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 사계절 1318 문고 68
박선희 지음 / 사계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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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벽과 푸른 색 기와가 얹힌 뾰족 지붕집, 마당에는 너른 잔디밭이 있고, 이층의 테라스엔 코발트 블루 타일이 깔려있다. 여주인은 긴 머리를 날리며 그윽한 시선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그녀의 손에 앙증맞지만 강렬한 에스프레소가 한 잔 들려있다.

 그러나 그 집은 이제 나이가 들어 벽은 갈라지고, 이층테라스의 푸른 타일은 금이 가 있다. 너른 잔디밭엔 잡초가 그득하고, 여기저기 낡은 운동기구와 쓰레기들이 널렸다. 집 안의 여주인은 그윽한 에스프레소의 향으로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공갈젖꼭지를 빨던 귀여운 아기는 열일곱 살의 고딩이 되어 보충수업과 야자를 스스로 빠지고 학원에도 가지 않는다. 몽주는 그 돈을 모아서 나중에 여행을 가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워놓고 이 여름방학동안 도서관에서 그야말로 자학자습 중이다. 단짝인 이자이와 함께. 그런 몽주에게 이 여름동안 또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친구들과 만든 마술동아리에서 열심히 마술을 배워 할머니 생신 때 깜짝 놀래켜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말고도 몽주에게는 너무나 많은 고민거리가 있다. 늘 냉랭하고 우울한 엄마의 표정 뒤에 감춰진 근심이 걱정스럽고 피시방 카운터에서 야동에 빠져있는 아빠도 걱정이다. 게다가 달랑 하나 남은 언니마저 차갑기가 엄마 저리 가라이고, 몽주가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는 점점 기운이 빠지는 게 느껴진다.  

 열일곱 몽주는 고민도 많다. 친구인 자이가 도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도현이의 마음도 물리쳐야하고, 좋아하기로 한 도서관의 꽁지머리는 영 어떻게 다가가야할 지 모르고, 학원비 모아 놓으면서 학원에 안 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알까봐 걱정이고, 외국인과 사랑인지 뭔지를 하는 언니도 한심하다. 설상가상으로 오빠네는 어른들의 반대에도 입양을 하겠다고 하고, 30년된 낡은 집이 하나 둘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할머니의 기력은 더욱 쇠하는 것 같다.

 집이 무너지듯이 가족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엄마를 살피러 카페 심포니로 아빠를 도와주러 피시방으로 동분서주하는 몽주의 마음이 착하고 또 예쁘다.

 부모를 무슨 원수 대하듯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기도 하는 어떤 아이들도 있는데 비하면 가족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 놓는 몽주는 요즘 아이가 아닌 것일까? 아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낀다. 가족이란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어떤 끈으로 묶여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몽주의 따뜻한 성장기를 보면서 거칠고 메마른 요즘 아이들의 깊은 속에 흐르는 다정함을 본 것 같아서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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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에린의 비밀 블로그
데니즈 베가 지음, 최지현 옮김 / 찰리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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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blog] :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웹 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
 
