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의 <항구 마을 식당>을 읽었습니다.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가 출판사 신초에서 나오는 잡지 <여행>의 기획으로 배를 타고 항구 마을에 가서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옵니다. 그게 다입니다. 절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도 없고(도보 20분 이상 코스는 작가 없이 카메라맨 혼자 가서 사진을 찍어 옵니다)

(중략)

별 놀라운 에피소드나 삶의 깨달음도 없습니다. 책 내내 배를 타고 그 안에서 졸다가 현지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중략) 

절경이 있다고 해도 도보 20분이 넘으면 거리낌 없이 패스하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스낵바에서 수다 떨기)을 어디에서든 한결같이 추구하는 여행을 한 적이 있는가.

<당신께 / 오지은>



나는 여행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경우는 내 눈으로 내 몸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 확인한 지금은 딱히 여행에 대한 갈망은 없다. 얼마 전에 갑자기 호텔 1박을 할 일이 생겨서 부랴부랴 짐을 싸는데 짐을 싸는 행위가 에베레스트 등반 짐을 싸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정말 귀찮았다. 폰충전기, 맥북충전기, 드라이기, 멀티탭 등등등등등.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짐을 싸고, 집에 와서 다시 짐을 풀어서 원래 자리에 물건들을 놓아두는 행위에 진절머리는 내면서 내 인생에 다시는 외박은 없다고 외쳤다. 리모와 급은 아니지만 나름 고급의 북유럽 브랜드의 기내용 트렁크를 구입해서 단 2번 사용했을 뿐인데 말이데 기내용 트렁크에 짐 싸기에 지쳐버림. 


이번 주말에서야 <더 글로리> part2를 봤다. 지난주에 보고 싶었지만 금요일 저녁에는 잠이 쏟아져서 일찍 잤고 토요일부터 봐야지 했지만 토요일 내내 아팠기에(<더 글로리>를 볼 체력조차 없었다) 못 보고 일요일에는 9화부터 16화까지 총 8화를 다 볼 자신이 없어서 시작하지 않았다. 물론 일요일에 보고 월, 화, 수 정도에 나누어서 봐도 되겠지만, 이런 재미있는 드라마에 노동이 끼어들어서 훼방 놓는 거 질색이라서. 고단한 인생이 끼어들면 재미가 줄어든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세상이 더 싫어졌다. 나는 이 영화가 모든 것에서 다 별로였다. 일단 나는 너드물이 싫고, 부모는 나도 첨이라서 너무 힘들어 징징도 싫고, 다중우주적 정신승리물도 싫고, 산만한 영화도 싫다. 이 영화가 2023년 현재 인류의 정서라는 것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편집상이라니...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는 <애프터 양>이다. 내가 영화에서 바라는 감각적 쾌락, 철학적 쾌락이 이 영화에는 완벽하게 있다. 


2023년을 살아가는 인류의 다수는 다중우주 중 어딘가의 '나'가 나인가? 미쓰 홍당무의 미숙의 대사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나를 사랑해 줬을 거면서." 그 말인가? 


다중우주=회빙환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뭘 굳이 그렇게까지 잘 살아보려고 하니? 하는 심정. 죽이 되든 똥이 되든 1번인 인생도 매우 싫다. 1번뿐이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천만다행인 거야. 돌이킬 수 있고 수습할 수 있고 무한반복이라고 생각하면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다. 


그렇지만 노드하우스가 제창한 이산화탄소 삭감률을 준수하면, 지구의 평균 기온은 2100년까지 무려 섭씨 3.5도나 올라가버린다. 이 말은 경제학이 도출한 최적의 답은 '기후 변화에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중략)

2020년 6월에는 시베리아의 기온이 38도까지 올랐다. 북극권 사상 최고 기온일 가능성이 있다. 영구동토가 녹으면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어 기후 변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영구동토에서 수은이 유출되거나 탄저균 같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위험성도 있다. 북극곰 역시 둥지를 잃을 것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사이토 고헤이>


2100년 말고 2030년 2040년이어도 난 괜찮을 거 같은데. 2100년은 그냥 상징적인 숫자 아닐까? 지금 성인인 사람들 중에서 2100년까지 살아 있을 사람은 없으니까 대부분의 성인이 사망했을 가장 가까운 년도로 고른 게 2100년 아닐까? 다들 안심하라고 2100년이라고 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다중우주와 회빙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외면하고 지구온난화 없는 어떤 다중우주를 상상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될 거 같다. 


