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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딘의 죽음은 우리에게 생은 짧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모든 건 지독하게 순간적일 뿐이다. 우리는 생의 많은 시간을 타인과의 불화에 써버린다. 생명은 짧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처럼 ......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얼빠지고 어처구니 없는 존재들이었다."
본문 286쪽
원래 책을 빨리 읽는 편이다. 가벼운 소설 정도라면 하루면 다 읽을 수 있고, 휴일이라면 한두 권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이 소설 <위험한 관계>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흥미진진한 내용인데다가 어딘지 미스터리한 구조, 매력적인 인물들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561쪽이나 되는 분량, 의외로 살짝 복잡한 스토리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배경이니 스케일이 커서 그런 것일까?
작가의 전작 <빅 픽처>를 읽고 그의 소설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데 아무런 주저함이나 의심은 있을 수 없었다. 사실 매우 바쁘기도 하고, 읽을 책도 밀려있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이 책부터 읽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 되지 않았음을 10페이지도 읽기 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주인공 샐리 굿차일드(이름 한번 의미심장하다)는 미국 신문사의 카이로 특파원이다. 소말리아의 대홍수를 취재하기 위해서 위험한 소말리아로 들어갔던 그녀는 영국의 기자 토니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아이를 갖게된 샐리는 토니와 결혼을 하고 런던에 정착을 한다. 샐리가 영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대학 친구인 마거릿 뿐이었다. 마거릿은 샐리가 집을 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만, 얼마 후 미국으로 떠나고 샐리는 런던에 의지할 사람이라곤 남편 뿐인 외톨이가 된다. 게다가 힘든 임신 기간을 보내는 동안 토니는 회사일로 바쁘고, 또 개인적인 소망인 소설을 집필하느라 샐리를 혼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출산을 한 샐리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과 어려운 수술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리지만, 토니는 늘 샐리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일로 샐리가 미국에 잠시 다녀온 날, 집에는 아기의 물건과 토니의 물건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샐리에게 큰 법원 봉투를 전달한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샐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런던에서 빼앗긴 아들 잭을 찾으려는 필사의 투쟁을 벌이지만, 런던의 모든 것은 샐리에게 냉정하기만 하다.
아내가 힘겨운 임신과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움직이는 동안 은밀하게 변심해서 아내를 배신하고 오히려 아기까지 빼앗을 생각을 한 남자를 상상해 보았다. 단지 '나쁜 남자'라는 말 한 마디로 그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아기를 필요로 한 것은 아기를 사랑해서 헤어져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아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또 다른 수단일 뿐이었다. 모성이라는 것이 아이를 낳는 그 순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지만, 육아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잠시라도 쉴 수 있기만을 소망하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바로 후회하고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 또한 엄마이다. 대부분의 아빠들은 우유 한 번 먹이고, 기저귀 두어 번 갈아주고서 할 일을 다 한 듯이 생각하지만, 엄마들은 수십 수백번 그 일을 한다. 잠을 못 자고 밥을 먹을 시간은 없어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의 쌓여서 아기와 엄마만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를 한 번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세계가 아이와 엄마에게는 있는 것이다. 남자인 작가가 이런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의 가장 먼 곳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알아듣는 것이 어머니라는 것을 말이다.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비열할 수 있을까?
그 우울증의 깊은 나락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게 하는 모성이란 무엇일까?"
옮긴이의 말 563-5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