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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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가까운 남자 셋은 매일 운동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남동생과 정식이 그리고 B 가 그들인데, 그래서 이 셋은 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자부심이 있고 (남동생은 옷 사러 가는 걸 되게 좋아한다), 또한 나 역시 운동해서 건강을 관리하길 원한다. 남동생이야 몇년전부터 내게 잔소리를 해왔고, 정식이 역시 내게 운동하라고 했었으며, 최근에 B는 허구헌날 잘 하고 있냐고 묻고 있다. 나는 내 삶이 편안하고 안락하길 원하고, 인생을 즐길 수 있기를 원한다. 내 육체에 대해 크게 불만이 없었고, 나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라지만, 나는 체력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몇 년간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으며, 고질적인 비염 외에는 앓는 것도 없었다. 아, 가끔 생리통이 훅- 찾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래서 요즘 운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체중을 줄이고 날씬해지는 것이 목표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는 겉으로 보기에도 건강하고 실제로도 건강한 여성이 되는 게 바라는 바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최종 목표는, 나 역시 운동이 습관이 되어 퇴근후 샤워하기 전, 십분이나 이십분이라도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하는 운동은 스쿼트와 푸쉬업, 버피 등인데 사실 푸쉬업 같은 거야 처음엔 하나도 못하다가 최근에 스무개쯤 하게 되었으니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스무개를 한 번에 다 하지도 못하고 완벽한 자세는 막판에 흐트러지긴 하지만 말이다. 버피는 좀 더 많은 갯수를 하고 싶은데, 아직은 적게 하고 있다. 조금씩 늘려가고 싶다. 먹는 걸 줄이는 것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겠지만, 아직 이걸 잘 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탄수화물의 섭취를 그전보다 줄이려고 노력하고, 간식을 먹고 싶으면 빵대신 과일을 먹는 걸로 대신하려고 노력중이다. 어제는 B 가 염분을 줄이라고 해서 이제는 짜게 먹는 것도 좀 자제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뭔가 커다란 변화가 확- 나타나지 않아 어느 순간 훅- 초조해진다. 뭔가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지 않아(허벅지만 두꺼워지고 있는 것 같다) 답답하고 초조하다, 먹지 말아야 하는걸까, 라고 물으면 남동생도 B도 그리고 정식이도 그러지 말라고 한다. 먹으라고 한다. 오늘은 정식이가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잘하고 있으니 그대로 계속 하라고 한다. 변화는 더 후에 나타날 거라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암튼 주변의 몸 좋은 남자 셋이 나보다 더 내 몸뚱아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내일 모레 마흔인데... -0-


오늘도 며칠간의 지방 출장을 가는 남동생은 아침에 내개 회사 잘 다녀오라며 '나 없다고 막 먹지 말고' 라고 쐐기를 박았다. -_-


아,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왜 했는고 하니,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내가 쭉빵 미녀가 되어 걸그룹이 되겠다는 목표 같은게 있는게 아니지만, 아까 말했듯이, 샤워전에 늘 운동하는 습관이 되어 있는 삶, 을 목표로 놓고 나니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가기가 좀 수월해진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목표 있는 삶'이 나 스스로 좋다는 거다. 나는 사실 꿈이나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 라는 등의 말들이 구역질 나게 느껴지지만, 내가 나 스스로 어떤 작은 목표를 앞에 두고 그걸 향해 나아가는 것은 흡족하다는 거다. 그러고보면, 나는 목표가 있는 사람들의 그 목표를 듣는 것이 또 즐겁고 좋았다. 누군가 '이렇게 살고 싶어' 라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상대가 그렇게 살 수 있게 되기를 나도 같이 염원하게 된다. 그런 내가 이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되는거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자존감의 주요 기둥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브랜든은 이를 "의식적으로 목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자신의 행동이 그 목표에 부합하도록 노력하며, 행동의 결과가 자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p.98-99)



아무튼, 나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보겠다는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책과 내가 만나는 때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책을 읽을 때마다 하게 된다. 책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주기도 하는데, 이 책의 경우엔 후자에 가깝다. 최근의 나는, 내가 얼마나 '쉬운 연애'만을 해왔던가를 반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연애 혹은 사랑이 쉽고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애는 내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여야 했고, 그것이 한 순간이라도 우선 순위를 차지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어차피 일시적인 감정이며 그것은 짧든 길든 반드시 끝나고야 만다고도 생각했다. 연애는, 내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거? 내가 원하면 아무때나 할 수 있는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연애를 다른 많은 것들중 하나로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전에 만난 친구가 '너는 연애를 하면서 애써본 적이 없냐'고 물었고, 그때 나는 내가 되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왜 연애에 애를 써야 해?' 그리고 최근에서야 나는, 연애라는 게 애를 써야 하는 것임을,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또한, 사랑을 하는 것은 용기가 크게 좌우한다는 것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용기는 없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고 강박적으로 매달리면서도 적당히 만족스럽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런 생활에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사랑은 없지만 참된 애정과 보살핌만으로 충분하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어릴 때 자랐던 가정에 비해 애정과 보살핌이 훨신 충만해진 것 만으로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란 각자 느끼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다. 왜냐하면 사랑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정의하게 되면 자기가 처한 현실에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고, 소외감이 팽배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운 것이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우리 문화에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런 무지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드러나면 안 될 비밀처럼 서로 묻어두려고 급급해하는 실정이다. (p.42-43)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내가 피아노 치기를 기다리면서 학원에 있던 그림책을 읽었었다. 그림책 속에서 나처럼 초등학생이었던 여자아이는, 학급의 인기있는 남자애를 좋아하고 있었다. 어느날 선생님이 '짝꿍하고 싶은 애'의 이름을 적어서 내라고 하고, 여자애는 망설인다. 인기 있는 남자애를 적자니 너무 인기가 많아 다들 그 아이 이름을 적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자기랑 짝이 되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적지 말까 하고 고심하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는 그 남자 아이니, 적어보자, 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적는다. 놀랍게도 그 남자아이의 이름을 적어 낸 아이는 이 여자아이 밖에 없었다. 그래서 둘은 짝꿍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남자아이는 '내 이름을 적어줘서 고마워' 라고 한다. 인기 있는 남자 아이를 좋아했던 다른 여자아이들은, 어차피 적어봤자 안될 거..라고 똑같이 고민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적어내지 않았던 거다. 아, 사랑은 결국 용기가 아닌가!! 