 
인터넷을 사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갖고 있다. 대부분 하루의 일상을 기록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감상을 쓰기도 하고, 여행 후기를 근사한 사진과 함께 올리기도 한다. 나는 음식을 만들다가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블로그 이웃들을 방문하여 정보를 얻는다. 이웃들이 올린 글을 읽고 새 책을 주문하기도 하고, 새로운 신기한 상품을 사 보기도 한다. 다음 번 여행지를 계획하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 갈 일이 있을 때는 근처에 들러서 꼭 먹고 와야할 음식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주로 블로그에 새로 읽은 책이야기들을 올린다. 그러니, 사람이 제각각이듯이 그 사람만의 개성이 블로그에 그대로 들어있다. 블로그를 훑어보면 열심히 활동하는 블로거라면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바로 알 수 있다. 또 다른 자신의 집이라고 할까? 블로그 이웃들이 늘어갈 때마다 나의 정보의 바다도 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에린의 블로그는 조금 달랐다. 지금처럼 개인의 블로그가 웹상에서 활성화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IT강국이라서인지 아니면 이 책이 쓰여진 지 조금 시간이 지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정보화란 매우 급격히 발달하는 것이니 더욱 그렇겠지. 에린의 블로그는 CD에 기록이 된다. 에린은 친한 친구 질리에 대한 불만도 블로그에 털어놓고 밉상 세레나죽이기 페이지도 만든다. 첫 날 만난 귀염둥이 마크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자신 덕분에 끝장난 오빠의 아만다에 대한 아픈 마음도 털어놓는다. 게다가 날마다 베개에 키스 연습을 하는 것까지도...... 그러니 에린의 블로그는 일종의 비밀 일기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남들이 많이 많이 방문해 주기를 원하는 그런 블로그가 아니라.
이제 막 몰리브라운 중학교 1학년이 된 에린 페넬로페 스위프트는 앞으로의 생활이 떨리기도 하고 내심 설레기도 한다. 유치원때부터 붙어살다시피한 절친 질리와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에린이 입을 옷까지 다 골라주는 질리는 언제나 에린과 함께 하지만 가끔씩 에린은 어딘가 불공평하다는 생각과 질리가 제맘대로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질리가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옷도 잘 못 입을 것같은 에린을 세레나는 꼭두각시라고 놀리고, 에린은 입학 첫 날 친구의 코를 때리고 만다. 첫 날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리고 질리와 다른 반이 되어서 하루종일 만나지 못하지만, 에린은 몰리브라운 중학교에서 농구와 컴퓨터를 잘 하는 아이로 인정받고 멋진 친구들을 사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에 대해서 써 놓은 비밀이기 블로그가 어느날 작은 실수로 만천하에 공개가 되고 에린은 전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그녀가 몰래 흉본 내용때문에 좋아했던 친구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만다.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가 친구때문인 그 나이에 죽기보다 힘든 그 시간을 에린은 그러나 꿋꿋하게 이겨낸다.
읽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제 겨우 열 두세 살 언저리인 에린이 비밀 블로그에 남기는 솔직한 글들과 그 아이의 중학 생활이 어찌나 귀엽고 귀엽던지 모른다. 친구와 함께 화장실에 가고, 친구와 함께 꼭 밥을 먹어야 하는 나이인 에린은 홀로 서는 법 그리고 다른 친구를 만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아이들은 현장체험이 예정되어 있으면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누구와 버스에서 앉을 것이지,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미리 정한다. 그럴 때 에린과 질리처럼 약속하지 않아도 꼭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근사한 것은 또 다른 친구를 만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목격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에린의 그 내면의 단단한 힘은 가족들에게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들 가족의 서로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안다. 그들은 가족의 힘겨운 시간을 함께 해 줄 수 있고, 늘 변치않는 믿음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에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떠올렸다. 따뜻하고 단단한 깊은 마음과 열정이 많이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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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는 법
박완서.한말숙.김양식 외 지음, 숙란문인회 엮음 / 연암서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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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간 관계에서 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 받은 기억처럼 오래 가고 우리를 살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본문 42쪽 박완서, 행복하게 사는 법

 최근 들어서 '참 이러고도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에 조금 우울하던 참이었다. 하루도 마음 편히 쉴 날이 없이 바쁜 직장 생활에도 불구하고 늘 힘이 나게 하던 소소한 행복들이 그 빛을 잠시 잃어가는 듯 했던 것이다. 내가 쏟은 정성과 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도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반복되어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늘 마음을 다치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야하는 지 스스로 회의를 느끼고 우울하던 중에 이 책 <행복하게 사는 법>을 만났다.

 오랜 세월 문단에서 활동하신 어른들이라면 게다가 나처럼 그분들도 일과 가정을 함께 일군 여성들이니 무언가 더 잘 사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 틀림럾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제목 역시 <행복하게 사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최선일까? 지금 잠시의 슬럼프일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의 답을 이 책은 줄 수 잇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책의 앞뒤의 표지와 날개 등을 꼼꼼하게 읽는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고 이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도 짤막하게 있으니 미리 짐작도 하고, 또 이 책을 만든 회사는 다른 어떤 책들을 만들고 있는 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 책 역시 그렇게 날개와 표지를 읽다가 알게된 새로운 것이 있다. 처음엔 늘 존경하는 작가인 박와서님의 이름에만 눈이 갔었는데, 이 책을 엮은 '숙란문인회'가 어떤 모임인지 알게 된 것이다. 바로 문인들 중 '숙명여고' 동문들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전통이 있는 아주 오래된 여고를 다녔다. 그 때의 한 선생님께서 하신 퇴임사가 생각난다. "긴 시간 이 학교에 근무했지만, 나는 이 학교의 동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단 3년의 시간을 이 교정에서 보내도 영원한 이 학교의 일원입니다. 자랑스런 선배가 되어 주십시오." 이 말이 어찌나 가슴을 울리던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여고 시절의 동문이란 바로 이렇다. 이 '숙란문인회'가 어떤 모임일 지 짐작이 간다.

 22명의 여성들이 자신의 개성대로 세상 사는 얘기, 가족 이야기, 고향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 한 동안 들끓던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오랜 세월 함께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작은 사물에서 사색의 깊이를 넓히고, 떠나 보낸 선생님을 그리워한다. 많은 것을 욕심 내지 않고 작은 풀에 기뻐하면서 자분자분하는 그 이야기들은 너덜거리고 지친 내 마음을 조금씩 위로해 주는 것을 알았다.

 그래, 인생은 과정일 뿐이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저 말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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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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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 낯이 확 찌푸려진다. 거칠고 험한 단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뜻도 잘 모르는 욕설들도 큰소리로 떠든다. 남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비난을 하고 때로는 비웃으면서도 혹시 자기에게 작은 아픔이라도 생기면 과민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요즘 젊은애들은 버룻이 없다고 했다더니 어째 갈 수록 아이들을 대하는 게 불편해 지는 것을 보면 나이를 먹긴 먹는 모양이다.

