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이지만 행복하게 해줄게요!
사토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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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에게 차인 날, 14세 남학생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으면 어떨까. 일본 SNS 화제의 만화 <14살이지만 행복하게 해줄게요>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히카리는 교복 차림의 마코토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는다.


히카리는 20대 직장인이고, 마코토는 14세 중학생이다. 히카리는 10대 남학생들 중에 연상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고, 마코토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인 자신이 미성인인 남자애와 어울리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더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남자친구한테 차인 그 날은 왠지 모르게 마코토와 함께 있고 싶었다. 마코토의 위로와 응원이 필요했다.


마코토도 히카리를 위로하고 싶고 히카리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아직 히카리는 모르지만, 사실 마코토는 히카리를 찬 예전 남자친구의 남동생이다. 마코토는 오래 전부터 형에게서 히카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히카리가 무척 착하다는 것도, 형이 그런 히카리를 배신하고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마코토는 양다리를 걸치다가 히카리를 차버린 멍청한 형 때문에 눈물 짓는 히카리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히카리는 마코토를 남자로 보지 않는다. 그저 편한 남동생 정도로만 여긴다. 과연 둘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성인과 미성인 간의 연애를 좋게 보지 않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성인 남성과 미성인 여성(특히 남교사와 여제자) 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자발적으로 본 건 아니다), 성인 여성과 미성인 남성 간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불쾌하다기보다는 신선하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결말이 깔끔하고, 수위는 높지 않다. 외유내강형 연하남이 나오는 로맨스 만화를 좋아하는 여성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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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의 나라 1
이즈미 이치몬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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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야기>, <아르테>의 뒤를 잇는 치유계 판타지 만화의 등장'이라는 문구를 보고 무조건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만화다. <신부 이야기>도 <아르테>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인데, 읽어보니 역시 좋았다.


만화의 배경이나 설정은 <아르테>보다 <신부 이야기>에 가깝다. 무대는 18세기 티베트. 주인공 '칸 시바'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을 의사가 되기 위해 견습으로 일하는 중인 열세 살 소년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환자를 대하는 자세나 병을 고치는 방법 등을 배워온 칸 시바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의사로서의 실력이 상당한 편이다. 환자의 얼굴만 보고도 병세를 맞히고 혼자 힘으로 약을 제조할 정도인데, 그런 칸 시바를 마을 사람들도 예비 의사로 인정하고 잘 따르고 있다.


