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커피를 마셔도 밤 9시가 지나면 느닷없이 잠이 쏟아진다. 말 그대로 폭우 후의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3달 넘게  매일을 빠짐없이 홈트를 해서 체력이 좀 좋아졌다는 판단하에 다시 '듣는 행위'(음악, 팟캐스트 등)를 시작했는데, 이 탓인가. 지금도 노래를 들으면서 일기를 쓰는 중이다(며칠 전에 모건 월렌이라는 유명한 가수를 이제야 알게 된 기념으로 열공 중). 10시간 30분을 쉼 없이 자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아침 출근 노동자로 살아온 내 몸은 7시쯤에 잠시 깼지만 '일요일이지.' 하고 다시 잠들어버림.


어제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시사회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강동원, 허준호 등등 주요 배우와 감독이 무대인사를 했다. 내 자리는 무대와 가까웠다. 이 정도면 강동원 땀구멍도 보이겠는걸 ㅎ. 영화는 이거 그냥 집에서 본다면 진짜 노잼이겠다 싶었지만, 극장 특유의 몰입력과 웅장한 사운드 덕분에 왠지 모르게 시시한 장면에서도 조마조마해졌다. 하지만 주로는 빨리 영화 끝나고 강동원이나 봤으면 싶었다. 


강동원은 헉!!


라깡에 의하면 미와 추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저 학습당한 것일 뿐이라고 하는데, 강동원은 뭐랄까. 일상에서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다른 인류 같았다. 스트레이트 핏의 연청색 진과 루즈핏의 셔츠를 한쪽만 넣입으로 입었는데 셔츠 단추는 2~3개 정도 채우지 않은. 키 크고 마른, 얼굴까지 잘 생긴 남자가 저렇게 입다니!!! 내가 실사로 마주한 마지막 남자가 오늘의 강동원이게 해 주세요!!!!!!!! 연예인 사생활에 아무 관심이 없는 나는 강동원이 결혼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결혼한 적 없으시다고 ㅎ. 저 얼굴 매일 보고 살면 그냥 해븐, 천국 아닌가? 내가 되고 싶은 것은 강동원 매니저!! 완벽한 직원복지다! 


티모시 샬라메 실사에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너무 멀리서 봐서 그럴지도(2019년 BIFF <헨리 5세> 무대인사), 오래전 흠모하던 조시 하트넷 실사(2009년 BIFF,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무대 인사,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도 실사로 봄)도 그렇게까지 감동은 아니었는데, 왜 팬도 아니었던 강동원에게(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는 인간적으로 반해버렸다. 


사실 이 시사회 표는 내가 예매한 게 아니다. 내가 요즘 얼마나 정신없이 사냐면 올해 BIFF도 잊고 있었을 정도. 예매 오픈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 예매도 안(못)함. 그냥 평일 저녁에 남아 있는 거 볼 생각. 당연히 내 취향이 아닌 추석용 영화 관심도 없고, 강동원 팬도 아니기에 무대인사도 몰랐다. 지인이 예매한 건데 못 가게 됐다고, 자리가 좋아서 취소하기 아깝다면서 나더러 갈 생각 있으면 표 준다고 해서 기분 전환 삼아 간 것. 그런데 기분 전환 이상으로 심장 저격 당함. ㅠㅠㅠ


3 달마다 건강검사 당하면서, 이번에 결과 또 안 좋아서 기분별로 였는데, 죽으란 법은 없는지 '그래 살자, 살다 보면 강동원도 가까이에서 보잖아.' 하면서 나를 다독였다. 


강동원을 가까이서 보고 심장 저격을 당했을 정도로 각성되어도, 잠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서 BIFF 예매도 못하고(티켓 카탈로그 뒤적이다가) 기절하듯 쓰러져 잤다(잔 날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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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25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10-0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천박사.....(제 느낌엔 슈퍼 그랑죠) 나도 봤어요... 저는 추석 마다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를 챙겨보는 편인데.. 언제나 (비주얼이) 옳아요ㅋㅋ!!! 특히 능글맞은 캐릭터에 매우 적합함 (전우치, 검사내전 ㅋㅋ) 그는 늙어도 여전히 출중하더군요 ㅋㅋㅋ!!

먼데이 2023-10-05 08:21   좋아요 1 | URL
전 <전우치>를 CGV 센텀 스타리움관(그 당시 국내 최대 스크린이었을지도, 영화비도 더 비쌌던 듯)에서 봤는데 화면 가득 강동원 얼굴만 클로즈업되면서 강동원이 ˝나는 전우치다˝를 부산 억양으로 해 버려서, 폭소했던 기억이 ㅋㅋㅋ
강동원은 일부러 잘생긴 얼굴이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골라서 연기하는 거 같아요.

