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왔다. 코로나 첫 해에 도서관에 간 이후 가지 않았던 거 같은데. 늘 그렇듯 이런저런 책 관련 서재나 블로그를 보다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 꽂혀서 지금 당장 이걸 읽어야겠다 싶어서 인근 도서관 사이트에 가서 자료 검색을 해보니 대출가능이었다. 간 걸음에 겸사겸사 미리 보기 하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싶은 책들도 잔뜩 빌려 왔다. 우에노 지즈코 책도 3권을 빌려왔다. 그중 한 권인 문제의 책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을 읽다가 매우 심란해져서 책을 덮고 이 심란함을 중간 정산해야겠다 싶어서 이 일기를 쓴다.


우에노 지즈코는 1인 가구로 잘 살아가려면 친구가 많아야 한다고 계속 언급한다. 이 책의 모든 것이다. 사람 부자가 되어라! 고립되어 있지 말아라는 것이다. 


늘 함께해 기분이 좋은 상대, 자주 만나고 싶은 상대, 가끔 만나고 싶은 상대, 어쩌다 만나고 싶은 상대,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으면 하는 상대, 내가 도와주고 싶은 상대, 마음이 가는 상대, 내가 마음을 써주는 상대...... 이렇듯 다양한 상대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면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가. 이를 안전망이라고 한다.


내면의 공유 같은 것 없어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그냥 아는 사이, 하루하루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냥 아는 사이란 '관계가 덤덤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도록 관계가 지속되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다'는 뜻으로 하나이 씨가 쓰는 용어로, '깊은 사이는 아니지만 덤덤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를 뜻하는 말이다. 


"한 명의 절친한 친구보다 그냥 아는 사이인 열 명의 친구가 낫죠."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 우에노 지즈코> 


나는 살면서 이런 건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조금은 잘 아는 친구 두 세명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미드<프렌즈>를 봐도 와...6명이 저렇게 어울릴 수 있다고 오...스트레스...하고 마는...


혼자 있는 게 좋아서 혼자 있는 건데 이런 나에게 고립은 실패다, 사람부자가 찐부자다라고 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혼란 그 자체다. 


거처란 요컨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자기만의 공간이다.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 우에노 지즈코> 

위의 저 말은 200% 이해한다. 


그나저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읽을 때도, 이 책을 읽을 때도 드는 생각은, 

내가 60살이 될 수 있을까? 난 그전에 죽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다. 

사실 나는 나에겐 노후가 없다고 생각해서 좀 홀가분하게 지내는 편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니가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을 거 같아? 100세대야 인마! 정신 차리고 준비해!!"라고 호통을 친다.)


나와 하등 상관이 없는 육아서를 읽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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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2-19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살면 혼자서도 잘 사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되는데 혼자 살면서도 혼자서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설명하려니 육아서가 된 게 아닐까 싶네요.

먼데이 2023-02-20 13:23   좋아요 0 | URL
집에서 혼자 죽고 싶어서 읽게 된 책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의 곁다리로 빌린 책인데, 내 기대와는 달랐어요. 전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 주인공을 너무나 동경했거든요. 혼자 쓸쓸히 죽는 것조차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혼자 살아가려면 거리유지를 충분히 한 친구들이 많아야 된다고 하니 아직도 혼란 그 자체예요.

2023-03-0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1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필름클럽>175회 김혜리 기자의 "이 영화를 보고 안 울면 로봇입니다."라는 말에 이끌려서 <아이언 자이언트>를 봤는데 나는 로봇이었다. 그냥 마지막 장면을 보고는 복선이 훌륭한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엔딩 크레딧 계속 보기를 클릭하고 멍하니 '왜 나는 슬프지가 않나...'를 곱씹었을 뿐. 나도 <빅 히어로>를 보고 엉엉 울었던 사람인데... 아직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슬픈데ㅜㅜㅜ 


