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기 - 여성 서사 단편만화집
팀 총명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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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여성을 위해 쓴,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12편을 모은 앤솔로지 형식의 단편집이다. 참가한 작가는 AJS, HOSAN, 꾸마, 남수, 마노, 마빈, 뻥, 서각, 앵몬, 이요, 코익, 하토이고, 작품의 장르는 드라마, 코미디, SF, 판타지, 역사물 등이다. 


처음에는 만화책치고는 두께가 상당해서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읽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모든 작품이 작화나 내용면에서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작품마다 다루는 소재나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달라서 매번 새로운 단행본 한 권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반에는 비혼 여성의 주거 환경이나 직장 생활, 가족 관계 등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SF 또는 판타지의 색채가 더해진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단편으로 남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 많아서, 부디 <여명기>가 시리즈로 이어지거나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라도 각각의 단편이 장편으로 발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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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옷장 웅진 모두의 그림책 40
박은경 지음, 김승연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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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작았던 어린 시절에는 이따금 안방에 있는 옷장 안에 숨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결국 제풀에 지쳐 제 발로 걸어 나올 때가 많았지만, 그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고 숙연해졌다. 울지 않아도 실컷 울고 난 것처럼 개운해졌다. 옷장 밖으로 나올 때면, 평소와 똑같은 집, 똑같은 방이 더 그립고 반가웠다. 


박은경 시인의 시 <울고 싶은 친구에게>에 김승연 작가의 그림을 더해 만든 그림책 <고래 옷장>에는 바로 그런 옷장이 등장한다. 책 속의 아이는 방 안에서 뭔가를 끼적이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옷장은 고래 배 속이 되기도 하고 바다 밑 깊은 바닥이 되기도 한다. 아이의 울음은 고래 소리에 섞이고, 아이의 눈물은 바닷물이 된다. 


무슨 소리를 내든 무슨 행동을 하든,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는 고래 같고 바다 같은 옷장. 그런 옷장을 언제부터 잃어버렸을까. 나는 그런 옷장 같은 어른일까. 실컷 울고 싶은 기분일 때나 울고 싶은데 무엇 때문에 울고 싶은지 모를 때. 그런 때 읽기 좋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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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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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시절이지만, 헤르만 헤세가 평생 어떤 문제로 고민했고 무슨 의도로 작품을 집필했는지 '알고' 읽은 건 대학 시절 정여울 작가님이 쓰신 헤세에 관한 에세이들을 읽고 나서부터다. 


클래식 클라우드 <헤세>는 정여울 작가가 직접 헤르만 헤세와 관련이 있는 장소들을 여행하며 쓴 책으로, 장소에 관한 정보 외에 헤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서 헤르만 헤세를 이제 막 읽기 시작했거나 이미 충분히 읽은 독자도 많은 정보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면, 영혼을 뒤흔드는 것에 반응하고 헌신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헤세로부터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불안해도 영혼이 충족되는 삶을 사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배웠고, 실제로 그 후 장래가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외적으로는 불안정해도 내적으로는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한 예술가가 되는 편을 택했다.


이십 대 시절 내내 정여울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나도 작가님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걸까. 매일 좋은 책을 읽고 훌륭한 작가님들을 만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부터 행복하고 영혼이 충족된 삶을 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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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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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여름의 빌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백수린 작가님의 첫 산문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빠짐없이 들어있는데, 하나는 '빵'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다. 


어릴 때부터 빵을 무척 좋아했던 저자는 지금도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강의를 하는 틈틈이 직접 빵을 반죽하고 과자를 구우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저자에게 베이킹은 소설 쓰기와 '똑 닮은 작업'이다.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이 그저 사랑과 동경만으로 시작한 일.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한 채 알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쳐 시작했으나 남들이 능숙해지도록 혼자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 남들 앞에 선보여야 할 때면 늘 자신감이 없지만 결과물이 어떻든 그만둘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점"(18쪽)에서 그렇다. 


책은 소설가이며 번역가인 저자에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저자에게 책, 그중에서도 문학책은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체이자 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며 오지 않은 날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선물이다.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 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실패나 성공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221쪽) 깊이 공감한 문장들과 함께 저자가 추천한 책들을 독서 노트에 따로 적어두었다.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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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 오직 나의 행복을 위한 마음 충전 에세이
삼각커피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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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돈 걱정 좀 안 하고 살아 보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 삼각커피의 신간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을 읽다가 너무나도 내 마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밑줄을 그어버린 문장이다. 졸업 후 몇 번의 취직의 쓴맛에 나가떨어지고 현재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저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수입은 적고 불규칙하고 지출은 계속 늘고 물가마저 빠르게 올라서 계획 없이 소비하면 무조건 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책에는 그런 저자의 생활 노하우가 가득 담겨 있다. 일단 옷은 무난한 색과 기본 디자인의 옷 몇 개만 구비해 놓고 다양하게 코디해 입는다. 먹고 싶은 음식은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먹거나 외식 횟수를 줄이고, 정말 먹고 싶으면 최대한 할인을 받아서 주문한다. 쇼핑은 한 사이트에서만 주문해 쿠폰, 적립금 혜택을 받고, 간단한 물품은 지역화폐를 사용해서 캐시백을 받는다. 넷플릭스는 정기 4, 3, 4개월로 나눠 텀을 두고 보고, 머리는 미용실에 가지 않고 직접 자른다. 짠순이가 따로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덕분에 소액이지만 청약 통장도 가입하고, 가끔은 저렴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고된 하루를 보낸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힘에 부칠 때나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질 때, 저자만의 기운 회복법도 나온다. 일단 방에 들어가자마자 전기 매트의 전원을 켜고 바로 욕실로 직행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친 후에는 하루 종일 고생한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고 보들보들한 재질의 잠옷을 입는다. 그런 다음에는 따뜻한 뱅쇼를(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음료를) 마신다. 한숨 돌렸다면 잘 데워진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서 새로 올라온 영상을 본다. 별것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리프레시 리추얼을 정해 놓으면, 난데없는 일을 당하고 화가 나거나 울적해진 날에 '시발 비용'을 쓰지 않고 기운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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