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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603/pimg_7796361642970617.jpg)
한 호흡에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여러 호흡으로 나누어 읽게 되는 소설이 있다.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은 단연 후자다. 책의 분량 자체는 적은 편이다. 이야기도 단순한 편이라서 한 호흡에 읽으려고 하면 충분히 그렇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문장이, 나로 하여금 여러 번 호흡을 멈추게 만들었다.
소설은 백석 시인의 7년을 그린다. 한국전쟁 후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모두가 땀 흘려 일해 얻은 바를 즐거이 나누는 새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믿고 북으로 갔을 때만 해도 백석은 밝은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원하는 시를 마음껏 쓰고 틈틈이 외국 시를 번역하면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백석이 처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국가에 등록된 문인으로서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이 요구하는 사항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야 했다. 당이 원하는 대로 시를 쓰지 않으면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시를 쓰지 않고 번역을 하겠다고 하면 사대주의자라는 또 다른 오명이 씌워졌다. 백석과 벗으로 지냈던 문인들은 하나둘 숙청되거나 벽지로 추방되었고, 지인에게 편지 한 통 마음 편히 보낼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백석의 친구 준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인가 봐." (30쪽) "시바이(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31쪽)
백석은 점점 더 조여드는 당의 압박 때문에 괴로워한다. 당의 뜻을 따르면 시인으로서의 자신은 저버리는 게 된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저버리면 가족들과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무엇을 택할 수도 없고 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백석은 양강도 삼수군의 협동농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형(刑) 아닌 형'을 받게 되고, 거기서 그는 농사를 짓고 양을 치고 남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여생을 보낸다. 이후 백석이 삼수에서 어떤 시를 썼는지, 시를 쓰기는 했는지 밝혀진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작가는 백석이 어떤 식으로든 시심(詩心)을 지켰을 것이며, 시 쓰는 사람은 시 쓰지 않는 것으로도 시를 쓸 수 있으며 때로는 삶 자체가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 번 멈추어 곱씹게 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이 표면적으로는 백석 시인의 생애 중 한 시기를 그리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리 지어 사는 인간의 숙명을, 사람들의 압력과 원초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문제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85쪽)
아무도 해치지 않는 시조차 쓸 수 없는 삶. 그 삶을 형벌처럼 견뎌야 했던 시인. 마지막으로 눈 감을 때, 백석은 웃고 있었을까 울고 있었을까. 가닿을 곳 모르는 마음이 허공을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