 확대해서 보면 한국 쪽에는 ‘동해/일본해’로 동해를 먼저 쓰고, 일본 쪽과 러시아 쪽에는 ‘일본해/동해’로 일본해를 먼저 쓰고 있다. 이 지도에 울릉도는 ‘Ulleung Island’로 표기됐으나, 독도는 표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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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서의 사랑 - 친밀성의 코드화
니클라스 루만 지음, 권기돈 외 옮김 / 새물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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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열정 _ 과도함의 수사학과 불안정성의 경험 

 p.95 변덕은 이제 필연적인 것이 된다. 요즘도 그렇게들 말하듯이, 비록 언제나 동일한 대상을 사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언제나 사랑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개별적인 경우에도 연인들은 지속성이라는 허구를 상정하고 행위해야 한다. 그것이 허구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랑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행위할 것. ...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약속 안에만 존재한다." 

p.96 '열정'이란 본래 능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겪고 있는 정신 상태를 뜻햇다. ... 열정이 일종의 제도로 인정받고 사회적 체계들의 형성을 위한 조건으로 기대되면 상황이 바뀌게 된다. 즉, 누구나 긴밀한 연애 관계에 들어서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열정에 빠지게 된다는 기대가 형성되고 심지어 요구되면 상황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열정의 의미론은 제도화된 자유를 숨겨두기 위해, 즉 그러한 자유를 가리는 동시에 덮어두기 위해 사용된다. 열정은 그 자체로도 또 그 결과에서도 정당화될 필요가 없는 행위의 자유가 된다. 능동성은 수동성으로, 자유는 강제로 위장된다.

 p.97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여자는 능동자인 동시에 수동자이다."

p.98 사랑은 이제 다른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무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초열정으로, 혹은 단적으로 말해 열정의 정수로 묘사될 수 있게 된다. 

p.99 열정에 대한 강조가 우선 말해주는 바는 사랑이 합리적 통제 영역의 외부에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두 인격이 서로에게 동시에 빠져드는 일을 비개연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열정의 비합리성이기 때문이다. ... 자신의 열정에 대한 무방비 상태와 타인의 열정에 대한 정련된 태도는 서로를 상승시키는 관계로 나아간다. ... 이중의 우연성을 갖는 하나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투사는 대립적인 것들을 조합할 수 있게 해주며, 심지어 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사랑이라는 소통매체가 준거하는 체계는 심리적 체계가 아니라 사회적 체계이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전통이 계속 이어진다.

p.101 사랑은 정체성 획득이 아니라 정체성 상실에서 정점에 이른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서 사랑하는 자도 애인의 사랑을 요구하며, 심지어는 그것이 무슨 의무라도 되는 듯 몰아붙이는 일도 정당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삶을 '유지하는 것', 노빌리의 표현을 따르자면 "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양식"이다. ... 그래서 17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사랑은 자기소외로 정의될수 있었다. 따라서 사랑은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 즉 정복과 자발적 복종을 조합한다. 그런 조합은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의 저항에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추가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p.102 사랑은 눈을 지배하고, 눈빛 언어를 이용하며, 심지어 부정적인 것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지만 이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든다고들 말한다. 이와 비슷한 역설적인 말들이 이어질 수 있으며, 이런 역설들은 모순을 이용해 사랑할 때가 아니면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에서 관건이 되는 것이라는 인상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든 선보다 고뇌를 더 좋아한다."  

p.104 '사랑받고 싶은 완전한 의지' 

p.106 이해관심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을 이용해 먹는 일은 가능하지만 이해관심을 사랑으로 옮겨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p.108 사랑은 사랑이라는 특수한 시야 속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평가한다. 애인의 모든 체험과 행위는 사랑/무관심 혹은 정직한 사랑/부정직한 사랑과 같은 도식 아래서 끊임없이 관찰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p.110 과도함에 특히 들어맞는 일은 사랑에 대한 모든 정당화(근거지음)가 실패한다는 것이다.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규정된 것을 말하는 것은 사랑하기라는 양식과 모순될 테니 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 자체가 정당화이다. 

p.111 "사랑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더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다." 

p.112 "열정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고 신중하게 자신을 되찾을 것."

