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숲에 버려져 소리가 나지 않는 피아노, 그러나 밤중에는 누군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숲을 울린다... 처음에는 미스터리 스릴러인 줄 알았다. ^^ 아니면 소년의 성장 드라마이거나. 성장 드라마인 건 맞는데, 진짜 피아노가 나오는 음악 만화였다. 2권쯤 읽을 때까지도 두 소년의 순수한 우정이 결국 경쟁과 대립으로 치닫는, 뻔한 구도려니 생각하고 별 감흥 없이 읽었다. 그러나 볼수록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 설정이 절대 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조금씩 감탄하게 되었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삼은 만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난한 천재와 여건 좋은 수재의 경쟁을 흔히 볼 수 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도 높고, 좋은 여건에서 교육 받아온 수재는 보통 사람들의 선망을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평범한 가정마저 갖지 못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가 깜짝 놀랄 만한 재능을 선보이며 어렵사리 꿈을 이루어가고, 이 과정에서 수재는 이 불운한 천재를 시샘하고 질투한다. <유리가면>에서부터 봐온 설정이다. 왜 천재는 늘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숨어 있을까? 사실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사회에서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주변 여건을 갖춘 경우가 많다. 꼭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예술을 평소 즐길 정도는 되는 여유, 어릴 적에 재능을 알아보는 부모의 안목, 그런 바탕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천재가 나타나는 경우는, 있다 하더라도 극히 드물 것이다. 실제 세상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극중에서나마 우리 가운데 그런 특별한 존재가 나왔으면 하고 소망하는 게 아닐까?

9권까지 읽으면서 뒤로 갈수록 이 만화가 좋아졌다. 우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노력형 수재 야마미야 슈우헤이가 미운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 좋다. 1, 2권에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이찌노세 카이에게 슈우헤이가 보여주는 우정은 눈물겹기 그지없다. 어릴 적의 순수한 우정이 성장하면서 미움으로 바뀌나(아, 뻔한 상상력...)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는 1등만이 전부가 아니다. 카이의 스승인 아지노 소우스케와 슈우헤이의 전범(典範)이 되는 아버지 야마미야 요우이찌로우, 두 사람의 관계는 슈우헤이와 카이의 관계와 똑같다. 야마미야 요우이찌로우가 아지노에게 느꼈던 열등감을 슈우헤이는 카이에게 똑같이 느낀다. 그러나 야마미야와 아지노는 적이 아니다. 야마미야는 아지노를 이긴 적이 없지만, 그렇다 해서 야마미야의 피아노 연주가 가치 없는 게 되지는 않는다. 야마미야의 연주에도 그만의 힘이 있고, 그만의 아름다움, 효능이 있다. 슈우헤이가 아지노를 동경하고 숭배하면서도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를 받아들이는 장면은, 그래서 참 마음에 들었다.

또 콩쿠르에서 1등은 하지 못하고 2, 3등이나 특별상만을 받는 아이, 마루야마 다카코가 있다. 다카코는 처음 참가한 콩쿠르에서 카이의 독창적인 연주가 인정받지 못하자, 이에 저항하고자 여러 콩쿠르에 참가, 규격을 탈피해 연주한다. 1등은 하지 못하지만 다카코의 연주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든 사람이 1등만 하려고 하고 1등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이들은 더 피아노를 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슈우헤이의 아버지가 슈우헤이를 대하는 방식도 좋다. 아버지는 거만한 권위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고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 한계를 깨뜨리고자 노력하는 선량한 인간이다. 그는 아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경쟁심을 아들에게 대물림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찌노세 카이가 괴물이 아닌 점이 좋다. 카이가 천재라고 해도, 세 살 때부터 줄곧 버려진 피아노를 가지고 놀았다면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슈우헤이와 마찬가지로 “배운” 것이다. 규격에 맞춰 훈육되었느냐 스스로 자유롭게 습득했느냐, 그 차이가 두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갈라놓았을 뿐이다. 카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만들지 않는다. 카이는 열심히 노력해서, 성심을 다해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 재주로써 사람들과 함께 즐긴다.

