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삶이란 매혹된 관객들로 들어찬 공연장의 연주회와도 같아서 완벽한 사생활이란 게 없었다. " 

                                                        본문 88쪽

 

 

 처음 책을 손에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약간의 과장을 더한다면 한 손으로 들을 수 없을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양장 제본도 아닌데 말이다. 뒷표지를 열어서 페이지를 본다. 옮긴이의 말 빼고 875쪽이다. 또한 추천의 말과 옮긴이의 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다른 군더더기가 없다. 심플하고도 무거운 그 책을 시작하면서 마음이 설렌다. 이 책이 나의 마음에 든다면 이 두꺼운 내용을 다 읽는 내내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 설렘은 근거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4일간 이 무거운 책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틈이 날 때마다 읽었다. 아니 시간이 없으면 딴 일을 제치고 읽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점점 얇아져가는 뒷 분량이 아쉬워서 일부러 덮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두 세권의 책으로도 너끈히 나눌 수 있는 분량을 이렇게 한 권으로 묶어준 출판사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책 값도 그렇고, 혹시나 읽다가 끊기면 (두 세권 되는 책을 다 들고 다닐수도 없어서) 집에 갈 때까지 심난할 테니, 그 배려가 얼마나 감사한가 말이다.

 분량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책,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나 <토지>처럼 등장인물의 사전이라도 필요할 기세다. 배경은 1975년 인도, 혼란스러운 정치와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보호받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가난뱅이와 거지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붐비고 지루한 기차에서 시작한다. 대학생인 마넥과 재봉사인 이시바와 옴프라카시는 이 좁은 기차안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인사를 트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들이 찾아가는 사람은 같은 사람, 바로 디나 달랄 부인이다. 마넥은 그 집에 하숙을 정하러, 이시바와 옴은 그 집에 취직을 하러간다. 이제 집주인인 디나의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술을 베풀던 의사의 딸이던 디나 쉬로프의 삶은 아버지의 불행하고도 갑작스런 죽음으로 곤두박질 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정신을 놓은 어머니와 배려라고는 없는 오빠 누스완이 그녀를 힘들게 할 때 음악만이 그녀를 구원하고 그리고 남편인 러스텀을 만나게 한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도 잠시 뿐이었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공평한 디나는 오빠에게서 벗어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신산한 삶을 산다. 디나의 집에서 재봉일을 하기로 한 옴과 이시바는 강 옆 마을의 차마르 카스트 출신이었다. 무두장이 일을 주로 하면서 온 마을의 천한 일을 하던 불가촉천민인 그들은 조상 대대로 그 마을에서 학대와 멸시를 당하면서 살았다. 어느날 아들들이 부당하게 매질을 당하자 이시바의 아버지인 둑히는 이시바와 그 동생 나라얀을 무슬림 친구인 아시라프에게 보내서 재봉일을 배우게 한다. 잘 자란 이시바와 나라얀은 아시라프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고, 나라얀은 마을로 돌아가서 크게 성공한다. 그러나 썩어빠진 부정선거에서 권리를 찾으려던 나라얀은 무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온 가족은 불에 타서 죽고 만다. 이시바와 나라얀의 아들인 옴은 읍내에 있다가 그 화를 피했고, 기성복 가게가 아시라프를 힘들게 하자 그들은 돈을 벌러 도시로 나갔다. 또 한 축을 담당하는 마넥은 디나의 학교 친구인 아반의 아들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으로 큰 부자이던 마넥의 아버지 파록은 많은 재산을 잃고 잡화점 하나만 남았다. 그래도 산들이 우거진 아름다운 그 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파록은 아들인 마넥의 성공을 위해서 아들을 도시의 대학으로 보내지만, 마넥은 혼란스런 정국의 대학 기숙사에서 갖은 상처를 받고 유일하게 믿던 선배 아비나시조차 잃고 만다. 학교가 너무 싫고 산이 그리운 마넥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는 디나의 집에서 하숙을 하도록 한다.

 온갖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가진 그들 네 사람은 처음엔 불협화음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그들의 곱고 섬세한 마음은 그들이 함께한 그 시간들을 불행한 삶의 여정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든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던 행복한 시간은 마치 한 여름날의 짧은 소나기처럼 그들의 인생을 적셨다. 역시나 소나기처럼 왔던 그들의 행복은 왔던 모습 그대로 너무나 쉽고 빠르게 사라지고 그들은 다시 불행하고 어두운 삶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미 <Q&A>에서 인도의 모습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정치 권력의 부패상이 어떤 모습으로 사회의 최저층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는지 이 소설은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즉흥적으로 밀어버리는 판자집,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시키는 강제 노역과 불임 수술들의 묘사는 소름이 끼치도록 자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천진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밝은 희망이겠으나 내게는 더욱 비극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매운 와다 과자를 만들던 이시바의 손놀림과 햇빛 아래에서 만들던 조각 이불의 아름다운 반짝임, 사랑스런 새끼고양이의 울음과 디나의 분홍빛 찻잔은 큰 불행 속에서도 작은 웃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 속의 수많은 사람들을 다 헤아려 본다.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손자와 친구, 엄마이고 딸이며 올케이고, 집주인이고 거지인 그들이 단지 1975년 인도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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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2009-12-1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절망속에서 희망을 보셨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