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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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유럽의 스릴러물들을 몇 권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자주 접했던 일본이나 미국의 스릴러물들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어딘지 무심한 듯하면서도 섬세한 어떤 정서가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북유럽의 소설들은 서늘한 느낌과 자유로운 정서가 그랬고, 이탈리아의 소설은 말 그대로 열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때 덴마크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 찾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낯선 설렘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얼마전 연속해서 읽게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소설들은 또 그들의 정서를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딘지 딱딱하고 꽉 짜인 사회라는 느낌과 그럼에도 그들의 내면 깊숙이 들어있는 공포와 연약함이 잘 드러나고 있어서 아주 흥미로웠다.
 이 소설 <사라진 소녀들>이 주는 느낌도 그러했다.

 한 시설에서 앞을 못 보는 소녀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빨간 머리의 십대 초반인 연약한소녀의 납치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관 프란치스카는 10년 전에도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 때 사라진 소녀 지나 역시 빨간 머리의 시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카는 그 소녀의 오빠인 권투선수 막스 웅게마흐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아직도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막스는 그 날 지나를 두고 축구를 하러 간 자신의 잘못으로 지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늘 괴로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을 수사하던 프란치스카는 범인이 시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용의자를 추적한다. 한편 강한 엄마와 늙고 병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간직한 음울한 애완동물 가게 주인인 에두아르트 자우터는 늘 카드를 단정히 정리하면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현실에선 못 생기고 주변머리 없는 그는 울창한 열대우림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사냥꾼이 되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부모에게서 늘 억압을 받은 그는 자기 마음대로 주도권을 행사할 세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그 안에 눈이 먼 생쥐들을 풀어놓고 그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끼고 삶을 확인한다.

  소설은 막스의 심리적 고통과 에두아르트의 이상 심리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인 막스는 평생을 어린 여동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부모 역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만 한다. 에두아르트 역시 뭐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을 견딜 수 없어서 자꾸만 숲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숲에서조차 훔쳐보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가 대리만족을 삼는 뱀에게 물리고 만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만 과장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역시 또 다른 희생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나와 같은 사람들로 생각이 된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제 정신 가지고 저런 짓을 저질렀을까 싶은 경우도 많이 생긴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딘지 섬뜩해진다. 북쪽 유럽의 깊은 숲 속 외딴집 어딘가에서 빨간머리의 소녀가 울부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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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양장)
김려령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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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일까, 동화일까를 잠시 궁금해했다. 소설이라기엔 너무 천진하고, 세상이 아름다우며  동화라 하기엔 좀 깊은 상처가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읽고나서 찾아보니 어린이책의 어른 버전이란다. 역시 김려령 작가답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은 단 한 번의 수상으로 작가가 되었지만, 그 이후로는 이렇다할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동화작가 오명랑씨다. 가족들은 그녀가 작가가 되었다고 다들 기뻐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존재가 가물가물해지니 이젠 뭐라도 좀 하라고까지 한다. 그녀는 단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을 해 낸다. 누구는 논술 학원으로 누구는 글쓰기 하는 데쯤으로 알지만, 그녀의 생각은 확실하다. '잘 들어야 말도 잘 하게 된다는 것' 말이다. 그리하여 모인 아이들은 겨우 세 명이다. 영어 학원 대신 듣기 교실에 온 종원이와 종원이의 꼬마 동생 소원이, 그리고 나중에 동화 작가가 되겠다는 나경이. 오작가는 이 아이들에게 '건널목 아저씨'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다른 모든 이야기에 앞서서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그 소중한 아저씨를 드디어 세상 밖으로 꺼내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의 아픔을 건드리고 터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꼭 견뎌야하는 그 과정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치료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어쩌면 오작가가 그동안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와 그것을 치유해 준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 다른 이야기들로 에둘러 돌아가려니 말문이 막혔을 것이다.

  작가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속에 누구나 한 가지씩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작가라는 사람들은 그것을 풀어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가슴 속의 맺힌 이야기가 다른 모든 것들의 소통을 막고 있어서 그것부터 풀어내어야 하는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글을 쓰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들은 그 길을 기꺼이 가지 않는가. 오죽하면 천형(天刑)이라고 할까?