강동원 본 이후 아름다운 인류에서 벗어나질 못하여, 이번 biff 김희선 보러 가려고요.

공쟝쟝 2023-10-05 12:06   좋아요 0 | URL
biff너무 부러워 허흥 😭😭😭😭
 

<벤야멘타 하인학교> <필경사 바틀비> <야생 속으로>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를 샀다. 이 4권의 책은 내 나름의 기승전결을 염두에 두고 이번에 구입한 것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읽진 않았지만 이 책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판되었을 때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아직 읽지는 않았음) 나는 이 책의 주제를 '조용한 퇴사'로 이해하고 있다(어쩌면 아닐지도). 이런 하인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나는 항상 과락을 면하는 정도만 유지하고자 애쓰면서 지낸다. 더 잘하지 않으려 주의하고 노력한다. 더 잘할 수도 있지만, 더 유능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필경사 바틀비도> 읽지 않았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이건 뭐 그냥 다 읽은 거나 다름없지. I would prefer not to 하지 않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이거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이 말이 의미가 있으려면 소속(사회?)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변함없이 자기 자리에 머물렀다. 내 사무실의 붙박이였다. 아니, 그는 전보다 더-그것이 가능하기나 하다면-붙박이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 그런데 왜 거기에 계속 있어야 하지? 명백한 사실은 이제 그는 내게, 목걸이로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감당하기도 괴로운, 맷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나는 엿새의 시간을 주고 바틀비에게 무조건 자리를 비우라고 최대한 예를 갖춰 말했다. 그동안 다른 거처를 구할 조치를 취하라고 통고했다. 그가 사무실을 나가기 위한 첫 행동을 취하기만 하면 다른 거처를 구하는 일은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바틀비, 자네가 마침내 여기를 떠날 때 완전히 빈손으로 떠나지 않도록 해주겠네. 이 시간 이후로 엿새일세. 기억하게."

그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나는 칸막이를 뒤를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헉! 바틀비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코트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향해 나아가 그의 어깨를 건드리고 말했다. "시간이 다 되었네. 자네는 여기를 떠나야 해. 여기 돈이 있네. 미안하네만 자네는 가야 하네."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가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래야 하네."

그는 침묵을 지켰다.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회사를 언제 휴직하고 언제 그만두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나를 주제로 여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내가 한 말 "그런데 사회적 내 자리잖아. 내 거란 말이지. 내가 입사할 때 계약한 총 급여와 근무년수가 있잖아. 내가 성범죄, 공금횡령 등의 범죄를 짓지 않는 이상 그들은 나를 해고할 권리가 없어. 오히려 내가 일을 그만둬 주면 더 좋아할 거 같은데. 불복종이 취미인 나 같은 직원이 알아서 사표를 내주면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울까!!!" 그랬더니 여동생은 "그럼 계속 다녀."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바틀비스러운 고집도 <야생 속으로>와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을 읽은 후에는 '내 자리, 내 거라는 생각도 부질없다, 인생 공이다 하겠지 ㅋㅋ.' 하게 될지도.


내 안에는 바틀비뿐만 아니라 부처(비슷한 것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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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지만 벌써 9월 10일이다. 체감상으로는 8월 31일 정도인 거 같은데...


푸코의 <감시와 처벌> 2부까지 읽은 후로 책은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다. 읽지 못했나?? 영화도 보지 않았고, 일기도 쓰지 못했다. 유일하게 한 것은 홈트! 홈트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에는 동작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용하는 근육을 머릿속으로 되뇐다. 그러면 30분이, 5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 있고 어느새 쿨다운 스트레칭 타임! 내가 유일하게 해야 하는 일은 매일의 운동 말고는 없다는 가볍고 상쾌한 기분. 나의 홈트 선생님 빅씨스는 체력이 좋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힘든 운동도 끝까지 해내고 나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든다. 


