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오전 맑음. 오후 소나기 오전 5도 오후 19도 하우스 온도 오전 18도 오후 29도

 

오전엔 볍씨 모판을 만들기 위한 육묘장 정리를 했다. 10번 하우스의 땅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트랙터로 로타리를 친 후 트랙터 바퀴로 땅을 다졌다. 바퀴가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2차로 트럭을 하우스 안으로 집어넣어 왔다갔다 하며 평평하게 만들었다. 아직 운전이 서툰 L씨에게 트럭을 운전하도록 했다. 일종의 운전 연수인 셈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타는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클러치 쪽에 문제가 발생한 듯한 낌새다. 큰 문제는 아닌것 같아 한숨 돌렸다.

 

평탄화 작업을 하면서 하우스 안의 풀들을 깨끗이 치워냈다. 하우스는 일종의 사막이라고 했다. 물론 10번 하우스는 찢긴 상태로 오래 있다보니 사막이라 하기에는 적정치가 않다. 그래서일까. 정말 다양한 풀들이 자신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면서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비록 인간의 욕심에 의해 작물만이 선택되고 다른 풀들은 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온힘을 다해 자라고 있다.

 

다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또한 생명이다. 똑같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 자신의 생명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 그 모습을 닮고 싶다.

 

오후엔 괴산군농업연구소에서 유기농산물, 유기가공품 인증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외국에 비해서도 너무나 까다롭고 복잡한 인증제에 혀를 내둘렀다. 농부가 100% 농약 사용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농자재 중 어느 하나가 사업체의 비양심적 행태로 인해 농약이 들어가 있는 경우 유기농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철저한 제도가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얼마만큼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땅도 살고 농부도 살고 소비자도 살고 지구도 사는 길. 가까운 듯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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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맑음 오전 4도 오후 19도 하우스 안 온도 오전 18도 오후 29도

 

오늘은 하루 종일 감자밭에서 북주기를 했다. 오전에 두둑 2줄, 오후에 2줄. 1줄이 대략 60미터쯤 되는데, 정말 정말 먼 거리다. 달리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쪼그리고 앉아 흙을 퍼올리는데 2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가롭고 여유롭지만 그 풍경 속 주인공은 대부분 힘에 겨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허리, 무릎, 손목, 어깨...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속도를 잊고 싶어 도시를 떠났건만, 시골이라고 속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작물의 재배 시기를 놓치면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에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날마다가 아니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리고 이런 속도 올리기가 자연과 함께라는 것이 또다른 차이점이기도 하다.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농부의 마음에 작물은 꼭 보답을 한다. 3주 전에 심었던 아스파라거스가 꽃샘추위를 이기고 순을 내놓았다. 하나 살작 꺾어 맛을 보았다. 상큼하다. 이것이 시골의 속도가 주는 기쁨인가 보다.

 

조선배추꽃도 한창이다. 그 어떤 노란꽃들보다도 더 샛노랗다. 물감에 한번 푹 담갔다 꺼내놓은듯한 선명함에 눈이 부실 정도다.

 

저 멀리 산 속 과수원에 복숭아꽃도 한창이다. 사과나무엔 새 잎이 나고, 꽃도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을 수확을 위한 농부의 봄은 하루하루가 더디면서도 빠르다.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할 땐 너무나도 느릿느릿 해가 움직인다. 그러나 오늘 마감지어야 할 일 앞에선 해님은 번개와 친구가 된다. 그 속도의 변덕 속에 하우스 속 농부의 봄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봄 천천히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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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맑음 오전 3도 오후 20도 하우스 내 온도 오전 18도 오후 28도

 

오전엔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핑크체리라는 품종이다. 너무 웃자라고 늙었다고 해서 바삐 심었다. 매일 매일 허리 필 날이 별로 없다.

 

3번 하우스에 40센티미터 간격으로 5두둑에 600주를 심고 나니 허리가 무너질 것 같다. 방울토마토 심는 법은 고추와 비슷하다. 단 접목을 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흙을 덮어주는 양상이 달라진다. 접목은 뿌리가 강한 것과 성장을 잘 하는 것의 장점을 합한 경우가 많은데 흙을 접목 부위 이상으로 덮어버리면 강한 뿌리의 장점이 사라진다. 따라서 접목을 한 방울토마토의 경우 흙을 덮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심어야 한다.

 

모종을 다 심은 후 점적호스를 통해 물주기를 시도했다. 원래 흘려주기를 하는데 점적호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삼는 겸 물을 틀어보았다. 하우스 3개동 총 15개 호스 중 2개가 말썽이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오후엔 하우스 2개동을 토양관리할 계획이었다. 두둑을 만들고 멀칭을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 채소의 달인 농사꾼께서 농장을 한번 둘러보시고 나더니 감자 북주기를 해야 할 시기라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북주기란 뿌리 주위에 흙을 덮어주는 것으로 잡초억제, 배수, 지주역할, 뿌리 강화 등의 기능을 한다.

