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로 전날까지 건강하다가 그다음 말 죽어 있는 경우를 돌연사라고 한다. 시신을 발견한 사람은 119가 아니라 112를 부를 테고 그러면 경찰이 개입한다. 환자도 없고 사망진단서를 써줄 주치의도 없다. 이렇게 되면 변사체 취급을 받고 부검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사건 가능성은 없는지 조사를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은 피의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상실로 슬퍼하던 유족이 피의자로 몰릴 수도 있다니 너무한 일이다. 그렇다면 돌연사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이 드는 일이 육아죠?

그러면 거의 모든 고령자가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조금은 부담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존경하는 기리시마 요코 씨가 <아첨하지 않는 노후>라는 책에서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라고 단언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드디어 나와 생각이 통했다고 느꼈다. 싱글 맘으로 3명의 아이를 키운 기리시마 씨의 파워는 아마 보통 사람과 달랐을 것이다. 엄마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닌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들에게 쏟은 에너지와 고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3. 

사회에 공헌할 수 없으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을까? 삶의 보람, 일의 보람이 사라지면 과연 인생을 살아갈 의미가 없을까? 이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4.

'존엄한 생'과 '존엄하지 않은 생'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어떤 사람은 스스로 배변과 배뇨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존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설 처리 도움을 받는 장애인이나 환자, 고령자는 수업이 많다. 기저귀를 차는 것 정도는 죽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5.

네덜란드에서는 2009년 이후 치매 환자의 안락사뿐만 아니라 정신 질환자의 안락사도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살아 있는 게 괴롭다', '사는 것에 지쳤다' 정도로 안락사를 선택할 것 같다. 


6.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는 강제성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애초에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란 무엇일까?


7.

세상에는 불편한 신체를 보완하는 다양한 보조 기구가 있다. 눈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고 귀가 잘 안 들이면 보청기를 낀다. 다리가 나빠지면 휠체어를 탄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각종 보조 기구도 간편하고 가볍게 진화해왔다. 호흡기나 투석 장치는 크기 때문에 사용이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안경이나 보청기를 쉽게 사용하면서 왜 호흡기나 투석 장치를 선택할 때는 주저할까?


8.

아버지의 간병 이후로 나는 건강할 때 써둔 본인 의사 같은 것은 믿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일단 결정한 것은 끝까지 관철하는 게 훌륭하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다.


9.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죽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우에노 지즈코>



나는 이 책의 우에노 지즈코의 생각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9.에 대한 나의 생각

우선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연발생적인 것은 아니다. 부모라는 여와 남, 특히 자궁을 가진 여자의 결정으로 모든 인간은 태어난다. 나는 이 점은 내가 자궁을 가진 여자로서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깨달았다. 탄생이라는 건 결국 자궁을 가진 여자의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존재가 생기는 것이 타인의 결정인데, 왜 죽는 것은 결정할 수 없는가?

죽는 거 정도는 스스로 결정해도 되지 않나??


8. 에 대한 나의 생각

우에노 지즈코는 가까운 사람 중에 자살한 사람이 없나? 나는 자살한 사촌동생이 있어서 안락사 반대는 죽기를 선택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왜 삶을 포기한 사람은 지독히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죽어야만 하지?  그 때 나는 너무나 분노했다. 안락사가 불법인 이 좆같은 세상에 분노했다. 그 아이가 적어도 고통없이 너의 선택도 옳다 힘들면 죽어도 된다라는 따뜻한 말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나는 자식은 살아만 있어도 효도를 다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식에게 생존 이상의 것을 바라는 부모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꽃밭에 사는 사람들이다.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든 말든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삶을 강요하는 것도 죽음을 강요하는 것 만큼이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나는 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든 말든 관심없다. 사는 게 좋으니 살겠지. 내 관심은 생이 좋지 않은 사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을 더 원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죽는 순간에만은 고통없이 죽었으면 좋겠다. 악락사가 자살방조라고? 자살하면 왜 안 되는데? 자살이 왜 나쁜데? 자살이 나쁘다면 같은 이유로 어차피 죽을 인간을 낳는 것 역시도 나쁘다. 


7. 에 대한 나의 생각

모든 것에는 경중이 있지 않나? 안경은 쉽지만 투석기는 어렵겠지. 한 대 맞는 것은 견딜 만 하지만 맞은 자리에 100대 더 맞는 건 힘드니까. 그런데 그것을 다 맞는다로 퉁치면 되나?? 