어느 날 칸 시바는 이민족 옷을 입은 남자의 등에 어린 신부가 업혀가는 모습을 본다. 집에 도착한 칸 시바는 아까 본 이민족 남자와 어린 신부가 자신의 집에 와 있는 걸 보고 당황하지만, 먼 길을 가는 도중에 잠깐 쉬었다 가는 손님인 줄로만 알고 극진히 대접한다. 이튿날 칸 시바는 신부가 집에 남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이민족 남자가 실수로 신부를 놓고 간 줄 아는 칸 시바에게 아버지는 괜찮다고 한다. 정말 괜찮느냐는 칸 시바의 물음에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괜찮겠지. 칸 시바, 너와 결혼할 거니까." 알고 보니 신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칸 시바의 신부'였던 것이다.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옛날 티베트에서는 양가에서 약혼이 성립된 후 신부의 친족 사내가 신부를 신랑 집까지 업어서 데려다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칸 시바와 라티는 아직 결혼한 상태는 아니고 약혼만 한 상태인데, 아직 한참 어린 데다가 의술과 약초밖에 모르는 칸 시바가 앞으로 라티와 어떻게 친해지고 결혼 생활을 해나갈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가상의 만화를 통해 19세기 티베트의 문화와 풍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작가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만화라서 낯선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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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문학 세트 - 전5권 (2024년용) -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 해법 문학 (2024년)
고창균 외 지음 / 천재교육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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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해법문법으로 모든 종류의 교과서 내용을 숙지하고 1등급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수험생들이 믿고 공부해도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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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1
라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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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평균 별점 만점, 드라마화 확정에 빛나는 인기 웹툰 <내일>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 27세 취업 준비생 '최준웅'은 집안이면 집안, 학벌이면 학벌, 스펙이면 스펙, 빠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신입사원 공채에 인턴에 심지어 알바까지 지원하는 곳마다 매번 불합격 통보를 받아서 속이 타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준웅은 한강 다리 위를 걷다가 노숙자 아저씨와 시비가 붙는다. 밀치고 밀치다가 다리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아저씨를 구한다는 게 그만 준웅 자신이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한참 후 눈을 뜬 준웅은 생전 본 적 없는 두 남녀를 만난다. 자신들을 저승의 독점기업 '주마등'에서 일하는 '저승사자'라고 소개한 '구련'과 '임륭구'는 준웅에게 자신들의 일을 도와주면 예정보다 빠르게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한다. 구련과 임륭구가 하는 일이란 쉽게 말해 자살을 택한 사람들의 죽음을 막는 일이다. 이승과 저승에도 정원이라는 게 있다. 최근 들어 자살로 저승에 오는 영혼이 너무 많아져서 저승의 정원이 초과되었으니, 더 이상의 정원 초과를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트리오(!)를 결성하게 된 구련과 임륭구, 준웅은 1권에서는 학교에서 왕따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할 뻔한 여학생을 구하고, 2권에서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준비 중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할 뻔한 남학생을 구한다. 연령도 성격도 취향도 서로 다른 구련과 임륭구, 준웅이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문제 상황을 무사히 처리하는 모습이 코믹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특히 준웅은 친구들은 전부 입시에 성공해 대학 생활을 만끽하는데 자기만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한다고 좌절하는 남학생 '재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네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입시에 실패한 거라고 재수를 다그치다, 오래전 자신에게 '네가 준비를 열심히 안 해서 취업에 실패한 거'라고 자신을 야단쳤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준웅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가족들에게 원했던 건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이 아니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와 포용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준웅과 재수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을까. 이런 점 때문에 이 만화가 수많은 독자들(특히 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의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저승사자가 이승에서 죽은 자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 산 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일을 한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웹툰 <내일>은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절찬리에 연재 중이며 단행본도 계속 발행될 것으로 보인다. 

(웹툰 <내일> 보기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95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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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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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짝사랑의 대명사,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에드몽 로스탕의 소설 <시라노>의 주인공이자 17세기 프랑스에 실존했던 검술가다. 시라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빼어난 검술 실력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솜씨를 모두 갖춘, 당대에 보기 드문 능력자였다. 그런 시라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록산느다. 시라노는 록산느를 사랑했지만 용기 있게 고백할 순 없었다. 기형적으로 큰 코 때문이었다. 록산느가 자신의 큰 코를 싫어할 거라고 지레짐작한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이라는 젊고 잘생긴 귀족의 이름으로 록산느에게 연애편지를 쓴다. 편지를 쓴 사람이 시라노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록산느는 크리스티앙과 사랑에 빠지고, 시라노는 그런 두 사람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우린 말이야, 그저 이름만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오른 허구의 연인에게 못내 애태우고 있어. 자, 받게. 이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건 자네네." - 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중에서


미아키 스가루의 장편소설 <너의 이야기>는 주인공 '야마가이 치히로'가 '근미래판 시라노'인 '나츠나기 도카'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나노로봇을 이용해 인간의 기억을 개조할 수 있게 된 시대. 치히로는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가공된 기억, 즉 '의억'으로 결락된 기억을 채우는 것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란다. 다시 말해 치히로의 부모는 애인을 사귈 바에는 애인을 사귀는 의억을 사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바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 의억을 사는 분들이다. 치히로의 부모는 정작 실제 자식인 치히로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자라날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원하는 기억이 있으면 나중에 커서 네 돈으로 의억을 사서 채우라는 것이 부모의 가르침이다. 이윽고 어른이 된 치히로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하루빨리 돈을 벌어 의억을 살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얼마 후 치히로는 넉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생애 첫 의억을 산다. 치히로가 산 의억은, 듬성듬성한 기억의 결락 부분을 채우는 의억이 아니라, 듬성듬성한 채로 남아 있는 기억조차 깡그리 지워버리는 의억. 전문용어로 '레테'다.


