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넘어지는 연습 -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조준호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11월
평점 :
얼마 전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에서 전 유도선수 조준호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책 읽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는 유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간 날 때 '논어' 등 인문도서 읽기가 취미란다.
"공자의 논어는 옆에 끼고 살았다. 삶에 필요한 성찰은 감사하게도 이미 과거에 철학자들이 다 해놨으니까. 우리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색하고 고민할 시간이 모자라서 공자의 사색과 고민에 기대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며 현재 용인대학교 유도 코치인 조준호 선수의 책 '잘 넘어지는 연습(생각정원)'을 읽었다. 그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삶이라면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잘 넘어지는 연습을 통해 여유를 갖고 서서히 일어나라고 말한다. "어차피 넘어질 수밖에 없다면 잘 넘어질 것,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유도와 사이클 선수는 잘 넘어지는 연습부터 한단다. 여러 번 넘어져본 사람이 넘어지는 이유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대입해도 좋을 구절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스스로를 다독이는 응원이 필요하다.
그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고 국가대표가 되었지만 3년 동안 일곱 번의 국제대회 내내 1회전에서 탈락했다. 한때 좌절하기도 했지만 다른 선수에게 기술을 배우고 체력을 키우며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는 그에게 동메달이 아쉽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재능보다는 노력의 힘이었기에 충분히 만족한단다. 세 평의 유도장이 아닌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26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만으로 유도장을 차렸지만 6개월 동안 회원이 없어 고전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다독가가 되었고 독서토론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 나갔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유도장도 정상 궤도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호기롭게 은퇴하고 유도장을 차릴 때 나는 많이 조급했던것 같다. 내가 은퇴한 운동선수 신분이 됐을때 사람들이 보낸 동정과 걱정의 눈빛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안정적으로 지속해오던 일을 그만두는 것은 나의 소신있는 선택이기 이전에 제 기능을 다해 재활용도 어려운 재료로 낙인 찍히는 일이었다. 그 찝찝한 동정과 씁쓸한 걱정들은 나를 자꾸만 실패자로, 중간에 포기한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무너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에게 '그리고'의 시간을 주지 못했다.
넘어진 다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잠깐은 창피함을 견뎌야 하고, 상처를 살펴야 하며, 가빠진 호흡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잘 일어날 수 있다. 유도에서도 낙법을 친 다음에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른다음 천천히 일어나 도복을 단정하게 정리한다. 그래서 '잘 넘어지는 일'과 '잘 일어서는 일' 사이에는 '그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는 넘어져서 입은 상처와 통증을 찬찬히 바라볼 여유다. 왜 넘어졌는지에 대한,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일어서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다."
저자는 젊은 나이지만 삶의 깊이가 있고 나름의 철학이 있다. 은퇴 후 특별한 꿈은 없지만 매일 열정의 삶을 살면서 몰입할 것이 있음에 감사했다. 어릴 때부터 유도를 했지만 이기려고 기를 쓰는 선수가 아닌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자랄 수 있도록 한 부모의 남다른 교육철학도 빛났다.
우리도서관에서 10월 27일에 '잘 넘어지는 연습'을 주제로 조준호 강연회가 열린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도움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