이어서 본 영화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늘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보진 않고 미뤄뒀었는데 어제는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에 홀려서 봤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영화는 최근까지도 <여름의 조각들>이 전부였다. <여름의 조각들>은 진지하게 본 것만 10번이 넘을 것이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냐 하면 식사씬(먹는 것을 싫어하는 나지만 이 영화의 식사씬 무려 가족 식사씬이 너무 좋았다)과 부모의 유산을 서로 물려받으려고 품위 있게 싸우는 것도 좋았다. 얼마 전에 재개봉한 <이마 베프>를 봤는데 와우, 이 영화에서도 식사씬이 너무 좋은 거다. 나는 질 좋은 나무 식탁에 와인잔과 가정식이 놓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또박또박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 좋다. 비슷한 이유로 <다가오는 것들>에서 마당 식사씬과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의 풀밭 식사씬(이건 정말 최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릭 로메르 영화!!!!!!!!!!!>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영화 <클라우스 오브 실스마리아>는 두 주인공의 대화와 식사가 영화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스위스의 절경. 슬펐다면 이 영화가 좀 더 슬펐다. 발렌틴 때문에...


필름클럽 175회에서 "갭이어,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김혜리 기자는 "일주일에 이틀은 드로잉을 하고 이틀은 피아노를 연습하고 사흘은 일기를 쓰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한 달에는 신변정리, 하드디스크, 편지, 유언장, 언제 어떤 일을 당해도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두고 싶어요."라고 했다.


사.흘.은.일.기.를.쓰.겠.어.요.

이 말이 얼마나 좋던지.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마땅한 대화상대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보면서도 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라는 말을 엄청 많이 들었고, 나는 이제 대화 자체를 포기했다. 하다 못해 만인의 슬램덩크라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걸 말하면 사람들은 처음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 친구가 나에게 소년챔프에서 찢어낸 페이지를 건네주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기억력이 좋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날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들은 1학년 책도 기억한다. 제일 먼저 무엇을 배웠는지도 기억한다. 최초의 기억은 3살 즈음. 그때 엄마는 나를 가지고 장난을 쳤고 나는 그게 싫어서 울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따져 물었더니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했지만, 그렇다 나는 기억을 잘한다. 어린 시절 앨범 속 사진을 보면 그 날의 사건들을 다 설명할 수 있다. 왜 그 옷을 입었는지, 그 사진은 왜 찍게 되었는지, 내 기분은 어땠는지. 그걸 말하면 엄마는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하지만, 그게 내 불행의 시작인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애니까 함부로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자신 위주로 양육을 했을 건데, 자식인 나는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태어난 건지, 왜 죽을 때까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나는 쓰레기를 자꾸 만들어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이 마음과 기분을 일기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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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레네트와 미라벨... 이 영화 정말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영화죠. 로메르 영화답습니다. 로메르의 내 연자친구의 남자친구는 더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로메르 좋아하신다면 강추합니다.

먼데이 2023-02-13 14:13   좋아요 1 | URL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는 십여 년 전에 에릭 로메르 특별전에서 본 이후로 본 적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레네트와 미라벨도 극장에서 본 건 1번이고, 운 좋게(?) 파일을 구하게 돼서 여러 번 봤어요. 전 <보름달이 뜨는 밤>도 좋아하는데 이건 극장에서 2번 본 이후로는 볼 기회가 없더라고요.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이름조차 없어져 버린 전혀 다른 별에서

잃어버린 를 찾아 긴 여행을 온 기분

반응한 건 머리 아닌 마음이야

내가 먼저 알아봐 다행이야

는 나여야 해

날 사랑하게 될 거야

나의 전부가 돼 버렸으니까

<사랑하게 될 거야 / 온앤오프 / 황현>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너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온앤오프의 <사랑하게 될 거야>로 만들어졌다.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 황현>


그러니까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나한테 이러지 않았을거면서! 내가, 나라서 다들 나한테 이런다고.

영화 <미스 홍당무>


볼드체 는 원래 노래 가사에서는 너인데 내가 나로 고친 것이다.