내가 그간 사랑에 용기를 내지 않았던 것, 안락함에만 안주하려고 했던 것은 아마도 그 후에 내가 받게될 상처가 두려워서 였으리라.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연애를 시작할 수조차 없었고, 그는 마음 속에만 두는 것이 편안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고, 그것을 잃게 됐을 때 내게 찾아오게 될 상실감을,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걸 견뎌가며 세상을 살아아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그 상실감으로부터 피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아프고 싶지도 않았고 힘들고 싶지도 않았다. 엉엉 울면서 일상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이별이란 걸 하고 싶지 않았다. 이별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작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걸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랑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도 놓치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문화는 사랑을 냉소하는 것이 대세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해롤드 쿠쉬너Harold Kushner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할 때 When All You've Ever Wanted Isn't Enough』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기피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몹시 걱정스럽다. 이드은 사랑을 얻는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이유로, 또는 잘못되었을 때 입을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들은 모험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랑, 힘들게 감정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즉 쾌락만을 구하려고 한다. 사랑을 찾다가 실망과 고통만 안게 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랑을 얻었을 때 얼마나 순수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냉소주의는 사랑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감추기 위한 거대한 가면인 것이다. (p.16-17)



벨 훅스는 여러차례 얘기한다. 사랑은 용기이며 또한 '행할 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 이 얼마나 명백한 진리인가. '행할 때 존재한다'는 것은.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사랑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깎아내리는 식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보살피고 애정을 표현하고, 상대에 대해 책음일 지고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에게 충실과 헌신을 다하고, 상대를 신뢰하는 것이다. (p.46)



벨 훅스는 이 책에서 비단 남녀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거대하고 궁극적인 감정, 그 실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 혹은 가족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거듭 언급한다. 우리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자주 폭력에 노출되는지. 또한 그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을 갖다 붙여도 용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어제는 여동생과 아이와 함께하는 삶, 잘못했을 때 어떻게 혼내야 하는 걸까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잘 모르겠고 혹여라도 좋은 생각이 난다면 다시 얘기해줄게' 라고 했다. 나는 동생의 어떤 점이 '잘못된것 같다'고 했고, 그렇게 지적은 했으나 실상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더 좋다' 라는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한 상황이라 스스로에 대해 좀 실망하기도 했다. 동생의 말을 들어보면 동생의 방법이 맞는 것 같기도 해서, 역시 대화를 해보는 것이 나았다, 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했다. 최소한 내 조카에게는, 조카의 일상과 삶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이 부모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지만. 



갓난아기에게도 사랑의 의지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의 가이드가 되어주어야 한다.

사랑은 그것을 실천할 때에만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이는 부모나 어른의 소유물이 아니며, 아이도 시민적 권리(인권)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시민적 권리는 존중되고 지지되어야 한다.

정의로움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싹틀 수 없다. (p.64)



첫째 조카도 또 둘째 조카도 제 외할머니를 끔찍하게 좋아한다. 졸졸 따라다니고, 제 엄마 품에 있다고 제 외할머니를 보면 팔을 벌려 안아달라고 한다. 이에 우리 아빠는 도대체 당신의 어디가 아이들의 마음에 들어서 아이들은 당신을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라고 궁금해했고, 이에 엄마는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돼. 진심으로 사랑하면 아이들이 다 알아. 그래서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는 거야." 아, 이것은 얼마나 명백한 진리인가! 나나 우리 아빠 혹은 남동생은 순간순간 조카들을 귀찮아하기도 한다. 예쁘다고 꺅꺅 거리다가도 함께 좀 오랜 시간 있을라치면,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쩌면 조카들은, 이것을 눈치챘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오랜 시간, 끊임없이 붙어 있는 우리 엄마는, 질리지 않은 채로 웃어주고 사랑해주신다. 아이들에겐 그 마음이 가 닿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동생과 아이들의 양육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문득 우리가 다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단순히 아이를 기르는 것에 있어서 여동생의 수고를 덜어주는 걸 떠나,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 가 아닌 '다른 어른들' 이 있는 것은 그만큼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단 하나의 여성과 단 하나의 남성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여성과 남성을 보는 것, 그것은 아이에게 좀 더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벨 훅스가 핵가족이 아니라 대가족이 아이에게 더 좋다는 말을 하는 것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핵가족이 실패했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분명해졌다. 핵가족은 감정적, 정서적 혼란이 상존하고, 무시와 학대가 빈발하는, 제 기능을 못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아직도 핵가족이야말로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우기는 이들이 있다. 물론 나는 대가족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가족은 직계가족뿐 아니라 방계친족들(예를 들면, 결혼을 통해 대가족으로 흡수되는 피가 섞이지 않은 친척들)도 포함되기 대문에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핵가족보다 훨씬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다. 그중에는 반드시 온화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p.172-173)



