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소설
송수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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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학창 시절부터 지금의 전공을 택하여 밥을 벌어먹고 사는 현재까지 항상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홍길동전>은 정말 허균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일까? 허균에 대해서는 비운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이며, 광해군 때 역모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지식 말고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아들인 그가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전하는 말로는 그에게 시를 가르친 이달은 서출이었고, 그와 가까이 지냈던 친구 중에는 서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허균은 자유분방한 사고와 파격적인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태생을 벗어나서 행동하기가 그리 간단한 일일까?

  이 소설 <위험한 소설>은 나의 이런 의문에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소설을 읽고 나서 허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소설에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인품이나 삶의 자세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허균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던 중에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원 급제를 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자였으며, 유학을 근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벼슬을 살면서도 "불교에 대해서는 한때 출가하여 중이 되려는 생각도 있었으며 불교의 오묘한 진리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한평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다는 술회를 하기도 하였다"(한국역대인물종합지원시스템)고 할 정도로 열린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재가 뛰어나 많은 작품을 지은 허균은 그 행실에 있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설 <위험한 소설>에 나오는 천민 출신 시인 유희경과의 교류나 부안 기생 매창과의 관계 역시 당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

예교(禮敎)에만 얽매어 있던 당시 선비사회에서 보면 이단시할 만큼 허균은 다각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졌던 인물이며, 편협한 자기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핍박받는 하층민의 입장에서 정치관과 학문관을 피력해나간 시대의 선각자였다."(한국역대인물종합지원시스템) 

  그의 죽음에 관한 의문은 당시 사람들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뛰어난 천재의 억울한 죽음인 것일까? '시대와의 불화'라는 말로 그의 죽음을 단정지을 수 있을까?

   소설은 그 구성이 입체적이다. 처음 시작은 이미 허균이 능지처참을 당한 이후이다. 멸문지화를 막기 위해서 숙부의 죽음 현장에서 숙부를 부정했던 조카 허보는 자신을 미행하던 한 여인에게서 의문의 글을 전해 받는다. 여인은 교산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이젠 알릴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늘 마음에 짐을 지고 살던 허보는 조카인 필진과 함께 숙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밝히고자 궁리를 한다. 숙부와 교류가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게 된 허보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유희경을 만나지만, 그 역시 알 듯 모를 듯한 말만을 남긴다. 소설의 시간은 교산 허균의 살아 생전의 사건과 허보의 시간이 이중적인 구조를 그리면서 진행된다. 시와 술을 즐기고 여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웅숭깊은 사람인 교산은 그의 필생의 마음인 매창을 위하여 소설 <홍길동전>을 쓴다. 그 내용은 임금을 부정하고 이 조선 땅에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자 교산에게 글을 쓸 것을 부탁한 기생 매창은 그의 글을 밤새 읽고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죽음으로 밀어넣을 것을 알면서도 매창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그의 마음을 본 것이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목숨을 걸고 그 글을 고쳐서 칠서들에게 전달한다. 그녀는 죽기 전에 교산의 목숨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한 때는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관계였으나,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모습은 슬프기 짝이 없었다. 그들이 사랑하고 의지하던 사람을 속이고 아프게 하고, 죽음의 구렁으로 몰아넣으면서 얻고자 하던 것은 모두가 평등한 그런 세상이었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있는 길동이 꿈꾸던 그런 나라였을까?

