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515푼 키에 2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생략)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삼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부얼부얼 : 살이 찌거나 털이 복슬복슬하여 탐스럽고 복스러운 모양

    

 

(노천명 자화상중에서)

 

 

시는 시인의 얼굴을 비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시 속에 시인의 억압된 욕망, 진짜 얼굴이 있다. 노천명은 얼굴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 전부를 시에 노출한다. 시인은 살진 얼굴과 병약한 신체를 형상화면서 외모 콤플렉스를 고백한다. 인용문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시 마지막 줄에 시인은 자신의 성격을 구리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이라고 단정한다. 열등감에서 비롯한 괴로움을 꾹 참고 견디려는 의지를 보인다.

 

외모 콤플렉스는 자라는 성장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형성되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좌우한다. 외모가 외모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모에서 열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다른 능력부문에서도 남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 데도, 자신보다 나은 몇 안 되는 사람들하고만 비교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더 잘 받고, 자기 비하와 우울증에 쉽게 빠지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불필요한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성형외과 의사가 모 일간지에 외모 콤플렉스를 소재로 한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 필자는 성형외과에 찾은 수많은 사람과 상담하면서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외모가 멀쩡한 사람들조차도 쓸데없이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비하하는 증세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각한 증세를 고치려면 자신의 외모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존감을 높이라고 조언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의사는 외모 콤플렉스를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남에게 자신의 치부를 일부러 드러내 놓으라고 주장했다. 노천명이 자화상을 쓰면서 외모 결함을 인정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두 의사가 제시한 외모 콤플렉스 해결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 외모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라고 말한다.

 

 

 

     

두 의사의 주장은 외모 콤플렉스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왜곡된 열등감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외모 콤플렉스를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라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개인에게 정신적 문제의 책임을 전가한다. 외모 콤플렉스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다. 외모 콤플렉스는 뷰티 이데올로기(beauty ideology)’의 시대가 낳은 심리 반응이다. 발트라우트 포슈는 뷰티 이데올로기란 거대 자본과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의 힘이 척척 맞물려 돌아가는 집단적 의식 형태라고 말한다. ‘젊고 예쁜 것만이 최고라는 뷰티 이데올로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주입한다.

 

뷰티 이데올로기가 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려는 호모소셜(homosocial)’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부장제의 흔적은 남아 있어도 과거에 비하면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부장제의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개념이 바로 호모소셜이다. 호모소셜은 미국의 페미니즘 비평가 이브 세지윅(Eve Sedgwick)이 처음 사용한 단어다. 우리말로 옮기면 동성사회성이다. 호모소셜을 소개한 세지윅의 책은 번역되지 않았다. 다행히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하다에 호모소셜에 대한 내용이 비중 있게 다뤘다.

 

호모소셜의 의미를 쉽게 설명하면 남자들끼리 공유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돈독한 우애를 말한다. 남성 간 성애를 뜻하는 호모섹슈얼(homosexual)과 다르다. 남자는 태어나자마자 호모소셜의 세계에 진입한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감정의 기복을 겪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고 싶어도 대장부가 그까짓 일로 울면 안 되지라는 시선 때문에 감정을 수축시키며 살아간다. 만약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주변 남자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넌 여자처럼 바보같이 울기만 하느냐. 고추 달릴 자격이 없어!’ 호모소셜 세계에 사는 남자들은 강한 남자가 돼야 한다는 경쟁심리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린다. 이들은 강한 남자로 동성에게 인정받으려면 여자를 전리품처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연애 한 번 못하는 남자는 놀림 받는다. 동성으로부터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자들은 여자 앞에서 차돌처럼 강하게 보이려고 애쓴다. 남성적인 힘을 과시하여 여자를 정복하고 싶어 한다. 호모소셜 세계 속에서 산 남자는 여자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단 여자 외모를 평가한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그녀의 외모가 성괴인지 자연산인지 의심한다. 여자가 성형 의술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성괴로 단정 지어 버린다. 이때부터 남자들의 여성 혐오가 시작된다. 여자 연예인의 가슴이 작아서 볼품없다는 식으로 무시하는 동시에 가슴 큰 여자 연예인에게는 의느님(성형외과 의사를 가리키는 은어)의 힘을 얻었다고 비난한다. 여자들은 호모소셜 남자들의 은밀한 눈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여자는 호모소셜 남자들의 여성 혐오 대상자가 된다. 뚱뚱한 여자에게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오크녀라고 놀린다. 외모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에 맞춰서 외모를 가꾼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외모에 신경 쓰는 여자들은 ‘외모 가꾸기에 돈 낭비하고, 다른 여자의 외모에 질투심 많은 김치녀가 된다.