벨 훅스가 말하는 것 같은 가정은 아이를 키우기에 이상적이라고 생각이 들어, 이것이야말로 좋은 환경을 선물하겠구나 싶었는데, 그러다 이내 '장모 장인과 함께하는 삶' 혹은 '시부모와 함께 하는 삶'이 떠오르자 풀이 죽었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어른이 스트레스 받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이 아이에게 여전히 좋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엄마 아빠를 갖는 것이 아이에게도 더 나을테니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장인장모 혹은 시부모란, 사실 아주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실상은 동화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아- 완벽한 방법, 백퍼센트의 환경이란 역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언젠가 한 남자가 내게 '네가 구레나룻을 좋아한다면 나는 길려보도록 할게' 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아니 그러지 말라'고 말했었다. '나를 좋아한다면 구레나룻을 길러'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너는 그저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내가 구레나룻을 좋아해서가 아니라(안좋아한다), 가슴 털 얘기하다가 그 얘기로 흘러갔던 것 같다. (응?) 어쨌든,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뭔가 변하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변화해가기 위한 것이라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면, 그것이야말로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닌가. 영화《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은 '홀리 헌터'에게 '나는 약 먹는게 정말 끔찍하게 싫지만, 당신을 만난후 신경정신과 약을 챙겨먹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찬사를 원했던 홀리 헌터는, 대체 그게 찬사와 무슨 상관이 있냐 되묻고, 이에 잭 니콜슨은 '당신은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고 답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고, 그렇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애써야 하는 것이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대개 사랑이란 상대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대로 탈바꿈시키려고 해서도 안 될뿐더러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상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반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자기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영향으로 보다 완전한 자신으로 거듭 태여나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서로의 동의 아래 이루어진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진정한 사랑의 가장 공통된 특징은' 무조건적'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건설적으로 투쟁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꽃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면서 그 결과를 상대와 함께 나누고 자신의 행동을 개선시켜나가려는 의지가 생긴다. (p.234)



이 나이를 먹고서도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이렇게나 많다.



사랑이 용기라고 말해주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벨 훅스의 조언들은 내게 매우 유용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얄딱꾸리한 말은, 방점이 '미인'에 찍히는 게 아니라 '용기'에 찍힌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미인은, 사랑의 대체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읽기에 더 좋았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그러므로 벨 훅스가 지나치게 사랑을 찬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말이 이렇게나 길 필요는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제 내가 했던 운동을 그대로 다시 해본 남동생은, 아주 좋다며 이대로 계속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동작 하나를 추가해 주었다. 복근 운동 추가하자고. 어제 자기전에 남동생이 알려준 동작을 보고서는 이내 설레이는 마음이 되었다. 어서 빨리 퇴근하고 집에 가서 복근 운동을 하고 싶다. 이 넘치는 뱃살이 사라질 생각을 하면 짜릿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 언제?


아니 그리고 .. 셀룰라이트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하아- 갈 길이 아주 멀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나 존 웰우드Jhon Welwood의 『사랑과 깨달음 Love and Awakening』같은 인기 있는 남성 작가들의 책들은 페미니즘적인 관점을 채택해 남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 다른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단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만약 위의 작가들이 주장하듯이 남성과 여성이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감정적으로도 전혀 다른 시계에 살고 있다면, 사랑에 관한 담론에서 남성들이 지금처럼 권위를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여성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존재이고 남성은 이성적이고 무뚝뚝한 존재라면, `진정한 남성`은 사랑에 관해 말하기를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p.25)

가장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맺은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다른 어떤 인간관계보다 우위에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관계까 끝났을 때 나는 거기서 헤어 나오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 나는 친구 사이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을 행동들, 예컨대 언어폭력이나 신체적인 학대를 묵묵히 참아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연인 관계야말로 모든 관계 중에서 가장 `특별`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관계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1950년대나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결혼이나 결혼에 버금가는 남녀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에 앞선다고 믿도록 사회화되었다. 내가 만약 결혼이나 연인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서로의 영적인 성장이라고 일찍부터 배웠다면 남녀 관계에서 언어나 신체적인 학대가 두 사람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진작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의 난폭하고 불쾌한 언동을 묵묵히 참아내고, 부당한 행동을 하더라도 잊고 용서해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 대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p.178)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관계라면 난폭하고 무시하는 언동을 당할 때 상대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해야 옳다. 그런데도 젊은 시절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나는 페미니즘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받아온 종교적 가르침과 가정교육에 압도당한 나머지 연인 관계가 파탄나지 않도록 하려면 상대 남성이 어떤 언동을 하더라도 묵묵히 받아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되돌아보면 당시 나는 사랑의 기술에 무지했기 때문에 출발할 때부터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p.178-179)