  이제 오작가는 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은 눈물을 쏟고, 상처가 시릴 지라도 그 상처 위에 새 살이 돋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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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녀석
한차현 지음 / 열림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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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후면 수능을 보아야 하는 딸아이와 본 가장 최근의 영화가 <써니>이다. 처음 영화관의 광고를 듣고 보았을 때는 별반 관심이 없었지만, 실제 영화관에서는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영화는 순식간에 시간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주인공 나미의 교실 모습은 진정 우리반의 모습이었다. 교복자유화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이들의 옷차림은 촌스럽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아식스와 나이키, 프로스펙스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음악 감상실과 단발머리가 청순하던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 전경들이 방패를 세운 채 대기중이던 골목길을 기억한다. 국산 노래는 어딘지 싸구려라며 잘 알아듣지도 못하던 팝송을 흥얼거리던 아이들과 우리 고장의 명물 떡볶기집에서 왁자하게 웃던 그 시간들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눈물이 나오는데도 즐거웠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는 시절의 일인데도 함께 울고 웃는 딸아이를 보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이 소설 <사랑, 그 녀석>을 읽으면서도 영화 <써니>를 볼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을 거슬러 어디론가 빨려들다 보니 예전의 친숙했던 음악이 들리는 듯한 느낌말이다. 작가는 91학번으로 시작한 대학 시절의 일들을 당시 신문의 주요 기사를 장식했던 헤드라인에서 뽑아 낸 듯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민주화라는 거대한 담론을 어깨에 지고 수업 거부와 공청회와 최루탄으로 점철된 대학 생활을 했던 우리 80년대 후반의 학번들과 달리 91학번들은 사랑 밖엔 할 게 없었다는 그의 말은 참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다.

  91년에 대학에 입학한 주인공 차현은(작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독자들은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은 세 살 연상의 선배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저녁을 함께 먹고 버스를 타고 그녀의 동네로 간다. 연상연하의 커플이 흔하지 않았던 그때, 차현은 미림 선배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두근거리고 ‘어떻게 하면 뽀뽀를 한 번 할 수 있을까’를 동아리의 친구인 은원과 상의한다. 결국 미림선배는 알티(참 추억이 묻어나는 단어이다)와 사귀게 되고 차현은 배신감에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 때 처음 생긴 편의점에서 시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세월이 가서 선배가 되고, 은원과는 연인이 된 차현은 수순대로 군대에 가게 된다.

  결코 얄팍하지 않은 소설은 그런 차현의 군대 생활과 대학 생활을 들려주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그 시절이라면 누구나 했던 그런 비루하고 평범한 일상들 속에서 차현과 은원은 웃고 울고 싸운다. 그것이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남루하고 너절한 일상들, 술 마시고 주정하고 시험 보는 그런 일상들은 민주화 운동의 기수였던 선배들도 경험했을 것이고, 2011년의 대학생들도 지금 그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변하고, 또 일상적인 삶보다 더 중요한 대의가 있는 듯이 떠들어대지만, 결국 젊은이의 삶이란 늘 앞날이 불안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근거리며, 없으면 찾아다니면서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서평은 열림원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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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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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의 죽음은 우리에게 생은 짧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모든 건 지독하게 순간적일 뿐이다. 우리는 생의 많은 시간을 타인과의 불화에 써버린다. 생명은 짧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처럼 ......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얼빠지고 어처구니 없는 존재들이었다."

본문 286쪽

 

  원래 책을 빨리 읽는 편이다. 가벼운 소설 정도라면 하루면 다 읽을 수 있고, 휴일이라면 한두 권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이 소설 <위험한 관계>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흥미진진한 내용인데다가 어딘지 미스터리한 구조, 매력적인 인물들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561쪽이나 되는 분량, 의외로 살짝 복잡한 스토리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배경이니 스케일이 커서 그런 것일까?

 작가의 전작 <빅 픽처>를 읽고 그의 소설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데 아무런 주저함이나 의심은 있을 수 없었다. 사실 매우 바쁘기도 하고, 읽을 책도 밀려있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이 책부터 읽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 되지 않았음을 10페이지도 읽기 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주인공 샐리 굿차일드(이름 한번 의미심장하다)는 미국 신문사의 카이로 특파원이다. 소말리아의 대홍수를 취재하기 위해서 위험한 소말리아로 들어갔던 그녀는 영국의 기자 토니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아이를 갖게된 샐리는 토니와 결혼을 하고 런던에 정착을 한다. 샐리가 영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대학 친구인 마거릿 뿐이었다. 마거릿은 샐리가 집을 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만, 얼마 후 미국으로 떠나고 샐리는 런던에 의지할 사람이라곤 남편 뿐인 외톨이가 된다. 게다가 힘든 임신 기간을 보내는 동안 토니는 회사일로 바쁘고, 또 개인적인 소망인 소설을 집필하느라 샐리를 혼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출산을 한 샐리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과 어려운 수술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리지만, 토니는 늘 샐리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일로 샐리가 미국에  잠시 다녀온 날, 집에는 아기의 물건과 토니의 물건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샐리에게 큰 법원 봉투를 전달한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샐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런던에서 빼앗긴 아들 잭을 찾으려는 필사의 투쟁을 벌이지만, 런던의 모든 것은 샐리에게 냉정하기만 하다.