 만약에 이 소설 <컴백홈>을 요즘 아이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읽게 되면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주인공 유미와 지은이가 주고 받는 대화의 내용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의 대화엔 욕설이 절반 이상이고  그들만의 은어와 비어가 난무하며, 그 대화 내용 역시 우리 시절의 눈으로 보면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여러가지 유리한 조건(이 소설을 이해하기에 유리한 학교라는 조건)에서 보면 이 소설의 현상은 실제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어린시절부터 뚱뚱해서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고 불리는 유미는 늘 먹는 것때문에 고민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들어온 뒤로는 학년짱인 지은이 패거리들에게 나흘들이로 얻어맞고 돈을 만들어다 바치느라 인생이 너무도 고달프다. 엄마는 유미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등짝을 쳐대고, 아빠는 유미에게 관심이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그 고통을 당해도 누구에게 말할 수조차 없다. 지은이와 학교에서는 안면을 까고(애들 표현대로) 때리는 대로 얻어맞고 저녁에는 한 방에서 잡소릴 하면 뒹구는 이런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유미는 지은을 원망하려 하지 않는다. 평생을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면 살고, 스스로를 미워하는 유미는 지은이의 그런 행동이 자기탓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 그래도 언젠가는 태지오빠와 함께 저 빛나는 달의 뒤로 날아갈 것이라는 유미의 비밀스런 소망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맞고, 돈 뺏기고, 무지막지하게 먹고, 잠만 자면서 스스로를 학대하던 유미에게 어느 날 지은은 한 마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모든 것이 지은과 연결되어 있었던 유미는 졸지에 어찌할 줄 몰라 당황을 하고, 유미를 찾아내라는 패거리들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요즘 아이들은 다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로 아이들을 정의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비록 천박한 말투와 행동으로 어른들을 실망시키고 이기적인 태도로 염증을 느끼게 하지만, 그들도 내면에는 고통과 실망과 불안을 안고 있는 하나의 여린 청춘이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 눈동자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안에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고민과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 그리고 희미한 희망으로 가슴을 설레는 작은 아이를 볼 수 있다. 공부만이 아이들이 해야할 일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의 사회에서 어른들이 이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쳤는 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태아가 뱃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살피면 이 우주에 우리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생겨나던 과정을 그대로 되풀이한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로 인류 전체의 성장 단계를 밟아서 한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우주의 섭리인가 말이다. 거리에서 침을 뱉거나 큰 소리로 욕하면서 친구를 부르는 저 아이도 위대한 하나의 우주라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누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서 힘차게 전진할 힘을 주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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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시여행 - 도시 골목골목, 우리 문화와 이야기를 따라 걷다 참여하는 공정여행 2
이병학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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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휴가철이 되면 어디로들 못 떠나서 안달이다. 마치 그 여행을 위해서 일년을 참아온 것 마냥 당연히 어디 먼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한다는 병에들 걸린 것 같다. 공항에서 면세 쇼핑도 하고, 비행기에서 주는 그 포장된 밥도 먹고, 하늘 구경도 하다가 낯선 향신료 냄새가 나는 나라에서 산 설고 물 설어 고생을 하다 오더라도 좋단다.

 그러나 요즘 들어 들리는 자성의 목소리는 참 아름답다. 우리의 땅 제주의 아름다운 올레길을 걷는 일부터 시작된 이 바람은 육지의 근사한 산둘레를 걷게 하더니 이젠 작은 도시 곳곳의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내는 데까지 도달했다.

 사실 외국이라고 나가봤자, 그 나라 사람들에게나 의미있는 기념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오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있고,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텔레비전 보듯 슥 스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땅에서야 그럴 일조차 없다. 작은 건물의 총탄 하나마저 우리는 그 사연을 알고, 낡았지만 고아한 고택 앞에서 이 댁에 사시던 그 어른의 함자 정도는 알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보게 된 이 책 <대한민국 도시여행>은 참 좋다. 우리 남한 땅을 여섯 범주로 나누고, 서울,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의 작은 소도시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시골 장터의 뻥튀기 장수 할머니 앞에 선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군산의 적산가옥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특히나 이미 알고 있던 건물을 만날 때의 반가움은 어찌나 즐거운지.

 오래 전 여러 번 찾아갔던 온양편을 보면서 그 지점 하나하나가 생각났다. 지금은 많이 도시가 변한 듯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온천의 물은 따근할 테고 국밥은 맛날 것이다. 또한, 예전에 근무하던 동네가 책에 소개되어서 무척이나 기뻤다. 게다가 지도를 보니 바로 그 역사의 한 가운데서 내가 살았던 모양이었다. 그 길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장 가운데 우두커니 있던 비석과 전각이 갖는 의미를 깨닫기도 하고, 그 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번 여름은 이 책으로 휴가를 가야할 모양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도시를 다 돌아보려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괜시리 들뜨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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