나우웬은 이어 "아무리 친구가 많고, 사랑하는 애인이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 어떤 탄탄한 조직에 속해 있어도 완전한 wholeness 자아, 통일된unity 자아를 찾고 싶다는 내면의 갈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면서, 그 갈증은 우리가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자기 안에 `신성한 정신`이 드러나게 될 대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로움에서 도망치려 해서도 안 되고 외로움이 없는 양 애써 부인하려 해서도 안 된다. 속이 텅 빈 외로움을 열매가 풍부한 고독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외로움은 고통스럽지만 고독은 평화롭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하지만 고독은 다란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에게 혼자만의 생각과 공상에 잠길 수 있게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허용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고독을 즐길 줄 알게 된다. (p.183)

진정한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을 결핍과 불만족한 상황에 내버려둘지언정, 고독과 외로움에 처하는 위험은 무릅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충만하고 깊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변화 시킬 수 있다. 다시 머튼의 말을 들어보자. "사랑은 파트너를 향한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랑은 당신의 삶 전체를 변모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랑은 `개인의 혁명`과 같다. 사랑은 당신의 생각과 욕망, 행동을 모두 하나의 경험 속에 녹여내면서 `과거의 당신`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당신`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p.237-238)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면 삶의 고난이 끝날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랑의 힘은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된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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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12-0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밑줄이 하나도 안 겹치네요? 확실히 `책과 만나는 때`가 있어서, 같은 책을 읽어도 자기 지금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부분에 눈이 가나 봅니다. 기억이 새록새록- 고맙게 읽었습니다.^^ 다락방 님 피아노 학원에서 본 그림책 속 이야기 참 좋네요.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눈 오는 좋은 오후 보내세요!

다락방 2014-12-01 14:25   좋아요 0 | URL
저도 에르고숨님의 리뷰를 다시 읽었어요. 스캇 펙의 인용문은 제가 인상 깊게 보았던 구절이기도 해요. 그리고 에르고숨님의 리뷰도 저역시 고맙게 읽었습니다. 이승우에 대한 언급, 나아가 문학에 대한 언급에서는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저 스캇 펙의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흐흐.

사실, 사랑은 책으로 배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방향을 설정해주고 재차 확인해주는 약간의 길잡이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겠지요. 확실히 책과 만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여긴 눈이 멈추고 햇볕이 눈부시게.. ㅠㅠ 블라인드를 내렸는데도 여전히 눈이 부십니다, 에르고숨님. ㅠㅠㅠ

단발머리 2014-12-02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우아~~ 이 페이퍼, 올해의 당선작이예요. 너무 좋네요. 잠시 내가 성경을 읽고 있는 줄 알았어요.

2. 내가 만약 결혼이나 연인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서로의 영적인 성장이라고 일찍부터 배웠다면 남녀 관계에서 언어나 신체적인 학대가 두 사람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진작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의 난폭하고 불쾌한 언동을 묵묵히 참아내고, 부당한 행동을 하더라도 잊고 용서해주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 대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p.178)

서로의 영적인 성장, 눈에 확 띄는 문구네요. 맞아요. 그래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죠.

3. 183쪽 때문에 이 책을 사야겠어요.

4. 저도 헤어짐이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던 거 같아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연애를 시작할 수조차 없었고, 그는 마음 속에만 두는 것이 편안했다.

너무 마음에 와 닿고, 그러면서도 많이 아쉽네요.

5. 상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반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자기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영향으로 보다 완전한 자신으로 거듭 태여나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서로의 동의 아래 이루어진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해보고 내린 결론은, 진정한 사랑의 가장 공통된 특징은` 무조건적`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건설적으로 투쟁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꽃피는 것이다.

234쪽 좋아요. 완전한 사랑은 `무조건적`이라구요. 아, 맞아요. 이렇게 사랑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사랑이 있다는 건 알아요. 저도 그런 사랑을 받았었거든요. 엄마~~~~

다락방 2014-12-03 09:59   좋아요 1 | URL
우앙 단발머리님 댓글 좀 봐..댓글이 풍족해요, 단발머리님! >.<

네,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많이 끄덕였어요. 변화에 대한 부분은, 안그래도 최근에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기도 했던터라 내용들이 훅훅 오더라고요. 제가 마침 사랑은 용기로구나, 깨달았을 때 벨 훅스가 사랑은 용기야, 라고 말해주니 얼씨구나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단발머리님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또 얼마나 근사한 페이퍼 혹은 리뷰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단발머리님은 아마도 저랑 많이 다른 부분에 밑줄을 그으실지도 모르겠어요. 단발머리님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이 책은 어떨까요? 어서 빨리 읽고 리뷰 남겨 주세요! 꼼꼼하게 읽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올해의 당선작이라니, 하하하하하하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

2015-01-19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1-20 09:40   좋아요 0 | URL
슝-
안녕 :)

스윗듀 2015-07-1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 책의 좋은 리뷰를 북플이 소개해줬어요- 여기서 이렇게 또 만나니 반갑군용! 읽고싶은 책에서 반드시 읽을 책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당

다락방 2015-07-20 08:38   좋아요 0 | URL
우앙, 북플이 그런 역할도 하는군요! 헤헷.
이 저자의 [사랑은 사치일까?]도 읽었는데 저는 [올 어바웃 러브]가 더 좋더라고요.
히힛.
이렇게 만나게되니 또 반갑습니다! :)