최근 황현의 책을 읽고 이 노래를 알게 되었다. 나는 kpop 마저도 책으로 먼저 읽은 후 듣는 사람...


이 노래를 가만히 집중해서 듣고 있으면 

내가 나를 찾기 위해서 태어난 건가?

하는 생각이 아주 아주 많이 든다.


매일매일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 강화되는 느낌이다.

나 자신으로 완성된다는 기분이랄까.


영화 <미스 홍당무>에서 미숙의 대사를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나를 사랑해줬을 거면서."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내가 내가 아닌데 그걸 나라고 할 수 있나?

내가 내가 아닌데 내가 아닌 내가 사랑을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의 구남친 중 한 명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니가 사랑하는 건 너 자신 밖에 없어. 그다음이 영화랑 책이고,

너처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남이랑 잘 지낼 수가 없어."

라고 했지만 난 이 친구를 5년 넘게 만났다.

말은 안 통해도 몸이 좋았기 때문.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 역시도 나의 만랩급인 자기애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내가 내 기분만 생각을 한다고.

근데 내가 봤을 땐 애인은 너무 부족하다.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나마 괜찮은 놈을 골라도 시시하긴 매한가지.

이것을 나는 이성애의 비극이라고 명명한다.

지금 애인도 점점 말은 통하지 않게 되는 중인데 일단 여전히 눈이 즐겁다.


어차피 내가 남자에게서 바라는 게 대화는 아니므로.


그리고 요즘 내가 죽기 전에 느끼고 싶은 감정은

운명적 사랑, 인류애, 존중, 공감 뭐 그런 게 아니라

극한의 고독감, 고립감, 쓸쓸함. 

온 우주에 공간과 나 자신만 존재한다는 고요하고 평온한 기분.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내가 나를 만나기 위해 태어나 이 개고생이구나

그래도 나를 찾고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어서 다행이야

하는 생각을 하고 싶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던데

그 사랑은 자기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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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복사되어 반복되는 듯하다.


고된 일과를 마친 뒤 현관물을 밀고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소파에 앉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내외. 늘 같은 자리에 가방을 놓고, 적당히 씻고, 멍하니 TV를 바라본다. 오른손에 쥔 휴대전화에서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의 영상이 재생되고, 왼손에는 어제도 마셨던 맥주 캔이 들려 있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저께도 그랬다.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 황현>


이 책의 미덕은 성공한 kpop 작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1에서 100까지 전부 다를 테지만, 늘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는 점이 같다. 


그해 연말은 무척 특별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온앤오프 데뷔 이후 4년뿐 아니라, 지난 10여년간 내게는 늘 '해야 할 일'투성이였다. 그래서 '주7일' 출근했고, 해외여행을 갈 때도 휴대할 수 있는 음악 장비를 꼭 챙겼다. 내 삶에 휴식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쉼 없이 살았는데 갑자기 할 일이 사라져버리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 기회에 좀 쉬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집에 틀어박혀 약간의 집안일 외에는 그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딱 이틀을 보냈다. 하루는 살 만했다. 그래, 이렇게 쉬어줘야 제대로 사는 거지. 그런데 이틀째 아침이 되자마다 우울감이 가슴속에서부터 밀려왔다.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 황현>


나의 경우는 3주였다. 3주를 쉬자 어떤 무기력이 엄습해 왔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었다. 늦잠을 자도 되지만 늦잠을 자게 되면 밤에도 늦게 자게 되기에. 밤에 깨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쉬는데 건강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사실 휴양에도 규칙적인 생활은 필수인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아침에는 어떻게든 일어나서 씻고 외모를 꾸미고 으쌰 하면서 외출할 수 있는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먹고 파자마 차림으로 정오까지 늘어져 있다가 오후에 머리 감고 외출하는 것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것이다. 12시가 지나면 이미 내 마음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일출 후에는 마감. 


