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2 - 미천왕,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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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천왕, 을불이 숙신 땅을 밟았다. 그런데 숙신에서 본 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참혹했다. ‘전식’이란 것으로 연명할 정도로 피폐한 숙신인들, 고구려왕 상부의 갖은 핍박과 노역으로 그들의 삶을 죽음의 문턱 바로 앞이었다. 철을 들고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갔던 을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어. 조건 없이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선비의 군사 원목중걸을 물리치고, 기개와 지략으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고구려 2> 역시 신나게 읽었다. 읽을수록 긴박감과 박진감에 더욱 들뜨게 된다. 솔직히 치열한 전쟁 장면들, 그 속 전략, 전술을 오가며 지혜를 발휘하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은 살짝 거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최대의 관심사는 바로 을불이 어떻게 왕위에 오르는가 였다. 특히, 2권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전개될지 조바심이날 정도였다. 아직도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끝을 향하고 있었다. 또한 국상 ‘창조리’란 인물이 품고 기획했던 일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1권의 많은 의구심들이 조금씩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 주군이 ‘을불’인 냥, ‘을불’의 편이 되어서 그렇게 빠져들었다.

 

2권은 떠돌이 도망자였던 을불이 자신의 세력을 다지는 과정과 고구려를 둘러싼 낙랑, 선비, 숙신 등의 관계 속 치열함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영웅-선비의 모용외, 낙랑의 ‘최비’ 그리고 숙신의 ‘아달휼’-들의 이야기는 그 기상천외함 지략, 대담함 등을 통해 영웅 중의 영웅으로 거듭나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솔직히 모용외와 최비 즉 선비와 낙랑의 관계보다는 을불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로웠다. 어느 순간, 눈을 뗄 수 없어 정신없이 읽어 내렸다.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가 전개될지, 그 철두철미한 상황들, 반전들이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서로를 향한 칼끝을 드리웠던 모용외와 최비는 너무도 호탕하게 단 하룻밤 사이에 의형제가 되었다. 천하를 두고 싸우는 일전에서 그들은 의기투합했다. 아무래도 미천왕이 된 을불과 끊임없이 대립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그들을 정복해나갈지 3권에서 빨리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아영’와 ‘소청’, 을불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의 존재를 조금씩 드러낼 뿐이었다. 낙랑에서 곤욕을 치렀던 아영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을불(다루)이 죽을 줄 알고 낙랑으로 돌아가기로 한 ‘소청’은 과연 어떤 이야기로 을불에게 힘이 될지, 아니면 의외의 복병이 될지,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한편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너무도 쉽게 풀린다는 기분도 없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라는 욕심에, 미천왕의 삶을 겨우 3권의 이야기로 풀어내려 했다는 아쉬움이 커졌다. 앞으로 한 권의 이야기로 미천왕의 대정복기를 다루게 될 텐데 그저 안타까움이 앞 설 뿐이다. 하지만 낙랑과 선비 대 숙신과 고구려의 치열한 전쟁, 그리고 다른 인물들의 활약상을 기대하며,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3권을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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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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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한 친구가 읽던 책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해인 수녀님의 책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일 순간, 이름 석 자가 뇌리에 박혔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다만, ‘나를 위로하는 날’이란 시 한 편이 바로 내 책상 곁에 적어두었다. 정말 위로가 필요한 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금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면, 마음을 풀어왔다.

그런데 이제야 시절인연이 닿은 것일까?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놓칠 수가 없었다. 이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인 것 마냥, 서슴없이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든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나긋나긋해지는 기분이었다. 수녀님이 풀어낸 이야기들은 따뜻한 물결들로 잔잔하게 넘실거렸다. 마음이 한 없이 평안해지고 행복으로 물들었다.