적극적으로 죽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 사는 게 재미가 없고 지겹다. 사는 게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걸까? 사는 게 자식을 낳아서 자식에게 너도 한 번 살아봐라고 권할 정도로 좋은가? 100세까지 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가? 난 둘 다 싫은데.


절경이 펼쳐지더라도 도보 20분 이상의 거리라면 가지 않겠다는 오쿠다 히데오의 여행에 대한 자세가 내가 삶에 대해서 가지는 자세다. 간단히 말해서 고진감래 싫다고. 


윤여정이나 제이미 리 커티스처럼 70대에 생애 첫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을 수 있으니 그래도 계속 살아보는 게 좋지 않겠니?라고 성공한 사람들은 어디선가 강연을 하겠지만, 내 손에 쥐고 있는 카드로 나는 매일의 게임을 해야하는데 일단 그게 너무 지겹습니다. 지겹고 체력이 많이 소모돼서 지칩니다. 내가 호소하는 고통은 물리적으로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베터리 성능이 50%도 안 되는 스마트폰 같은 육체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매일의 과제가 버겁습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잠잘 때입니다. 그래서 나는 금토일 3일 동안 30시간을 잡니다. 그리고 주중에도 8시간을 잡니다. 어쩌면 나는 사는 게 싫어서 잠을 많이 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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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24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엔 쓰리 빌보드를 봤거든요, 이번 주말엔 애프터 양을 보겠어요.
에에올의 경우 저도 으아아 편집 너무 싫고 이게 뭐야... 하다가 또 cj 감성답게 엉엉울었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먼데이 2023-03-25 09:58   좋아요 0 | URL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 역)같은 엄마를 정말 정말 싫어합니다. 자식이 부모 맘에 들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그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님) 자식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사람 정말 싫습니다. 악다구니를 퍼붓는 이유는 자식이 만만하고 약자니까 화풀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놓고 애가 실종되니까 참부모였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 전 위선이라고 보고요. 가축을 대하는 축산농부의 태도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축산농부들도 홍수에 소가 떠내려가면 울어요. 돈이니까요, 내꺼니까요. 내 재산이니까요. 그래놓고 소를 팔아서 죽게 하지요.

전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가축으로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꺼, 내 자산, 내 재산이라고.

지금 검색해보니 이 영화 전문가 별점이 8점 이상이네요. 역시...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나봐야.
근쩍한 인간애, 개과천선, 부모서사.

에에올도 싫은 이유는 부모서사. 그리고 너드의 화장실 유머(그걸 어떻게 견디나요? 전 백인남자너드유머 진짜 싫어하거든요. 트로피 항문 유머 장면에서 진심 아 시발 했습니다. 진짜 싫어요.)

<애프터 양>은 서사, 음악, 화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세련 그 차제. 이 영화 감독이 드라마 <파친코>도 만들었는데, 감각이 쩌는 게, 오프닝이 정말 뮤직비디오예요. 한번도 오프닝 건더뛰기 한 적 없고 오히려 되감기 해서 오프닝만 반복해서 봤을 정도예요.

공쟝쟝 2023-03-25 10:34   좋아요 0 | URL
일단 경험해야하는 영상매체 잘 안보는 데다가 외국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아서 1세계 백인남 유머 잘 몰라요 ㅋㅋㅋㅋ 근데 계속 나오는 안맞는 어떤 부분들이 있었고, 그게 뭔지 생각해볼게요! (불편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잘 느낄 줄 ‘알아야‘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ㅋㅋㅋ)
랑 별개로 시각이나 연출적으로 뭐가 아름다운 지는 뭐랄까 그냥 좀 아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 애프터 양 고고싱~

