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이야기 3 - 명종부터 공양왕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5
박영규 지음, 이동철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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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정권으로 인해 썩을 대로 썩은 고려. 이 고려를 노렸던 나라가 있으니 바로 몽골이다. 징기즈 칸으로 인해 급속도로 세력을 넓힌 칸은 고려까지 위협하였다. 물론 무신 정권 제 4대의 최의가 다른 무신들에 의해 사망했으나 친몽정책을 펼쳐 왕권을 강화하려 한 원종에 위해  비로소 무신 정권이 끝난다. 하지만 나라에 큰 불행이 찾아왔으니, 바로 몽고의 간섭이다!

충렬왕을 시작해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간섭을 받아온 고려는 변발도 하고, 몽골의 문화를 들여오기까지 했기에 원나라(몽골)는 왕이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소식만 들으면 바로 왕을 갈아치웠다. 그 과정에서 공민왕을 제외하고는 전부 나태한 왕이었으며, 태자도 세자로, 폐하도 전하로, 종이나 조자에서 왕 자로 바뀌었다. 칭호가 하위급으로 내려간 그들은 완전히 몽골의 신하와 같이 되었다. 특히 충혜왕은 얼마나 성격이 못됐던지 예쁜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손에 넣었으며,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놀았다. 보다못한 원나라가 혼을 냈으나 계속 악행을 서슴지않던 그는 결국에 원나라로 압송되다가 독살당하였다.

2006년인가? 2007년 초인가? 쯤에 방영했던 신돈과 공민왕은 과거 몽골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자주국이 되는 개혁을 지속하는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특히 중이었던 신돈은 공민왕의 신임을 얻고서 몇년동안 고려를 중심으로 강한 개혁을 펼치면서 권력을 손에 잡았다. 그 결과 공민왕은 신돈의 반란을 막기 위하여 신돈에게 누명을 씌우고 귀양을 보내 죽였다고 한다. 공민왕에게 있어 신돈은 개혁을 이루기 위한 일회용품이었을 뿐인가보다.

우왕은 땅을 내놓으라는 명나라에게 분노해 이성계 장군에게 명나라를 토벌하라며 보냈지만 이성계는 명나라를 쳐서는 안되는 명분으로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였다. 여기서 과거 큰 활약을 했던 최영장군이 사망하였으며, 우왕은 귀양을 갔고 이성계는 창왕을 새로 세운다. 그러면서 권력을 지게 된 이성계는 드디어 나라를 세우게 되고, 나라의 이름을 고려에서 고조선의 이름을 따 조선이라고 칭한다. 그리고서는 앞으로 우리에게 매우 유명한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다.

비록 고려는 공양왕을 끝으로 그 역사가 끝났지만, 갖은 수난을 겪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의 영어 이름으로 남겨진 위대한 왕이다. 위대한 고려의 역사를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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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이야기 2 - 현종부터 의종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4
박영규 지음, 이동철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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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멸망했던 계기는 바로 거란의 침략때문이었다. 그런 거란의 안 좋은 태도로 인해 태조는 거란을 멀리하였다. 이번 화에서는 그런 거란의 침략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삼국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라는 바로 고구려이다. 이 고구려를 좋아했던  계기가 태왕사신기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이 고구려의 강직한 기상을 물려받은 고려 또한 고려 청자와 같은 찬란한 문화를 남긴 나에게 있어 위대한 나라이다. 이 고려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한 역사서를 보지 못했던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어보면서 고려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거란의 2, 3차 침략을 겪었던 현종은 수난을 많이 겪었던 불쌍한 왕이다. 1차 침략은 서희가 거란 장수 소손녕과 당당한 담판을 벌여 오히려 강동 6주를 차지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거란이 계속 침입해왔다. 이 2차, 3차 과정에서 양규와 같은 용맹한 장수들이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희생을 하였기에 겨우 거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만약 양규와 같은 장수들이 없었다면 고려라는 나라는 없었을 것이고, 조선 또한 없었기에 우리나라가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역사가 있기 까지는 충신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최충헌, 최이, 최항등 최씨 가문이 4대를 거쳤던 무신 정권. 이 무신 정권의 시작은 의종때였다. 문신들에게 밀려 찬밥신세였던 무신들이 그 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터뜨리고, 그 세력과 힘을 이용하여 나라를 차지한 것이다. 문신들이 그들을 잘못 대했다고는 하나 이 무신 정권으로 인해 한동안 몽골의 침략을 받고 살아야 했다.

