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비트 - Heartbeats
영화
평점 :
현재상영


1. 사랑, 특히 짝사랑에 대한 담론을 이미지로 풀어낸 감각적으로 담았다. 큐피드처럼 곱슬거리는 금발의 니콜라스에게 반한 마리에와 동성애자인 프란시스의 초조, 두근거림, 질투가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이십대 때 열광했던 왕가위 감독 영화들에서 봤던 장면들이 겹쳐진다. 가슴이나 턱을 쓰다듬는 손을 클로즈업하면서 음악이 흐른다. 섹스 씬이 따라 갈 수 없는 애로틱한 장면들다.

 

2. (짝)사랑을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들 모두 하는 말은 "미쳤어"다. 극중 마리에 역시 "내가 미쳤지"를 연발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미쳤거나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씀을 실행하는 인물들이다.

 

한 인터뷰이가 이런 말을 한다. 약속 시간에 늦은 상대를 기다리면서 삼십 분이 지나자 화가 절정에 달해서 상대가 오면 몰아붙여줘야지 했는데 40분이 다 되서 상대가 나타나고 그의 얼굴을 보자 화가 난 마음이 싹 풀어지면서 늦을 수도 있지,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이런 거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도 결국은 상대한테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 혼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화나는 일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이성은 안드로메다로 잠시 보내는 것. 마리에가 키콜라스한테 고백 편지를 보내고 초조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용기 내서 니콜라스에서 내 편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니콜라스는 지금 중요한 건 오븐에 넣은 음식이 타지 않게 오븐을 끄는 거라고, 하면서 등 돌려 마리에한테서 멀어진다. 마리에는 멀어져가는 니콜라스의 등을 보면서 부들부들 손을 떨며 담배를 물 수 밖에 없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시소 놀이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니 멀미 쯤은 감수해야한다.

 

 

3. 큐피드가 나이를 먹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만지고 싶은 머리결이다.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컴 - Welco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도 책도 건성으로 본 지 어언 한 달도 넘은 거 같다. 토요일 오후에 교보는 아비규환같아서 나갈 생각을 하니까 끔찍해서 월요일 오후로 미뤄두고 집에 주저앉아서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본 영화다. 별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면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싶은 욕구를 일깨우는 영화다.  

이라크 출신의 쿠르드 족인 비랄이란 열일곱 청년의 짧은 생을 통해 많은 걸 말한다. 영국해협을 건너기 위해 칼레까지 삼개월동안 걸어왔지만 결국 영국해협을 건너지 못한 채 칼레에 불법체류자로 남게 된다. 바다만 건너면 되는데....결국 그는 수영해서 건널 생각을 하고 칼레시 수영장에 강습을 받으러다니다 수영교사와 우정이 싹튼다.  

사람이 한 사람을 의심하는 단계에서 신뢰하는 단계로 이동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데 똑같은 값을 지불해도 불법체류자란 딱지는 테레리스트와 비슷한 레벨의 위험 경보를 울린다. 물론 그 위험 경보는 보는 사람이 매긴 경보 수위일 뿐이다. 수영교사인 시몽은 처음에 비랄을 위험한 불법체류자로 봤지만 곧 그의 비밀을 안다. 영국해협을 건너려는 그의 유일한 동기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비랄의 아버지뻘인 시몽은 청년의 순수한 패기에 반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잡지 못하고 이혼서류에 서명을 한 시몽은 인생이 즐거울 리 없다. 집에 돌아와도 텔레비전 리모콘이나 돌리고 있고 냉장고에서 맥주나 꺼내 홀짝인다.  

시몽이 왜 아내를 잡지 못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헤쳐갈 동기를 갖지 못했다. 자신의 삶에서도 관찰자 같았던 그가 비랄의 순수한 충동에 지지를 보내는 게 완전완전 이해가 갈 뿐 아니라 공감 백만배다.  

여자친구를 만나려는 비랄은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한채 죽는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프랑스의 차가운 시선은 미국이 불특정 다수를 테러리스트로 모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시몽은 비랄 대신 영국으로 가서 비랄의 여자친구를 만난다. 비랄은 죽었지만 시몽한테 삶에 대한 태도를 선물하고 갔다. 시몽이 비랄처럼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몽은 비랄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비랄의 육체적 죽음은 시몽한테 정신적으로 강렬한 현존으로 남아있을테니. 

한해가 또 다 가고 있어도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 얼굴보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사람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 (나를 포함해서) 에 익숙해진다.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육체적 죽음보다도 더 삭막하다. 무서운 건 육체적 부재가 아니라 정신적 부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 The Beaches of Agnè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녜스 할머니(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이렇게 부르고 싶어졌다) 영화는 <방랑자>로 처음 접했다. 상드린 보네르의 표정은, 영화 내내, 불만이 가득했다. 역동적이면서도 저항적이어서 할머니의 영화들을 여성주의 영화겠거니 편견을 갖게 됐다. 근데 요즘 아녜스 할머니 영화를 보니까 내 생각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편견이라는 게 증명된다.