10권이 곧 나온다는데, 몇 권까지 이어질까.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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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8-20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려주신 날개님께 감사! ^^

로드무비 2005-08-20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너무 좋죠?
같은 작가 것으로 <좋은 친구들>이라고 있는데 너무 웃겨요.
그림도 끝내주게 재밌고요.^^

로드무비 2005-08-20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렇게 생긴 책!

숨은아이 2005-08-2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드무비님, 고맙습니다.

superfrog 2005-08-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 만화 왠지 별로..^^;; 어른도 아이 같은 그림체도 그다지 눈에 안 들어오고요. ㅎㅎ <하라다 소년사>도 좀 산만하고.
그래도 숨은님 리뷰는 좋아요..!

날개 2005-08-2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금붕어님, 뜻밖입니다....! 이 책이 별로셨다니....ㅜ.ㅠ 저는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이거든요~
여하튼.. 숨은아이님 리뷰 넘 좋네요~!!^^

깍두기 2005-08-2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5권까진가 나올때까지 봤는데 어느덧 9권인가 봐요. 완결될 때까지 참아야지.
만화는 그게 괴로워요ㅠ.ㅠ

숨은아이 2005-08-2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고마워요! 저도 이 만화 그림체가 쪼끔 더 섹시했으면 하는 소망이... ^^
날개님/헤헷, 말씀해주신 대로 두어 번 더 보고 돌려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깍두기님/그러게요, 한참 뒤에 보면 앞의 내용 다 까먹어서 다시 봐야 하고... 근데 8권, 9권이 아주 재밌습니다.
새벽별님/저도 슈우헤이가 좋아요. 그리고 9권 끄트머리에 나타난 사에도! >ㅂ<

바람돌이 2005-08-2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친구들과 같은 작가의 것이군요. 구해서 읽어봐야지... ^^

숨은아이 2005-08-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그 작품을 먼저 보셨군요. 오...

superfrog 2005-08-2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맞아요!! 님이 딱 집으셨어요. 제 바람이 바로 그겁니다..흐흐..^^
가끔 이 작품, 다른 사람이 그리거나 만들거나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만화나 영화들이 있는데 이 <피아노의 숲>이 여기 속해요..^^ 소년만화에 아주 적절한 그림이라고나 할까..;;

숨은아이 2005-08-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그래도 나름대로 귀엽잖아요. ^^

릴케 현상 2005-08-2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권까지 봤는지 기억이 안 나요-_- 우리동네 만화방 전멸해서 넘 슬퍼

숨은아이 2005-08-2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저런. -_-;
 
벼룩만화 총서 세트 1차분 - 전8권
조안 스파르.드니 부르도 외 지음, 유재명 외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책을 매우 느리게 읽는 편인데(남들은 20분이면 한 권 보는 만화책도 한 시간씩 걸림), 24쪽짜리 벼룩만화 한 권 읽는 데는 10분 정도 걸린다. 서너 정거장 정도 되는 짧은 거리를 전철로 가는 동안, 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다른 사람을 기다릴 때 한 권씩 읽으면 딱 맞는다. 한권 한권, 개성 넘치고 의미심장하면서도 픽픽 웃음이 난다. 마음은 무거운데 웃음은 가볍다.


이웃들 LES VOISINS/드니 부르도 DENIS BOURDAUD
“경제는 심리”란 말이 떠올랐다. 소비 심리 위축 → 소비 위축 → 불경기 → 기업의 매출 이익 감소에 따른 감원 → 실업률 증가 → 소비 더욱 위축, 불경기 지속. 참 모순이다. 하지만 모순투성이 인간사도 기나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의 한 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 noyé le poisson/조안 스파르 joann sfar
순환, 윤회, 공(空)인가. 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봐 넘겨도 된다.

산란 주의 omelette/j.c. menu
어휴, 웃음이 새어나오면서도, 한편으론 알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새의 노력과 거듭되는 실패가 안타깝다. 결국 껑충 높은 자존심을 아프게 잘라낸 끝에(그러니까 자기 존재의 특성을 스스로 포기하고난 뒤에야) 간신히 알을 온전히 낳을 수 있었건만, 알을 깨고 나온 새끼는 어미새와 너무나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서, 자기 특성을 버린 어미를 비웃고 만다. 어미가 된다는 건 스스로를 버리는 행위인가? 혹시 자기 자신의 감춰진 면모를 새로이 발견하는 과정은 아닐까.

