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매장 입장 대기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본 영화 <애프터썬>은 나의 영화 감상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이 영화에 모두(특히 영화관련자들)가 열광하는 거지? 극장을 나와서 백화점까지 걸어가면서 유난히 긴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들고 온 영화 팸플렛을 계속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디올 쇼핑백 하나, 샤넬 쇼핑백 하나를 든 내 손은 오랜만에 사치를 했기에 매우 신이 나 있었다. 거기다 난 요즘 온앤오프 노래(황현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kpop을 책으로 먼저 접하고 ㅋㅋㅋㅋ)를 주야장천 듣고 있는 중이라서 우울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귀갓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이 영화 <애프터썬>때문에!!! 집에 와서 신나게 혼자 언박싱하면서도 <애프터썬>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즐거운 음악 감상에 모든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요즘은 팟캐스트를 거의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필름클럽>도 꽤 밀려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봤더니 마침 <애프터썬>이 있었다. 이걸 듣다가 잠들었고,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마저 듣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왜 이 영화에 아무 감흥이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 나에게 소피의 아빠인 캘럼은 한 인간이기보다는 소피의 아빠였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빡쳐 있었다. 딸과 같이 있는 호텔방 화장실에서 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자해(내 눈을 의심케 한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듯이 피가 흘러내리던 장면, 하지만 워낙 어두운 장면이어서 피는 붉지 않고 그거 검은 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표현, 물론 이것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른이 된 소피의 추론이니까...아빠가 자해를 했을 거라고 상상하는 딸의 심정이라니 시발...)를 했을 때부터였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이 너무 많은 영화였고, 딸과 함께 여행 온 아빠라는 사람이 계속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이 나는 정말 불쾌했다. 이 여행에서 저 사람이 자살해 버리면 저 딸은 뭐가 되나? 시발 부모라는 새끼가.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봤기에 김혜리 기자가 해설하는 '한 존재로서의 우울감' 같은 거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존재로서의 우울감이 당연한 거라면 왜 태어나야 하는 겁니까? 왜 탄생을 당연시 하나요??
왜 자식이 부모의 사리를 헤아려줘야 하나?
왜 시발 이런 걸 강조하나?
그래서 뭐, 이제 그 부모의 나이가 된 어른 소피가 이제야 터키(튀르키예.. ㅜ 스타이로폼처럼 죽을 때까지 적응 안 될 거 같은데 ㅠㅠㅠㅠ) 여행에서의 아빠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어쩌고 저쩌고. 11살 소피가 받은 상처는 어쩔 건데? 이거 그냥 연좌제로 소피도 소피의 아이에게 그대로 상처주면 되나?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 주고, 그 자식은 다시 부모가 되어서 또 자식에게 상처 주고, 그런 식으로 너도 부모가 되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해버리면 되는 건가?
피해자가 가해자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거 정말 질린다. 싫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부모가 되기 때문에, 영화 관련자들도 대부분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공범 의식에 의해서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정말 많이 든다.
이 영화의 중간쯤에 고작 11살인 소피가 침대에 드러누워서 천장을 보며 아빠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11살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최소 고등학생, 일반적으로는 대학생 때 느낄 수 있는 멜랑콜리인데, 그걸 11살 소피가 말했을 때 나는 기겁했다. 아 시발. 이 소피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인가. 애 어른이 되어버린, 너무 철들어버린. 어른의 처지를 보듬는 철은 아이 진짜 싫다. (난 아직 영화 <가버나움>을 보지 않았다. 절대 안 볼 거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실제로 소피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비키니 상의를 브래지어(?)처럼 입고(내가 보기엔) 저녁 나들이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소피에게 묻고 싶다. 너는 너의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부모가 되어 있니? 네 아빠의 상처를 이해하지 말고 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부모가 되었으면 해. 하지만 네가 네 아빠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너 역시 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로 살고 있다는 거겠지...