6. 에 대한 나의 생각

죽음을 강제할 수 없다면 사는 것도 강제할 수 없는 거 아닐까?

왜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목을 매달거나, 강물이나 길바닥에 투신하거나, 유해 가스나 독극물을 먹거나, 혈관을 잘라야만 할까? 도대체 왜왜왜? 

나는 자살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생을 옹호하는 자들의 악의라고 생각한다.

자살이 쉽다면 다들 쉽게 죽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게 진리겠지. 삶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거겠지... 그게 두려운가? 생과 삶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안락사가 있어도 죽는 사람은 드물겠지 안 그래?


2. 에 대한 나의 생각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 자식을 낳은 건데, 그 과정이 힘들었다고 해도 그건 본인 선택의 결과지 자식 탓이 아니다. 자식이 왜 그걸 짐 져야 하지? 세상에 효는 있어도 불효는 없다. 


3. 5. 에 대한 나의 생각

애초에 보람, 의미 같은 거 전혀 관심 없다. 그런 게 없어서 죽겠다는 게 아니다. 살 가치가 있어서 살고 죽을 가치가 있어서 죽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잠자듯이 죽을 수 있다면 죽는 걸 택하겠다는 생각이다. 왜 죽는데 꼭 이유가 필요하나? 만사가 다 귀찮다. 반복되는 매일도 지겹다. 3월 10일에 오픈하는 <더 글로리> 시즌2를 봐야 하기 때문에 3월 10일까지 더 사는 것은 궁여지책일 뿐이고, 태어나는데 이유가 없다면 죽는 것에도 딱히 이유가 없다. 나로선 그렇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갖다 붙이는 게 더 궁색하지 않나?? 

사는 거에 지쳐서 죽는 게 왜 안 되나? 사는 게 그렇게 대단하고 고귀한가? 


1. 에 대한 내 생각

집에서 혼자 죽어 있으면 저런 꼴을 당해야 하는구나 ㄷ ㄷ 부검 같은 거 당하고 싶지 않은데... 이 책은 여러 가지로 나를 실망시킨다 흑흑. 



ps

우에노 지즈코를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와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을 읽은 내 소감은 생명을 맹목하고, 비록 1인 가구더라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1948년생의 한계인가 하는 것...



내 기분을 비유하자면 <쇼생크탈출>의 앤디의 기분인 것이다. 감옥은 감옥이라는 것. 그곳에 적응해서 안락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탈출하고 싶다는 거다. 나에게는 삶이 그렇다. 물론 어쩌다 가끔은 좋지, 즐겁지, 행복하지. 그렇지만 삶은 대체로 불쾌하다. 왜 불쾌하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내가 내 기분 좋으려고 새하얀 디올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을 탄다. 그러면 누군가는 내 신발을 밟는다. 그게 내가 말하는 불쾌다. 그 불쾌를 당하지 않으려면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나 신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겹다, 이 삶이. 올봄 정장으로 새하얀 수트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런 새하얀 옷에는 꼭 타인이 뭔가를 묻힌다. 그러면 나는 당장 퇴근하고 집에 가야 한다. 얼룩 지우려고.


우에노 지즈코는 늙고 병들어도 치료받고 간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게 문명이고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런 걸 거부하지 말고 기꺼이 늙고 병들라고, 그것도 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도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각종 검사를 받고 또 결과를 기다리고 몇 개월치의 목숨을 구걸해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 만사가 다 귀찮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 번거로운 절차들은 다 뭔가.' 싶은 거다. 심지어 오늘은 간호사가 수액 바늘을 잘못 찌르고 반창고를 붙여놔서 나중에 보니 피가 소주 반컵 정도 흘러서 고여 있었다. 난 뭔가 차갑다 하는 정도의 느낌은 있었지만, 병원 천장을 보면서 난 죽을 때까지 이 짓을 해야하는 구나 하면서 아무 의욕도 없이 있었다. 그 차갑던 건 식은 내 피였다.


나는 내 건강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 몸에 해로운 건 하나도 하지 않는데도 건강이 나쁜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망상에 지나지 않는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100세까지 살 계획을 세우면서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해야 하나? 60살 이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생각도 없다. 지금 당장 내가 나이 앞에 5를 달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100세 시대라고? 그건 70세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지 나처럼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서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른 우주의 일처럼 아무 감흥이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즐겁고 싶다, 그 생각 뿐이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의학기술만을 바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나는 그냥 안락사하고 싶다. 나에게 삶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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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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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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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1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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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4: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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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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