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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그리움이란 어차피 약간의 억울함을 품고 있는 감정이므로.
마치 그리움은 키 작은 미남과 같아서 우리는 그 서글픈 한계를 따뜻이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다.
본문 135쪽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니>('모던보이'의 원제목이다)를 읽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모던보이'의 광고 필름을 보게 된 때문이었다. 주인공 해명의 아버지가 한 대사 "너는 원래 안 되는 놈이라서 네가 들어가는 곳은 망한단다. 그러니 조선을 위하여 총독부에 들어가라." 라는 대사가 너무 웃겼다. 저런 촌철살인의 대사가 있나. 바로 이 대사때문에 나는 영화는 보지 않고 책을 찾아 읽었다. 책은 이미 제목을 영화 제목과 맞추어 <모던보이>로 다시 출판된 상태였다. 그런데 무슨 심뽀인지 나는 그 원래 제목의 책을 갖고 싶었다. 이미 절판된 책을 찾는 그 심정은 어쩐지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듯 간절하고 애틋했다. 결국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찾아 낸 그 책을 손에 들고 어찌나 행복했던지......
이 책 <청춘극한기>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작가의 이름만을 듣고도 작품에 신뢰가 갔다. '내게 있어 청춘이라는 잃어버린 이름을 어떤이는 극한까지 찾아 먹는구나.' 싶은 마음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극한까지 가는 건지 궁금하기만 한 제목과 작가에 대한 끝없는 믿음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웃음과 공감의 끄덕임을 동반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옥택선(어쩐지 유명 짐승아이돌의 어떤이를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다.)은 별 희망도 없는 시나리오를 쓰는 그저 그런 수입의 여성이다. 오지게도 재수없던 그녀는 우연히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 남수필에 의해서 듣도보도 못한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죽음을 앞 둔 상태로 평상시라면 만나지 않았을 다양한 인간군과 만나게 된다. 어린시절 첫사랑이었던 연우, 냉정하기 짝이 없어서 꼴도 보기 싫은 이균, 청춘의 한가운데서 물불 안 가리고 사랑 타령을 하는 젊은 미리와 상도, 그리고 파워레인저. 무엇보다도 옥택선에게 중요한 일은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자신의 과거들을 반추하는 계기였다. 어쩌면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청춘이었을 지도 모른다. 무조건 내달리는 청춘의 한 시기에 택선은 잠시 멈추게 되고, 또 다른 감염자들과 벌이는 한바탕 난리가 이 소설의 내용일 수도 있겠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늙은이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행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추억을 위한 기념품을 사듯,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젊은 날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본문 94쪽
빛나는 젊음의 시간에 죽음을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저 문장은 택선이 과거를 조우하듯, 우리에게도 그럴만한 계기가 필요함을 말한다. 무조건 전진보다는 가끔씩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도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피하고 싶고 잊고 싶은 기억들. 또는 아름답고도 따뜻해서 되돌아가고픈 생각들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 자양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므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