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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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카시오페아 공주>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잔혹했던 한 장면이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카시오페아 공주>의 환상적일 만큼 따뜻하고 몽환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기막힌 반전과 역설적인 제목의 “좋은 사람”이란 네 번째 이야기의 끔찍한 장면이 불시에 떠올라 섬뜩해지고 했다. 그런데 이번 <압구정 소년들>도 자살이거나 타살일지 모를 한 유명 여배우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어떤 비밀이 자꾸만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니, 대웅을 대한 심기도 갈수록 불편하고, 그로인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더욱 불안해지기도 하였다.

 

또 이재익의 우주적 상상력이 어디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연예인의 가십과 실제 어떤 사건들이 겹쳐졌다. 분명히 글의 시작에 앞서 실존하는 특정인물, 단체, 사건들과 연관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왜 머릿속은 그렇고 그런 가십들과 하나가 되는지, 그 혼란과 당혹감을 스스로 저울질해야했다. 수시로 현실과 허구 속 이야기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아니, 혹시나 이미 있던 어떤 사실을 살짝 짜깁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라디오PD-라디오PD답게 풍부한 음악이야기도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로써 연예계의 생리를 더욱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그의 이력이 도드라지면서 우려보다는 생생하고 풍성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어느 연예인, 연예계의 가십성 이야기가 아니라 스릴러로 변모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사건과 그 사이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음모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호기심이 일면서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에 비례하여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우주라는 인물에 동화되어 그의 시선으로 연희를, 대웅을 소원을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완벽한 반전에 그간의 불안과 두려움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머릿속은 환상적인 불꽃놀이의 환희로 가득 찼다. 비로소 샤갈의 표지 그림-도시 위에서-이 이해가 되었다. 아내 벨라와의 신혼의 달콤함과 행복함을 오롯이 표현한 그림과 주인공들의 미래가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의 애증과 오해, 원한을 훌훌 털어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행복으로 물든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역시 행복해졌다.

 

<압구정 소년들> 속 ‘사랑’이란 테마 외에도 또 다른 이야기가 자꾸만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물론 대부분은 같은 시간적 공간에 지난 유년시절을 떠올리게도 하였지만 물리적 공간의 한계로 때론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 방학이면 도시의 친적집에 다녀온 친구들의 기상천외(?)한 경험에 부러움과 시기어린 질투를 보냈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풋풋’거렸다. 그 친구들은 어디서 어찌 사는지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내 곁에 함께해주는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이 새삼 소중해졌다.

30대 중반의 현재와 고등학교 ‘압구정 소년들’의 시간들이 교차되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반자전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솔직함으로 무장한 듯이 더욱 생생하고 진짜 우리들 이야기처럼 비춰졌다. 이야기에 매몰차게 빠져든 것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하나의 사건을 매개로 얽힌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함 때문일 것이다. 잘 짜인 탄탄한 이야기는 기막힌 반전을 다시 읽고 되새기며 소설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연예인의 가십과 자전적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빠른 전개와 어느 순간 완벽한 스릴러 미스터리로의 장르 변화가 절묘하여 더욱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영상으로 만나보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자꾸만 진짜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마음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현실 그대로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동안의 잔혹한 이미지를 떨쳐낼 것 같다. 매서운 눈빛의 대웅이 품었던 사랑과 연정에 애틋해지고, 연희와 상민, 우주와 소원의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노라면 무척이나 헛헛했던 마음 속이 따뜻해진다. 소설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사랑에 완성이 있냐고 작가는 되묻고 있다. 잠시, 사랑의 완성을 꿈꾸는 우리에게, 때론 사랑을 완성한 것처럼 착각하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며 되묻고 있지만, 그럼에도 밝은 미소의 그네들의 모습을 그리노라면, 환상에 젖는 줄 알면서도 그로 인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어 오히려 즐거웠다. 아니, 철저하게 사랑이란 이름의 잔혹함을 잊고 이야기에 푹 빠져 마음속은 사랑과 행복으로 물들었다. 작가의 마지막 당부처럼 마음껏 사랑하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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