7시 전에 일어나서 머리 감고, 아침밥 먹고, 화장하고, 옷 차려입고, 태양이 지면을 데우기 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동차 시동을 켜고 운전을 하는 것. 나는 이것을 오직 아침에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밤새 내린 새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은 설레는 기분과 같은 것. 오전 11시 또는 오후 3시에 하는 것에는 살아있다, 깨어난다는 느낌을 좀처럼 느낄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남이 더럽혀 놓은 탕에 들어가서 몸을 데우는 것 같은 찝찝함.



어차피 7시 전에 일어나서 새 공기를 마시는 것 행위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라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냥 출근이나 계속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비단식도 해봤으나 나는 예쁜 것으로 내 몸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고 그걸 하지 못하는 것 역시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딱히 들지 않아서 소비단식도 끝내고 몸에 걸칠 것을 사러 백화점으로 달려갔던 것.



며칠 전 남동생과 톡으로 서울의 집값 얘기를 하면서 

나: 넌 그렇게 꼭 서울이라는 사치를 해야겠니? 난 시골(특히 서울 사람들이 서울이 아닌 타시도를 시골이라고 하는 게 웃겨서 남동생과 얘기할 때 비아냥의 너낌으로 쓴다) 사니까 속 편하고 좋은데. 내가 제일 잘 사는 너낌도 들고.

남동생: 제일 잘 사는 너낌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가장 돈 잘 쓰는 사람이 맞음ㅋㅋ 근데 집도 있고 차도 벤츠 ㅋㅋ

나: 그럼 난 돈을 어디에 써야 해? 저금만 할 순 없잖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남동생: 그건 그렇지. 포르쉐 사기에도 애매하고.

나: 포르쉐 ㅜㅜ 


나는 돈을 잘 버는 직업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다. 그저 4인 가족 정도는 부양할 수 있는 정도인데 1인 가구일 뿐인 것. 포르쉐를 사기에는 뭔가 많이 애매한 정도. 나도 어렸을 때는 명품이 사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냥 남는 돈으로 사게 되더라. 20대 때는 제이에스티나 사던 걸, 지금은 디올이나 샤넬을 살 뿐인 것. 지금도 가끔은 내가 첫 월급, 두 번째 월급, 세 번째 월급을 받을 때마다 백화점에 달려 가서 사던 제이에스티나를 착용하기도 한다. 


그걸 착용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특히 많이 하는 생각은 애송이였던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홀로 잘도 해냈구나 하는 생각. 아니, 혼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편, 세월이 무상하다.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기에 내가 태어나서 이 고생인가 싶다. 내가 왜 고생이라고 하냐면 누구에게나 일은 고생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성공한 음악가 황현마저도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 고생을 하지 않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좋지 많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알만한 나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육체를 꾸민다. 딱히 할 일이 없으므로 출근을 한다. 번식에 흥미가 없어서 부양가족은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생활비를 쓰고 나면 돈이 남는다. 재산을 불리는 것에도 흥미가 없어서 비상금을 제외한 돈은 명품 주얼리 등을 사는 데 쓴다. 이젠 백만 원이 넘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에도 무감하다. 가끔은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태어난 이상엔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든 신분제든 뭐든 간에. 자본주의가 사라져도 먹고살려면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타인의 노동에 무임승차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애초에 경제적 자유라는 게 말이 되나? 아니러니 하게도 돈에 제일 관심 없는 내가 제일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것 같은데. 


이 세상은 자녀를 낳아 키우는 사람,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그 재능을 갈고닦는 사람, 명예욕이 있는 사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고, 어렵지만 재미있는 곳일 테지만 나처럼 앞에 열거한 것에 그 무엇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에겐 쉽고 시시한 곳이다. 솔직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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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2-07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능력도 안 되는데 번식을 한 것 같아요. ^^;;

