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Scene #1  풀과 가위의 역사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풀과 가위의 역사’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 사관에 의해서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임으로써 얼마든지 변형된 역사가 기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풀과 가위의 역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체들과 이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공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등에서 쏟아내는 미디어 정보는 넘쳐난다. 이 가운데는 양질의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가 섞여 있다. 이런 정보홍수 가운데 ‘무엇을 읽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판단과 선택의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능력이 갖춰져 있다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수집, 분류, 정리,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결과물인 바로 스크랩북이다. 개인적인 발견인지는 모르지만, 흥미 있는 사실은 ‘스크랩북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스크랩북에는 한 사건에 대한 역사가 시간적인 순서로 들어 있다. 물론 풀과 가위에 의해서 적절하게 조작된 내용도 있으나 한 스크랩북을 들여다보면 정보 분석, 응용의 과정을 직접 해봄으로써 비판적 분석력을 키울 수 있다.

 

이런 풀과 가위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편찬이 아니라 사실과 해석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과거의 사실 그 자체보다는 현재의 해석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더 우위에 있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는 풀과 가위로 만들어진 한 권의 스크랩북과 같다. 그런데 역사 스크랩북 제작자 유시민은 이러한 시도를 ‘위험한 현대사 읽기’라고 본다. 1959년에서 2014년까지 딱 저자 본인이 살아온 세월만 정리했다. 선택한 사실에 대한 유시민의 역사 해석은 주관적 기록이 된다. 또 현대사는 역사적·정치적 공방이 동반되는 특수한 범위이다. 여기서 역사가와 정치가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념에 따라 공생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실제로 없는 것을 덧붙이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의미 있다고 보는 사실을 선별하여 객관적 인과관계를 밝혀, 해석할 권리가 있다. 풀과 가위에 의해서 정리된 여러 가지 사실들은 단순히 그럴싸해 보이는 평범한 기록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긴 역사적 안목에서는 진정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료(史料)로 평가받는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풀과 가위에 의해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윤색, 혹은 탈색될 수 있어도 결국 공정한 평가로 진실이 가려져야 하는 엄숙한 일이기도 하다.

 

 

 

 

 Scene #2 <국제시장>과 《나의 한국현대사》의 공통점

 

 

 

 

 

유시민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 사실을 해석할 때 사실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게 되는 허무주의적 또는 자아도취적 결론을 경계한다. 역사에 아주 민감한 우리 사회는 극명한 해석으로 양분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윤제균 감독의<국제시장>을 둘러싼 평가다.

 

역사상 최초로 ‘쌍 천만’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은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다루는 시기와 유사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굵직한 사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한국현대사의 자화상’이라며 공감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박정희 정권 미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마항쟁, 4·19 혁명 등이 영화 속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보적 지식인과 평론가 들은 <국제시장>을 역사의식이 모자란 우파 영화로 평가해서 큰 논란이 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영화에 대한 아버지 세대의 공감과 자부심이 우파가 좋아할 만한 전형적인 ‘자아도취식 역사인식’으로 빠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반응에 윤제균 감독은 영화 매체의 특성상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한국현대사》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현대사를 술회하여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부정선거에서부터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항쟁을 포함한 1980년대 민주화 투쟁 등 민주화와 산업화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이슈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종국에 가서는 대북관계, 복지정책 등에서 진보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진보주의자로서의 유시민을 불편하게 여겼을 보수적 관점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현대사 읽기 또한 매우 거북하게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눈여겨볼 내용이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국정원의 한국형 인민재판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책이 나온 지 5개월 뒤에 불거지게 될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의 문제점을 미리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 보수 진영의 파시즘적 사고를 비판한다.