p.114 사랑받는 자가 처음 보여주는 호감 또는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런 호감의 표시가 요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를 디딤돌로 삼아 더 기어오를 수 있다. 일단 진행이 되면, 과정은 그 특수한 코드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그 코드가 약화될 때에야 비로소 다시 정상적이고 신중한 행동방식이 시작된다.

 p.116-117 시간적 구조는 무엇보다 사랑과 결혼의 분리 -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 를 강제한다. 사랑과 결혼의 대조가 어찌나 부각되어 이야기되어왔던지, 사회적 제도를 통해 가족으로 묶어내는 일인 결혼에 대해 열정이 갖는 이러한 차이가 다른 무엇보다 연애관계의 독립분화를 의식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추정해보지 않을 수 없다. ... 뷔시 라뷔탱은 결혼에 골인하는 것이 애인과 헤어지는 명예로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결혼의 온갖 장점들과는 무관하게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도 타당한 것이었다. 애인과 결혼하려고 하는 자는 그녀를 증오하려고 하는것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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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고 싶은 영화가 몇개 있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오래 영화관에 걸릴 것 같지는 않은데...영화관에서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혼자 영화관에 간지도 근 1년이 넘은 것 같다. 혼자 가는 영화관 그리고 큰 영화관에서 여유있게 생각하며 보는 영화...나의 기쁨이다. 

아래 시는 이창동 감독의 '시'에 나오는 시이다. 맘에 들어 옮겨 놓는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출처 : '진화감독' 이창동과 '정치꾼' 유인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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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도 여러 지역에서 축제를 많이 해서, 솔직히 너무 고리타분하고 지겨울 정도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환경파괴로 지역을 알리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역 축제를 보면 5년 정도 전에 보았던 지금은 조금씩 매립되고 있는 새만금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새만금 주변에서의 기억들,,,심포항에서의 백합죽과 망해사의 편린들이 떠오른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한겨레신문 2010. 5.26  지역경제·환경 모두 살린 ‘갯벌 올림픽’

일본 작은어촌 25년전 ‘개발-보전’ 딜레마…그들의 선택은
가시마시, 자연 그대로 관광상품화…올해 17개국 1200명 참가 

  » 23일 일본 사가현 가시마시에서 열린 제26회 가타림픽 줄다리기 종목에 출전한 부산외대 사회체육학부팀(김민재씨 등 5명)이 상대와 힘을 겨루고 있다. 부산외대팀은 이 종목에서 3위를 기록했다.

“개발과 환경보호의 줄다리기 속에서 가시마 시민들의 선택은 갯벌이었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일본 사가현 가시마시에서 열린 26회 가타림픽 행사장에서 만난 구와하라 마사히코(64) 전 가시마 시장은 시민들의 선택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표현했다.

가시마는 사가현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 3만2천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일본의 다른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가시마 주민들도 인구 감소를 막고 침체된 지역 경제를 되살릴 방법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구와하라 시장 또래였던 30~40대들이 모여 고민을 시작했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 모아 마을을 발전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시마와 붙어 있는 아리아케해의 조수간만의 차는 6m 정도로, 일본에서 가장 크다. 자연히 마을 앞에는 썰물 때마다 드넓게 갯벌이 펼쳐지고, 이를 활용한 김 양식 산업 등도 발달했다. 구와하라 시장 등은 ‘갯벌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운동회를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운동회의 이름은 가타림픽. ‘가타’는 일본어로 갯벌이란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갯벌 올림픽’이다.
 

