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령(spirit)의 나라다. 정령이 탄생한 배경이 된 고대 켈트인(Celts)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각 지방마다 특색을 갖춘 정령들에 대한 전설이나 민담이 전해진다. 기원전 6세기경 켈트인이 유럽에서 건너와 브리타니아(Britannia) 섬, 즉 현재의 영국에 정착했다.

 

 

 

 

 

 

 

 

 

 

 

 

 

 

 

 

 

 

* 박영배 《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지식산업사, 2018)

* 크리스티안 엘뤼에르 《켈트족》 (시공사, 1998)

 

 

 

카이사르(Caesar)가 기원전 55년에 브리타니아를 원정하고,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가 다시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후 400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 후반 게르만인(Germanen)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로마군이 밀려났고, 이 기회를 틈타 게르만인의 일파인 앵글인(Angles)과 색슨인(Saxons)이 브리타니아를 침공했다. 그들은 섬에 사는 켈트인을 정복하고 거기에 왕국을 세우는데 그 나라가 지금의 영국, 즉 잉글랜드이다.

 

 

 

 

 

 

 

 

 

 

 

 

 

 

 

 

 

 

 

*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기》 (사이, 2005)

* [절판] 리처드 루드글리 《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뜨인돌, 2004)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서양 신화는 어렸을 때부터 접해온 그리스 로마 신화다. 반면 로마인과 게르만인의 압박으로 밀려난 켈트족 신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저서 《갈리아 전쟁기》에서 켈트인들을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으며, 바지를 입은 야만인들’로 묘사했다. 그러나 켈트인들을 바라보는 카이사르의 시선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만들어진 서구 주류 역사의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야만인, 즉 바바리안(barbarian)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바르바로이(barbaroi)’에 있다. 이 말은 ‘그리스인들과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립적인 말이 그리스와 로마를 침략한 일군의 다른 민족들을 가리키게 되면서 야만 · 폭력 등의 부정적인 의미가 덧붙여졌다. 《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뜨인돌)《켈트인, 그 종족과 문화》 (지식산업사)는 켈트인이 로마 못지않은 훌륭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켈트인의 문화적 수준은 로마보다 높았다. 켈트인 사회는 여성과 노약자를 존중할 정도로 권위적이지 않고 개방적인 사회였다. 따라서 바바리안은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시각에 의해 왜곡된 단어이다. 그리스 · 로마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야만’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 가뒀다.

 

 

 

 

 

 

 

 

 

 

 

 

 

 

 

 

 

 

 

 

 

 

 

 

 

 

 

 

 

 

 

* 이케가미 료타 《도해 켈트 신화》 (AK커뮤니케이션즈, 2014)

* 모리셰 료 《켈트 신화 사전》 (비즈앤비즈, 2014)

* 조지프 제이콥스 《켈트족 옛 이야기》 (현대지성사, 2003)

* 다케루베 노부아키 《켈트. 북구의 신들》 (들녘, 2000)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이 성공하면서 갈리아는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켈트인은 자치권을 잃었지만, 켈트의 문화적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켈트 신화와 켈트 문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미국의 축제 기념일로 알려진 핼러윈(Halloween)은 고대 켈트인의 풍습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20세기 이전 서구 문학의 대문호들에게 영감을 줬다면, 상대적으로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색채가 짙은 켈트 신화는 게르만 신화와 함께 20세기 판타지 문학에 상상력을 제공했다. 서구 판타지 문학에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마법사들은 켈트족의 드루이드(Druid) 사제들의 모습에서 유래한 존재이다. 흔히 ‘서양의 요정’으로 많이 알려진 엘프(Elf), 난쟁이와 거인족도 켈트 신화에 기대고 있다. 켈트 신화에는 싸움에서 패한 대지의 여신 다누(Danu)의 일족이 도망가서 새로운 낙원을 만들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종족’, 즉 요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요정을 믿지 않는 어른들을 위한 요정 이야기》

(책읽는귀족, 2016)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켈트의 여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켈트 신화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살았던 ‘게일인’ 신화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살았던 ‘브리튼인’ 신화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켈트 신화가 낯설어서 선뜻 읽기가 망설여진다면, 정령이나 요정이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구전 민담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Yeats)는 게일인 신화와 민담을 수집하여 고대 켈트인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정령과 요정은 단순히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다. 요즘은 요정 이야기나 신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지만, 그 속에는 먼 과거에서 긴 시간을 거쳐 인간이 이룩한 문화와 풍습,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 녹아들어 있다. 신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너무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서양 문화의 표준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두게 되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켈트인이 호전적인 민족이라서 켈트 신화에 그들의 잔인한 본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묘사된 신들은 난폭하거나 잔인하며 교활하거나 방탕하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인류의 신화를 ‘문명’과 ‘야만’으로 분류하고, 다른 민족의 신화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든 이분법의 아류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오만한 문명’의 고약한 버릇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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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0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좋아하는 용정과 전설 민담이야기네요.님이 적었듯이 앵글인과 색슨인(합쳐서 앵글로색슨족-현재 잉글랜드의 주류)가 브리타니아를 침공하여 거거살던 켈트인들을 스코틀랜드로 쫒아냈지요.현재는 영국인이지만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앵글로색슨족과 켙트족들은 현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나위어 피터지게 싸웠는데 비록 잉글랜드과 스코틀랜드를 병합했어도 민족이 틀려선지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추구하는것 같네요.
참고로 바바리아하면 저는 코난(아놀드 슈왈츠제니거가 나온 영화-원작소설도 있음)이 생각납니다.

cyrus 2018-11-07 12:12   좋아요 0 | URL
호전적인 야만인 이미지를 대중에게 부각시킨 결정적인 영화가 <코난 더 바바리안>이지요. ^^

syo 2018-11-0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 박사님이시다..... 모르는 게 없으시다지?!

cyrus 2018-11-07 12:15   좋아요 0 | URL
박사님은 무슨... ㅎㅎㅎ 몇 주 지나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 기록했던 내용들 다 잊어버립니다. 글에 썼던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자주 참석하려고 해요.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잊어버려요. ^^;;

카알벨루치 2018-11-07 12: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는건 말로 표현해야 기억이 남는게 맞아요~ㅎㅎ

카알벨루치 2018-11-0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시루스 박사 존경삘!

cyrus 2018-11-07 12:16   좋아요 1 | URL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냥 책에 있는 내용을 요약, 정리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정리한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

페크pek0501 2018-11-07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을 응원합니다. 짝짝짝!!!

cyrus 2018-11-09 12: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