먼데이 2023-02-07 21:47   좋아요 0 | URL
저는 능력이 되지 않아서 번식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어요. 좋은 부모가 되려면 나를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하는데 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태어난 것이 싫은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샤넬매장 입장 대기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본 영화 <애프터썬>은 나의 영화 감상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이 영화에 모두(특히 영화관련자들)가 열광하는 거지? 극장을 나와서 백화점까지 걸어가면서 유난히 긴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들고 온 영화 팸플렛을 계속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디올 쇼핑백 하나, 샤넬 쇼핑백 하나를 든 내 손은 오랜만에 사치를 했기에 매우 신이 나 있었다. 거기다 난 요즘 온앤오프 노래(황현 <너를 빛나게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kpop을 책으로 먼저 접하고 ㅋㅋㅋㅋ)를 주야장천 듣고 있는 중이라서 우울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귀갓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이 영화 <애프터썬>때문에!!! 집에 와서 신나게 혼자 언박싱하면서도 <애프터썬>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즐거운 음악 감상에 모든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요즘은 팟캐스트를 거의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필름클럽>도 꽤 밀려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봤더니 마침 <애프터썬>이 있었다. 이걸 듣다가 잠들었고,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마저 듣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왜 이 영화에 아무 감흥이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 나에게 소피의 아빠인 캘럼은 한 인간이기보다는 소피의 아빠였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빡쳐 있었다. 딸과 같이 있는 호텔방 화장실에서 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자해(내 눈을 의심케 한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리듯이 피가 흘러내리던 장면, 하지만 워낙 어두운 장면이어서 피는 붉지 않고 그거 검은 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표현, 물론 이것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른이 된 소피의 추론이니까...아빠가 자해를 했을 거라고 상상하는 딸의 심정이라니 시발...)를 했을 때부터였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이 너무 많은 영화였고, 딸과 함께 여행 온 아빠라는 사람이 계속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이 나는 정말 불쾌했다. 이 여행에서 저 사람이 자살해 버리면 저 딸은 뭐가 되나? 시발 부모라는 새끼가.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봤기에 김혜리 기자가 해설하는 '한 존재로서의 우울감' 같은 거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존재로서의 우울감이 당연한 거라면 왜 태어나야 하는 겁니까? 왜 탄생을 당연시 하나요??


왜 자식이 부모의 사리를 헤아려줘야 하나? 

왜 시발 이런 걸 강조하나?

그래서 뭐, 이제 그 부모의 나이가 된 어른 소피가 이제야 터키(튀르키예.. ㅜ 스타이로폼처럼 죽을 때까지 적응 안 될 거 같은데 ㅠㅠㅠㅠ) 여행에서의 아빠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어쩌고 저쩌고. 11살 소피가 받은 상처는 어쩔 건데? 이거 그냥 연좌제로 소피도 소피의 아이에게 그대로 상처주면 되나?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 주고, 그 자식은 다시 부모가 되어서 또 자식에게 상처 주고, 그런 식으로 너도 부모가 되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해버리면 되는 건가?


피해자가 가해자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거 정말 질린다. 싫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부모가 되기 때문에, 영화 관련자들도 대부분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공범 의식에 의해서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정말 많이 든다.


이 영화의 중간쯤에 고작 11살인 소피가 침대에 드러누워서 천장을 보며 아빠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11살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최소 고등학생, 일반적으로는 대학생 때 느낄 수 있는 멜랑콜리인데, 그걸 11살 소피가 말했을 때 나는 기겁했다. 아 시발. 이 소피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인가. 애 어른이 되어버린, 너무 철들어버린. 어른의 처지를 보듬는 철은 아이 진짜 싫다. (난 아직 영화 <가버나움>을 보지 않았다. 절대 안 볼 거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실제로 소피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비키니 상의를 브래지어(?)처럼 입고(내가 보기엔) 저녁 나들이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소피에게 묻고 싶다. 너는 너의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부모가 되어 있니? 네 아빠의 상처를 이해하지 말고 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부모가 되었으면 해. 하지만 네가 네 아빠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너 역시 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로 살고 있다는 거겠지...


