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아침에 비타민> 1곡 반복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행복하다 행복하다 나는 가장 행복하다 세상에서 젤 행복하다 오늘도 난 행복하다.' 이 부분에서는 조건반사적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대학병원 교수는 "CT결과는 지난 검사와 같고, 폐도 정상이고, 다른 검사도 다 정상인데, 계속 이 수치가 나빠진다면 pet 검사라도 해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원인이 없을 수도 있고, 그냥 이대로 계속 나쁜 채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수도 있어요. 가끔 그런 사람도 있어요. 수치는 몇 백인데 그냥 살아가는 사람."
나는 "일을 쉬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제가 최대 4년 정도는 휴직을 할 수 있거든요." 라고 물었더니 의사는 "쉰 다고 해서 딱히 좋아진다라고 장담할 수 없고, 일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미세먼지는 최악이지만 봄볕은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매일 이런 햇볕이라면 행복하다고 작은 절규를 하는 노래 없이도 피부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당장이라도 장기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회복을 하더라도 아픈 몸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에. 봄옷을 구입할 수도(어차피 출근하거나 외출할 일도 없을 건데?), 머리를 다시 하기도(허리까지 오는 웨이브 스타일을 유지할지, 관리가 편한 쇄골기장의 스트레이트 스타일을 해야 할지), 나에게 주어진 예산을 쓰기도(휴직하게 되면 다음 사람이 그 사람 스타일로 쓰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주기적으로 하는 네일아트도 못하고(예전에 응급수술 때문에 입원실에서 젤네일제거했던 기억이 나서...), 마스카라가 많이 닳은 것 같았는데 새것을 개봉하지도 못했다. 1년 회원권인 필라테스는 환불이나 받을 수 있을까? 그 회원권을 결제할 때는 내 몸이 1년 내에 망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음 검사일까지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차라리 몸 상태를 모른 채로 즐겁게 살다가 어떤 통증 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말기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는 게 더 나을지도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면 찬실이가 백발의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하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들은 잘 잊는 거 같아요. 인생을 고통스럽게 한 일들을 잊지 않고서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웃을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말이 맞다. 사람은 어쨌든 내 행복과 건강에 불리한 일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싹둑 잘라내기 편집해 버리고 즐겁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오늘은 행복하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살기로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