몬스터 2016-02-2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님. 전 아직 멀었어요.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또 별개인 것 같고. 감정이 훅 치고 올라오면 , 그걸 잡아 조절하는 것도 아직 쉽지가 않네요... 멀었어요. ㅎㅎ
 
비밀의 정원 - 안티 - 스트레스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지음 / 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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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행위를 넘어서 이제 칠하는 것으로도 책을 한 권 꼭 채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칠하는 행위가 현실로부터 나를 잠깐 떨어뜨려 놓는다는 것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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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젠장.. 올해의 책 투표 하느라 한건데 내 서재에 등록되네... ㅠㅠ

웽스북스 2014-12-0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다 칠했어요??

다락방 2014-12-01 11:54   좋아요 0 | URL
그럴리가요 ㅋㅋㅋㅋㅋ 책상 한 구석에 처박아 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르고숨 2014-12-01 14:02   좋아요 0 | URL
제 책상 한 구석에도.

다락방 2014-12-01 14:09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있어야 할 자리는 책상 한 구석? ㅎㅎㅎㅎㅎ

마노아 2014-12-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투표 몇 개 하고 서재에 100자평 등록돼서 화들짝 놀랐어요. ㅎㅎㅎ

다락방 2014-12-02 10:43   좋아요 0 | URL
하루에 하나밖에 안될걸요, 마노아님?
저도 서재에 백자평 등록돼서 완전 깜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해보니까 백자평 안써도 투표 가능하더라고요. 아긍. 이 백자평 지우고 싶은디.. ㅎㅎ

마노아 2014-12-0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표 두번 했어요. 영역별로 되는 거 아니에요? 책이랑 작가랑 뭐... 아님 한번 밖에 반영 안 되는데 버튼은 눌러지는 걸까요?
투표 이제껏 딱 하루 했네요. 생각난 김에 지금 해야겠어요.ㅎㅎㅎ

다락방 2014-12-03 15:4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뭐 응모했어요?

마노아 2014-12-06 23:25   좋아요 0 | URL
하나씩 번갈아가면서 응모해요. 아이패드부터 적립금까지~ 머그컵도 많이 탐나구요.^^
 
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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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걸어나가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노인이 스스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게 무척 흡족했다. 물론, 노인이 요리를 하고 여자에게 반했다 말하고 사람을 부리고 아들에게 당당히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었던 건, 돈이 있기에 가능했다.

돈은 힘이지만, 그것이 외로움을 극복해내는 수단은 될 수 없다. 돈이 그렇게 중요한 일까지 해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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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을 위한 요리를, 내가, 꼭!
    from 마지막 키스 2014-11-26 10:25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봤을 때 그 내용도 궁금했지만, 그 후에 책 표지를 보고 더 궁금해졌었다. 책 띠지의 작가 얼굴이 엄청난 훈남이었으므로. 크- 부드럽고 젠틀하며 섬세할 듯한 저 얼굴이 확- 끌어당긴거다. 그래서 이 책을 샀는데, 책 표지를 펼치고 난 후에 나온 작가 사진은 띠지와 좀 ... 좀 많이 ..... 다르더라. 뭐 어쨌든.책 속의 노인은 부유하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있고, 그 도우미에게 넉넉한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형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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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럴드는 A급 국도, B급 국도, 시골길, 산길을 택했다.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키며 바르르 떨렸고, 그는 그것을 따라갔다. 낮에 걸었고, 달이 안내하면 밤에도 걸었다. 1킬로미터, 또 1킬로미터, 또 1킬로미터 물집이 심해지면 덕트 테이프로 묶었다. 자고 싶으면 잤고, 그런 뒤에 다시 일어나 걸었다. 별빛 아래를 걸었고, 부드러운 달빛 아래를 걸었다. 달은 눈썹처럼 걸려 있고, 나무줄기들은 뼈처럼 빛났다. 그는 바람과 험한 날씨를 헤치고 걸었고, 햇빛으로 표백된 하늘 밑을 걸었다. 해럴드는 자신이 평생 걷기를 기다려 온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 알뿐이었다. (p.256)

 

 

해럴드는 오래전 같이 일한 직장 동료 '퀴니'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자신은 암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 중이고 해럴드의 생각이 났다며 작별인사를 적은 편지. 이에 해럴드는 왜 이십년간 그녀를 한 번도 찾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녀의 쾌유를 비는 엽서를 쓴다. 그리고 우체통에 넣기 위해 걷는데, 우체통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 놀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체통에 이 엽서를 넣고 전하는 일은, 어쩐지 지나치게 작은 일로 느껴진다. 그는 다음 우체통까지 걸어가 부치기로 하고, 그렇게 또 그 다음 우체통까지 간다. 그러다 결국, 그녀를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지금 걸어왔듯이, 계속 걸어서. 마침 배가 고파 치즈버거를 사먹기 위해 들렀던 주유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그에게 믿음을 준다. 당신이 강하게 그녀의 회복을 믿고 있다면, 믿는 대로 될 것이라고. 그는 걷기에 적당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나왔지만, 핸드폰도 집에 두고 나왔지만, 내가 이렇게 걸어서 그녀에게 닿는다면, 그녀가 죽지 않을 것이다, 라는 자신만의 믿음에 근거해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걷기는 단순히 그녀에게 닿고, 그녀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의 과거를 보여주고 그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도 준다. 자연의 빛깔에 대한 신비로움도 걷기 속에 있었고, 이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고민도 들어주게 된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한발을 다른 한발 앞으로 움직이는 신체적 활동 말고도, 머릿속에 무수히 떠다니는 아주 많은 생각들을 의미했다. 그는 낯선 이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희망을 얻고 또 절망을 얻는다.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은밀한 욕망과 비밀을 엿듣게 되고, 또 자신도 지금 무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말하게 된다. 그의 과거와, 그의 머릿속 생각과, 그가 다른이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는 일은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기쁨이었는데, 문득 내가 몇해전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님께 무작정 내가 힘들다고 토로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별한지 얼마 안됐었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기사님께 마구 내 마음을 얘기했던 거다. 그때 기사님은 내 얘기를 다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아가씨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딱 그만큼이었던 거에요."