황당한 氏 이야기 L'HOMME-AUTRUCHE / 스타니슬라스 STANiSLAS
현대 남자는 갖추도록 요구받는 것이 많은가 보다. 첫째, 그럼 현대 이전에는 그런 게 없었나? 둘째, 대체 누가 그런 요구의 기준을 만들어냈을까? 셋째, 그런 요구는 남자만 받는가? 나는 안 웃기다.

목매 죽은 꼬마의 발라드 la ballade du petit pendu / 땅끄렐 tanquerelle
이 꼬마는 왜 목을 매달았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죽어서 스스로 숨쉬지 않게 되고, 의지에 따라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게 된 순간, 꼬마의 육신은 자연물이 된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 건드리거나 무시하거나 잡아먹거나 내던지는 자연물. 그런데 인간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죽음 CREVAISON / 사르동 SARDON
집안에서 죽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다. 집안, 가족은 안전한 보루가 아닌 게야. 뻔한 기대를 뒤집는, 마지막의 산뜻한 반전이 빛난다.

엄마는 문제가 있다 MAMAN A DES PROBLEMES / 바루 & 다비드 B. Baraou & David B.
문제는 엄마에게만 있을까?

야만-다섯 손가락에게 LA BÊTE-À CINQ DOIGTS/토마스 오뜨 THOMAS OTT
전기의자 사형의 전 과정을 손의 움직임만으로 표현했다. 엄숙하다.


책제목과 작가 이름을 대문자 소문자 번갈아 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스타니슬라스는 다 대문자인데 i만 소문자로 쓰기도 했다. 작가들이 일부러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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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8-1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고도 리뷰 쓰신 분 몇 되던데요. ^^

바람구두 2005-08-1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그, 그런가요?

클리오 2005-08-1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흑... 저는 글자가 없으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더라구요... ^^;;

숨은아이 2005-08-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글타고 댓글을 지우실 것까지야... ^^
클리오님/머 내 맘대로 생각하는 거죠. ^^
 
행복한 엄마 마리아
공선옥 지음, 서진선 그림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4년 4월
품절


순전히 공선옥이 글을 쓴 책이라서 샀어요.
처음 책을 받고는, 이크, 성모 마리아 이야기야?
종교 그림책인 줄 알았으면 안 살 것을 괜히 샀다 싶었어요.
그런데 다 보고 났더니, 이 책의 주제는 다른 게 아니라
"아이를 가진 엄마의 기쁨"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첫 장, 수줍게 벽 뒤에 숨어 고개를 살짝 내민 마리아.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천사에게 전해 들은 요셉. 심란해 보이죠? ㅎㅎ

늙어서 임신한 엘리사벳,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마리아.
엘리사벳은 사도 요한을 낳고, 마리아는 예수를 낳게 되지요.
그러나 그게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날의 사회에서라면 두 사람의 임신은 참 곤란한 상황일 텐데,
그림 속 두 엄마의 표정은 참으로 고맙고 뿌듯하구나...
우리 엄마도 이렇게 고맙고 뿌듯하게 나를 가지고 키웠을까요?

예수가 태어난 밤도 참 소박하고 은은하게 표현했네요.
별이 마구간을 비추고, 누구보다 먼저 양 치는 목동들이 달려옵니다.

위 그림에서 마구간 부분만 클로즈업.

마리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네요.
메시아가 세상을 구원하는 무슨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구세주를 낳는다는 한 가지 구실을 담당하는,
소모적이고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린 그 순간이
개운하고 행복한, 단순한 엄마예요. 이 그림 속의 마리아는.