 

고통을 함께 나눠 안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그 따스한 손길에 수시로 울컥하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자꾸만 손이 가다보니, 또한 자연히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도자다운 검소함과 소박함, 그리고 순수한 마음들을 오롯이 느끼며, 세상의 찌든 때를 시원하게 씻어버리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온갖 잡념들, 부질없는 걱정 근심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분연히 일어난 마음속을 헤집어놓았던 수많은 갈등들도 하나둘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 일상 속 번뇌들을 해인 수녀님의 글을 통해 떨쳐버리고, 평온을 찾아갔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최근 일상 속에서 ‘감탄’을 하면 살자고 했는데, 수녀님도 ‘감탄사가 그립다’며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정말 무미건조한 일상 속 무관심과 방관하면서 더욱 지루한 나날을 만들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감탄’을 연발하며 살자 다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글 중에서 ‘우정일기’과 ‘묵상일기’가 무척 가슴에 와 닿았다. 주변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루 하루를 오롯이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조금씩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그저 마음이 지치고 삶이 시들해질 때면, 한 걸음에 달려가 안길 수 있는 작지만 커다란, 따뜻한 품 하나가 생긴 듯하다. 오래도록 곁에 두며 마음을 다지고, 그 한없는 든든함에 기댈 수 있는 시간들로 가득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그 누군가와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이 바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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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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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보고 모든 것을 다 봤다고 믿진 말라고, 언제나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런 사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걸 만들어 낸 의지에 있다고.” (105쪽)

 

1년 만에 반가운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을 만났다. 동생과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에 젖고, 기대감으로 들뜨게 되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궁금해지면서, 하루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이름은 망고>는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불현 듯이 떠올라, ‘수아’라는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상상으로 들떴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나는 ‘수아’라는 친구의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웃고 즐기다 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은 어느새 가슴 찡한 감동까지 선사해주고 있었다.

 

엄마와 딸의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수아엄마, 지옥여사와 불만 가득한 주인공 ‘수아’의 투덜거림이 오히려 유쾌하고 흥미로웠다. 연신 낄낄거리며 수아의 고군분투하는 5일간의 가이드 생활은 흥미진진했다. 원치 않았던 캄보디아 생활, 부정적인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불만 가득했던 수아, 하지만 갑자기 사라진 엄마와 엄마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갑작스럽게 가이드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에 연신 낄낄거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닷새간, 또래 친구 ‘쩜빠’와 티격태격하고, 6명의 어른들을 상대로 이리 치이면서 어느새 마음을 열고 자신과 당당히 마주하고, 다른 이들과 화해하는 모습은 마음속을 맑게 해주었다.

 

암담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수아’의 모습에 안쓰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가 압도했다. 그리고 투털이 ‘수아’지만 마음은 한없이 밝고 따뜻해 나 역시 ‘수아’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특히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다문화 사회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열고 어우러질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였다. 낯설고 이색적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우정의 힘으로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모습이 가슴에 남았고,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 듯했다.

 

이색적인 풍경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는 마치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에 들뜨게 했다. 그 속에서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의 역사, 문화를 살며시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전쟁, 그리고 빠른 경제 성장을 통해 잃어버린 전통과의 단절, 그리고 엄청난 대학살 등의 캄보디아 역사가 남긴 오늘의 캄보디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이 투영되기도 하였다. 또한 낯선 공간 속 또래 친구들의 다른 모습,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 다른 직장에 취직하는 것과 같다는 뚝뚝이 운전기사 ‘쏙천’, 가난 속에서도 가족을 향한 애정 등은 마치 우리 부모 세대들의 유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캄보디아라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 녹아든 두 친구의 우정과 아픔을 이겨내고 당당함은 많은 또래 친구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하고 활력을 얻었다. 모험심을 자극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다부진 ‘수아’를 통해 좌절하지 않고 더 당당하고 씩씩할 수 있는 지혜,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아처럼 ‘즐거움이 밀물처러 차올라’(256쪽), 지금 오늘의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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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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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카시오페아 공주>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잔혹했던 한 장면이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카시오페아 공주>의 환상적일 만큼 따뜻하고 몽환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기막힌 반전과 역설적인 제목의 “좋은 사람”이란 네 번째 이야기의 끔찍한 장면이 불시에 떠올라 섬뜩해지고 했다. 그런데 이번 <압구정 소년들>도 자살이거나 타살일지 모를 한 유명 여배우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어떤 비밀이 자꾸만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니, 대웅을 대한 심기도 갈수록 불편하고, 그로인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더욱 불안해지기도 하였다.

