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의 끝
미술에서는 궁정화가들의 영향이 컸다.
예를 들면 프랑수아 부셰의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1756)은 당시 보편적인 미적 취향이 되었으며 화가지망생들에게 규범이 되었다.
부셰의 작품은 로코코풍으로 이 양식의 특징은 쾌, 환상, 즐거움, 도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로코코는 바로크의 마지막을 장식한 양식이자 르네상스 최후에 만개한 꽃이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이 프랑스에 소개된 것은 1700년경이었고 18세기에 유럽 전역에 성행했다.
로코코는 회화와 건축에 나타난 양식으로 그 특징은 밝고 우아하며, 우스꽝스럽거나 쾌활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로코코는 바로크(Baroque, 포르투칼어 바로코Barocco에서 온 말로 '불규칙한 진주나 돌'을 의미) 양식에 반발하여 생긴 양식이지만 동시에 바로크로부터 진전된 양식이다.
로코코Rococo란 말은 바로코Barocco와 돌이란 뜻의 프랑스어 로카이유Rocaille의 합성어이다.
로코코의 어원적 의미는 '비속하게 현란하거나 잘 꾸민'이란 뜻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경멸적인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로코코 예술가들은 바로크의 복잡한 구성은 받아들이면서도 화면의 복잡함, 칙칙한 색, 지나친 허식 대신 밝은 핑크색, 파란색, 초록색을 사용하면서 때로는 흰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지나치게 과대한 장식에 진력을 내고 우아하면서도 편리한 점을 요구했다.
로코코는 이런 요구에 부응해서 처음에는 주로 장식적이었다.
로코코의 대표적인 화가는 와토이고 로코코의 성숙된 낙천적 정신을 잘 표현한 화가들로는 부셰와 프라고나르를 꼽을 수 있다.
로코코 회화의 전형적인 모티프는 남신과 여신의 호색적인 기질에 관해 전래된 신화와 님프, 목자가 있는 목가적 장면들이었다.
신과 목자는 도자기 인형에도 사용될 만큼 흔한 주제였으며 파스텔 핑크,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이 주로 사용되어 화사하게 나타났다.
로코코 회화는 사람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해주었지만 정신적인 면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계몽주의 철학자와 작가들은 회화가 단지 장식적이거나 감각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디드로는 말했다.
"먼저 날 동요시켜라. 날 놀라게 하라. 날 공격하고 전율하게 하며 울게 만들고 조바심나게 하고 화 나게 하라. 그리고 나서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눈을 진정시켜라."
디드로의 말에서 로코코 회화가 무엇을 결여했는지 알 수 있다.
시각적으로만 요란한 로코코 회화에는 관람자의 정신 혹은 영혼에 호소하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미적으로 이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던 시기에 다비드가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프아수아 부셰
로코코 화가로 알려진 부셰는 젊었을 때 와토를 좋아하여 그의 많은 작품을 판화로 제작했다.
그는 1727~31년 이탈리아로 가서 수학했고 파리로 돌아와서는 빠르게 화가로 성공했다.
1765년 앙립미술아카데미의 책임자, 루이 16세의 궁정 수석화가가 되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두르는 화가들 가운데 부셰를 가장 좋아했다.
부셰는 그녀에게 그림 그리기를 지도했으며 초상을 여러 점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