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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6월
평점 :
파란 하늘빛이 고운 가을에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몸이 들썩인다. 이럴 때 가벼운 소설이 끌린다. 소설을 선택하는 기준은 평소에 눈여겨본 저자의 책이다. 김탁환 소설가는 고전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에서 전업 작가가 되었다.
딸아이가 집에 왔을때 적극 추천한 책 '이토록 고고한 연예(김탁환 저. 북스피어)'를 둘이 함께 읽었다. 다 읽은 후에 나는 딸에게 "대체 누구와의 연애담이지?"하고 말했다. 제목을 '이토록 고고한 연애'로 읽은 것이다. 고정관념이란...
오래 전 이외수의 소설 '벽오금학도'를 읽었을 때의 몰입감이다. 모처럼 근사한 소설 읽는 재미를 즐겼다. 주인공 달문은 연암 박지원의 소설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달문은 청계천 수표교 거지패 왕초이며 광대였다. 정의로운 성품과 다재다능한 재주로 역사서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다. 저자는 매설가(소설가)가 꿈인 인삼가게 주인 모독의 눈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궁핍한 삶, 탐관오리의 횡포를 이겨내고자 노력한 달문의 휴머니즘을 려냈다.
달문의 외모를 평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광문은 외모가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입이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했다.' 반면에 달문을 평생 사모했던 기생 운심은 달문을 이 나라 최고의 미남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바위처럼 불변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며 채워 나가는 거랍니다. 잘리거나 뽑힌 나무보다 잎을 피우고 가지를 뻗는 나무가 훨씬 아름다운 법이죠. 달문 오라버니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아름다움을 채워나가는 사내는 없어요. 분명히 더럽고 추한 자리였는데 순간순간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채우니 놀라고 탄복하죠. 달문 오라버니도 자신이 그런 재주를 지녔다는 걸 알아요. 아름다움이 무엇이란 걸 아는 사내는 만 명에 한 명 될까 말까 하고, 그 아름다움을 솜씨 좋게 만드는 사내는 그걸 아는 만 명 중에서 또 한두 명이랍니다. 모독 오라버니는 이런 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 적 없죠?"
달문은 비루한 거지이며 광대였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평생 한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선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홍길동' 이었다. 소설에는 간헐적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곁들인 '열하일기'와 활빈당의 활약도, '구운몽'을 들려준다. 저자의 고전문학 전공이 빛나는 순간이다. 달문은 누군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자칫 죽음을 당할수도 있었지만 용서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 믿음을 중요시하는 삶 자체였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에 반했다.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이 멋지네. 닮고 싶은 달문이다. 외모는 말고, 성격만!
달문의 삶을 소개하며 저자는 말했다. “달문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다시 만날지 확신하기 어렵다. 내 인생에 한없이 좋은 사람을 써야 한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뜨거운 촛불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