공쟝쟝 2023-03-2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가장 강요하고 옹호하는 게 인간, 개과천선, 가족애 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동반사 적으로 몸이 반응해. 이미 울고 있음 ㅋㅋㅋㅋㅋ 익숙한 정서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영화 드라마들이 가리키는 무의식에 대해서 결국 당신들이 말하고 싶은게 이런저런거 라면 나는 여기까지는 내가 오케이 그렇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게 맞는가? 라고 물어보는 것 같고. 그 부분에서 그... <나의 해방일지>작가가 대단히 반동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대중들이 뭘 좋아하는 지를 알아서 껴넣은 게 아니라 정말로 이것이 인간이다! ㅋㅋㅋ뭐 그런 의미로 보여주고 싶은 철학이 있는데 철학이 꼰대인... ㅋㅋㅋ 내가 살아봤는 데, 니들 그거 아니다~ 이런 게 느껴져여 ㅋㅋㅋㅋ (걍 이야기 재밌게 잘하는 오십대 아저씨한테 지 인생 이야기 듣는 느낌..)
쓰리 빌보드 저는 허약한 백인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봤습니다. ㅋㅋㅋㅋ 감독이 좋아하거나 옹호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고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ㅋㅋㅋ 이건 뭐글로 적을 수 있으면 좋겠는 데 모르겠다. 구찮아욬ㅋㅋㅋㅋ 다 구찮닼ㅋㅋㅋ

먼데이 2023-03-26 09:21   좋아요 0 | URL
방금 <나의 해방일지>작가 프로필을 봤는데, 이 작가의 작품을 1개(90일 사랑할 시간) 빼고 다 봤고 다 좋아해요 ㅜㅜ <올드미스 다이어리>와 <청담동 살아요> 완전 좋아해요. 특히 <청담동 살아요>는 주변에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혹자 묵묵히 봤음 ㅠㅠ 김혜자 진짜 웃겼어요. <또 오해영>은 한국 로코 최고작이라며 ㅠㅠㅠㅠ <나의 아저씨>는 이상하게도 빨려 들어서 다 봤고, <나의 해방일지>는 염창희의 모든 것이 좋았어요. 염창희가 느끼는 삶의 불쾌가 내가 느끼는 삶의 불쾌와 매우 흡사하거든요. 심지어 저도 운전하는 거 좋아해요.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철학이 꼰대 ㅜㅜㅜㅜㅜ 저도 제 주장을 굽히지 않는 먹통의 면모가 있어요.

공쟝쟝 2023-03-2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프터 양> 봤어요! 먼데이님. 저 이 영화 최애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릴리슈슈 ost.. 완벽했다. 한편의 영화가 이렇게까지 쾌락을 줄 수 있다니……. 난 영화를 별로 안좋아하는 게 아니라 웬만한 영화는 양에 차지 않는 것이었던 것이다. ㅋㅋㅋ

먼데이 2023-03-26 09:22   좋아요 0 | URL
<애프터 양> 모든 것이 아름답죠? 전 그냥 ‘아...너무 아름답다. 눈과 귀, 머리 속까지 너무 즐겁다.‘ 느꼈던 영화예요. glide는 릴리슈슈보다 애프터양에 더 잘 어울릴 지경 ㅋㅋㅋ 코고나다 천재!

공쟝쟝님 안목 높으십니다. cj감성은 노노해!
 

아침에 일어나니 근육통만 있는 몸살 기운이 있었다. 경미했기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몸을 움직이면 근육통이 없어질 거라고 여겼으나 아니었다. 강도가 조금 더 세졌다. 이대로 가다간 분명 야밤에 응급실에 갈 정도로 아파지거나 그 정도로 심각해지지 않더라도 주말 내내 끙끙대면서 자연 치유하는 것에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쓸 것 같았다. 안되는데, <더 글로리> 봐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더 글로리> 볼 체력이 바닥나버릴 거 같은데. 


집 근처 내과에 전화해 보니 토요일이라서 늦어도 12시까지는 병원에 와야 진료 가능하다고 했다. 11시 40분에 꾸역꾸역 옷을 갈아입고 아픈 몸을 이끌고 걸어갔다. 날씨는 참으로 좋았다. 기상청 정보상 19도! 완연한 봄. 3월 초가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나? 식목일 전후의 기온이다.