얼마 후 치히로는 분명 듬성듬성한 상태였던 기억 사이사이에 이질적인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들이킨 나노로봇이 레테가 아니라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 즉 '그린그린'임을 확인한다. 얄궂게도 가공의 청춘 시절 속 여자친구 도카는 치히로의 이상형과 완벽하게 부합한다. 찰랑찰랑한 긴 머리,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새하얀 피부, 오묘하면서도 달콤한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치히로는 내가 산 의억은 이게 아니라고, 내가 원한 결과는 이런 게 아니라고 항의하지만 항의할 대상이 없고, 설상가상으로 머릿속에 한 번 자리 잡은 의억은 밀어낼수록 밀려들고, 점점 더 강렬해지고 분명해진다. 치히로가 다시 한 번 레테를 복용하기로 결심하자, 이번에는 도카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치히로 앞에 나타난다. 이것은 기억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다. 이 여자는 나를 속이려고 나타난 사기꾼일까. 아니면 도카라는 여자가 실제로 존재하는데 내가 잊어버린 걸까. 사기꾼에게 현혹되면 안 된다는 이성과 모든 걸 다 잊고 현혹되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치히로는 마침내 가슴 아픈 '진실'을 알게 된다.


"치히로는 날 어두운 곳에서 데리고 나가줬어." 그녀는 말을 이었다. "친구가 없던 내 곁에 항상 함께 있어줬고, 내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 몇 번이나 구해줬어. 치히로가 없었으면 나, 오래전에 절망에 빠져 죽었을지도 몰라." 오버하지 마, 나는 웃었다. 진짜라니까, 그녀도 웃었다. "그러니까 있잖아, 언젠가 치히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내가 치히로의 히어로가 되어줄게." (201쪽)


치히로가 알게 되는 진실이란, 도카가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가공된 기억을 만드는 '의억기공사'라는 것이다. 의억가공사는 쉽게 말해 '한 사람을 위한 소설가'다. 소설가가 수천수만 명의 독자를 상정하고 소설을 쓴다면, 의억가공사는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의억가공사는 의뢰인의 최면 상태에서 추출한 '이력서'를 살핀 다음 의뢰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공의 과거를 작성한다. 의뢰인이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즐거운 학교생활을 한 의억을,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면 좋아하는 사람과 뜨겁게 사랑한 의억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도카도 치히로처럼 지독히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니, 도카가 치히로보다 더 힘들었다. 치히로가 교실에서 자기 자리를 못 찾고 도서실에 처박혔다면, 도카는 도서실에서도 자기 자리를 못 찾고 양호실로 밀려났다. 어려서부터 앓은 천식은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인해 점점 심해졌고, 전교생 중에 1, 2등을 다툴 정도로 작은 체구와 병약한 몸은 도카를 학교 내 카스트 제도 최하위 계급에 머무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카의 눈에 의억기공사라는 직업이 들어왔다. 의억가공사는 대단한 학력이나 경력이 없어도 필요한 재주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직장에 출퇴근하거나 여러 사람과 협력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몸이 약하고 사회 경험이 부족한 도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다음 해 여름, 도카는 최연소 의억기공사로 나름 지명도 높은 클리닉에 취직했고, 학생인데도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되었다. 스스로 번 돈으로 방을 빌려 독립했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천식도 치료했다. 도카는 이제부터 진짜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카의 몸에서 '새로운 병'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도카는 생존율이 낮지 않은 기존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달하는 신형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차피 혼자인 몸.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잊고 싶지 않은 장소가 하나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삶의 마지막 나날에도 혼자일 거라고, 마지막 눈 감을 때조차 철저히 외로울 거라고 생각하니 태어난 게 한스러웠다.