1985년 시작된 행사는 매년 이어져 올해가 26회째다. 이번에도 이 지역 사가대학의 중국·한국·프랑스·인도네시아·캐나다·폴란드 유학생 등을 포함해 세계 17개 나라 1200명의 선수들이 참여했다. 크레인에 매단 긴 줄을 타고 누가 멀리 뛰는가를 겨루는 ‘타잔’, 갯벌 위에 판자를 놓고 손으로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 짱뚱어’, 스티로폼 상자 위에서 상대를 잡아 당기는 ‘줄다리기’ 등 모두 11개 종목이 열렸다. 와세다대학 선수단이 진흙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대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20년 가까이 세계 각지를 돌며 바다와 어민들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 온 프랑스인 앙투완 모라(50)는 “가타림픽은 굉장히 유쾌하고 흥미있는 대회”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한국에서는 가시마와 교류 협정을 맺고 있는 부산외국어대와 전남 고흥군 등에서 선수단을 파견했다. 부산외대는 1992년부터 19년째 내리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학부 재학생 때 행사에 참여했던 박혜정씨는 올해엔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가시마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선규 부산외대 총장은 “독도 파문이나 신종 플루 등의 난관이 있을 때도 가시마와 부산외대의 교류는 계속됐다”며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는 이런 작은 곳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갯벌을 통해 환경의 가치를 경험한 가시마 시민들은 최근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또다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신칸센과 고속도로의 마을 관통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와하라 전 시장은 “무조건 개발에 찬성하기보다 과연 신칸센이 우리 마을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꼼꼼히 살피다보면 이번에도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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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주간 논평에 실린 글을 옮겨 놓는다.  대부분이 A4 한장 분량의 칼럼이 실렸는데, 아래 글은 내용이 상당히 길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조금은 다른 의견, 색다른 분석의 글이다. 지금까지 천안함 관련 글 중에서 가장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수준 높은 보수 정치가 수준 높은 진보정치의 산파'라는 말은 깊게 새겨 볼 만하다. 진정 현재 이 정부가 수준 높은 보수 정치를 펼치고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제발 수준 이하도 좋다, 자격 미달은 되지 말기를... 

 

천안함사건 조사 발표를 보고

김대호 / 사회디자인연구소장

1987년에 일어난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나의 오랜 의혹은 신동진씨를 만나면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신동진씨는 2000년대 초반 안기부 조작에 혐의를 두고 3년 이상 'KAL858기 실종사건'을 취재한 사람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KAL858기 관련 의혹을 집대성한 KBS 다큐멘터리 〈우리는 알고 싶다: KAL858기 실종자 가족들의 호소〉와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창해 2004)라는 책을 썼다. 이런 인연으로 'KAL858기 가족회'의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동진씨는 노무현정부 시기인 2004년 11월, 국정원이 KAL858기 사건 등을 규명하기 위한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 참여했다. 그것도 국정원의 지목(요청)과 가족회의 추천을 동시에 받아서!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신동진씨는 '안기부 조작'에 혐의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들어가서 방대한 수사자료를 자유롭게 다 들춰보고,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나서 비로소 수사결과를를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지지하고 신뢰한 것은 1987년 대통령 선거 전후의 (중간)수사 발표가 아니라, 한참 뒤에 법정에 제출한 최종 수사보고서이다. 두 수사자료가 밝힌 사건의 핵심 줄거리는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신뢰성의 차이는 매우 컸다고 한다. 초기 수사발표가 부실하여 조작 냄새를 심하게 풍겼던 것은 당시 민정당, 안기부, 보수언론 등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사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품은 의혹도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부실하기 짝이 없는 초기 수사발표만 기억하고 참여정부 시절 '진실위'의 검증 결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목적으로 부실한 수사보고서를 발표하여 애먼 국정원 등을 의심하게 한 사람들이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북한 공격설과 상식적 의문 사이

많은 사람들은 이 시점에 북한이 잠수함 도발을 해올 정치적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북한의 지독한 폐쇄성과 경직성에서 오는 시대지체(착오)를 감안하면, 과거에 북한에 침투하여 납치, 살인, 파괴 등을 일삼았다고 주장하는 북파공작원들과 비슷한 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조선로동당이나 조선인민군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북한 잠수함이 은밀히 침투하여 남한 군함에 공격을 가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에 이르는 일련의 발표와 사건들은 상식에 어긋나는 점이 너무나 많다. 잠항한 잠수함을 탐지해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조사발표대로라면 멀리 공해상을 돌아서 침투했고, 조용히 기다리다가 어뢰를 발사했으며, 침투한 경로로 달아났다면, 적어도 전군 초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도주하는 잠수함이 포착되지 않을 리 없다. 이 잠수함의 잠항능력의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몰 직후 며칠 동안 군도 미국도 북한의 어떤 특이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뿐 아니다. 버블제트로 인한 물기둥 관련 진술의 불일치(천안함 생존자 중 누구도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이 없다), 화약냄새의 부재, 죽은 물고기떼의 부재, 쏘나(sonar)에서의 이상징후 부재(어뢰탐지 불능), 배의 파단면과 스크루의 손상 형태, 사망자들의 신체손상 형태, 연어급 잠수함의 (공격에 사용한) 중어뢰 탑재 가능성, 어뢰부품의 녹슨 상태, 폭발 충격에 이어 50일간 바다물의 부식작용에 견딘 ‘1번’이라는 파란 매직글씨, 침몰을 전후한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의 부재, 항적기록과 교신기록 비공개,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생존자들의 언론접촉 봉쇄 등 상식적인 의문점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합동조사단은 무엇을 놓쳤는가

이런 의문점이야 비판적 언론들이 많이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어뢰에 의한 폭침이 맞다면 매우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어야 함에도 군과 보수언론은 물론, 비판적 언론과 야당까지 소홀하게 취급하는 것이 있다.

