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 우리가 시를 읽으며 나누는 마흔아홉 번의 대화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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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슬픔, 말하는 사랑>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 연재된 총 백 편의 콘텐츠 중에서 마흔아홉 편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먼저 읽고 뒤늦게 오디오클립의 존재를 알게 되어 부랴부랴 앱을 다운로드하고 클립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새로운 콘텐츠가 업데이트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동안 쌓인 백 편의 콘텐츠를 귀로 즐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책으로 먼저 만난 마흔아홉 편의 시와 글 이외에 다른 시와 글을 오십일 편이나 더 만날 생각을 하니 흥분마저 된다.


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모르는 시와 시인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는 시와 시인이 많아서 놀랐다. 이육사, 김소월, 한용운, 김영랑, 백석, 정지용, 윤동주, 김기림, 이상 같은 시인들은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김민정, 유희경, 서효인, 김소연, 이성복, 유병록 같은 시인들은 시도 유명하지만 산문집도 유명하다. 진은영, 정끝별의 시도 반갑고, 윌리엄 B.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외국 시인의 시도 새롭다. 에드거 앨런 포는 공포 소설 작가로만 알았는데, 정식으로 출판된 첫 책이 시집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책에는 시와 함께 각각의 시에 대한 작가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박상순 시인의 <너 혼자>를 처음 읽었을 때 저자는 시 속의 '너'가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 속의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시는 같은데 시를 읽은 내가 변화하거나 성숙해서 시에 대한 인상이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시의 매력이자 장점이 아닌가 하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 감상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좋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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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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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정치도 종교도, 문학도 과학도, 예술도 스포츠도, 본질적으로는 이야기이거나 이야기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인간들은 어떤 이야기를 선호할까. 궁금하다면 독일의 저널리스트 자미라 엘 우아실과 프리데만 카릭이 공저한 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힘을 가진다. 하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거나 세상을 움직이는 동인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불안 또는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힘은 방향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의 문장들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치유와 평화의 메시지로 읽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동물과 자원의 착취를 합리화하는 파괴의 메시지로 읽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선동'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의 '동인'이 누군가에게는 '조장'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의 힘을 이해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아마도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일 것이다. 조지프 캠벨은 1945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전 세계 신화와 전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패턴을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를 다시 6가지로 정리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쟁, 탐색, 변신, 복수, 약자, 러브스토리 등의 코드가 들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유난히 인기 있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코드가 하나도 빠짐 없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대표적인 예 :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인간이 존재의 우연성을 견디느니 차라리 잘못된 설명을 믿는 편을 택한다는 것이다. 만사를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은 그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노리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운명의 플레이어라고 '믿고' 믿음을 통해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한다. 대표적인 예가 종교인데, 나는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건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사건이자 일종의 오해 또는 착각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운명이니 인연이니 같은 말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아닐까.


이야기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인 문학의 힘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프랑스에서 문학이 발전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인권 선언이 발표되고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한 때와 일치한다. 저자들은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열심히 읽으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발달하고 인권 의식이 향상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문학의 위기와 독서 인구의 감소는 곧 인권의 위기, 민주주의의 후퇴로 연결되는 걸까.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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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사랑과 혁명 1~3 세트 - 전3권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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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의 '백탑파' 시리즈를 좋아한다. 시리즈 마지막 편인 <대소설의 시대> 이후 신작 소식이 없어서 작가님 근황이 궁금했는데, 2023년 9월에 신작 장편 소설 <사랑과 혁명>이 나온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구입해 읽었다. 전 3권으로 구성된 대작인 <사랑과 혁명>은 19세기 초 전라도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옥사인 정해박해를 배경으로 한다. '백탑파' 시리즈와는 공간적 배경도 다르고 등장 인물도 다르지만, 시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무엇보다 조선 후기의 사상적 변화와 새로운 조류를 그린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느꼈다.


소설은 전라도 곡성 장선마을에 사는 젊은 농사꾼 들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관기였던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열 살 때부터 농사를 지은 들녘은 밤낮으로 농사 생각뿐인 천생 농사꾼이다. 그런 들녘이 마름의 횡포로 큰 빚을 지게 되고, 빚을 독촉하는 마름을 두들겨 팬 죄로 마을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도망자 신세가 된 들녘은 산에 사는 나무꾼 곡곰 밑에서 나무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 과정에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소녀 아가다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들녘은 아가다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아가다의 흔적을 좇다가, 옹기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옹기촌인 줄로만 알았던 덕실마을이 실은 관에서 금지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숨어 사는 교우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과 혁명> 1권은 정해박해가 일어나기 전 들녘과 아가다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2권은 정해박해 당시 곡성 교우촌 교인들이 당한 박해의 내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권은 농사 밖에 모르는 소년이었던 들녘이 사랑을 알게 되고 신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일종의 성장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져서 비교적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에 반해 2권은 투옥된 교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자세히, 지겨울 정도로 나와서 읽기가 힘든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당시 교인들이 실제로 당한 고문의 정도와 박해의 수위는 소설에 묘사된 것 이상이었을 테고, 작가는 그러한 역사의 폭력과 폐해를 현대의 독자들에게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신체적인 고통까지 당하면서도 신을 믿고 종교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정해박해 이후를 그린 3권을 읽으면서 약간의 답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당시 조선 사회에서 피지배 계층으로 산다는 건 목숨이 지배 계층에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짐승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만인이 평등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를 접한다면, 그러한 종교를 따르며 선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혹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2권에 묘사된 것처럼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 금세라도 배교할 것 같은데, 3권을 보니 이들에게 중요한 건 현생의 안락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현생 이후의 명예 또는 영생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영생은 물리적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한다. 소설에서 교인들은 숨어 지내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야기를 짓거나 노래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시대에 가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핍박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선에 사는 이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결국 성경과 찬송의 형태로 전해진 이야기의 힘 덕분임을 이들이 알기 때문이다.


