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들의 저택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서술 트릭이란, 특정한 서술 기법을 이용해 그야말로 '서술'로서 독자를 속이는 미스터리의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서술자의 정체를 감춰둔 채 이야기가 끝나감에 따라 그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뒤통수를 아주 후려치는(;;) 기법으로, 때에 따라선 작가의 힌트나 암시 등에서 불공정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 시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로 알고 있는데, 당시 그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도 독자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속이다니! 하고 항의 편지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소설 전체를 범인을 감춰두는 형태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야 하기에, 미리 알고 나면 한없이 그 재미가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분명 알고도 속는 경우도 있겠으나, 벌써 의도치 않게 '서술 트릭'을 사용한 작품이라고 작품들을 모아둔 것을 보면서 의도하지 못한 스포일러에 당황하고 소설 한 편 잃었다는 생각에 가끔 분노하기도 한다(그래도 속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서술 트릭은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음'이 노출되면 상당히 타격이 갈 수 밖에 없는 기법인지라 서술 트릭이다, 라고 말을 한 이상 읽기가 상당히 힘이 들게되는 작품이 있는데, 독특하게도 오리하라 이치는 '서술 트릭'을 이용한 전개로 상당히 유명한 듯하다.
서술 트릭인 것을 안 이상,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하고 의문이 솟아오른다. 그러면 재미가 없을텐데, 홍보 단계에서 이미 서술 트릭임을 공공연하게 밝혀두고 있다는 것은 '알고도 속는다!'라는 자신감 때문이리라. 그렇게 '서술 트릭의 대가'로서 작가가 정착을 했다는 것은 서술 트릭도 처음과는 달리 갈수록 발전해 알면서도 독자를 속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서술 트릭이 충만할 '도착 시리즈', '--者' 시리즈 등을 알고도 '아니 안 속을텐데 뭘?' 하고 미뤄두다가, 드디어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한 편을 만나게 되었다.
 

 

'숲 속에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소문이 있는 후지산 기슭에서 신분을 알 수 없는 백골과 나뭇가지로 만든 'HELP'라는 문자가 발견된다. 근처 동굴에서 발견한 신분증으로부터 경찰은 반년 전 실종된 청년 고마쓰바라 준의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을 리 없다고 믿고 여전히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아들을 위해, 아들의 일생을 책으로 엮으려 한다. 그렇게 그녀에게 고용된 시마자키 준이치는, 순수문학과 미스터리 두 분야에서 모두 신인을 받았으나 '유령 작가'로 생계를 잇고 있는 작가로, 고마쓰바라 저택을 매일 방문해 준의 일생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사하면 할 수록, 어린 나이에 아동문학상을 받은 경력과 '천재 작가'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준의 모습에서 일체감을 느낀 준이치는 그의 삶에 매료되어 그의 일생을 완전하게 엮어내리라 결심하고, 준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때 부터 그의 주변에서는 수상한 그림자가 맴돌기 시작한다. 그림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준의 일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미 서술트릭을 사용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구성적 측면에서도 서술 트릭이 사용되리라는 것이 딱 느껴진다.
독자로 하여금 여기서 속아라! 하고 떡밥을 마구마구 던져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았으니 서술 트릭은 아무것도 아니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알면서도 속을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오리하라 이치의 서술트릭이었다.
 
책의 서술은 크게 두 가지 시점으로 진행된다. 준의 일생을 취재하고 다니는 시마자키 준이치의 시점과, 동굴에 갇혀 누군가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의 시점.
아마 이 '모놀로그'가 서술 트릭의 장치다. 분명 이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보면 아니겠지,라는 생각은 분명히 들지만서도, 그러면 그건 누군가? 라는 의문이 해소되질 않는다.

결국, 작가의 의도는 알아차렸으나 끝까지 두고볼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런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트릭이 불러일으키는 '속았다!'라는 쾌감보다는 오히려 이 <이인들의 저택> 그 근간이 되고 있는 스토리 그 자체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오리하라 이치는 홋카이도의 산속에서 SOS라고 나뭇가지로 쓴 글자가 발견된 적이 있다는데, 그 글자를 만든 사람과 근처에 있는 백골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수수께끼와 유치원생이 성인 응모자를 제치고 SF 동화대상을 받은 뒤, 그 애가 어른이 되어도 천재로 남아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착안한 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두 가지의 에피소드를 '어린 천재 작가 지망생의 실종'과 그 삶의 추적이라는 형태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천재는 어쩌다 산 속에서 SOS를 청하게 되었는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러한 고마바쓰라 준의 일생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울 뿐더러, 그를 쫓고 있는 시마자키 준이치의 주변에는 낯선 인물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다.
 

준의 어머니 다에코가 흥얼거리는 동요, 그 동요를 따르듯 준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이인' 그리고 이인들이 살고 있었던 저택을 배경으로 그의 과거를 조사하는 시마자키 준이치의 작업이 시작된 시점에서 미리 차곡차곡 흩어두었던 퍼즐 조각들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서 딱 맞추어 떨어진다. 더불어 책 전반에 감돌고 있던 묘한 분위기 속에서 트릭을 포함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이다.
 

 

현실과 인터뷰, 그리고 과거를 되짚어보는 작업의 형태로 소설의 전반을 이루고 있는 형태는, 그렇게 '미스터리'로 그려짐으로써 훨씬 더 재미가 있어진 게 아닐까 싶다.
 

천재의 삶,이라는 재료를 트릭이라는 방식으로 요리해냈다고나 할까. 맛있는 요리는, 방법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재료가 중요한 것 같다. 덕분에 맛있게 읽었던 소설, <이인들의 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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