SNS는 이름 그대로 사회관계망이지만 사람과의 진짜 관계를 통해 생성되는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을 분비시키지 못한다. 또한 사용자가 더 많은 시간을 플랫폼에 매여 있도록 설계된다. 스크롤을 하다가 새로운 정보가 보이면 사용자의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타인이 자신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면 마찬가지로 도파민이 분비된다. 팔로워가 늘어나면 또 도파민이 나온다. 하지만 자극이 멈추면 곧바로 따분함과 권태감이 찾아온다. 결국 마음에는 스트레스, 공허감,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의 결핍만 남는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을 자극하기도 한다. 현재의 불만족을 자극해서 소비를 부추기고 우울감을 심화시키키도 한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나는 위 문장에서 말하는 증상에 해당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다. 타인이 나를 좋아요 하든 싫어요 하든 관심 자체가 없다. 타인의 반응에 흥미도 없고, 타인의 반응이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타인이 나를 '좋아요' 한다면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도파민 분비?)가 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조성모의 가시나무 노래 가사를 들었을 때 바로 든 생각 : 내 속에 내가 많은 게 당연한 것인데 그걸 왜 미안해 해야 하나. 중이중이병 시절이 지난 지금도 난 사실 내 안이 나로 가득 찬 게 미안하지 않다.) 각자의 우주에서 각자 쉬자. 남의 우주에서 쉬지 말자!


지나치게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사람을 보면, 지팔지꼰 자업자득이란 생각 말고는 딱히 들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내 예상을 넘어 훨씬!!! 많다는 것. 


남이 나를 예쁘다고 하면 기분이 좋은가?(니가 뭔데 감히 얼평하고 지랄이야. 남 얼평 할 시간에 거울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니 얼굴의 기름이나 닦아.)

남이 업무 칭찬하면 좋은가?(니가 뭔데 내 업무능력에 훈계질이니? 니 일이나 똑바로 해.)


내가 타인의 칭찬에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게 된 이유는 내 부모가 칭찬이 인색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올 100점을 받아도, 1등을 해도 칭찬해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대신 못해도 꾸중하지 않음. 자유방임 양육법)그래서 나는 자기 칭찬에 능한 인간, 더 나아가 자기 칭찬에만 가치를 두는 인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건 결과론적 이야기고, 그냥 내 천성이 내적동기부여가 강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결혼에도 번식에도 큰 관심이 없는 것. 그들이 나를 동기부여해주지 못할 걸 아니까. 내 인생에 짐만 될 거라는 걸 아니까.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이 회사 부장인지 팀장인지한테서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고 참고 감내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면전에 대고 "왜 트집이세요?"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입사 첫해에 회사 2번에게 대들었다. 왜 트집이냐고. 그리고 더 상부 조직에 민원함. 2번이 업무 안 가르쳐 주고 일 못한다고 트집 잡아서 이 업무 못 한다. 그러니 그렇게 알아라. 해서 2번은 개망신 당함. 


왜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할까? 부당함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말만 해도 세상의 진상들 90%는 없어지게 할 수 있는데. 


부당한 일에 부당하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스템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개개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역량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타인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이 사회성이라면 나는 그냥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

지나친 사회화를 당하여 매사 책임을 다하며 살다가 자살당하느니 나는 그냥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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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너를 내쫓았단 말이냐?

-예.

-뭣 땜에?

-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자물쇠 용역 회사라는 데가 특이한 데잖아요. 자물쇠SOS라는 우리 회사는 파리 시내 어디든지 하루 24시간 아무 때고 부르면 달려가지요. 그런데, 제 동료 하나가 습격을 당한 뒤부터, 밤에 꺼림칙한 동네는 영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안 가겠다고 버텼더니 그냥 잘라버리더군요.

-잘했다. 실업자 안 되자고 몸 상하느니 차라리 실업자 되고 몸 보전하는 게 백번 나은 일이다.

<개미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초등(국민)학생 때 제일 부러웠던 친구는 결석하는 친구. 나는 단 한 번도 결석을 해 본 적이 없다. 자녀가 아파도 무조건 학교에 보내는 부모를 가진 나는 중학생 때 저 구절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에 고등학교에 오라는 학교의 연락에 아파서 못 간다고 했고, 시험 치는 날에 가서는 백지를 냈다. 이 때 내 답안지를 걷던 친구는 내 답안지가 전부 빈 칸이라서 놀랐고, 정말 무서운 아이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예체능도 아닌데, 전교에서 야자를 제일 많이 빠지는 학생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학생이 성적이 좋으면 뭘 해도 내버려둔다. 