  복잡한 구성이 소설의 앞 뒤를 조금 들썩이게 하고, 당대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지식이 없어 약간 혼란스러웠다. 교산의 죽음은 겨우 소설 속에서 말하는 그런 이유였던 것일까? 그러나, 저 멀리 옛 사람들의 사랑과 교분을 마치 내 것처럼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이 주고 받는 시의 아름다움은 조금의 혼란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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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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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부터 사극을 좋아하고, <조선왕조실록>이니 <고려왕조실록>을 초등학교 때 읽고, 조선 시대 내명부의 품계를 달달 외우고 어느 왕의 부인이 누구인지를 잘 아는 딸 아이 덕에 나름대로는 궁궐의 생활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무수리와 생각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궁녀들은 다 상궁인 줄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의 소개를 보면, " 사료를 근거로 하여 있는 사실을 ‘분석’하고 ‘정리’한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는 ‘그녀’들의 삶에 가까이 접근하여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고 한다. 처음 이 책의 소개를 보았을 땐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다. 한 평생을 궁궐에서 사는 여인들의 이야기라니, 그들이 사는 속내를 좀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기대는 빗나갔다. 책의 내용은 조선 시대의 궁궐에 사던 여인들을 궁녀, 후궁, 왕후로 구분하여 통계를 내고 연구를 한 연구서적이었던 것이다. 사실 좀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의외로 쉽게 읽혔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1장의 제목은 <궁궐의 노비, 궁녀> 였다. 사극에서는 궁녀들을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그리고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궁녀는 그 출신이 거의 관노였다. 또한 일반 여염집에서 궁녀를 뽑기는 어려운 일이었다고 기록한다. 궁녀로 산다는 것은 남보기에는 근사할 지 모르지만,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우연히 왕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거나 왕후가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궁녀들이나 쳐다보고 있을 정도로 왕이 한가한 것도 아니었고, 왕후나 후궁의 견제가 매우 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궁녀들은 너무 바빴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가 평생을 살고, 나이가 들어 궁에서 나와도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는 그런 궁녀의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궁녀를 공노비에서 뽑은 것이라고 한다.  2장은 <왕의 첩, 후궁>이다. 이 책에서는 후궁의 품계와 후궁의 직무, 누구나 미인일 것이라고 짐작한 후궁의 외모와 자녀들의 통계 그리고 후궁의 출산과 정치 참여에까지 후궁들의 삶 전반을 다룬다. 또한 왕의 어머니가 된 후궁들은 누구인지, 외부 선정을 통하여 후궁이 된 사람은 누구이고, 내부승진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또한 왕의 사후에 후궁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도 다루고 있다. 3장은 <또 하나의 주상, 왕후>라는 제목으로 조선 시대 왕후들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왕후가 되었는지 등을 자세히 안내하고 왕후의 위상과 왕의 사후 왕후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다양한 사료와 근거를 들어서 알기 쉽게 설명한 이 책은 흔히 기대하는 소소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다. 각종 통계와 그 근거가 되는 실록과 서책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는 책이다. 그동안 궁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근거없는 여러가지 편견들이 한꺼번에 정리가 되었다. 궁녀라면 왕의 눈에 띄려고 요사를 부리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모시는 왕비나 후궁 또는 대비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각종 모사를 꾸미는데 앞장서는 여자들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후궁들은 왕비를 음해해서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만 하거나, 아니면 각종 붕당의 대표가 되어서 서로 권력을 더 많이 잡으려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더욱 그렇다. 조선시대의 왕후가 갖고 있던 위상과 체통, 그리고 그 거대한 내명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그 여인들의 삶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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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시간 - 아픈 마음 도닥이고, 힘든 일 보듬는
김경집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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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부모재 불원유 유필유방)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멀리 가지 말아야 한다.

만약 멀리 가게 되면 반드시 일정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   

<논어>(이인 편)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건강하게, 바라는 바 잃지도 잊지도 말고, 포기하지 않으며 쓰러지지 않고

제 뜻을 이루는 것뿐일 것입니다.