  아내가 힘겨운 임신과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움직이는 동안 은밀하게 변심해서 아내를 배신하고 오히려 아기까지 빼앗을 생각을 한 남자를 상상해 보았다. 단지 '나쁜 남자'라는 말 한 마디로 그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아기를 필요로 한 것은 아기를 사랑해서 헤어져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아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또 다른 수단일 뿐이었다. 모성이라는 것이 아이를 낳는 그 순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지만, 육아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잠시라도 쉴 수 있기만을 소망하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바로 후회하고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 또한 엄마이다. 대부분의 아빠들은 우유 한 번 먹이고, 기저귀 두어 번 갈아주고서 할 일을 다 한 듯이 생각하지만, 엄마들은 수십 수백번 그 일을 한다. 잠을 못 자고 밥을 먹을 시간은 없어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의 쌓여서 아기와 엄마만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를 한 번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세계가 아이와 엄마에게는 있는 것이다. 남자인 작가가 이런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의 가장 먼 곳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알아듣는 것이 어머니라는 것을 말이다.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비열할 수 있을까?

그 우울증의 깊은 나락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게 하는 모성이란 무엇일까?"

옮긴이의 말 563-5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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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피라예 - 가장 최고의 날들
자난 탄 지음, 김현수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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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때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진정한 여행> - 나즘 히크메트
 
 
 
  내 생애 한번쯤 지금 이곳이 아닌 곳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터키로 가고 싶다. 카파도키아의 낯선 풍광 속에서, 혹은 파묵칼레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일몰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싶다. 단 한번도 가 본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터키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지만 어딘지 괜시리 친근한 느낌을 받곤 했다. 지난 여름 이슬람과 아랍 문명에 대해서 배우면서 내 그 막연한 그림움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와 아랍인들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교류가 있었다. 그러니 그들과 우리의 이끌림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바로 DNA의 이끌림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내 이름음 피라예>를 읽게된 이유도 터키의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 수많은 여행자들이 전하는 이스탄불의 향기, 괴레메의 경치, 아나톨리아 평원의 순박함을 읽어왔지만, 또 주인공이 남자인 소설들을 읽었으나 정작 궁금한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고, 그래서 늘 아쉬웠다.

  소설은 주인공 피라예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는 독백으로 문을 연다. 연극과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치과 대학에 진학한 그녀의 이름 피라예는 터키의 위대한 시인 나즘 히크메트의 아내의 이름이다. 사실 그녀에게 시에 대한 애정을 불어넣어 준 것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금지된 시인들의 시를 읽을 수 있게 했고, 그 아름다운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했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치과 의사가 되어서 자기의 뒤를 잇기를 바랐다. 아름다운 피라예는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고 함께 시를 읽을 남자를 만나지만, 엄마는 그가 좌파라서 그리고 가난해서 안 된다고 반대를 한다. 어쩌면 우리와 그리 똑같은 지 웃음이 나왔다. 순탄하기만 할 것 같고 희망에 넘치던 피라예의 삶은 만나게 된 남자에 의해서 좌우되고, 여자의 삶이 다 그렇다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한 남편에 대한 슬픈 사랑에도 불구하고 피라예는 꿋꿋하게 일어서려고 한다.

  아름다운 터키의 해안들과 오래된 도시들에 대한 소설의 묘사는 애정이 넘쳐서 읽는 동안 함께 여행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여행한 지명들은 너무도 익숙헤ㅐ서 마치 우리나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한 섬세하고 자의식이 강한 이스탄불 여자인 피라예가 남편과 같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한낱 아들을 낳을 도구로 여겨지는 가부장적이고 시골스러운 시집에서 겪는 사건들은 우리 세대의 도시 출신 며느리들이 겪던 사건들과 흡사해서 친근감이 생겼다.

  고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피라예의 삶은 세상 모든 여성의 삶을 대표하고 있다. 그것은 터키가 우리와 비슷한 문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에서도 남편과 아이에게 종속되는 여성의 삶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니 피라예가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주기를 바란다. 세상 모든 여성을 위해.

 

"바닥을 친다는 것, 더이상은 나빠질 여지도 없음을 안다는 것도 나름데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용기와 결기를 발견하게 된다. "

본문 415쪽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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