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김화영 역, 민음사, pp 132~132 -

 

 

 

 

 독서는 많이 하면 할수록 위험하다?

 

2010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기준에 의한 대한민국 만 10세 이상 남녀의 연평균 독서량은 약 10.8권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민 절반 이상이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터넷 창만 띄우기만 하면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고,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엔 책보다 흥미로운 TV나 태블릿 PC 등 각종 편리한 기기가 널려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독서의 일상화가 자리잡지 않았다. 급속한 정보기기의 발달로 인해서 종이책의 위력이 밀려나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그러한 급속도로 빨라지는 환경 변화에 좇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다. 망중한의 시간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보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책 안 읽는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실태 결과에 대해서 혹자는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못 읽는다고 한다. 졸속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즐겨 읽는 애독가들도 읽을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반면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니까.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나 책을 여러 권 읽는 사람이나 인생은 짧고 시간은 많지가 않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지만 우리보다 책을 읽는 게 일상인 유럽에서는 수백년 전만 해도 책을 많이 읽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특히 근대로 넘어오던 시절의 유럽에서는 독서를 만병의 근원인양 비판했으며 '다독'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여자가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였다. 책을 읽으면 갖가지 병에 걸릴 수도 있으며 심지어 여자로서의 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더군다나 이러한 주장들이 그 시대에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던 계몽주의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 읽는 여자를 어떻게 봤을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책을 읽은 여자'를 위험 인물로 간주했다.

 

그러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들은 책을 읽었다. 자신들의 책 읽는 행위에 남편들의 핀잔과 불만을 피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침실에서 책을 보았고, 하녀들은 해야 할 일도 미룬 채 책을 읽는 주인 어깨 너머 몰래 훔쳐 보기도 했다. 열심히 가사 일을 해야하고 사회적 신분이 미천한 하녀마저도 책 읽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원조, 책 읽는 여자들

 

당시 유럽은 오랫동안 전해내려온 기독교적 사상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엘리트 사회였다. 여기서 말하는 엘리트는 읽고, 문자를 쓸 줄 아는 지식인들, 즉 소수의 남성들이었다. 사회를 지배하던 소수의 남성들은 남성을 위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던 소수의 종교인들이 자신들만의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기독교적 교리를 강조했듯이 엘리트들도 여자들을 남성의 권력에 따라야 하는 이류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것이다.

 

여자에게 독서란 쓸데없는 세계를 꿈꾸게 하고, 가사와 육아라는 신성한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사회는 책 읽는 여자들을 의도적으로 비방했다. 책을 읽지 말 것과 책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가져올 위험한 결과를 여성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하나의 도덕적 교훈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여자들은 어떻게든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들은 독서 행위를 포기한다는 것이 사회 속에서 '나'라는 주체성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자들이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되고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갖게 된다.

 

결국 엘리트들의 우려처럼 여자들은 결국 위험해진다. 책을 읽는 그녀들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참여할 줄 아는 주체자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들은 직접 글을 '쓰기'까지 했다. 문화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화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하는 방법까지 터득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남성 엘리트들은 못마땅게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책 읽는 여자들이야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인 셈이다.

 

그러나 독서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고 해서 독서의 역사가 그렇게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독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류층 인사들이나 지식인들에게는 '지적 유흥'이었다. 독서 행위에 대한 인식은 당시 사회적인 관념에 의해서 그대로 반영되었고 자주 변화되었을 뿐이었다. 단지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독서를 쓸데없는 시간낭비, 체력 소모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기가 더 많았던 여자들에게 책을 읽는 일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지 않다

 

독서의 역사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적 연대는 뚜렷하지 않다. 책 속에 실린 '책 읽는 여자'들이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책과 독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시대별로 알 수 있다. 그림을 통하여 당시의 책과 관련된 사회의 흐름, 독서의 역사, 책 읽는 여자들의 역사를 보는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책 읽는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 다양한 그림들은 저자가 바라보는 개인적인 시선에 의해 소개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상상력으로 그림 속 여자들을 은밀히 만나고 책에 흠뻑 빠져 든 그녀들을 맘껏 훔쳐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애독가들에게는 '위험하다'라는 발칙한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 혹해 책 읽는 여자들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그것은 수백년 전에 여자들의 독서를 금기시했던 남성 엘리트들의 구시대적인 입장을 재현할 뿐이다. 책 읽는 여자를 보게 된다면 그녀의 얼굴만 보지 말 것. 그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책 읽는 그녀에게서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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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2-08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의 주체는 권력의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경계했다고 하더군요.
글을 일종의 권력의 도구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ㅠ.ㅠ

제게도 책 읽는 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요~~ㅠ.ㅠ

cyrus 2012-02-09 23: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쁘면 더욱 좋고요 ^^;;

꼬마요정 2012-02-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자의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죠? 그러니 활자의 발명은 우리가 먼저 했어도 구텐베르크가 인정받는 거겠구요... 안 그래도 요즘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이랑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기웃거리고 있어서 더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추천 하나는 제꺼!!^^

cyrus 2012-02-09 23:01   좋아요 0 | URL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을 읽고 계시는군요? 제가 읽은 건 펭귄에서 나온
두권짜리인데 플로베르의 사실적인 문장 때문에 읽는 데 무척 벅찼던
기억이 나네요. ^^;;

양철나무꾼 2012-02-0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젠가 '책 읽는 남자는 섹쉬하다~'<---요런 페이퍼를 써서 이 동네 누군가에게 쿠사리를 먹었었는데...^^

이 책 옛날 책 개정판인가 보군요.
님의 페이퍼, 제목도 근사한걸요~^^

cyrus 2012-02-09 23:03   좋아요 0 | URL
기억나요, 사실 나무꾼님의 글이 생각나서 며칠 전에 페이퍼로
쓴 거 있었는데 막상 내용은 전혀 엉뚱한 쪽으로 쓰게 되었고
저 역시 쿠사리 먹었다는..ㅋㅋㅋ

감은빛 2012-02-0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여자는 어떤의미에서는 위험할지는 몰라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책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아내와 저는 독서취향이 좀 달라서(물론 비슷한 측면도 일부 있지만)
대개는 각각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얘기를 주로 하지요.

cyrus 2012-02-09 23: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취향도 같으면 금상첨화죠, 그런데 감은빛 사모님은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요? 거의 책 읽는 여성분들은 문학을 좋아하시던데
감은빛 사모님도 그러하실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