병원에는 환자가 1명도 없어서 바로 진료받고, 2분 상담, 주사 1분, 처방전과 결제 1분. 병원에 5분도 머물지 않은 거 같았다. 반대로 약국에는 사람이 많아서 오래 기다렸다. 약봉지를 받아서 약국을 나오니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주저앉아 있고 싶었다. 대신 횡단보도 앞에 있는 차량진입 차단봉에 기댔다. 주사를 맞은 왼쪽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집에 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밥 먹기 정말 싫은데 꾸역꾸역 먹었다. 마지막 쌀알 한 톨도 꾹꾹 씹어 먹었다. 다행히 국은 내가 좋아하는 쑥국. 반찬도 다 귀찮아서 산삼만큼 귀하다는 초벌 정구지(부추) 무침만 먹었다. 이렇게 건강한 것만 먹는데 왜 나는 아플까. 내 몸의 건강 수치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샌다. 


최근에도 건강검진했다가 또 수치 안 좋아져서 엉엉 울고, 열심히 먹는데 살은 찌지도 않고. 조금 더 빠졌다. 빠질 살도 없는데. 이제 나는 살 빠지는 게 속상해서 체중도 쟤지 않는다. 뭘 먹어야 살이 찌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동생은 "예민해서 그렇다. 맘이 편해야 살이 찌지."라고 하는데 나는 고1 때부터 이 나라에서 사는 게 불편했고, 그때부터 살이 빠졌다. 고1 입학하고 두 달 만에 3키로 빠졌으니...


어제저녁에 운동하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피곤해서 바로 잤다. 조금 전에 다음 주 운동 예약해 둔 거 2건 취소했다. 운동할 체력도 지금은 없구나 싶어서.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견디고 싶지 않다. 인생이 주는 고통을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해 내는 것만이 인생의 참 의미를 아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난 그냥 훌륭하지 않은, 인생의 참 의미 같은 건 모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병원 문 닫기 전에 병원 다녀온 나를 칭찬하며... 

병원 문 열린 시간에 아팠던 것도 다 내 복이라고 생각하는 이 긍정의 태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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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우리를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만든다.

<울프 일기 /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붙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침하지도 않게 책과 워크맨으로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자궁병동 / 런던스케치 / 도리스 레싱>


어쩐지 요즘엔 사는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나 즐거워. 나의 예쁜 뿔.

<뿔 / 패닉3>


온라인에서는 익명의 존재로 이렇게 일기를 주절주절 써대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나는 나에 대해서는 묵언으로 일관하는 편이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온라인 일기에서 하지 않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상황적으로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사이인 경우에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멋 부리기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 정도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는 게 편하다. 

사람들이 나를 납작하게 보도록, 그래서 애초에 나한테 별 관심을 두지 않게 해두는 게 편하다.

오프라인의 사람들은 성가시다.

내가 니체는 아니지만 나 역시 사람들이 모기떼처럼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니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모기떼를 보면 저걸 다 죽여버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고

얼른 도망쳐라 했던 그 문장은 산삼보다 더 귀한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서 굳이 대답해주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 대해서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이 

내가 넘어지지 않게 해주는 무게중심이기 때문이다.

그걸 발설해 버리면 나는 균형을 잃고 자빠질 것만 같다.


가수 오지은을 좋아한다.

하지만 오지은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지은은 자잘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자제력이 없고, 집안을 정리 정돈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오지은과 직장 동료나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면 결코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오지은은 수신(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그 수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수신 못함이 그의 창작력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오지은은 노래, 팟캐스트,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공개했는데

나는 사람이 자신을 저렇게 많이 공개하고도 균형을 유지하고 살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다.

오지은은 균형을 잃어서 의학에 의존한 시기가 있었다.


자유가 뭘까?

나에게 자유는 사생활을 가질 권리,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을 권리, 자기만의 비밀을 가질 권리이다.