                                                          본문 45쪽

 

  유명 소설가도 아닌 김경집 선생님의 책을 꼭 찾아 읽는 것은 선생님의 책에서 느껴지는 향기때문이다. 그 향은 은은한 묵향일 수도 있고, 맑은 차의 깊은 향일 수도 있다. 나이듦에 대한 단상이거나, 잊혀져가는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글이거나 이 책 <위로가 필요한 시간>처럼 건조한 가슴을 촉촉히 어루만지는 글이거나, 읽고 나면 가슴 깊은 곳에 보이지 않게 남아있다가 가을 바람에 하늘 한 번 쳐다볼 때 문득 떠오르는 그런 향이다. 평생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가르치신 삶을 지키셔서일까?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곧게 가누게 하는 그러나, 준엄한 호통이 아닌 따스한 위로의 말과 같은 글들이 오래오래 남는다.

 프롤로그에서 선생님은 "텅 빈 세상에 혼자 내팽겨쳐졌다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위로하는 여유와, 자신의 삶의 속살을 그대로 내보여주며 우리를 다독여주는 이들에게 고마음을 느끼고 살면, 조금은 사는 게 성긴 듯 밭지 않고, 밭은 듯 성기지 않을 것 같다"(프롤로그 9쪽)이야기 한다. 이 한 문장이 바로 이 책을 만든 이유일 것이다. 각박하고 이기적인 세태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텔레비전 뉴스조차 보고 싶지 않고, 옆 집에서 나오는 저 사람이 옆 집의 주인인지 아닌지 조차 관심없을 때 우리는 이 책을 열어 볼 필요가 있다.

  한 공기의 밥과 같고, 한 숨의 공기와 같은 우리 가족들에 대한 추억과,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있어줘서 생각만 해도 든든한 그 사람들에 대한 소회, 우리를 이 차가운 세상에서 버티게 하는 따듯한 향기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진정한 승리의 이야기들은 나의 삶을 성긴 듯 밭지 않게, 밭은 듯 성기지 않게 할 것임을 안다. 나 혼자만 이 세상에서 고통받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고 위로할 누군가가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사는 게 실망스러울 때 아무 쪽이나 펼쳐 읽어볼 것이다. 때로는 살아있는 것조차 용기가 될 때가 있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한다면 그들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고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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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들 2 - 가짜 이름을 가진 아이들 봄나무 문학선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이혜선 옮김 / 봄나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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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그림자 아이들 1 - 숨어사는 아이들>(http://blog.naver.com/echojaj1/120813274)을 읽은지 어느새 반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 밖에는 나와보지 않은 루크가 자신과 같은 셋째 아이들의 권리를 위하여 죽어간 친구 젠을 기리며, 젠의 유지를 받들어 셋째 아이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던 그 출발이 기억난다.

  드디어 2권 <가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을 읽게 되었다. 젠의 아버지 탤벗씨는 인구경찰의 눈을 피해서 루크를 핸드릭스 남학교에 가짜 이름으로 입학시킨다. 죽은 아이 '리 그랜트'의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루크에게 학교의 모든 것은 불친절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심술궂게 루크를 괴롭히고, 선생님들은 루크와 다른 아이를 구별하지 못하며,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학교 건물은 복잡하기만 해서 루크는 자기방도 잘 찾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과 자연스레 어울려야한다는 것은 알지만, 평생을 방안에서만 살아온 루크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의 이름조차 외울 수 없어 늘 혼란스럽다. 답답하고 괴로운 날을 보내던 중 루크는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가는 문을 발견하고 살그머니 나가본다. 숲으로 들어간 루크는 모처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 가끔씩 숲으로 나가는데, 어느 날 자기말고도 숲 속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 아이들을 이끄는 것은 루크를 괴롭히던 제이슨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루크는 친구들을 사귀게 된 걸까? 학교 생활은 좀 더 자연스러워지지만, 거기에는 깜짝 놀랄 비밀들이 숨겨져 있고, 루크는 상처받고 흔들리지만 좀 더 강인한 아이가 되어간다. 루크는 핸드릭스 학교에서 젠의 뜻을 펼칠 수 있을까?