 

남자들도 외모 콤플렉스를 부추기게 한 책임이 있다. 그들에게 성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을 통한 친밀감의 교류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입증하기 위한 통로가 되곤 한다. 따라서 성은 즐김의 언어가 아니라 봉사나 과시의 언어가 돼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한다. 그리고 여성끼리도 비교한다. 여성을 선택할 때의 기준도 외모를 중시하는 왜곡된 편견을 갖는다. 이처럼 호모소셜에 익숙한 남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멸시한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여성 혐오다. 모든 남성은 사내라는 무거운 갑옷이 짓누르고 있음을 늘 의식한다. 성공을 추구하는 사다리 위에 여성이 있으면 분노를 느낀다. 오늘날 페미니스트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가부장제가 아니다. 오래된 집단의식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 남아있지만, 가부장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 요즘 호모소셜이 기세등등한 새끼 호랑이가 되어 남자들로부터 귀여움받고 있다. 새끼 호랑이를 내버려두면 다 자란 큰 호랑이가 되어서 여자를 공격한다. 외모 콤플렉스 그리고 개인을 괴롭히도록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호모소셜을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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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6-06-0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호모소셜을 호모소설로 잘못 보았네요^^;;;;

cyrus 2016-06-02 16:23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호모소셜’를 잘못 보는 사람이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진짜였군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6-0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천명의 외모는 모르지만 영혼은 혐오스
럽죠ㆍ 일제강점기때 노천명
시를 읽다보면 저절로 구토가 치밀어올라
의느님이 그런 뜻이었군요
한수 또배우고갑니갑니다 ^^

cyrus 2016-06-02 16: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예전에 노천명 시집 초판본이 복간되었을 때 악평이 엄청 많았었죠. ^^

여성 혐오, 차별적인 의미를 담은 인터넷 은어, 유행어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어서 쓰려고 하지,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릅니다.

2016-06-01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02 16:26   좋아요 1 | URL
외모의 자본화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루쉰P 2016-06-02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남자들만의 정신 세계가 그렇게 여성들에게 투사되는군요. 뭔가 정신분석학적인 글 입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외모 콤플렉스가 심합니다. 지금은 뭐 어느 정도 차분하게 대처를 하지만 ㅋ

`호모소셜`이라는 거 무섭습니다. 뭔가 세뇌당하며 살아온 느낌이에요. 여성에 대한 시선이 저 역시도 폭력적이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어찌보면 여성혐오라고 해도 인간을 인간으로 소중하게 보지 못하는 그런 것에서 오는 차별이라 생각이 들어요. 왜이리 인간은 차별을 좋아하는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ㅎ

cyrus 2016-06-02 16:31   좋아요 0 | URL
남자는 태어나자마자 동성사회성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부장제 규범의 영향력보다 더 무섭습니다.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읽지 않았으면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생각과 언어를 드러냈을 겁니다. 여성 차별, 혐오의 거시적인 배경을 남자들도 알아야 합니다.


표맥(漂麥) 2016-06-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류에 맞는 이런 글, 참 좋습니다. 공감하게 되네요...^^

cyrus 2016-06-02 16:32   좋아요 0 | URL
하루 글 한 편 쓸 때마다 여성혐오자들, 일베들이 시비를 걸까봐 무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