도카는 직업적 재능을 발휘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완벽한 '그'를 직접 만들어내기로 결심한다. '그'의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남자를 찾아서 '그'가 좋아할 만한 것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구실을 만들어낸다.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맞춰 머리 스타일과 패션, 메이크업도 전부 개조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역할을 해줄 의뢰인이 나타난다. 그가 바로 도카의 운명의 상대, 치히로다. 도카는 치히로가 만족할 만한 '보이 미츠 걸' 이야기를 가공해 치히로의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도카의 예상대로, 치히로는 도카가 만들어낸 의억 속 도카와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면 눈앞에 나타난 도카와도 사랑에 빠질까. 그것은 도카에게도 모험이었다. 평생 한 번뿐인, 생애 최후의,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이라도 상관없으니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토닥임을 받고 싶었다. 동정받고 싶었다. 어린아이 대하듯 무조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정하게 포옹받고 싶었다. 내 고독을 100퍼센트 이해해줄 100퍼센트의 남자에게 100퍼센트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죽은 후 비통해하며 그 죽음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마음에 각인됐으면 싶었다. (262쪽)


소설 <시라노>의 답답한 전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너의 이야기>의 시원시원한 전개가 마음에 들 것이다. '근미래판 시라노'인 도카는 록산느를 짝사랑하는 시라노인 동시에 록산느의 사랑을 쟁취하는 크리스티앙이다.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시라노와 달리, 도카는 자신의 외모를 상대의 취향에 맞게 바꾸는 노력을 불사하며 당당히 앞에 나선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면서 속마음을 깊이 감췄던 시라노와 달리, 도카는 자신이 호감을 느낀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이끈다. 너는 가짜라고, 너의 사랑은 환상이고 거짓이라고 따지고 화내고 거부하는 치히로에게, 도카는 "왜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거야?"라고 항변한다.


다행히 치히로는 <시라노>의 히로인 록산느와 다르게 너무 늦지 않게 도카의 진심을 받아준다. 방법이 조금 특이하기는 해도, 사랑을 품은 상대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것은 '일반적인' 연애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꿈이든 의억이든 환상이든 착각이든 상관없으니 언제까지나 이 달콤한 이야기 속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작도 끝도 자유자재인 허구와 달리 현실에는 분명한 끝이 있다. 모든 기억을 잊고 싶었던 치히로는 도카와 보냈던 생애 최고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생애 마지막 사랑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도카는 치히로만 홀로 두고 떠나야 하는 신세가 야속하다. 점점 바스러지는 기억을 붙들며 헤어짐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절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랑은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이별은 하고 싶지 않아서. 


"전부, 진짜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이 이야기는 거짓이었기에 진짜보다 훨씬 다정한 거야." "...... 그렇구나." 그녀가 뭔가 거머쥐듯이 양손을 가슴 앞에서 모으며 수긍했다. "거짓말이니까 다정한 거구나." (354쪽)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첫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의 감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치히로가 기억을 헤집으며 도카의 정체를 알아나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소설 같았고, 마침내 정체를 밝힌 도카와 도카를 받아들인 치히로가 한 여름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달콤한 로맨스 소설 같았고,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에 눈을 뜬 젊은 연인이 너무 빨리 찾아온 이별에 괴로워하는 대목은 슬픔이 넘쳐 고통스럽기까지 한 비애 소설 같았다.


인생은 사랑을 기다리고 사랑에 환호하고 사랑을 떠나보내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럴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도카가 안타깝고, 도카로부터 사랑할 용기를 전달받고 의억기공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치히로가 눈부셨다. 그 어떤 사랑도 처음에는 짝사랑이다. 짝을 발견한 순간 짝사랑이 시작된다면, 짝이 되는 순간 짝사랑은 사랑이 된다. 부디 어느 누구도 사랑을 마음속 깊이 감추고 있지만은 않기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기회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도카처럼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치히로처럼 눈앞의 사랑을 꼭 붙들기를 바란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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