 

흙을 퍼서 감자 뿌리 주위에 덮어주는 작업이 계속됐다. 아침에 토마토를 심은 것은 그야말로 예열단계였다. 11두둑 정도를 덮고나니 허리를 피는 것 자체가 힘이 들 정도로 아프다. 농사일은 허리힘이라더니...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우스 안이 아니라 노지였다는 것. 산들바람이라도 불어줘 땀을 식혀주니 다행이다.

 

바로 앞 언덕에 조팝나무가 꽃이 한창이다. 서울 남산의 한옥마을에도 조팝나무가 무성했는데... 점심시간 산책을 하며 즐기던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고된 밭일을 하는 농부의 설움이 묻어난듯 하얀색이 서글퍼보인다.

 

저녁엔 흙살림 공장에서 일하시다 퇴사하는 세 분을 위한 환송식이 있었다. 삼겹살과 막걸리가 오가는 조촐한 식사였다. 흙을 닮은 사람들이라서일까. 거추장한 허례허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꼽만큼도 없다. 환송식이 끝나고 숙소엔 연수생들만 남았다. 막걸리 한사발 들이킨 큰 형님이 오디오를 틀어놓았다. 장사익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듯 반짝거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다. 대학시절 MT에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땐 통기타가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늘 시골밤 마당에선 막걸리와 장사익의 목소리가 걸쭉하게 가슴 속에 얹혀진다. 밤이 깊어간다. 숯불의 온기도 사그라든다. 가슴은 어디에서 새어나온지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젖어든다. 아마도 사람이 준 상처였을 것이다. 흙을 만지다보면 그 상처들이 비록 흉터를 남길지라도 곪지는 않도록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젖은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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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오전 비 오후 갬 오전 10도 오후 17도

 

아침 집에서 나오는 길. 딸아이가 눈을 떴다. 아이가 잠이 깨기 전에 괴산으로 길을 떠났는데 지난주부터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지난주는 비몽사몽 간에 자기도 어디 밖엔가 나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더니 이번주엔 "아빠, 나랑 놀아, 가지마"라며 눈물을 흘린다. 어이쿠. 전화 걸땐 전화도 안받던 아이가 눈물을 흘리니 내 눈시울도 뜨끈해진다. 아빠가 몇일간 집을 비운다는 걸 이제서야 실감한걸까. 뽀뽀한번 하고 나서 "빨리 올게" 말하고 나니 그제서야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휴, 그나마 웃는 얼굴을 보고서 문밖을 나서니 다행이다. 이녀석, 물론 오늘 저녁만 되도 전화를 걸면 받지 않을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눈물이 힘이 된다. 이녀석한테 내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이 녀석아, 너 때문에 내가 힘이 난다. 내가 산다.'

 

오후엔 고추모종을 심는라 또 허리가 빠개졌다. 하우스 3동과 7동(두둑 만드는 작업도 함께 함)에 각각 녹광과 흥농시교(시교란 시험재배하는 품종을 말한다)를 심었다. 3동엔 가운데 두둑에 45센티미터, 양쪽 네 두둑은 40센티미터, 7동엔 5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었다. 이렇게 가지각색으로 심게 된건 사공이 많기 때문. 지시하는 사람이 두세명이다 보니 엇박자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엇박자가 때론 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작물이 어떻게 자랄지 다양한 상태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작물의 시험은 그 주기가 너무 길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가 어려운데 연구소이다 보니 이래저래 도움을 받는 구석도 있다.

 

모종을 심기 위해선 먼저 구멍을 뚫고 물을 준 후, 물이 다 빠져 나가면 모종을 심고 흙을 덮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물을 준다. 이것은 모종이 활착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즉 뿌리가 흙에 잘 안착하여 죽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다. 노지에선 흙을 덮은 후 물을 주는 부분을 생략하기도 한다.

 

 

아무튼 지금 고추를 심는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노지에서 지금이 적기이니 많이 늦은 셈이다. 빠른 곳은 2주 전에 심었고, 2중 하우스의 경우엔 한두달 정도 전에 심어 수확을 앞둔 시기이기도 하다. 소장의 말씀에 따르면 하우스 비닐의 채광성이 떨어져서라는데, 아무튼 이번에 채광성이 좋은 비닐로 교체하면서 내년엔 좀더 빨리 작물을 심을 수 있을거라고 한다. 녹광(풋고추) 600주, 시교(건고추) 500주 정도를 심고 나니 다리 옮기기가 힘이 들 정도다. 허리 좀 펴고 삽시다! 거~  

 

고추를 다 심고나서 온도계를 달았다. 앞으로 영농일지를 담당하게 됐다. 이왕이면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어 하우스 내 작물이 어떤 온도에 있는지도 계속 점검해볼 생각이다. 으~ 일은 계속 늘어나는 구나. 그만큼 내 행복도 죽죽 늘어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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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진다. 때론 추레하게. 때론 화려하게. 꽃이 인생의 절정기라 느껴지지만 꽃이 져야 열매가 맺는다. 씨앗이 생긴다. 또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져야 사는 것이다.

 

아침이슬이 반짝인다. 햇볕이 내리쬐면 이들도 진다. 져야 자란다.

 

 

 

지는걸 안타까워 마라. 지는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은 새로운 시작이다. 또다시 꽃은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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