내가 다닌 초등(국민)학교는 고학년이 저학년 교실 청소를 해 주었다. 6학년은 1학년 교실, 5학년은 2학년 교실. 5학년 때 2학년 교실 청소 당번이던 때.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고 있는데, 심부름을 온 다른 학년 동생이 "언니 2학년 선생님이 빨리 청소하러 오래." 하길래 나는 "나 지금 도시락 먹고 있으니까 다 먹고 청소하러 간다고 해." 했다. 도시락을 다 먹고 청소하러 갔더니 2학년 교실 선생님은 나에게 화를 냈다. 왜 선생님이 부르는데 바로 오지 않고 너 할 거 다 하고 늦게 오냐고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도시락 먹고 있었는데요. 그거 먹고 바로 온 건데요. 왜 점심시간에 밥 먹는 거 가지고 화내세요?"라고 하면서 대들고, 나는 청소당번 안 할 거라고, 담임 선생님한테 가서 청소 구역 바꿔달라고 할 거라면서 울면서 대들면서 내 교실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 후 나는 그 2학년 선생님을 만나도 인사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선생님은 나에게 사과했다. 밥 먹는데 불러서 미안했다고. 


부산은 10년 넘게 눈이 내리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눈이 내렸던 때는 시시한 눈이 아니라 폭설이었는데, 그날 나는 출근을 못했다. 회사에 전화해서 "폭설이 너무 심해서 못 간다"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다 출근해서 지금 눈 치우고 있는데 왜 너만 못 오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저 좀 전에 출근하려고 나왔는데 눈길에 넘어져서 엉덩방아 찧었어요. 그래서 집에 다시 왔어요. 전 못 가요." 하고 출근 못 했다. 


원래도 알고 있긴 했지만, 최근에 더더욱 실감한 것 중 하나. (한국)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혼자, 먼저 못하는구나 하는 것. 다 같이 하면 나도 얹혀서 할 수 있는데, 먼저 시작하는 것 또는 혼자 하는 것은 못한다는 것. 


나는 회의 시간에도 손 들고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블라블라." 라든가 "이건 부당하니 나는 하지 않겠다." 라든가 뭔가 비합리적인 업무에 잘 따지는 편이다. 결제란에 사인도 안 한다. 내가 사인 안 해도 더 윗사람이 사인하면 해당업무는 진행되긴 하지만. 나중에 감사 걸려서 개고생 하는 거 구경하면 잼남. 


여동생왈: 언니는 여간내기가 아니니까. 언니랑 싸워서 이기려면 언니보다 실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 회사에 그런 사람 잘 없잖아.

엄마왈: 니는 남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지. 남들은 그렇지 않다. 혼자 할 자신이 없으니까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거야. 도움 받아야 하니까. 그래서 결혼도 하는 거고. 혼자 살 자신이 없으니까.

남동생왈: 큰누나랑 논리로 말싸움해서 이길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하나? 탱크랑 소달구지가 싸우는 격인데, 급이 다른데.


내가 쉽게 복종하지 않는 이유는 천성도 그렇거니와 내가 여간내기들보다는 여간내기가 아닌 작가들의 책과 영화와 더 친하게 지내서 그런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복종하는 자들보다는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 훨씬 더 많은 까닭. 나에게 불복종은 너무나 당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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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8-27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곳의 이수인 과장이 떠오르네요.

먼데이 2023-08-28 09:16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니 웹툰 <송곳>이군요.

저는 리더쉽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 다만 아우라(기개)가 좀 있다고(이 무슨 자뻑인가 ㅠ)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반대하는 게 다른 사람 10명이 함께 반대하는 것보다 좀 파워가 있는 느낌적 느낌...

잉크냄새 2023-08-28 14:08   좋아요 1 | URL
이수인도 리더쉽이 있는 사람은 아니죠. 다만 두려움과 공포를 결국은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사람이죠.

2023-09-0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달부터 읽기 시작한 <감시와 처벌>을 이제야 절반 읽었다. 1부 신체형, 2부 처벌까지 읽음.


#1. 독후감

1부 신체형은 하드고어물 소설처럼 읽으면 된다. 1부 신체형의 내용을 요약하면 범죄는 왕의 권력에 대한 반역이자 도전이다.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한 반역자의 신체를 처벌하고 전시 공연한다. 왕은 신체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백성들에게 과시한다. 신체형은 권력 과시의 수단이므로 신체형이 잔인하고 고통스러울수록 왕의 권력이 강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에 시민들은 필요이상으로 잔인한 신체형을 실시하는 왕에 대한 반감이 생기게 되었다 정도로 요약.