어떤 은밀한 얘기들, 이를테면 고민과 상처 비밀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하는 게 더 쉽다.

 

 

사람들은 우유를 사고 있거나, 차에 기름을 넣고 있거나, 심지어 편지를 부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부에서 감당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데도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쉽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 노력의 외로움. (p.118)

 

 

 

그런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사실은 삶의 진리를 고스란히 보여줄 때가 있다. 삶의 진리란 사실 크고 대단한 게 아니니까.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깨닫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고 깨닫고 있다. 그리고 입밖으로 그걸 내는 일은, 누군가의 대화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면에서 해럴드 프라이가 오래오래 길을 걸으며 무수히 많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건, 내게도 고마운 일이었다.

 

 

"걷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군요." 여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냥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으면 되는 거라고요. 하지만 본능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놀라곤 해요."

그녀는 혀로 아랫입술을 적시며, 말이 더 나와주기를 기다렸다. "먹는 것."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그것도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정말 어려워해요. 말하는 것도, 심지어 사랑하는 것도. 그런 게 다 어려울 수 있어요." 그녀는 해럴드가 아니라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는 것도요." 그가 말했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잘 못 주무세요?"

"늘 잘 자지는 못하죠." 그가 사과 쪽으로 또 손을 뻗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여자가 말했다. "아이들."

"네? 뭐라고 하셨죠?"

"또 다른 어려운 거요." (p.71)

 

 

그가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 희망과 용기와 격려를 주기도 하지만, 그의 희망을 짓밟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래, 이건 안되는 거였어, 내가 간다고 퀴니의 죽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이 다리로 거기까지 걸어, 하고 주저앉게 되지만, 역시 그럴때 다시 그를 일으켜 세우고 믿음에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해럴드는, 누군가 옳지 않은 행동,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지만, 그래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려는 이유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해럴드는 퀴니에게 닿기 위해 그녀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걷고 있듯이, 누군가는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를 향해 걷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모든 행위가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해럴드가 올거라는 믿음으로 퀴니가 기다리듯이, 퀴니에게 가기 위해 걷고 있는 해럴드를 모린이 기다리고,

 

 

"그이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나요." 그녀가 마침내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돌아오지요." 자음이 약간 뭉개진 렉스의 목소리가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 주는 바람에 그녀는 즉시 안심했다. 당연히 해럴드는 돌아온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싶어졌다. (p.191)

 

 

마르티나도 자신을 떠나버린 남자를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다.

 

 

"자기 물건은 다 놓고 갔어요. 개도, 정원 연장도, 심지어 새 등산화도. 그이는 걷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매일 잠을 깨면 이런 생각을 해요. 오늘은 그이가 돌아오겠지. 하지만 매일, 그이는 오지 않아요."

한동안 오직 정적만이 그녀의 말을 실어 날랐다. 해럴드는 인생이 정말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똑같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파트너의 개를 산책시킬 수도 있고, 신발을 신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곧 잃을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일 년이 지났어요."

"모르는 일이지."

"알아요."