 

또 이재익의 우주적 상상력이 어디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연예인의 가십과 실제 어떤 사건들이 겹쳐졌다. 분명히 글의 시작에 앞서 실존하는 특정인물, 단체, 사건들과 연관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왜 머릿속은 그렇고 그런 가십들과 하나가 되는지, 그 혼란과 당혹감을 스스로 저울질해야했다. 수시로 현실과 허구 속 이야기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아니, 혹시나 이미 있던 어떤 사실을 살짝 짜깁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라디오PD-라디오PD답게 풍부한 음악이야기도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로써 연예계의 생리를 더욱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그의 이력이 도드라지면서 우려보다는 생생하고 풍성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어느 연예인, 연예계의 가십성 이야기가 아니라 스릴러로 변모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사건과 그 사이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음모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호기심이 일면서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에 비례하여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우주라는 인물에 동화되어 그의 시선으로 연희를, 대웅을 소원을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완벽한 반전에 그간의 불안과 두려움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머릿속은 환상적인 불꽃놀이의 환희로 가득 찼다. 비로소 샤갈의 표지 그림-도시 위에서-이 이해가 되었다. 아내 벨라와의 신혼의 달콤함과 행복함을 오롯이 표현한 그림과 주인공들의 미래가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의 애증과 오해, 원한을 훌훌 털어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행복으로 물든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역시 행복해졌다.

 

<압구정 소년들> 속 ‘사랑’이란 테마 외에도 또 다른 이야기가 자꾸만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물론 대부분은 같은 시간적 공간에 지난 유년시절을 떠올리게도 하였지만 물리적 공간의 한계로 때론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 방학이면 도시의 친적집에 다녀온 친구들의 기상천외(?)한 경험에 부러움과 시기어린 질투를 보냈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풋풋’거렸다. 그 친구들은 어디서 어찌 사는지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내 곁에 함께해주는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이 새삼 소중해졌다.

30대 중반의 현재와 고등학교 ‘압구정 소년들’의 시간들이 교차되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반자전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솔직함으로 무장한 듯이 더욱 생생하고 진짜 우리들 이야기처럼 비춰졌다. 이야기에 매몰차게 빠져든 것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하나의 사건을 매개로 얽힌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함 때문일 것이다. 잘 짜인 탄탄한 이야기는 기막힌 반전을 다시 읽고 되새기며 소설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연예인의 가십과 자전적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빠른 전개와 어느 순간 완벽한 스릴러 미스터리로의 장르 변화가 절묘하여 더욱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영상으로 만나보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자꾸만 진짜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마음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현실 그대로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의 잔혹한 이미지를 떨쳐낼 것 같다. 매서운 눈빛의 대웅이 품었던 사랑과 연정에 애틋해지고, 연희와 상민, 우주와 소원의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노라면 무척이나 헛헛했던 마음 속이 따뜻해진다. 소설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사랑에 완성이 있냐고 작가는 되묻고 있다. 잠시, 사랑의 완성을 꿈꾸는 우리에게, 때론 사랑을 완성한 것처럼 착각하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며 되묻고 있지만, 그럼에도 밝은 미소의 그네들의 모습을 그리노라면, 환상에 젖는 줄 알면서도 그로 인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어 오히려 즐거웠다. 아니, 철저하게 사랑이란 이름의 잔혹함을 잊고 이야기에 푹 빠져 마음속은 사랑과 행복으로 물들었다. 작가의 마지막 당부처럼 마음껏 사랑하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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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프롬이즈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4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이주혜 옮김 / 글담노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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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소설은 이번 『뱀파이어 아케데미』시리즈가 처음이지만 놀랍게도 아주 푹 빠져있다. 과연 이들의 이야기, 사랑,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음모는 어떻게 전개될지, 뱀파이어라는 소재의 특성 등이 어우러져 기존에 만나보지 못한 매력에 흠뻑 취했다. 천천히 여유 있게 읽다가도 금세 깊은 밤이 무색해질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 애끓는 절절함과 박진감을 만끽하였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마지막을 향해 질주한 후, 지난 밤의 황홀함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뱀파이어 아케데미』 시리즈 3권 <새드 일루전>의 마지막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4권 <블러드 프롬이즈>의 발간 소식을 듣자마자 들뜬 기대감과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지막 한 사건은 강직했던 댐퍼 수호인 ‘디미트리’가 악의 화신 ‘스트리고이’가 된 것이었다. 스트리고이의 공격으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그를 사랑했던 ‘로즈’는 디미트리의 평온한 안식을 위해 결속관계인 모로이 ‘리사’와 헤어져 러시아로 떠났다. 러시아의 낯선 도시에서 그의 행방을 추적하다, 연금술사 ‘시드니’와 정체모를 모로이 ‘에이브’를 만나고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로즈는 그의 가족과 만나 바이아에서의 생활에 젖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스트리고이 사냥꾼이 되어 목숨을 건 모험을 강행하게 되고 드디어 디미트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는 어느새 나는 완전히 로즈가 되어 버린 듯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빨려들었다. 기존의 스트리고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영적 마법의 등장과 사랑과 우정에 상처받고 리사의 방황 등등의 이야기까지 날실과 씨실로 촘촘히 짜인 그물에 갇힌 듯했다.

