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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3년 10월
평점 :

홍은전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 <그냥, 사람>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기억한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3년 간 교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인권 운동에 몸담았던 저자가 이제는 인권을 넘어서 동물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대목을 읽었을 때의 놀람도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장애인 인권 운동도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 길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애인뿐 아니라 다른 인간, 다른 동물, 다른 생명의 권리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 발상의 전환 같기도 하고 훨씬 더 큰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범한 사람은 역시 비범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홍은전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 <나는 동물>은 <그냥, 사람> 출간 이후의 일들을 담고 있다. 자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반려 고양이 카라의 공이 크다. 저자는 카라와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다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실은 동물다운 것임을 깨달았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말들이 어떤 식으로 동물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면서 "억압받은 자들의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정의하는" 일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확인한 저자는 이제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 당하고 착취 당한 동물의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정의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연구에 따르면 나치가 주도한 우생학 연구는 이제 더 이상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축산업에 큰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동물종을 '개량'하거나 폐기, 학살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게 도축되는 돼지가 한 해 동안 무려 2000만 명(命)이고 개는 100만 명이다(한국은 2027년부터 '개고기 식용 금지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저자는 축산업의 발전과 동물권 탄압이 근대 산업화 및 자본주의의 발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능력에 따른 차별을 공정하다고 여기는 능력주의의 태동은 비장애인에 대한 장애인 차별과 인간에 대한 동물 착취를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어려운 말을 잔뜩 썼지만,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이라서 글 한 편 한 편의 분량이 길지도 않고 문장도 술술 읽힌다.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46회 특별방송 1,2부 홍은전 작가 편의 녹음 후기 격인 글(<건네지 못한 장미>)도 실려 있어서 해당 회차를 듣고 글을 읽으면 훨씬 좋다(개인적으로 이 회차는 책읽아웃의 여러 레전드 회차 중에서도 손꼽히는 레전드라고 생각한다). 홍은전 작가의 세 번째 산문집도 기다려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