 

그리고 현대사에 대한 유시민의 ‘제한적인 자부심’이라는 표현도 쉽게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특히 국정 역사교과서 전환을 바랐던 여당이라면 자부심 앞에 붙은 ‘제한적’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현대사, 특히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을 찬미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부끄러운 역사(유신체제로 인해 훼손된 민주주의의 원칙, ‘한강의 기적’에 가려진 부의 불균등 분배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를 가르치고, 알아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역사를 좌편향 일색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Scene #3  상처 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념의 색안경을 벗지 못하면 역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다. 유시민의 한국현대사 스크랩북은 국가적 위상을 드높인 ‘훌륭한 변화’와 ‘부끄럽고 추악한 역사’, 즉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역사를 땅따먹기 식으로 나누어 서로 대립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역사적 관용으로 대립을 봉합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포석을 놓는다. 

 

우리 현대사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탄압의 사건들로 점철됐다. 랭보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한탄했지만, 과연 ‘상처 없는 역사’가 어디 있을 것인가. 우리가 바라봐야 할 역사의 거울이 항상 자랑스럽고 멋진 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의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당연히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만한 역사를 보고 싶어 한다. 매슬로우의 욕망 단계설로 역사의 흐름을 바라본 유시민의 독특한 시선을 대입하자면 한국현대사는 자기실현이라는 최고의 욕구에 도달하고 싶은 대중의 힘으로 작동되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와 전쟁으로 거의 쓰러져간 나라를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 탈바꿈시켜버리는 기적 같은 역사는 처절한 생리적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중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욕망이 충족되면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진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던 대한민국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역사의 거울 속에 비춰진 대한민국, 그리고 그 대한민국이 거울로 보고 싶은 그 모습은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욕망을 멈추는 법을 몰랐다. 물질적 욕망에 치우치다보니 부정부패와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욕망을 충족하는 데 성공한 자들은 ‘갑’의 강자가 되어 ‘을’의 약자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답지 않은,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 이것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된다. 과연 미래는 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의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들이 우리처럼 외면하게 될까봐 걱정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는 역사의 교훈이 주는 중요성을 부각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문제는 깊게 팬 현대사의 상처가 다시 덧나지 않도록 봉합하고, 진실한 역사의 거울을 제대로 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부끄럽게 여길만한 시대상을 역사의 거울을 통해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이 거대한 작업으로서의 화해가 반성과 기억임을 유시민은 현대사 스크랩북을 통해 보여주었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무의미하고 거기서 얻을 교훈은 수행될 수 없는 것이며, 반성 없는 통합은 미래를 위한 화합의 전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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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1-18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사람 너무 좋아서 이책을 읽지 않고 있어요 ^^ 말이 안되나요?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되고 내가 다 공감할 내용이라서요. 조만간 읽으려나요...

cyrus 2015-01-19 12:40   좋아요 0 | URL
통치약님의 말씀 이해합니다. 유시민씨의 팬이군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천천히 읽거나 좀 나중에 읽는 편입니다. 저자의 글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싶은 마음으로 읽는다고 해야 될까요? ^^

봄밤 2015-01-18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yrus님의 풀과 가위가 이 책과 <국제 시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마름하신 것 같아요.

cyrus 2015-01-19 12:40   좋아요 0 | URL
졸문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해피북 2015-01-18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저두 이 책을 앞두고있는데 선뜻 읽진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어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이 옳지않음을 느낄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컸답니다 그래도 시대의 흐름을 읽기위해 조금더 느껴보기 위해 용기내보자고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네요 ㅎ 잘 읽고 갑니다 꿀밤되세요~~^^

cyrus 2015-01-19 12:43   좋아요 0 | URL
현대사를 이해할 때 기억해야 될 굵직한 사건들을 잘 소개한 책이에요.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

표맥(漂麥) 2015-01-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점을 참 잘 잡아 써내렸네요. 잘읽었습니다.
저에겐 아직 `판단 유보`의 영역이라 저 책 또한 `읽기 유보` ...^^

cyrus 2015-01-19 20:05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을 두 번째로 읽었는데 여전히 판단을 유보해야 할 신중한 역사적 사실이 몇 개 있어요.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좀 더 역사를 보는 눈을 넓히는 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졸문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와같다면 2015-02-0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었을 때의 그 전율을 아직두 기억합니다

cyrus 2015-02-01 20:11   좋아요 0 | URL
전설의 문장. 저도 한 번 읽고 싶군요. 항소이유서가 실린 책을 사진으로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