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소문이 어마어마했던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 드디어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작년부터 이미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와 함께 끊임없이 경합을 벌인 뒤 끝내 나오키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2011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1 서점대상> 7위, 또 그 밖에 뭔 상들을 휩쓸었더라. 어쨌든 명실공히 일본에서는 작년 최고의 화제작이 아니었나 싶다.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 이름의 네임밸류도 충분히 책의 기대치를 높이기에 충분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문만 무성하게 들었지 정작 그의 작품은 온갖 밀신의 향연이 소개된 단편집 <도깨비불의 집>만 읽어봤으니 이건 뭐..;; 어쨌든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말이다.

 

 

교전. 교전,이라는 말에 실은 교전(交戰)을 뜻하는 줄 알고 '악의 교전? 악(惡)이 얼마나 피터지게 싸우길래',하고 피식 웃었더랬다. 역시 대세는 선 대 악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결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실은 교전(敎典)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제목에 맞게 '배움'의 장소 학교를 무대로, 미리 고백하건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이코패스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몰려오는 감정은, 전율, 그리고 분노였다ㅡ.

 

 

 

학교라는 장소는 어떻든 많은 의미와 상징이 있다. 진학 그리고 삶을 위한 준비ㅡ그것은 '학업'이라는 측면에서도,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악의로 가득찬 의도적인 괴롭힘도, '집단'이라는 특성에 녹아들지 못해 따돌림도 있다. 학생들 간의 이성교제 뿐 아니라 학생과 선생님의 은밀한 밀회도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동성연애라는 형태까지도.

선생님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려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학급을 이끌고 다양한 소재로 멋진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한 채 이야기를 듣던지 말던지, 그저 자기 혼자만의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있다. 관료 사회라는 것의 특성상, 정치적인 알력 싸움도 만만찮다. 선생님들과 학생 간의 신뢰관계를 통한 정보나 교사들이 모이는 곳에서의 대화는, '학교'라는 자그마한 공동체 집단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정치적인 논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 이상한 선생님이 한 명 있다. 학교라는 사회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선생님이다.

언제나 입가에는 '모리타트'의 선율을 흥얼거리는 그는, 그만의 교전(敎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ㅡ.

 





어라,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한 순간, 유능해 학생들과 교사 모두가 의지하는 하스미 선생님은, 완벽하게 돌변한다. 1권까지의 내용은, 유능한 교사로만 보였던 하스미 선생님의 본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불법적인 행동도 교묘한 방법으로 행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하스미 선생님이 낯선 세 학생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기도 한다. 덕분에 나름대로, 하스미를 경계하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며 그들의 대립으로 이어지는걸까, 하고 예상해봤지만 그것은 처참하게 빗나가고 만다. 2권이 시작되면서, 하스미는 학교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하나 둘 제거하기 시작하고, 나중이 되어서는 '나뭇잎을 숨기기 위해 숲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몰입력이 어마어마해,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한 마디로 헉,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작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음에도, 많은 이들이 호오가 분명하게 갈린 것은, 분명 너무나도 무자비한 하스미의 행태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실은, 너무나도 불편한 것이다.

유능하고 잘생긴 선생님에게, 무조건적인 신뢰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을 저버리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생명의 불꽃을 가차없이 꺼뜨리고 마는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기시 유스케는 '난 이런 사이코패스를 만들었는데, 어때?'라는 질문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사이코패스의 미친 행각을 그려내면서 기시 유스케는 오히려 재미가 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정도 냉정을 유지한 채 냉정하고 교활하며 치밀하게 자신의 왕국을 교전에 따라 정복해 나가는 하스미의 모습은, 어느순간부터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 그 정도로 1권과 2권의 하스미의 모습은 극과 극을 달린다. 2권의 잔혹함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이 확연이 갈릴 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이야기는 책을 읽고 난 뒤 시간이 지나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다. 실은, 막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에는 이런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로지 분노와 전율, 그리고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재밌다고 재밌다고, 어머니에게 읽어보라고 권해드렸더니 다 읽고나서 하시는 소리가, '이런 것만 읽다가 어떡하려고 그러냐'는 타박까지 들었다. 아아, 책장이 온통 'ㅇㅇ살인사건'으로 채워진 이들의 고충을 이제서야 느꼈다고나 할까.... 평소 미스터리 스릴러를 함께 즐겨 읽으시는 어머니가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실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불편한 소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불편함을 넘어선 '재미'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꼭 사이코패스만이,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에는, 그 밖에도 아이들의 행동과, 언제나 사회의 일면을 담아내고 있는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의 모습에 공감도 했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악(惡).

언젠가부터 학교는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장소에서 어딘지 불안하고 위태로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집단 따돌림, 등교 거부, 선생님의 체벌을 넘어선 교사에 대한 학생의 폭력 등.

기시 유스케는 그러한 학교의 모습을 담아낸 동시에, 그 곳에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 명의 '모리타트(살인귀)'를 등장시킴으로써 그 곳을 더 공포스러운 '악의 장소'로 만들어내고 말았다.

 

 

 

전율, 그리고 분노. 아마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따라다니는 감정은 바로 이것이리라. 매우 불편하지만, 아주 재미있다. 2011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는, 바로 이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