그녀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코를 훌쩍였다. 그러나 자신에게나 해럴드에게나 굳이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나타난 거예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걸어간다면서." 그녀가 다시 거기까지는 못 걸어간다고 할까 봐 그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아저씨 같은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있어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기다리고 있어요." (p.183-184)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목적, 방향, 결국 최종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곳이 '당신' 이라면, 당신에게 닿기 위해 오늘을 버텨 내일을 맞이하고 또 그 내일로 오늘을 사는 거라면, 당신에게 닿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마트리나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건 어쩌면 그녀로 하여금 인생의 다른 재미를 놓치게 하는 독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신에게 돌아오는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건 아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마르티나와 모린 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상대에게 닿기를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만추》의 탕웨이이거나 《호우시절》의 정우성인 것이다. 또한 해럴드처럼 닿아야 하는 상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닿아야 할 사람이 먼 곳에 있다면 역시 해럴드처럼 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를 타고 좋은 호텔에 묵고 그에게 닿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물리적인 거리와 육체적인 움직임이 아닌, 삶의 방식 자체가 '당신을 향해 걷는다'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당신에게 닿기 위해, 당신이 있는 곳을 보고 걷는 것. 이 행위는 언젠가 당신에게 닿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것이고 내 삶의 연속성을 지켜줄 것이다. 나는 당신을 보고 천천히 걸을 것이고, 걸으면서 졸리면 잠을 청할 것이며 배고프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걷다가 비를 맞아 감기에 호되게 걸릴 수도 있고 열이 심하게 나서 끙끙 앓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기에 있는 당신을 만나는 것이 결국 내 최종 목표라면, 나는 갈 수밖에 없다. 물론, 당신에게로 걷는 길에, 나는 다른 사람과 만나 함께 힘들어하고 함께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날들은 발가벗고 뒹구는 걸로 시간을 지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 삶의 연속성이고, 이 연속성을 유지한 채로 나는 여전히, 늘 그래왔듯이 당신에게 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당신을 향해 걷는 것, 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어제는 토요일이었고, 약속이 취소된 나에겐 모처럼 아무것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이전까지의 삶이 나를 만신창이가 되게 했고, 그러므로 나는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책장을 덮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내가 주말이면 찾던 일자산으로 갔다. 일자산을 천천히 걸었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내가 오로지 나만의 상념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해럴드가 그랬듯이 내가 후회할만한 과거를 떠올리며 마음껏 후회했고, 또한 내 불안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라는 신해철의 노래 가사도 떠올리며 슬퍼졌다가 바람 소리에 귀기울였다. 숲의 화려한 색채에 감동하고, 잠깐 멈춰서서 호흡을 크게 해 숲에 가득한 풀냄새를 들이마셨다. 오래전 올림픽 공원을, 비오고 난 직후에 찾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비가 멎은 올림픽공원은 풀냄새로 가득했고, 나는 그 풀냄새 때문에 설레였으며, 그 풀냄새를 함께 맡으며 한뼘쯤 떨어진 거리에서 걷던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설레이기도 했던 기억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두시간 동안 걸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상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당신을 향해 일상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기쁨과 축복과 행복과 또 불안과 슬픔이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렸다. 그 책속에서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하던 것을 이 책,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서는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하면 될까. 나는 해럴드의 고민과 생각을 물끄러미 본다. 그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머릿속 생각을 본다.

 

허투루 쓰여진 문장이 없고 여러번 밑줄을 긋고 책의 귀퉁이를 접을만큼 아름다운 책이다. 언젠가 나도 물리적으로도 당신에게 닿기 위해 걷기를 선택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땀을 흘리며 다리에 알이 박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내 삶이 당신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최종적으로 내 선택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내 선택을 내 의지로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버윅까지 간다는 것, 그저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단순성이 즐거웠다. 계속 앞으로 가기만 하면, 당연히 도착할 것이었다. (p.66)

 

 

 

 

 

녹색에도 수많은 색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해럴드는 겸손해졌다. 어떤 녹색은 짙어 거의 벨벳 같은 검은색이었으며, 어떤 녹색은 아주 옅어 노랑에 가까웠다. 멀리서 지나가는 차가 햇빛을 반사했다. 어쩌면 창문이 반사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빛이 떨어지는 별처럼 떨리며 산들을 가로질렀다. 어떻게 전에는 이런 것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p.60)

그는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내딛으며 계속 걸었다. 이제 자신이 느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이 걸어온 거리에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p.61)

"나도 버윅이 아주 멀다는 걸 인정해요. 또 내가 걷기 훈련도 받지 않았고, 몸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해요. 그러고 보니 내가 가능성이 없는데도 거기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나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속에서는 포기하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도, 포기할 수가 없네요. 계속 가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가고 있네요." (p.169)

해럴드는 자신이 털어놓은 것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퀴니와도 마찬가지였다. 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그녀가 그것을 자신의 생각들 사이 어딘가에 안전하게 챙겨 둘 것이라고, 그것으로 자신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들이대며 자신에게 맞서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우정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우정 없이 살아온 그 모든 세월을 후회했다. (p.180)

"젊은 시절에는 이 나이가 된 사람들을 보며 인생이 다 정리되었겠거니 생각했는데, 내가 예순세 살에 이렇게 끔찍스러운 혼란에 빠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p.237)

"오, 해럴드." 그녀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둘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254)

"늘 그리워하지요. 머릿속으로는 엘리자베스가 없다는 걸 알지만, 눈으로는 계속 보고 있어요. 유일한 차이라면 이제 고통에 익숙해졌다는 거지요. 땅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 것과 비슷해요. 처음에는 그런 구멍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계속 빠져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구멍은 계속 있지만, 구멍을 에둘러 다니게 되지요." (p.264)

그 대화가 모린에게 오래 남았다. (p.265)

그녀는 한때 퀴니 헤네시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그녀는 장부를 정리했고,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기록을 했다. 몇 번 사랑을 했고, 사랑을 잃었다. 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삶을 어루만졌고, 삶과 잠깐 놀았다. 하지만 삶은 미끌미끌한 놈이지. 마침내 우리는 문을 닫고, 삶을 두고 떠나야 한다. (p.385)

그녀는 아이의 공허한 머리를 들어 올리고 쉴 새 없이 입을 맞추었다. 아이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자신의 소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아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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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11-0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게도 필요한 감각예요. 계속 앞으로 걷는 느낌. 그 감각. 자꾸만 무언가에 누군가에게 내쳐진 기분이 들곤 하는데, 그럴 땐 일단 발걸음을 내딛여야 하죠. 몸에 펌프질을 해야겠어요.