고려 시대에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던 왕을 꼽자면 아마도 덕종일 것이다. 비록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기개와 덕 그리고 지혜를 지녔던 그는 뛰어난 외교 정책과 덕을 통해 나라의 재산이 차고 넘쳤고, 백성들의 집집마다 먹을 것과 재산들이 가득 쌓여 있었기에 봉황은 날아들지 않았으나 요순시대에 버금가는 태평성대라고 사람들은 평하고 있다. 빨리 사망하셨으나 그 뛰어난 머리로 고려의 평화를 위해 일한 덕종 임금은 매우 훌륭한 임금인 듯 하다.

나는 세력을 잡은 무신들이 과연 어떤 일을 벌일지 매우 겁이 났다. 나라를 도적떼가 듫끓게 만든 무신들이 아예 나라를 잘못 하려 한다면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듯이 내부의 반란으로 인해 사라질 것이다. 조선도 내부의 매국노에 의해 망하였고, 신라는 반란군에 의해 망했으며 백제도 아들의 반란으로, 고조선도 내부 장군들의 반란으로 망했다. 고려가 빨리 사라지지 않기 만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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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이야기 1 - 태조부터 목종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3
박영규 지음, 이동철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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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건국했다는 뜻의 이름으로,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우리나라의 영어 이름 코리아가 고려의 어원이라는 것이다. 아랍 상인들이 고려 상품에 반하여 외국에 고려 대신 코리아라는 이름을 전달했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고려는 원래 신라 왕실의 버려진 아들, 궁예에 의해 세워졌다. 태어날 때 유모에 의해 애꾸가 된 그는 유모와 함께 근근히 살아가다가 자신이 왕의 자식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모든 진실을 알면서 그 실력을 갈고 닦으며 양길의 부하가 되어 세력을 키우고 다시 후고구려를 세운다. 그 때 당시만 해도 매우 위대한 군주였던 그는 많은 부하를 거느렸으나 점차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하고 악덕 정치를 하면서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미움을 산다. 결국 왕건이 궁예를 쫓아내고 나라를 고려라 칭하면서 그 위대한 고려가 세워졌다. 물론 왕건이 왕이 될 당시에는 아직 망해가는 신라 왕실과 견훤의  후백제가 버티고 있었다. 특히 견훤은 아직도 세력을 넓혀가는, 무시할 수 없는 자였다. 견훤과의 전투에서 몇 번 패배하기도 했던 왕건은 드디어 좋은 기회를 잡았다. 견훤의 아들 신검이 태자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를 산에다 가둔 것이다. 그래서 몰래 빠져나온 견훤은 왕건에게 몸을 맡기고, 몸소 나서 신검의 무리를 해치웠다고 한다. 왕건의 포용으로 자연스레 신라까지 합쳤기에 삼국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중앙 집권 체제는 아니었으나 혼인 정책을 펼친 왕건은 고려의 위대한 왕이었다. 그 이름이 바로 태조이다.

광종, 경종, 성종등의 왕들은 모두 태조의 뜻에 따라 고려를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또한광종은 약해진 왕권을 다시 강하게 하였으며 적극적으로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가 이른 여러가지 업적들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단지 잔인했다는 점이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광종대왕이란 책이 있는데 과히 대왕이라 할 수 있겠다.

37대왕 중에서 겨우 7대왕밖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2, 3권에서 고려의 태평성대를 이룩하거나 외부의 침략을 이겨낸 위대한 왕들의 이야기들이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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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이야기 2 - 봉상왕부터 보장왕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2
박영규 지음, 이은하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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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기상을 높인 광개토왕. 드디어 등장한 그는 젊은 나이에 백제와 싸워서 크게 이겨 고국원왕, 고국양왕의 복수를 하였다. 그리고 북쪽으로 영토를 크게 넓힌 그는 고구려의 기상을 높였다. 고구려가 아시아의 강대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광개토왕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또한 광개토왕릉비를 보았을 때에도 그 크기를 봐서도 광개토태왕의 기상이 얼마나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의 정식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으로 국강상에 묻혀 있으며 땅의 경계를 넓혀 평안을 가져다준 훌륭하고 위대한 왕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광개토왕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의 아들 장수왕도 남쪽으로 영토를 넓혔다. 고구려의 전성기는 바로 이때로 광개토왕의 아들답게 영토를 넓히고 백성을 생각하는 뛰어난 정치를 펼쳤던 그는 광개토왕만큼 위대한 왕이다. 나는 그래서 장수왕과 광개토왕을 무척 존경한다.