 

그저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색다른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모로이, 댐퍼 수호인, 스트리고이라는 인간 이외의 다른 종(?)의 존재는 그저 허구 속 상상에 불과했고 그것은 책 속의 설정 그대로 그저 받아들이고 즐길 뿐, 내 삶의 그 무엇과도 어떤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단지 이야기의 밑바탕에 흐르는 ‘사랑과 우정’이란 소재는 판타지에서 현실의 모난 마음들을 정화시킬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연하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에 화들짝 놀랐다. 내 자신의 내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을 오롯이 드러났고, 우리들 삶의 단면들을 면밀하게 분석되어 속속들이 비추고 있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가볍게 접근했던 이야기는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폐부를 기습했다. 마치 로즈처럼 판타지에 빠져 들떠 있던 마음은 파고든 비수에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뱀파이어 소설 속 모로이, 댐퍼, 스트리고이는 또 다른 인간 군상들로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특히 스트리고이의 탐욕과 잔인함은 우리들 자신이었다. 적자생존의 논리만을 강조하며 사랑과 인정마저 져버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스트리고이가 아닌 우리들 그 자체였다. 때론 절절함을 가장한 사랑이란 이름의 한 단면에 속고 속이는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소설 곳곳에서 우리의 모습, 오늘의 세태를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스트리고이로 변한 디미트리의 모습은 쓰나미처럼 온 마음을 뒤흔들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과연 내 안엔 스트리고이의 모습은 없는지, 수시로 나를 점검하는 하나의 잣대였다.

로즈와 리사는 그들이 처한 곤경 속에서도 사랑과 끈끈한 우정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앞으로 더 큰 장애물과 더 깊은 함정이 도살이고 있지만, 더욱 단단해지고 지혜로워진 모습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부메랑처럼 이내 나를 향한 응원이 되어 되돌아왔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 그대로, 이야기는 읽을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쏙쏙 등장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궁금해 온몸의 세포들이 들썩거렸다. 그만큼 생경함이 불러온 호기심과 더불어 짜임새 있는 구성은 강한 흡입력으로 사로잡았고, 이야기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풍성해졌다. 몇 가지 뻔히 예측되는 사건들과 그럼에도 새로운 이야기, 소재가 덧붙여져 어떻게 풀어낼지 자꾸만 기대하게 되었다. 이야기 속 여러 장치로 숨어 있는 단서들을 유추하며,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 <스피릿 바운드>를 기대해본다. 6월 출간 예정이라는데 결코 놓치지 않기 위해 출간을 예의주시해야 할 듯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야기는 또 어떤 색다름으로 나를 사로잡을 것이다. 로즈가 자꾸만 황홀경에 빠져들며, 알코올, 마약 중독을 언급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와 비교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분명 나는 로즈, 리사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중독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꽤나 기분 좋고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니, 어찌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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