쉽게 말해 내 방문을 닫을 권리, 방문을 닫고 잠글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해운대 경동 제이드(내 기준 제일 좋은 위치의 고급 아파트, 일단 제이드에 살면 동백섬 아침 산책을 하고 조선비치에 가서 조식을 먹는 생활이 가능!) 팬트 하우스 거실에서 다른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사는 것과 30살이 넘은 주공아파트 9평에 혼자 사는 것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9평 주공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사생활이 없는 삶, 자신의 모든 행동과 모든 시간이 타인에게 노출된 삶은 그 삶이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허깨비 같달까? 사상누각 같달까? 가짜 같달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노예 같은 삶이랄까? 반려동물의 일생 같달까? 주인에게 철저하게 종속된 반려동물의 일생은 좀 가엽지 않나? 나는 18년 동안 반려동물로 사느니 그냥 3~4년을 살더라도 야생에서 내 본능대로 살다 죽고 싶기 때문에. 


나는 좋은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그 비밀을 간직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좋다.

예를 들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감옥 운동장을 홀로 산책하면서 주머니 가득 담은 흙을 조금씩 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비밀을 간직하고 그걸 즐기는 것.

비밀을 집요하게 즐기면 탈옥마저도 가능해지니까.

하지만 앤디같은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랑하고 싶어 하니까.

타인에게 누설하고 싶어 한다.


오늘부터 <울프 일기>를 조금씩 읽을 것이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혼자 있는 걸을 더 즐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굳이 옆에 있는 타인에게 다 말하지 않고 남겨둔 것을 

스스로에게만 털어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훌륭한 대화 상대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일기를 쓴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일기를 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나 자신이 기 때문에.

오늘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는 친구에게 감사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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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이 내 것과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치밀고, 지나치게 비슷하면 슬퍼진다. 그뿐이다.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팟캐스트 <밀림이 왕>을 듣고 있다. 

원래도 내가 계획적이고 치밀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인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 팟캐스트를 듣고 나서야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계획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토록 타인이 힘들었을지도.

사실 나는 좀 과하게 계획에 의존하는 내가 약간 자폐의 기질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계획뿐만이 아니라 기록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생활에서 소비하는 많은 것들이 대해서 항목별로 따로 공책에 적어 둔다.

연간 주유사용량, 연간 주유비, 도시가스, 전기, 수도, 자동차세, 재산세, 전자제품 구입 날짜와 AS내역, 드라이클리닝한 옷 목록, 네일아트, 마사지 등등 각 항목별로 따로 페이지를 마련해서 한눈에 소비 추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또한 통계와 평균도 좋아해서 

평균수면 8시간 이상 유지하려고 잠을 의욕적으로 잔다던가

월 10회 필라테스 출석을 위해서 이번 달에 9회 출석이면 다음 달에는 기어이 11회 출석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계획(목표)을 세우면 대부분 실천하는 편이다. 실천하기 너무 어려운 계획은 세우지 않기도 하지만 일단 세운 계획은  실천한다. 계획을 실천했다는 쾌감이 크기 때문이다. 덤으로 자기효능감도 높아진다. 


내가 <밀림의 왕>을 듣는 이유는 미루는 심리를 이해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미루는 성향은 고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미루는 사람은 그냥 피하자... 


우리는 각자의 시스템 속에서 각자 살아 가는 존재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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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 전날까지 건강하다가 그다음 말 죽어 있는 경우를 돌연사라고 한다. 시신을 발견한 사람은 119가 아니라 112를 부를 테고 그러면 경찰이 개입한다. 환자도 없고 사망진단서를 써줄 주치의도 없다. 이렇게 되면 변사체 취급을 받고 부검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사건 가능성은 없는지 조사를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은 피의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상실로 슬퍼하던 유족이 피의자로 몰릴 수도 있다니 너무한 일이다. 그렇다면 돌연사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이 드는 일이 육아죠?

그러면 거의 모든 고령자가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조금은 부담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존경하는 기리시마 요코 씨가 <아첨하지 않는 노후>라는 책에서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라고 단언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드디어 나와 생각이 통했다고 느꼈다. 싱글 맘으로 3명의 아이를 키운 기리시마 씨의 파워는 아마 보통 사람과 달랐을 것이다. 엄마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닌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들에게 쏟은 에너지와 고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3. 