그래서 이 그림책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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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8-0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바오로딸 책이군요 공선옥씨가 이런 것도 썼군요^^
숨은아이님 요즘 뜸하시네 좀 자주 출몰해주세요

숨은아이 2005-08-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 하순에는 날씨가 더워 무기력증에 빠졌고, 지난주에는 이사 때문에 며칠 비웠죠.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

내가없는 이 안 2005-08-0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속의 요셉과 마리아는 정말 우리 같은 사람이네요. 둥글둥글 동글동글. 아기 예수도 얼굴 발그레하고 암것도 모른 체 젖만 열심히 빠는 게, 정말 예뻐요. 전 예전에 축구하는 귀여운 예수 캐릭터 보고 너무 좋아했어요. ^^
님 표현이 참 맘에 들어요.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소모적이고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젖을 물린 그 순간이 '개운'하고 행복한 '단순'한 엄마라니. 그림에도 정말 그래 보여요... ^^

숨은아이 2005-08-0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맘에 드신다니 기뻐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교감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 교감과 우정이란 처음엔 그저 생겨날지 몰라도, 잃지 않으려면 정성을 기울여 지키고 키워야 한다는 걸, 루트 모자가 보여주었다.

책갈피에 메모지와 연필을 끼워두었다가, 박사가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연필을 꺼낼 때면 나도 따라서 메모지에 연필로 약수를 구하고 소인수를 더했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건 그런 덧셈 정도. 그냥 눈으로 읽어 넘기지 말고 따라서 셈해봐야 제 맛이다.

소설을 이끄는 “나”는 박사를 돌봐주는 파출부. “나”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담백하고도 맛깔스럽다. 박사가 “음식을 만드는 자네 모습이 좋아.” 할 때는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그런데 궁금한 점 하나. 이 파출부는 된장국이나 생선구이 같은 건 잘 만들지 않는지, 나오는 음식이 주로 스튜니 소테니 샐러드니 새우칵테일이니, 거의 전부 서양 음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도 음식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데, 대개 서양 요리라서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사람들의 평소 식생활이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지만도 않을 텐데...

박사가 사랑한 수식 博士の愛した數式 (2003)
오가와 요코 小川洋子 지음 / 김난주 옮김 / 이레(2004)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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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5-07-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계산까지나.^^ 책을 아주 제대로 드셨군요~^^

숨은아이 2005-07-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진/우맘님 리뷰 보고서 읽으려고 맘먹었어요. 박사처럼 단정하게 계산해야 제대로일 텐데, 메모지 뒷면에 괴발개발 썼기 땜에... ^^

릴케 현상 2005-07-0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난주씨 번역이 어떤가요? 전 유명한 줄만 알지 읽은 적이 없었는데^^ 어제 키친을 읽으니 글이 어색하더군요. 이상한 명사형 문장들 등이 초벌 같은...그게 바나나의 문장을 살린 결관가요?

숨은아이 2005-07-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바나나 책은 아직 안 읽어서... ^^;; 이 책은 술술 잘 읽혀요.
 
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우리 집엔, 한옥 마루에 어울리지 않게 소파와 탁자가 있었다. 나는 소파에 점잖게 앉기보다, 소파와 탁자 사이 비좁은 공간에 누워 책 읽기를 좋아했다. 처음엔 소파에 앉았다가, 그다음엔 소파에 누워 등받이에 발을 올렸다가(그러니까 소파에 거꾸로 앉은 셈이다), 결국은 소파 아래로 내려와 마루에 엎드리다가 배를 깔고 눕다가 모로 눕다가... 알고 보니 어린 아이들은 모두 좁은 공간(책상 아래 같은)에 파고드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그림책을 벌리고 마치 집처럼 세우며 놀기도 했는데, 그렇게 새로 “공간”을 만들며, 또 찾으면서, 나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이 책에 실린 미하엘 엔데의 환상 소설 여덟 편을 읽노라니, 놀라운 공간 마술 쇼를 퍼레이드로 보는 기분이 든다. 눈앞에 빤히 보이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 분명 두툼하니 부피가 느껴지는데 실은 종잇장처럼 얇은 공간. 세계는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고, 그러나 가다 보면 문득 기적의 장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체험한 사람들도 그 기억을 물어보면 이야기는 다 각각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과 공간은 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들 수만큼 존재하는 게 아닌가. 눈앞에 빤히 보이는 게 진실이라는 믿음은, 사실은 착각?!