첫째, 유실됐다가 발견된 천안함의 거대한 기관실이다. 기관실은 디젤엔진실과 가스터빈실로 이뤄져 있는데, 전자는 5월 중순경(정확한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인양했고, 후자는 조사결과 발표 하루 전에야 인양되었다. 분명한 것은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 기관실이 어뢰폭발에 의해 근접타격을 받았다면, 어뢰공격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실종된 승무원 6명의 폭탄 맞은 시신이 발견될 수도 있다. 그런데 군도, 언론도, 야당도 무관심하다. 5월 15일에 극적으로 건져올렸다는 어뢰 후미부 부품은,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적어도 수출용 카탈로그에서 얻지는 않았다--어뢰 설계도와 함께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었고, 아직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컴퓨터 씨뮬레이션 영상조차도 유력한 증거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둘째, 폭발 원점의 해저 상태이다. 실제 폭발이 일어났다면 해저에 폭발 흔적이 없을 리 없고, 그 주변에 어뢰 파편이 무수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증거의 보고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건져낸 증거는 파편치고는 엄청나게 크고 온전한 어뢰 후미부 부품뿐이다. 셋째, 휘어진 스크루에 대한 각종 의혹도 금속 표면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면 해소되는데, 역시 증거자료로 제출되지 않았다.
가라앉지 않는 증거에 대한 의혹

천안함 폭발 원인이 어뢰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중에서, 소수의 이해관계자가 은밀하게 조작하기 힘든 것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포착한 공중음파 데이터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버블제트 음파 파형과 천안함 침몰 직후 포착된 음파 파형이 다르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합동조사단의 공식 발표를 웬만하면 믿어주고 싶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도저히 그게 잘 안된다. 기관실, 폭발 원점의 해저면, 시신 상태, 죽은 물고기떼, 무수히 많은 어뢰 파편, 물기둥, 침몰 직후 황망한 생존 승무원들의 솔직한 진술, TOD, CCTV 영상 등에서 사후적으로 조작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데 어찌된 셈인지 나오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합동조사단이 제시한 증거는 대부분 사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꽤 깐깐한 사람들 중의 일부는 '증거 조작' 자체가 지극히 어렵기에 군의 발표를 믿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다. 사후 조작이 어려운 것은 여러 사람이 일관성있게 입을 맞추기가 어렵고, 행위가 수반하는 수많은 물리·화학적 현상까지 창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시장에 나오는 고대 유물의 진품여부 검증과정에서 보듯이,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물리·화학적 현상은 과학적 검증을 견뎌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천안함 사건에 관한 한 진술 검증작업도, 과학적 검증작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생존 장병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증거자료는 병영에서 총을 든 초병에 의해, 또 군사기밀보호법에 의해 철통 방어되고 있다. KAL858기 사건의 경우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적지 않았다. 관련된 민간인(주로 외국인)들도 있었고, 작은 폭약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기에 물리적 검증도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국정원은 수사보고서에 자신있었기에 의혹설을 체계적으로 집요하게 제기해온 신동진씨 같은 사람을 진실위에 합류시켜 관련 수사자료를 다 공개했다. 그런데 천안함 관련 군과 합동조사단의 행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민간인 전문가와 외국인 전문가를 합동조사단에 넣긴 넣었다. 그런데 3월말에서 4월초부터 제기된 보수언론과 국방장관의 예단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든 민간인 전문가는 민주당이 추천한 신상철씨(서프라이즈 대표)뿐이다. 신씨의 전언에 의하면 증거에 대한 접근과 독자적인 조사활동이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군이 주도적으로 선정한 외국 전문가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군이 엄청난 무기와 군수품을 수입하는 힘있는 고객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신뢰를 보내기 쉽지 않다. 이들이 외국 군수업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한반도의 긴장이 격화되고 북한 재래식 무기의 '우수성'이 입증되는 사태는 한국군 전력증강 예산의 폭발적 증가를 초래하여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공신력을 배가시킨 이들 외국 전문가들이 어디서 뭐 하던 사람인지, 누가 어떤 경위로 선발했는지 아무도 캐묻지 않았다. 아이러니다. 아니, 야당의 큰 실책이다. 천안함 기관실 수색에 목소리 높이지 않은 것과 국회 차원의 조사특위를 가동하지 않은 것과 더불어!