문자명왕은 나제 연합군에 의하여 크나큰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백제의 계속된 공격으로 나라가 큰 손실을 입었으나 단 한번의 승리로 백제가 꼼짝못하게 되자 문자명왕은 안심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힘쓸 수가 있었다. 전쟁이나 재해가 없을 경우에는 문자명왕과 같은 태평성대를 쉽게 이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서 놀랬다. 그렇지만 결국 보장왕에 이르러서는고구려가 망하게 되니 슬펐다.

지금까지 백제사, 신라사, 고구려사를 보면서 각 나라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신라사를 볼 때는 고구려와 백제가 나쁘게 보이고, 백제사를 볼 때는 고구려와 신라가 나쁘게 보이고, 또 고구려사를 볼 때는 신라와 백제가 나쁘게 보였다. 그렇지만 역시 고구려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가 가장 슬프다. 연개소문에 의한 허수아비일 뿐이었던 보장왕은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하였고,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죽은 이후에 그의 아들들이 권력다툼을 함으로써 결국엔 고구려가 망하였다. 고구려와 신라 모두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망했으니,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없다면 고구려가 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구려가 없어졌기에 고려, 조선이 생겨나고 현재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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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 이야기 3 - 문무왕부터 경순왕까지, 북 오디세이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10
박영규 지음, 이용규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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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왕을 거쳐 문무왕때 드디어 삼한 통일, 당나라의 침략을 이겨내고서 빌해와 맞붙은 남북국 시대에 돌입한다. 56대 경순왕까지 이르른 신라의 역사는 무척 긴 듯 하다. 하지만 이때부터 수많은 왕들이 힘쎈 신하들에게 눌려 지내었고, 명이 짧은 왕 또한 많았다. 특히 효성왕의 경우에는 영종 세력을 통하여 왕권 회복을 시도하지만 영종이 유배를 가므로써 결국에는 실패했다. 신하가 이렇게 세력이 강해진다면 왕위 쟁탈전도 심각해 질 것이고, 제대로 된 정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왕권이 신하의 권력보다 강하지 못한다면  정치는 실패라 할 수가 있겠다.

진성여왕때는 각 지역에서 반란군이 일어나 결국엔 견훤의 후백제, 양길,기훤 세력등 수많은 세력들이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양길 밑에 있다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뛰어난 능력으로 많은 병력을 거느린 후에 차차 영토를 넓혀간다. 이 때 궁예 밑에 있던 부하 왕건이 장수들의 의견에 결국엔 궁예를 배반하고 후고구려를 고려라 바꾼 후에 견훤과 대립한다.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따뜻하게 대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가차없이 대했던 왕건은 신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후백제를 멸망시킨다. 경애왕은 후백제가 쳐들어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견훤이 세운 경순왕은 고려와 지속된 외교 관계를 가지며 그의 친절함에 감동해 신라를 고려에 바친다. 경순왕이 신라를 고려에 바친 결정적인 이유는 아들 신검에 의해 산에 갖힌 견훤이 고려로 투항해 왔을 때 적이었던 견훤을 상부라고 부르며 극진하게 대한 것에 있다. 그 전에는 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온 사람을 따스하게 대해주었던 것이 바로 삼한 통일의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신라 왕실은 비록 망했지만 경명왕, 경애왕, 경순왕에 이어서는 망해가는 신라를 잘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천년왕조가 끝나는 순간에는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동안 강국으로써 있었건만, 내란을 이겨내지 못했던 신라가 끝나는 순간이 무척 아쉽다.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던 신라가 고려와 후백제에 밀려 구석으로 들어간 지도를 보자면 왠지 신라가 불쌍해 보인다.

삼국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신라. 신라가 그리 긴 세월동안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충직한 신하들과 노력파 왕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주로 꼭 한번 가서 신라의 옛 숨결을 느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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