이 영화는 아녜스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다. <낭트의 자코>에서 남편 자크 드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오프닝은, 바람이 몹시 부는 해변에서 거울 여러 개를 아무렇게나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울이 또 다른 거울 속 이미지를 잡을 수 있게 배치하느라 분주하다. 구부정한 등을 하고 스탭들한테 활기차게 여러 가지를 지시한다. 작업 과정을 보면서 집중력과 힘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조곤존곤 과거를 회상하는데 꼭 옛날 이야기를 듣는 거 같다. 대학을 다니다 문득 마르세이유로 떠나 고기잡이 뱃일을 3개월 할 정도로 의지력과 강단이 있고 설치 미술 전시회를 하면서 공연을 할 때, 천진한 표정은 오래 잔상이 남는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 글로는 부족해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할머니...머릿속 상상을 재현하는데 불가능은 없다고 믿는 것 처럼 보인다. 상상이 수정을 거쳐 어떤 물리적 결과로 나와서 몇 십년이 흘러도 그 기분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할머니의 재능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더불어 할머니의 동료는 고다르, 크리스 마르께 등 쟁쟁한 감독들의 여담도 보너스로 들을 수 있다.   

마지막에 "영화는 집이고 나는 그 집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집도 할머니도 더 이상 안 늙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라 푸앵트 쿠르트란 작은 어촌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영화인데 구성이 독특한다. 

두 편의 영화를 따로 찍어서 한 영화로 편집해 놓은 것 같다. 한 편은 어촌 마을의 일상을 다루었다. 허름하고 위생상태가 엉망인 어촌에서도 생명이 얼마나 생동감있게 파닥거리는지. 변변한 침대도 없는 좁은 집에 눈이 말똥말똥한 아이들, 이팔청춘의 남녀는 서로 자석처럼 끌린다. 프랑스 남부의 활기와 번잡함이 생에 대한 강한 파장을 일으킨다.  

촬영방식은 영화내용보다 더 감동적이다. 카메라가 뒤에서 쭈욱 앞으로 들어가거나 뒤로 빠진다. 인물은 종종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가고 사람이 빠진 자리에 고양이, 또는 바람의 흔적을 알리는 물건들, 햇볕과 볕이 만든 그림자가 프레임을 채운다. 마치 여행 스냅사진 같다. 사진을 전공한 바르다가 만든 첫 장편영화라고 하는데 바르다가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은 아주 매혹적이다. 마을의 일상도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 난다.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중심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옮기는 것 뿐인 것 같다. 

또 한 편은 두 남녀의 이야기다. 파리 출신의 여자와 라 푸앵트 쿠르트 출신의 남자가 헤어지기 위해 만난다. 두 사람이 마을 곳곳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오히려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확인한다. 편집이 알랭 레네인데 알랭 레네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쇼트들이 가득하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 의도된 클로즈업과 신체부위 분할. 표정없이 대사를 주고 받는 두 인물사이에 거리두기는 <지난해 마리앤바드에서>를 만들기 위한 습작같다.  

연인 역시 마을의 일부여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서 돋보기도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전체적 큰 그림이 마을 전체라면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이들은 말이야..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트의 자코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전기 영화는 진부해지기 쉽다. 한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감독의 시선이 관객한테는 그저 아이같은 천진함처럼 보여지고 감독이 묘사한 인물에 대해서는 정작 심드렁해지기 일쑤다. <낭트의 자코>는 전기 영화란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지만 아주 특별한 전기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의 남편인 자크 드미의 유년기를 담은 영화지만 자크 드미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남편의 재능에 대한 지나친 찬사가 아니라 어린 자크 드미의 과정을 따뜻하고도 유머있게 재구성한다. 마치 성장영화처럼 다가온다. 2차 세계 대전 무렵, 우리로 치면 단칸방에서 사랑 듬뿍 받으면서 어린 자코는 인형극, 영화, 오페레타를 즐겨본다. 보는 것에서 만드는 단계로 이행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영화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이어지고 열정만큼이나 재능도 있고 무엇보다도 끈기가 있다. 첫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그 끈기에 정말 대단한 소년이란 생각이..^^;  그의 끈기에 마침내, 아버지도 굴복한다. 영화는 자크 드미가 파리 영화학교에 입학하면서 끝이난다.  

유년기의 여러가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자크 드미의 영화에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영화 클립들이 삽인된다. <쉘부르의 우산>, <당나귀 공주>, <로슈포르의 숙녀들>..등등.  이런 장면들에서감독이 어린 자코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보는 게 느껴지는데 이런 점이 다른 전기영화랑 다르게 만든다. 전기영화가 찬사나 경건한 숭배라면 아녜스 바르다는 그냥 사랑하는 아는 꼬마로 보는 게 더 정감있다. 아마도 부부라서 그런게 아닐까. 어렸을 때 음악을 좋아햇던 자크 드미가 뮤지컬을 만드는 건 예정된 건지도 모른다. 중간중간에 자크 드미의 온화한 인터뷰 장면도 삽입이 되는데 영화적 형식 면에서도 세련됬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24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4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5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5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6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6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