공포, 의무, 설마가 의혹을 억누른다

우리나라 검사들이 피의자를 의심하는 눈으로 살펴보면, 아니 비판적 이성의 눈으로 살펴보면, 지금 북한 어뢰 공격설을 믿게 하는 것은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공포'와 '의무'와 '설마'이다. 한국의 진정한 슈퍼파워인 보수언론과 국방장관 및 합동조사단과 대통령과 여당이 한목소리로 북한 잠수함이 범인이라고 말한다. 보수 논객들은 이젠 '토'를 다는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친북좌파거나 유사시 전광석화처럼 제거해야 할 후방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대통령도 전쟁기념관에서의 특별담화를 통해 '국론분열 행위'에 총구를 겨누다시피 했다. 게다가 지금은 진짜 국지적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 보도연맹 대학살사건도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또한 민주노동당 가입 혐의를 받는 교사들 백수십명을 파면 등 중징계하는 '상식 적출'의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국가보안법도 칼집에서 스르르 나오고 있다.

이러니 어찌 공포가 엄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포뿐 아니다. 남북간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이니 군의 과도한 폐쇄성(비밀주의)도 용인해주어야 할 것 같고, 군의 발표는 무조건 믿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군의 부실한 발표에 대해 비판적 상상력을 작동시키면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황당한 상상에 도달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만,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이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기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된다. '설마'가 정부 발표에 대한 솟구치는 의구심을 짓눌러, 불편한 상상을 외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가장 통탄스럽게 하는 것은 증거에 대한 과학적 검증 문제가 아니다. 공포, 의무, 설마에 짓눌린 비판적 지성도 아니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를 초월한 지식사회의 역사적 교훈에 대한 지독한 망각이다. 인간이 물질적 이해관계 앞에 별것 아닌 존재라는 인문학적 통찰의 빈곤이다. 삼권분립, 이익집단 견제, 문민통제 등 민주주의 기본철학의 빈곤이다. 이 핵심에는 문민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폐쇄적인 한국군에 대한 경계와 의심의 부재가 있다. 동시에 원칙, 진실, 민족의 운명과 담 쌓은 채 단기적 이익을 밝히는 참으로 얍삽한 CEO 출신 대통령에 대한 견제장치의 부재가 있다.

인문학적 통찰과 민주주의 기본철학의 부재

역사를 들춰보면 1차대전을 비롯해 수많은 비극적 전쟁은 최고통치자의 세계관, 가치관, 이해관계 못지않게 군부 엘리뜨들의 세계관, 가치관, 이해관계에 의해 일어났다. 게다가 지금의 군은 병영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문학적 규모의 국방예산을 배경으로, 고가의 무기와 군수품을 구입하는 고객으로서 수많은 국내외 기업체 및 전문가집단을 관리?통제하고 있다. 게다가 지식과 정보가 권력인 시대에 군은 군사기밀이라는 이름 아래 합법적으로 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삼권분립이 철저하고 정부에 대한 각종 감시-통제씨스템도 잘 갖추어진 미국에서조차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새롭고 거대한 위협’으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를 지목했던 것이다. 이는 1961년 1월 17일 8년간 재임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별연설에서 한 얘기다.

국방장관-해군총장-천안함 함장과 고위급 장교들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크게 바뀌는 이해관계자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국방장관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합참의장과 참모총장 위에 있는 사실상의 상관이다. 특히 김태영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에서 군복을 벗자마자 바로 장관이 되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국방장관의 직접적 지휘를 받는 국방부의 요직은 거의 군인 또는 군 출신들이다. 구조적으로 한국군은 문민통제가 잘 안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 이후 북한 공격설을 가장 앞서서 제기한 존재는 조·중·동이고,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이 바로 김태영 장관이다. 그래서 천안함 관련 국회 국방위 회의에서 답변 도중 VIP(이명박 대통령)로부터 '발언에 문제있다'는 메모까지 전해받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은 '위계'와 '일사불란'을 중시한다. 따라서 군의 대선배이자, 합참의장에서 바로 영전한 국방장관의 예단과 의중이 합동조사단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상식 아닌가?

