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초상을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Portrait 내지는 Portraiture라 하고,
독일어로는 Blidnis 내지는 Portrat라고 하는데,
Bildnis를 제외하고 모두 라틴어 Protraho에서 유래했으며 '끌어내다' '노출시키다'라는 뜻이다.
상상의 인물 묘사는 예외이지만 사람의 모습을 묘사할 경우 그 인물과 닮은 점, 즉 초사성이 요구된다.
인물의 독자성과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초상화의 목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목구비와 신체의 특징과 더불어 표정이나 제스처가 개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사용된다.
초상화에서는 묘사대상인 인물에 얼마만큼 충실해야 하는가가 과제이다.
인물의 결점도 묘사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소 수정을 가해 이상화해야 하는지가 문제이다.
1920년에 신설된 함부르크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한 파노프스키는 초사성과 이상화의 양극 사이에서 화가가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작품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제와 의미가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초상을 전문으로 그린 초상화가가 출현한 것은 16세기이며 한스 홀바인 2세(1497/98-1543), 이탈리아의 모로니(1525년경-1578), 네덜란드의 모르(1517/21-1576/77), 스페인의 산체스 코엘로(1531/32-1588)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궁정에 살면서 궁정초상화를 발전시켰다.
17세기에 초상화를 세련되게 더욱 진전시킨 화가들로는 반 다이크(1599-1641)와 벨라스케스(1599-1660)를 꼽을 수 있다.
초상화의 여러 가지 기본형식은 르네상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다 빈치(1452-1519), 라파엘로(1483-1520), 티치아노(1488/90-1576)가 여러 종류의 초상을 그렸다.
뒤러(1471-1528)가 1500년에 그린 <자화상>은 위의 계열에 속한다.
이는 화가가 자기 자신을 의식했다는 증거이다.
정신성을 강하게 표현한 많은 자화상을 남긴 사람으로 17세기의 대가 렘브란트(1606-1669)를 꼽을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엄격한 인물묘사로 유명한 고야(1746-1828), 빼어난 데생력으로 초상을 그린 앵그르(1780-1867), 광인의 초상을 그려 유명한 제리코(1791-1824)가 있다.
이후 카메라의 발명으로 초상화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이 초상화를 대신하게 되자 인상 통찰을 심화시킨 표현주의 초상화가 두드러졌는데 뭉크, 클림트, 쉴레의 초상화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