사회에 공헌할 수 없으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을까? 삶의 보람, 일의 보람이 사라지면 과연 인생을 살아갈 의미가 없을까? 이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4.

'존엄한 생'과 '존엄하지 않은 생'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어떤 사람은 스스로 배변과 배뇨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존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설 처리 도움을 받는 장애인이나 환자, 고령자는 수업이 많다. 기저귀를 차는 것 정도는 죽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5.

네덜란드에서는 2009년 이후 치매 환자의 안락사뿐만 아니라 정신 질환자의 안락사도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살아 있는 게 괴롭다', '사는 것에 지쳤다' 정도로 안락사를 선택할 것 같다. 


6.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는 강제성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애초에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란 무엇일까?


7.

세상에는 불편한 신체를 보완하는 다양한 보조 기구가 있다. 눈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고 귀가 잘 안 들이면 보청기를 낀다. 다리가 나빠지면 휠체어를 탄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각종 보조 기구도 간편하고 가볍게 진화해왔다. 호흡기나 투석 장치는 크기 때문에 사용이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안경이나 보청기를 쉽게 사용하면서 왜 호흡기나 투석 장치를 선택할 때는 주저할까?


8.

아버지의 간병 이후로 나는 건강할 때 써둔 본인 의사 같은 것은 믿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일단 결정한 것은 끝까지 관철하는 게 훌륭하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다.


9.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죽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우에노 지즈코>



나는 이 책의 우에노 지즈코의 생각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9.에 대한 나의 생각

우선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연발생적인 것은 아니다. 부모라는 여와 남, 특히 자궁을 가진 여자의 결정으로 모든 인간은 태어난다. 나는 이 점은 내가 자궁을 가진 여자로서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깨달았다. 탄생이라는 건 결국 자궁을 가진 여자의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존재가 생기는 것이 타인의 결정인데, 왜 죽는 것은 결정할 수 없는가?

죽는 거 정도는 스스로 결정해도 되지 않나??


8. 에 대한 나의 생각

우에노 지즈코는 가까운 사람 중에 자살한 사람이 없나? 나는 자살한 사촌동생이 있어서 안락사 반대는 죽기를 선택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왜 삶을 포기한 사람은 지독히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죽어야만 하지?  그 때 나는 너무나 분노했다. 안락사가 불법인 이 좆같은 세상에 분노했다. 그 아이가 적어도 고통없이 너의 선택도 옳다 힘들면 죽어도 된다라는 따뜻한 말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나는 자식은 살아만 있어도 효도를 다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식에게 생존 이상의 것을 바라는 부모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꽃밭에 사는 사람들이다.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든 말든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삶을 강요하는 것도 죽음을 강요하는 것 만큼이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나는 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든 말든 관심없다. 사는 게 좋으니 살겠지. 내 관심은 생이 좋지 않은 사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을 더 원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죽는 순간에만은 고통없이 죽었으면 좋겠다. 악락사가 자살방조라고? 자살하면 왜 안 되는데? 자살이 왜 나쁜데? 자살이 나쁘다면 같은 이유로 어차피 죽을 인간을 낳는 것 역시도 나쁘다. 


7. 에 대한 나의 생각

모든 것에는 경중이 있지 않나? 안경은 쉽지만 투석기는 어렵겠지. 한 대 맞는 것은 견딜 만 하지만 맞은 자리에 100대 더 맞는 건 힘드니까. 그런데 그것을 다 맞는다로 퉁치면 되나?? 


6. 에 대한 나의 생각

죽음을 강제할 수 없다면 사는 것도 강제할 수 없는 거 아닐까?

왜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목을 매달거나, 강물이나 길바닥에 투신하거나, 유해 가스나 독극물을 먹거나, 혈관을 잘라야만 할까? 도대체 왜왜왜? 

나는 자살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생을 옹호하는 자들의 악의라고 생각한다.