1월에 소비단식한다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유일하게 구매한 것은 책 <떨림과 울림>(이것도 현금이나 카드 결제가 아닌 문화상품권 포인트였다. 남동생은 문화상품권이 생기면 늘 나에게 상품권깡을 한다.)이었다. 그래 양자역학도 좋고, 떨림도 좋지. 하지만 나는 존재로서의 불안과 불쾌를 전가할 타 존재(자식 또는 반려동물)가 없어서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결심은 결심이라서 1월은 어찌 버텼고, 2월이 되자마자 나는 신나게 디올과 샤넬로 달려가서 존재의 불안을 사치로 해결하고 왔다.



사실 나는 이 영화의 캘럼처럼 극단적인 우울감을 느껴본 적은 없다. 내 감정에는 우울보다는 빡침이 9할 이상이라서. 내 생각에 우울은 내 탓이오 하는 자들의 자기 파괴이고, 빡침(분노, 적개)는 남 탓이다 하는 자들의 자기 파괴다. 나의 경우 나는 제대로이고, 내 주변의 바보들과 별생각 없이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울할 새가 없기도 하다. 다만 분노할 뿐! 그래서 나는 기분이 다운일 때, 나를 반짝거리게 해 줄 주얼리를 산다. 나는 가방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주얼리. 특히 반지. 내 신체에 착용된 것 중에서 내 눈에 제일 잘 보이는 것이 반지이기 때문. 내가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코코크러쉬 같은 거 레이어드 해서 끼고 있으면 된다. 그 순간 내가 제니다! 로즈드방 끼고 있으면 내가 연아다! 자식을 낳는 것도 사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사치다. 오히려 샤넬이나 디올이 더 검소하지. 중고로 팔 수도 있는데. 


우울감이 느껴지는 순간에 외모를 꾸며야 한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출근하기 싫으면 자동차라도 번쩍번쩍하게 해두라는 것이다. 깨끗한 자동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출퇴근 기분이 좋아질 수 있기 때문. 출근하기 싫은데 차까지 더러우면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내 차는 항상 깨끗하다. <태엽감는 새>의 시나몬의 메르세데스 벤츠처럼(덧, tmi지만 내 차도 벤츠다. 그래서 난 늘 시나몬을 떠올린다. 포르쉐를 타는 훌륭한 40대가 되는 꿈이 있지만, 아마도 실현 못할 듯. 벤츠를 타는 훌륭한 30대라도 실현한 걸로 만족해 하는 중 ㅜ) 


수수하고 소박한 자기 자신만으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있다면 부처처럼 해탈한 자겠지. 나는 더 심각한 게 정신적 사치와 물리적 사치를 둘 다 즐긴다는 게 문제면 문제다. 영화 <이마 베프> (2월 1일 리마스터링 재개봉)는 반드시 극장 가서 봐야 하고, 그 와중에 디올 신상 주얼리가 나오면 매장 가서 착용해봐야 한다. 신세계백화점과 영화의전당이 바로 옆 건물이라는 점!!!!!!!!!!!!!!!! 신세계백화점에 하루종일 주차해두고 두 건물 사이를 왔다갔다 하곤 한다.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다. 그게 영화든, 책이든, 자동차든, 전자제품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샤넬이나 디올이든.. 뭐든 간에 인간이 만든 아름다운 것이 좋다. 아니면 아름다운 인간이거나. 이번 디올 옴므 크루즈 시즌 모델이 로버트 패틴슨인 거 아는가? 나는 그의 영상을 수백 번 봤다.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영화(<하이 라이프>와 <코스모폴리스> 특히 코스모폴리스에서 엄청 멋지다.)들보다 더 많이 봤다. 아무튼 아름다운 것이 좋다. 


나에게 <애프터썬>은 나약한 어른의 자기변명 같은 영화다. 물론 영화적으로 아름답다. 기분 좋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고, 터키의 바다는 아름답고, 소피는 천진해서 귀엽지만 ㅜ 그래도 주제가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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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6 09: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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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6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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