  루크가 처음 학교에 들어와서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 <Room>이 떠올랐다. 납치되어 강간당하고 그 납치범의 아이를 낳아 기르던 소녀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깥을 본 적이 없는 소년은 다섯 살이 되어 처음 바깥으로 나가던 날 엄마를 납치범의 손에서 구해냈다. 방안에서만 살았지만 엄마의 사랑과 기지로 자라 총명하고 용감했던 소년은 세상의 밝은 빛들과 모든 물건들과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강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엄마에게 집착한다.

  루크는 자기만의 세계가 작아서 답답해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했지만, 그 세상이 주는 충격은 세상이 뒤바뀌는 듯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세상에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없는 답답하고 두려운 심정, 누군가 자기가 가짜 이름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루크는 그의 다정하고 용감한 본성을 미처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루크가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다음 번 책에서는 루크의 활약이 대단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수많은 '그림자 아이들'을 위해서 루크는 어떤 일들을 해 나가게 될까? 한 소년의 성장과 더불어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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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 타이완 희망 여행기
이지상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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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거창한 이념, 볼거리들이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작은 것들에 매혹된다.

파편같은 작은 것들과의 소통을 통해 우주적 황홀감을 맛본다.

발밑의 삶과 한 끼의 식사를 사랑하는 자만이 우주의 신비를 맛볼 수 있다. "

에필로그 397-398

 

  사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어린 시절엔 생일이라면 뭐 대단한 날이라고 이래저래 축하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생일이라는 것도 그저 어제와 똑같은 날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는 게 뭐 다 똑같아서,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일도 없고 그저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얼핏 하게 되면 느닷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며칠 째 하염없이 내리는 비와 이런 우울한 생각들이 이 책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 질 것이다> 속으로 나를 이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여행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의 작가가 그의 첫 여행지였던 타이완을 또다시 여행하면서 쓴 일기를 읽으면서 그의 한없는 우울과 허망함에 공감했다. 그는 타이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더위를 먹을 지경이었으나 나는 여기에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사실 그의 더위만큼은 공감할 수 없기는 했다.

  병든 어머니를 돌보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나서 우울함과 허전함과 슬픔을 견디다 못해서 그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타이완으로 향한다. 그의 삶의 전환점이었던 그 곳에 가서 친절한 사람들과 맛난 음식으로 위로받고 싶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실제로 그는 22년 전 처음 타이완 여행을 했을 때 찾았던 숙소를 찾고 그 때의 음식들을 그리워한다. 그 때 만났던 아름다운 여인을 기억하고, 예전에 마음을 뉘고 쉬었던 곳들을 찾아서 마음을 달래고 쉰다. 야시장 가득한 맛난 음식들은 그에게 원기를 주고, 객잔의 친절한 주인은 한 잔의 향긋한 차로 그의 마음을 위로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산길과 그전 그대로 잔잔한 파도와 따가운 햇빛은 세상에 대한 허망함으로 다친 그의 마음을 보듬는다.

 

  "타이완에 가 보세요. 삶에 지친 당신, 푹 쉴 수 있을 거예요.

친구네 집에서 맛있는 음식 먹고, 노천 온천물에 목욕하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것처럼

천천히 게으름 피우다 오세요. 그리고 작은 보물들을 가슴 한가득 안고 오세요."

본문 15쪽

 

  그에게 타이완은 그런 곳이다. 맛난 음식과 향그러운 커피와 따끈한 온천물이 있는 곳, 수다 떨 수 있는 친구가 있고, 푹 쉴 수 있는 곳이다.

  세상 어디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었다. 내가 평생 찾던 곳이 그런 곳인데,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는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을 쉬는 그런 삶이 아니라, 한 번 쯤은 유유자적하게 걸으면서 저녁놀을 바라보고, 깊은 향의 차를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보고 싶다. 바람이 시원한 객잔의 3층 평상에 앉아 고양이에게 웃음 한 번 주고, 창 밖으로 지나는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그렇게 한가하고 싶다. 거기가 주펀의 금석객잔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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