역사상 최악의 '화전민'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조선왕조실록의 전통을 되살려, 후세대의 엄정한 평가를 위해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대한 기록물을 훔쳐보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행위를 함으로써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의 정신을 완전히 짓뭉개버린 사람이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은 후세대의 엄정한 평가를 위해 '마싸지'되지 않은 사료를 남긴다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다. 통치자의 도덕적 신뢰라는 개념과 담을 너무나 높이 쌓은 사람이다. 단기적 이익 내지 임시변통을 위해 원칙을 너무나 가벼이 여기는 구시대적인 인물이다. 그러니 탁월한 전공(戰功)을 세우지 않았기에 관례상 무공훈장 수여대상이 될 수 없는 46명의 사망장병에게--생존장병에게는 주지 않고--화랑무공훈장을 준 것 아니겠는가? 이는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한 영예가 되어야 할 무공훈장을 분노한 유가족을 달래기 위해 써버린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라면 천안함 폭침은 경계의 명백한 실패이자, 최악의 패전이자, 초동대응의 난맥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책임 통감 표명과 관련자 문책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립써비스로나마 '책임 통감'이니 '송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책임을 물어 인사조치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문민통제가 잘 안되는 상황에서는 군의 대표이자 핵심 이해관계자이며 편향성도 강한 국방장관에게 조사를 주도하게 했다. 이 역시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이같은 무원칙, 몰상식의 정점이 바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수사결과를 지방선거운동 개시일에 발표하고, 이어 노 전 대통령 1주기 다음날 한민족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담은 담화를, 그것도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한 행위일 것이다.

암만 봐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면 아랫사람들이 올린 미심쩍은 보고서를 결코 검증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인다. 아랫사람들이 하는 무원칙하고 몰상식한 행위를 직접 지시하지는 않더라도 눈감아줌으로써 은근히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추측이 맞다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과 천안함 사건의 뿌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수백년 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갈 아름드리 숲에 불을 싸질러 몇년의 높은 소출만 챙기고 떠나버리는 '화전민'적 정치행위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임기내 얼마나 많은 숲이 폐허로 바뀔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통치자의 기록문화, 검찰 등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화, 정치보복을 자제하고 전임자를 존중하는 풍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권력을 비즈니스모델로 여기지 않는 문화, 군에 대한 신뢰,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신뢰 그리고 세종시, 민주주의, 4대강, 남북관계 등 어렵게 가꾼 상식과 원칙의 숲이 모조리 폐허로 변했다.

臣에게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정권의 탄생을 역사의 '순리'로 본 사람 중의 하나다. 당시 민주, 진보, 개혁을 팔던 사람들이 너무나 한심했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이들이 채우지 못한 것을 어느정도는 채워줄 수 있는 존재로 대중에 비쳤기 때문이다. 나는 수준 높은 보수정치가 수준 높은 진보정치의 산파가 됨을 믿기에, 이명박정권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래서 2008년 촛불시위도 매우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권 출범 2년여 만에 이렇게 역사가 급격히 뒷걸음칠 줄 몰랐다. 백주 대낮에 상식과 원칙과 비판적 지성이 맞아죽는 어두운 죽음의 시대가 될 줄 몰랐다. 그래서 어렵게 일구어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유산 중에서 훼손된 것을 헤아리기보다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리기가 빠른 상황이 되었다. 지금 남은 유산이 도대체 무엇인가? 다행히 고문에 의한 용공조작이 없다. 4·19를 초래한 투개표 조작 가능성도, 정치깡패도 없다. 군부의 쿠데타 위험도 없다. 그리고 아직은 이런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메일로 발송할 수가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명량대첩 직전 선조 임금에게,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尙有十二 舜臣不死)는 장계를 올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나도 역사에 장계를 올리고 싶다. 비록 상식과 원칙이 무참히 짓밟히는 야만의 시대가 해일처럼 밀려오지만, 아직은 고문도 투개표 조작도 없고 언론자유 공간도 다소 남아 있어, 깨어 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이 힘을 합쳐 투표를 통해 이 깊은 어둠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2010.5.26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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