1월에 소비단식한다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유일하게 구매한 것은 책 <떨림과 울림>(이것도 현금이나 카드 결제가 아닌 문화상품권 포인트였다. 남동생은 문화상품권이 생기면 늘 나에게 상품권깡을 한다.)이었다. 그래 양자역학도 좋고, 떨림도 좋지. 하지만 나는 존재로서의 불안과 불쾌를 전가할 타 존재(자식 또는 반려동물)가 없어서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결심은 결심이라서 1월은 어찌 버텼고, 2월이 되자마자 나는 신나게 디올과 샤넬로 달려가서 존재의 불안을 사치로 해결하고 왔다.
사실 나는 이 영화의 캘럼처럼 극단적인 우울감을 느껴본 적은 없다. 내 감정에는 우울보다는 빡침이 9할 이상이라서. 내 생각에 우울은 내 탓이오 하는 자들의 자기 파괴이고, 빡침(분노, 적개)는 남 탓이다 하는 자들의 자기 파괴다. 나의 경우 나는 제대로이고, 내 주변의 바보들과 별생각 없이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울할 새가 없기도 하다. 다만 분노할 뿐! 그래서 나는 기분이 다운일 때, 나를 반짝거리게 해 줄 주얼리를 산다. 나는 가방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주얼리. 특히 반지. 내 신체에 착용된 것 중에서 내 눈에 제일 잘 보이는 것이 반지이기 때문. 내가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코코크러쉬 같은 거 레이어드 해서 끼고 있으면 된다. 그 순간 내가 제니다! 로즈드방 끼고 있으면 내가 연아다! 자식을 낳는 것도 사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사치다. 오히려 샤넬이나 디올이 더 검소하지. 중고로 팔 수도 있는데.
우울감이 느껴지는 순간에 외모를 꾸며야 한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출근하기 싫으면 자동차라도 번쩍번쩍하게 해두라는 것이다. 깨끗한 자동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출퇴근 기분이 좋아질 수 있기 때문. 출근하기 싫은데 차까지 더러우면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내 차는 항상 깨끗하다. <태엽감는 새>의 시나몬의 메르세데스 벤츠처럼(덧, tmi지만 내 차도 벤츠다. 그래서 난 늘 시나몬을 떠올린다. 포르쉐를 타는 훌륭한 40대가 되는 꿈이 있지만, 아마도 실현 못할 듯. 벤츠를 타는 훌륭한 30대라도 실현한 걸로 만족해 하는 중 ㅜ)
수수하고 소박한 자기 자신만으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있다면 부처처럼 해탈한 자겠지. 나는 더 심각한 게 정신적 사치와 물리적 사치를 둘 다 즐긴다는 게 문제면 문제다. 영화 <이마 베프> (2월 1일 리마스터링 재개봉)는 반드시 극장 가서 봐야 하고, 그 와중에 디올 신상 주얼리가 나오면 매장 가서 착용해봐야 한다. 신세계백화점과 영화의전당이 바로 옆 건물이라는 점!!!!!!!!!!!!!!!! 신세계백화점에 하루종일 주차해두고 두 건물 사이를 왔다갔다 하곤 한다.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다. 그게 영화든, 책이든, 자동차든, 전자제품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샤넬이나 디올이든.. 뭐든 간에 인간이 만든 아름다운 것이 좋다. 아니면 아름다운 인간이거나. 이번 디올 옴므 크루즈 시즌 모델이 로버트 패틴슨인 거 아는가? 나는 그의 영상을 수백 번 봤다.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영화(<하이 라이프>와 <코스모폴리스> 특히 코스모폴리스에서 엄청 멋지다.)들보다 더 많이 봤다. 아무튼 아름다운 것이 좋다.
나에게 <애프터썬>은 나약한 어른의 자기변명 같은 영화다. 물론 영화적으로 아름답다. 기분 좋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고, 터키의 바다는 아름답고, 소피는 천진해서 귀엽지만 ㅜ 그래도 주제가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