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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함의 숭배 -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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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한 개인을 평가할 때 학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화 이전, 양반 계층이 교육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다. 교육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대중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됐다. 하지만 그것도 형식적이었고, 해방되자 비로소 누구나 공부만 잘하면 출세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보기 어려워졌다.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권력 창출과 신분 상승의 수단이다. 인력 채용 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명문대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공부 외에 과외 공부를 하게 되고, 사교육비는 부모들이 부담하게 됐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라 자식의 ‘가방끈’ 길이가 결정되는 세태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아직도 대중은 실제 현실로 믿고 싶어 한다. ‘개천의 기적’을 보고 듣고 자란 부모 세대는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 과거와 많이 달라진 현실은 심각하다. 우리는 ‘부모 잘 만나면 용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를 따르는 국민들에게 신뢰의 징검다리여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가 새로운 정책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와 혁신에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 지도자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그 추종자들은 실망과 함께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자칫 사회가 무질서하고 생활이 고통스러워지면 국민은 개인의 불행을 지도자의 무능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는 꽤 긴 시간 동안 ‘무능한 권위’에 제대로 속았고, 국민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손해를 감수했다. 왜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반복되는 것일까. 과연 국민들의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는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냉소에 빠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능력주의의 허상’에 벗어나야 한다.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는 리더십 부재, 불평등 문제, 사익을 추구하는 엘리트 계층 양산 등 온갖 문제들을 낳는다. ‘능력 좋아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능력주의의 병폐는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똑똑함의 숭배》는 지금 시점에서 읽어 봐야 하는 것은 여전히 손에 특권을 꽉 쥔 엘리트 계층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주위의 비판적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엘리트 계층의 비리와 위선 행각은 그칠 줄 모른다. 《똑똑함의 숭배》는 믿는 ‘능력주의’에 발등 찍히는 미국인들의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 는 미국 명문대 출신 금융인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자랑하는 명문 대학이 배출한 월 스트리트의 핵심 인재들이었다. 사익에 눈이 쏠린 금융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쓰다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다. 능력 좋은 인재들의 오만은 ‘나비의 조용한 날갯짓’이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날갯짓은 미국 전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집어삼킨 ‘태풍’이 되었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는 ‘약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암묵적으로 약물을 복용해왔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거의 20년간 금지약물 사용을 묵인해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부정을 은폐하려고 약물에 의존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실태를 고발한 ‘미첼 리포트’를 깎아내렸다. 야구팬들은 ‘미첼 리포트’에 기록된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팬들은 팀 리그 우승에 보탬이 되고 선수 개인의 역대 최고 성적을 내는 야구선수들의 실력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소위 ‘인기 스타’이며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실력에 따라 높은 금액의 연봉을 받는다. ‘약물의 시대’에 ‘거포’로 활약했던 새미 소사(Sammy Sosa),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는 약물 스캔들에 휘말렸고, 두 사람 모두 엄청난 개인 기록을 세웠음에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책에 나온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모두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최악의 결과들이다. 대중이 엘리트의 실력을 우러러볼수록 엘리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지낸다. 그렇게 대중은 엘리트로부터 ‘개, 돼지’ 소리를 듣게 된다. ‘순진한 개, 돼지’들이 ‘빛 좋은 개살구’인 능력주의 앞에 자꾸 머리를 숙이면, ‘수준 이하 개, 돼지’들은 사회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착각한다. 《똑똑함의 숭배》에 소개된 사례들은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왜곡된 능력주의 때문에 악순환에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악순환을 심화시키는 이들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똑똑함의 숭배》의 저자 크리스토퍼 헤이즈(Christopher Hayes)는 엘리트에게만 부가 쏠리는 불평등, 점점 심각해지는 엘리트의 도덕적 해이 등의 근본적 원인을 ‘능력주의 숭배’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가 내세운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단하게도 ‘평등’이다. 그는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회가 균등하더라도, 즉 경기규칙이 공정하더라도 승자와 패자에 대한 대우가 너무 불합리하다면, 즉 승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물론, 결과의 불평등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 점은 저자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의 해결책은 왠지 찝찝하기만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찝찝하게 느낀 내용이 한 가지 더 있다. 저자는 브라질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우 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우리나라에선 ‘룰라’로 잘 알려져 있다)의 사례를 언급했다. 《똑똑함의 숭배》는 2013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2년 뒤에 시우바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저자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까. 우리나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잡으면 사익에 집착하게 되고, 보통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시우바는 국민들이 원하면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만약 브라질 국민들이 그의 복귀를 환영한다면 ‘똑똑함의 숭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