첫 번째 이야기 “긴 여행의 목표”는 여덟 편 중에서 가장 길다. 92쪽에 걸쳐 펼쳐지는 이 이야기의 허무와 공포에 질릴 듯하다가, 다음에 이어진 3부작 공간 마술 “보르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찮아”에서 숨통이 트였다.

두 번째로 긴 작품 “미스라임의 동굴”은 다른 일곱 편과 좀 색깔이 다르다. ‘안락한 체제라는 전체주의’란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 <큐브>의 결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뒤를 이은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에 나오는 ‘완벽한 도시’ 첸트룸과 미스라임의 동굴은 얼마나 다른 공간일까?

“자유의 감옥”은 선과 악을 공유하는 신의 모순과, 전적인 자유란 곧 감옥이라는 모순을 도식화해서 보여준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 문을 열었을 텐데.) ‘안전하다는 믿음’이 자유로운 선택의 전제라면,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질문을 남긴다.

마지막 작품 “길잡이의 전설”을 읽고, 옮긴이의 해설을 보니, 작가 미하엘 엔데는 1995년 세상을 떠났고, 이 책은 1992년 발표되었다. 그렇담 “길잡이의 전설”이 작가의 마지막 작품일까? 모르는 일이지만, 왠지 작가가 마지막으로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의 감옥 - All Age Classics | 원제 Das Gefa"ngnis der Freiheit (1992)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 (지은이), 이병서 (옮긴이) | 보물창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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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2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앞에 빤히 보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
그런 게 저마다에게 하나씩 있지요.
당장 읽어보고 싶게 리뷰 쓰셨네요.^^

숨은아이 2005-06-2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히히, 감사!

Phantomlady 2005-06-2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간과 공간은 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들 수만큼 존재하는 게 아닌가.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보관함에 담아요. ^^

숨은아이 2005-06-2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그 말은 "보르메오 콜미의 통로"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표현은 바꿨지만) 쓴 거랍니다. :-)

balmas 2005-06-2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꼭 사고 싶게 리뷰를 쓰시네요. ^_____________^
사실 저도 어렸을 때 좁은 곳에 들어가기를 상당히 좋아했다죠.
가령 진공관 TV 밑이라든가 ... ㅋㅋ

숨은아이 2005-06-2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꼭 사고 싶으시다구요? 정말요? ^_^ 근데 TV 밑은 너무 좁지 않나요? ㅎㅎ

내가없는 이 안 2005-06-2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실 지난번에 이 리뷰 봤는데요, 새벽에 5시가 되는 바람에 못 달았거든요.
전 이 책 아직 못 봤는데, 님 리뷰 보면서 더는 미룰 수 없는걸요. ^^
게다가 님 '큐브' 얘기까지 거론하시니... 그 영화 정말 소름이 돋았거든요.
지금 로알드 달의 책을 읽는데 같은 동화를 썼더라도 두 사람, 참 다르네요.
물론 둘 다 거장 소리 들을 만하구요.
그런데 공간 찾아 들어가는 습관이 님 닉네임과 너무 잘 맞네요. ^^

숨은아이 2005-06-2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주로 새벽에 거동하시는 이안님... ^^ 전 지금도 방에 콕 박혀 집 밖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척 살금살금 꼼지락거리는 거 좋아한답니다. 후후.

플레져 2005-06-2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파와 탁자사이처럼 저는 피아노와 피아노 의자사이를 좋아했어요. 피아노 건반이 지붕 같아서 아주~ 흡족한 어둠의 자식으로 돌변할 수 있었죠. ㅎ
시간과 공간이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니... 엔데스러우십니다 ^^ (엔데를 읽어본 적 없는데도...이런 말을 하다니하다니...^^;;;)
백번째 리뷰, 구매욕을 끌어당기는 리뷰, 참 좋습니다...

숨은아이 2005-06-2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아하 피아노는 그렇겠군요. 백 번째...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중 밑줄긋기가 꽤 끼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