자살이 쉽다면 다들 쉽게 죽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게 진리겠지. 삶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거겠지... 그게 두려운가? 생과 삶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안락사가 있어도 죽는 사람은 드물겠지 안 그래?


2. 에 대한 나의 생각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 자식을 낳은 건데, 그 과정이 힘들었다고 해도 그건 본인 선택의 결과지 자식 탓이 아니다. 자식이 왜 그걸 짐 져야 하지? 세상에 효는 있어도 불효는 없다. 


3. 5. 에 대한 나의 생각

애초에 보람, 의미 같은 거 전혀 관심 없다. 그런 게 없어서 죽겠다는 게 아니다. 살 가치가 있어서 살고 죽을 가치가 있어서 죽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잠자듯이 죽을 수 있다면 죽는 걸 택하겠다는 생각이다. 왜 죽는데 꼭 이유가 필요하나? 만사가 다 귀찮다. 반복되는 매일도 지겹다. 3월 10일에 오픈하는 <더 글로리> 시즌2를 봐야 하기 때문에 3월 10일까지 더 사는 것은 궁여지책일 뿐이고, 태어나는데 이유가 없다면 죽는 것에도 딱히 이유가 없다. 나로선 그렇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갖다 붙이는 게 더 궁색하지 않나?? 

사는 거에 지쳐서 죽는 게 왜 안 되나? 사는 게 그렇게 대단하고 고귀한가? 


1. 에 대한 내 생각

집에서 혼자 죽어 있으면 저런 꼴을 당해야 하는구나 ㄷ ㄷ 부검 같은 거 당하고 싶지 않은데... 이 책은 여러 가지로 나를 실망시킨다 흑흑. 



ps

우에노 지즈코를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와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을 읽은 내 소감은 생명을 맹목하고, 비록 1인 가구더라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1948년생의 한계인가 하는 것...



내 기분을 비유하자면 <쇼생크탈출>의 앤디의 기분인 것이다. 감옥은 감옥이라는 것. 그곳에 적응해서 안락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탈출하고 싶다는 거다. 나에게는 삶이 그렇다. 물론 어쩌다 가끔은 좋지, 즐겁지, 행복하지. 그렇지만 삶은 대체로 불쾌하다. 왜 불쾌하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내가 내 기분 좋으려고 새하얀 디올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을 탄다. 그러면 누군가는 내 신발을 밟는다. 그게 내가 말하는 불쾌다. 그 불쾌를 당하지 않으려면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나 신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겹다, 이 삶이. 올봄 정장으로 새하얀 수트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런 새하얀 옷에는 꼭 타인이 뭔가를 묻힌다. 그러면 나는 당장 퇴근하고 집에 가야 한다. 얼룩 지우려고.


우에노 지즈코는 늙고 병들어도 치료받고 간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게 문명이고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런 걸 거부하지 말고 기꺼이 늙고 병들라고, 그것도 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도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각종 검사를 받고 또 결과를 기다리고 몇 개월치의 목숨을 구걸해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 만사가 다 귀찮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 번거로운 절차들은 다 뭔가.' 싶은 거다. 심지어 오늘은 간호사가 수액 바늘을 잘못 찌르고 반창고를 붙여놔서 나중에 보니 피가 소주 반컵 정도 흘러서 고여 있었다. 난 뭔가 차갑다 하는 정도의 느낌은 있었지만, 병원 천장을 보면서 난 죽을 때까지 이 짓을 해야하는 구나 하면서 아무 의욕도 없이 있었다. 그 차갑던 건 식은 내 피였다.


나는 내 건강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 몸에 해로운 건 하나도 하지 않는데도 건강이 나쁜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망상에 지나지 않는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100세까지 살 계획을 세우면서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해야 하나? 60살 이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생각도 없다. 지금 당장 내가 나이 앞에 5를 달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100세 시대라고? 그건 70세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지 나처럼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서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른 우주의 일처럼 아무 감흥이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즐겁고 싶다, 그 생각 뿐이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의학기술만을 바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나는 그냥 안락사하고 싶다. 나에게 삶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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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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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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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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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4: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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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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