2부 처벌을 읽는 것에 가장 큰 장벽은 인용문이다. 인용문이 40% 이상(더 적을 수도 있지만... 체감상 40% 정도)인데 미셸 푸코가 이 인용문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단순 고증일 뿐인지, 그 심중을 헤아리는 게 좀 어렵다. 반복해서 꼭꼭 씹어 읽어도 이게 푸코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인지, 그 시대의 법학자(법집행자)의 생각이 이러했을 뿐이라는 건지 애매함.


147~167쪽이 핵심이다.

나는 이 페이지들을 수 차례 반복해서 읽고, 밑줄 긋고, 요약하고, 타이핑하면서 '사형 왜 안 돼?? 왜 안 돼??' 하는 생각만을 곱씹었다. 이 책 <감시와 처벌>은 1975년에 출판되었고 지금은 2023년이다. 2023년 8월의 한국을 살고 있는 나는 사형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단두대도 부족하다. 우선 너클을 꼈던 그 손부터 절단해 버리자. 그리고 성기(성기라고 불러주는 것도 과하다. 걍 좆!!)도 잘라 버리고. 눈알도 뽑아 버리자. 그리고 치료도 해 주지 말자. 그냥 과다 출혈이나 패혈증으로 죽게 내버려 두자. 며칠 만에 죽는지나 알아보자. 731부대의 악랄함을 갖추고 이 놈으로 생체연구나 하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2. 본문 곱씹기: 사형 왜 안 대대대대????


범죄와의 관련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재발할 수 있는 반복성과의 관련에서 형벌을 측정해야 한다. 지나간 범행에 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있게 될 무질서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범죄자가 되풀이하여 범행을 저지를 생각을 못하게 하고, 범행을 모방하는 자가 나올 가능성을 없애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처벌은 효과를 노리는 기술이 된다. 형벌의 크기를 범행의 크기와 대조시키기보다 오히려 범죄 이후에 일어나는 두 가지 계열 관계, 즉 범죄 자체의 효과와 형벌의 효과를 맞춰 보아야 한다. (151쪽)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야말로 법의 장치를 가장 취약한 것으로 만든다.(157쪽)


형벌이 그 확실성이 결핍으로 덜 무서운 것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폭력성을 통해 형벌을 더욱 두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157쪽)


어떤 형벌에 종료 시기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형벌이 될 것이다. 즉, 형벌이 수형자에게 가하는 모든 구속은, 그가 나중에 착한 사람으로 돌아간 후 그러한 구속의 체험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 육체적인 형벌에 불가한 것이 될 뿐이다. 더구나 사회적 측면에서도 그를 감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란 모두 헛수고와 낭비가 될 것이다. 교정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174쪽)


신체형이 극심한 폭력성을 보이게 되면, 범죄가 무거운 것일수록 그 벌은 점점 더 단기간이 될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175쪽)


이제는 시간의 문제가 징벌 고유의 효력을 거두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권리 박탈 상태는 인간에게 고문의 공포를 주지 않으며, 일시적인 고통의 형벌보다 훨씬 더 죄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박탁 상태는 그것을 목격하는 사람들에게 보복적인 법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리게 하고, 유익한 공포를 언제나 소생시킨다. 시간은 형벌을 운용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175쪽)


관념성 충족의 법칙(154~155)

- 처벌의 핵심에서 괴로움을 주는 것은 고통의 감각이 아니라, 괴로움, 불쾌감, 불편함에 대한 생각이다. 즉 '괴로움'의 생각 때문에 겪는 '괴로움'이다. 따라서 처벌은 신체를 대상으로 할 필요가 없고 표상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


- 즉, 극대화해야 할 것은 형벌에 대한 표상이지, 신체에 가해진 형벌의 실제 내용이 아니다.


자유을 박탈하여, 과거에 자신이 사회에 끼친 손실을 보상하는 데 여생을 바치게끔 하게 될 사람을 계속 우리들의 눈앞에서 본보기로 삼아 징계하는 것은 사형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일 것이다.(177쪽)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즉, 신체형으로 대표되는 사형을 실시하여 금방 잊히는 것보다는 자유를 박탈하는 감금형을 하고, 그 감금 상태를 전시하고(표상화), 모든 징벌을 교훈담(183쪽)과 구경거리(183쪽)로 만들어 학생들이 범죄자의 감금 상태를 현장체험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ㅠㅠ 감옥을 현장체험학습한다고? 아동학대 아닌지 ㅋㅋ 지나치게 사회화 된 진보단체들이 교도소 현장체험학습을 반대할 것 같다만... 유나바머에게서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것은 지나친 사회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르는 가장 잔인한 짓이라는 주장..나 역시 200% 동의함. 