다락방 2014-11-03 17:22   좋아요 0 | URL
저는 열심히 걷고 있었는데 지금 잠깐 내동댕이쳐져서 저기 어디 깊고 어두운 곳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기분입니다, 드림아웃님. 우리 같이 펌프질해요. ㅠㅠ

치니 2014-11-0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포스팅이 다 날라갔었다니! 읽으면서 제가 다 억울할라 그러네요. 그런데도 이렇게 길고 충실한 리뷰를 쓰시다니, 다락방 님 정말 대단하세요. :)

다락방 2014-11-03 17:23   좋아요 0 | URL
이걸 다시 쓰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어야 했는지..한숨만 쉬면 그나마 양반, 빡쳐빡쳐를 입에 달고 썼어요. ㅎㅎㅎㅎㅎ 한문장 쓰고 한숨 한문장 쓰고 욕... ㅠㅠ
대단은요, 무슨. 기승전결도 없는 리뷰 ㅠㅠㅠ
 
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읽어보고는 그냥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요즘 조카가 책을 읽는다는 동생의 말에 조카에게 줘야지 싶어 다시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 그림책이 이렇게 좋은 책이었던가, 왜 예전에 읽을 땐 미처 몰랐던가, 하고 감탄했다.

 

리디아의 아버지는 직업을 잃고 힘든 상황, 리디아는 당분간 외삼촌 집에서 살기로 한다. 외삼촌은 빵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리디아는 빵 만들기를 조금씩 배우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원예일에 몰두한다.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옮겨 심는등의 일들을. 외삼촌을 웃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리디아는 어느날 외삼촌 집 옥상의 버려지고 낡은 공간들을 본다. 아, 바로 여기다. 이곳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외삼촌을 웃게 만들어야지. 그날부터 리디아는 그 옥상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이렇게 황폐했던 공간이,

 

 

 

 

이렇게 멋진 정원으로 완성된다.

 

 

 

 

 

외삼촌은 비로소 웃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외삼촌을 웃게 한 이 일이, 리디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나는 크게 만족스러웠다. 리디아는 싹을 틔우고 꽃을 가꾸는 일에 크게 흥미를 가지고 있고 그 일을 사랑한다. 빵을 굽는 법을 외삼촌으로부터 배우지만, 그를 웃게 하기 위해 선택한 일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어제도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자신이 먹을 밥을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거라는 말을. 내가 혼자 오롯이 설 수 있어야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줄 수 있다.

 

이 책속의 리디아가 외삼촌을 웃게 하기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든가, 춤과 노래를 배우려고 시도했다면 나는 이 책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디아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고, 그래서 가장 잘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하는 거, 그게 방법인 것이다.

 

 

이 책속의 내용은 리디아가 보내는 편지로 채워진다. 읽기에 나쁘지 않고 그림도 마음에 든다. 편지라서 읽기에 더 수월하지 않은가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언제나 여유롭고 행복한 공간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지독한 가난 속에 놓여지고 어떤 아이들은 자라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적기도 하다. 리디아는 실직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고, 어린 시절의 일부를 외삼촌네 집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아이가, 실제로, 있는 것을,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좋아하는 그림책이 생겨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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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4-11-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랑하는 그림책 중 한권입니다. 삼촌이 리디아를 꺼안을 때 그 뒷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표정을 상상하게 할때...아..눈물나와요. ^^;

달걀부인 2014-11-0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랑 <도서관>이란 책도 함께.. ^^

다락방 2014-11-03 17:27   좋아요 0 | URL
저는 <도서관>은 막 좋진 않았는데 이 책은 참 좋습니다, 달걀부인님. 처음엔 리디아의 아버지가 실직하고 외삼촌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요.. 흑흑 ㅠㅠ

마노아 2014-11-0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그림책이에요. 다락방님도 좋아하는 책이 되어서 또 좋아요.^^

다락방 2014-11-03 17:28   좋아요 0 | URL
무려 마노아님 내 인생의 책입니까!! ㅎㅎ
처음 읽을 때는 그렇게 좋진 않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 책 참 좋아요, 마노아님.
저도 이제 그림책 보는 눈이 좀 생긴걸까요? ㅎㅎ

숲노래 2014-11-03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과 두고두고 되읽는 예쁜 그림책이에요. 그림책은 아이들이 새롭게 읽어 주기에 더욱 즐겁게 다시 돌아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해요.

다락방 2014-11-03 17:30   좋아요 0 | URL
조카도 이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건 또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혜윰 2014-11-03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스몰의 그림이 전 참 좋아요^^
이 책의 경우 부부가 함께 써서 그런가 어쨌든 저도 좋아하는 그림책.

다락방 2014-11-03 17:31   좋아요 0 | URL
아, 이게 부부가 함께 쓴 책이에요? 제가 그림책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지식이 전무한 사람입니다. 뭐 다른 거에 대해서도 딱히 지식이 있진 않지만요. ㅋㅋ 그렇군요, 부부가 쓴 책.
참 아름다운 책입니다, 그렇게혜윰님.

2014-11-03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03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11-0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버랜드 시리즈는 꽤 봤는데, 이 책은 처음이네요.
그림이 예쁜데다 감동적인 이야기라니, 제가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4-11-04 09:5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이 책은 참 좋습니다.
헤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