3권에서 교인들은 정해박해로 인해 교인들의 수가 크게 줄고 교세가 많이 꺾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신부를 모셔 오려고 노력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2024년 현재 이들이 믿었던 종교(천주교)는 대한민국에서 공인된 종교로서 다수의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이들을 박해한 조선 정부는 망해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앞으로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보다 종교의 힘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야기의 힘이 더 강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역사 소설인 줄 알았고 중간에는 종교 소설로도 읽혔지만, 결국 현재 어떤 이야기를 믿고 따르는 지가 미래를 만든다는 교훈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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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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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끝자락에서 태어난 여자애였고, 고향을 떠나는 내 어깨에는 하인의 망토가 둘러져 있었다." (78쪽)  


서인도제국 출신의 십 대 소녀 루시는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백인 가족의 입주 보모(오페어)로 일하러 뉴욕에 간다. 처음에 루시는 세계 최대의 도시에서 백인 상류층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에 대해 기쁨과 설렘을 느낀다. 다행히 집 주인 가족은 친절하고 네 아이를 돌보는 일도 크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루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집 주인 가족의 배려가 위선으로 느껴지고, 루시 자신도 아직 어린데 다른 아이를 넷이나 돌봐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난다. 급기야 자식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부모와, 후손들을 피점령국 출신으로 태어나 점령국 국민들의 하인으로 살게 한 조상들을 원망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가 1990년에 발표한 소설 <루시>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성장소설이다. 저자는 주인공 루시와 마찬가지로 1949년 서인도제국의 영국 연방 내 독립국가인 앤티카 섬에서 태어났다. 1966년 뉴욕으로 이주해 입주 보모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후 비서, 모델, 클럽의 보조 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야간 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간 끝에 1976년 <뉴요커>에 칼럼니스트로 데뷔했고, 다수의 소설, 에세이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현재는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수로 자리잡고 2004년에는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소설은 총 148쪽으로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제국주의, 여성주의, 섹슈얼리티, 성장과 자립 등 묵직한 주제들이 잘 연결되어 있다. 십 대 청소년인 루시는 언제까지나 부모의 보호를 받는 아이이고 싶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며 괴로워한다. 같은 또래의 십대 청소년들처럼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지만 입주 보모로 남의 집에 기숙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 집 주인의 아내인 머라이어는 같은 여성으로서 루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잘해주려 하지만, 루시는 인종과 계급이 다른 머라이어의 친절을 기만 또는 위선으로 느낀다. 제국의 국민이 식민지 국민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야수들이 천사를 가장하고 천사들이 야수로 묘사되는 환경"(29쪽)과 다름 없다고 본다. 


“그녀가 아름다운 꽃을 보는 그곳에서 나는 비통함과 원한만을 본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달라질 수 없었다. 우리가 그 장면을 똑같이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의 맛은 다를 것이었다.” (29쪽)


다른 사람이 나를 고유한 존재로 보지 않고 출신이나 인종, 계급, 학벌, 성별 등으로 단정짓고 판단하는 것은 무척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루시는 아직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외국에 나가 외국인 보모로 일하며 사춘기까지 겪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문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루시의 국적과 피부색, 성별 등은 바꿀 수가 없고, 더 절망적이게도 이것들은 일종의 꼬리표로서 루시 자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힘들게 만들 거라는 점이다. 


다행히 루시는 계속해서 비뚤어지는 대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돈 벌기, 부지런히 공부하고 글쓰기가 그 방법이다. 이러한 루시(와 작가)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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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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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 <그냥, 사람>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기억한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3년 간 교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인권 운동에 몸담았던 저자가 이제는 인권을 넘어서 동물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대목을 읽었을 때의 놀람도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장애인 인권 운동도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 길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애인뿐 아니라 다른 인간, 다른 동물, 다른 생명의 권리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 발상의 전환 같기도 하고 훨씬 더 큰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범한 사람은 역시 비범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홍은전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 <나는 동물>은 <그냥, 사람> 출간 이후의 일들을 담고 있다. 자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반려 고양이 카라의 공이 크다. 저자는 카라와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다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실은 동물다운 것임을 깨달았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말들이 어떤 식으로 동물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면서 "억압받은 자들의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정의하는" 일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확인한 저자는 이제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 당하고 착취 당한 동물의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정의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연구에 따르면 나치가 주도한 우생학 연구는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축산업에 큰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동물종을 '개량'하거나 폐기, 학살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게 도축되는 돼지가 한 해 동안 무려 2000만 명(命)이고 개는 100만 명이다(한국은 2027년부터 '개고기 식용 금지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저자는 축산업의 발전과 동물권 탄압이 근대 산업화 및 자본주의의 발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능력에 따른 차별을 공정하다고 여기는 능력주의의 태동은 비장애인에 대한 장애인 차별과 인간에 대한 동물 착취를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어려운 말을 잔뜩 썼지만,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이라서 글 한 편 한 편의 분량이 길지도 않고 문장도 술술 읽힌다.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46회 특별방송 1,2부 홍은전 작가 편의 녹음 후기 격인 글(<건네지 못한 장미>)도 실려 있어서 해당 회차를 듣고 글을 읽으면 훨씬 좋다(개인적으로 이 회차는 책읽아웃의 여러 레전드 회차 중에서도 손꼽히는 레전드라고 생각한다). 홍은전 작가의 세 번째 산문집도 기다려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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