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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자연을 닮은 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에 다녀왔다. 두 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 주셨다. 평소에 자주 걸으셔서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다리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수줍은 신혼부부처럼 손 꼭 잡고 하트도 날리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셨다. 꽃향기 맡으며 감탄사를 쉴 새 없이 날리는 엄마는 마냥 소녀 같으셨다. 한 달에 한번 모시고 다녀야지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우연히 정호승 시인의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를 펼쳤는데 시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 무릎에 대고 누워 잠든 적이 언제였을까? 엄마랑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힘들 때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힘을 주시는 분은 늘 엄마였다. 어릴 적 엄마는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셨다. 하수구에 사는 생물들이 놀란다는 이유였다. 또한 밥을 드실 때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먹을 밥은 남겨 놓으셨다. 밥이 부족해 엄마가 덜 드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말은 못 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예, 알았심더/나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눈물이 글썽했다.”
부모님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 한 송이 꺾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이 힘들게 농사지은 고구마 한 톨 탐하지 않으셨다. 삶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셨다.
동시를 읽으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유년시절의 추억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의 말처럼 동시를 읽으며 잠시 어린이가 되어도 좋다. 이 시집은 특히 어른이 읽으면 좋을 글이 가득하다.
사계절의 시작 ‘봄’ 이라는 단어는 ‘~을 보다’ 에서 어원 했다고 한다. 산과 들, 주변에 피어난 꽃, 연두 빛 나뭇잎을 많이 보라는 의미에서 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