결국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방법 모두 복종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시간표에 의한 품행교육, 좋은 습관 들이기, 신체의 구속은...(206쪽)



실체가 없는 명예를 훼손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개사과형을 내리고, 살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방화에 대해서는 화명을 내려 처벌해야 한다. 독살자에 대해서는, "사형 집행인이 독배를 들어서 그의 얼굴에 독액을 뿌리고, 그러한 얼굴 모습을 본인에게 보옂어 대죄의 공포를 지겹도록 깨닫게 한 후, 부글부글 끊는 열탕 솥 속에 거꾸로 집어넣어야 한다.(171쪽)

범죄의 성질과 처벌의 성질 사이에는 정확한 대응관계가 필요하고, 범행이 잔인했던 자는 신체형을 받아야 하고, 나태한 자는 중노동을 해야 하고, 비열했던 자는 명예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171쪽)


현대의 처벌은 감금, 벌금형, 금지(취업금지, 접근근지 등) 셋 중 하나인 것 같다. 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 식의 처벌은 구식(개새끼)이고, 현대의 우리는 세뇌하겠다. 즉 나이스한 개새끼의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것.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은 개새끼, 하도영은 나이스한 개새끼인데. 누가 더 개새끼냐면 하도영!!! 아무튼!!!!


내가 궁금한 것은 표상화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나 표상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쉽게 말해 왕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왕의 dna 소유자들(왕은 못되어도 극 우뇌이므로, 극우 뇌를 가지게 될 지도. 그리하여 절대권력을 추종하면서 자신이 왕이라고 착각하여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힐지도 모르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성향의 인간들, 적대적 반항장애(품행장애)가 분명한 금쪽이들에게 세뇌나 표상화가 효과적인가 하는 것이다.


머릿속이 인류애 가득한 꽃밭인 사람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진실이겠지만, 자신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타인이 그 폭력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을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아동들이 있다. 그들은 교육될 수 없다. 사회화될 수 없다. 그들은 약물로나마 겨우 치료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 <감시와 처벌>이 1975년에 발간되었다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셸 푸코가 2023년에 이 책을 집필 했더라도 표상, 복종, 교훈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3부 규율과 4부 감옥이 남아 있지만, 

만약 푸코가 2023년에 이 책을 마무리했다면 5부 치료를 집필했을 거라고 감히 말해 본다. 교정되지 않는 사람들은 제거대상이 이니라 치료대상이다라는 문장이 이 책에 씌여 있었을 거라고 주장해 본다. 간단히 말해서 특정 약물을 주입하여 그 어떤 의욕도 없는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 



#3. 아아. 미셸 푸코여!! 

사회화될 수 없는, 품행장애 등등의 인간은 소수이나 태어나며, 이 소수는 사회를 해체하고 소멸시킬 역량이 충분히 있는 유의미한 숫자입니다. 얼마 전 도심에 나타난 암사자는 발견되자마자 사살되었습니다. 사회화(복종)가 불가능한 인간은 그의 범죄행위가 발견되자마자 제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사형제가 있었지만 현재 사형제는 더이상 실시되지 않고 있지요.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는 제사장처럼 착한 인간들만 태어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멍청한가요. 사람꼴을 하고 있으니 사형(제거)할 수 없다면 그들을 약물로 처치하여 그들의 유해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맹수와 같은 인간에 대하여 귀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양손에 너클을 끼고 사람을 때려죽이고, 성폭행을 한   자는 사람이 아니고 맹수다. 이 자에 대한 처리법은 2가지뿐이다. 물리적 제거(사형) 또는 유해성 제거(맹수와 같은 폭력성을 제거하는 약물 처치). 그런데 이 자에게 성수를 뿌리고, 축복을 주고, 죄를 용서해 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직업교육시켜 주는 행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맹수 같은 자들에게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만 심어줄 뿐이다. 아동이니까, 촉법소년이니까, 초범이니까 하면서 계속 용서해주고 기회를 주면 사람이 착해질까?? 순진하다, 너무 지나치게 순진해서 바보와 잔혹 범죄는 세트 상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ps. 너클 강간살인범 뉴스로 인해 내 마지막 남은 인류애의 1방울 마저도 사라졌다. 이제 뉴스 안 볼 거다. 뉴스=고문. 인간 세상 너무 지옥임. 뉴스를 보는 거 자체가 건강에 너무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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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2 1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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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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