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지구상에서 가장 무모한 남자의 9가지 기발한 인생 실험
A. J. 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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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속담에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느냐"라는 것이 있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뉴욕의 한 남자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꼭 현장 실습을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먹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이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아보겠다고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종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1년동안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아홉가지의 새로운 실험에 도전을 했다.
  먼저 그는 온라인에서 아름다운 여성인척하면서 50일간 인터넷 데이트를 했다. 시작은 아이를 봐주는 보모인 아름다운 미셸에게 남자친구를 만들어주려는 의도에서였지만, 미셸과 함께 그녀의 프로필을 관리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여성으로서의 삶을 실감했다. 또한 미국의 기업들이 산업의 대부분을 아웃소싱한다는 기사를 보고 자신의 삶을 아웃소싱 해본다. 기자가 직업인 그는 자신의 기사에 관계된 조사 업무를 인도의 비서에게 맡기고 인터넷 쇼핑과 영화 예매, 가족의 새일 선물과 사과 편지들을 개인 비서에게 맡겨본다. 그는 인도의 뛰어난 비서들을 체험하면서 미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몇 줄을 할애한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 자말이 일하던 콜센터가 기억난다. 한 고객이 콜셑너가 인도가 아니냐면서 화를 내던 그 장면 말이다. 그래 인도였다. 가장 흥미로운 실험은 뇌와 입 사이의 필터를 없애는 실험이었다. 그는 '획기적인 정직 실천하기' 실험을 위해서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을 사실대로 표현했다. 연구에 의하면 "완벽하게 정직할 때의 환희, 즉 스페이스 마운틴(Space Mountain, 금기 사항을 깨뜨릴 때 아드레날린이 급격하게 분비되는 현상)'이라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가벼운 위험 부담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게 될 것'(본문 91쪽)"이라는 것이다. A.J 제이콥스는 이 실험을 하면서 거짓말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즐거움도 덩달아 줄어들어, 매일 수많은 대치 상황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늘 정직함을 가장 중요한 모토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완전하게 솔직하게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매일 부딪힐지도 모르는 수많은 대치 사황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신은 뚱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유명인을 대신하여 4시간 정도 스타로 살아본다든가, 누드 사진을 촬영한다든가, 조지 워싱턴의 원칙대로 살아보거나 한 달동안 아내로 살아보기 등의 실험을 하면서 그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한다.

  새로운 실험에 임할 때, 그냥 몸으로 실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서적을 읽고 그 방면의 권위자들을 만나면서 의견을 듣고 지식을 쌓는 그의 행적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매우 학구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아는 지식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물며 이미 세상 모두가 진실이라 인정한 사실들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실천하는 그의 의도는 어쩌면 에디슨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 본 1년>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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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산책과 위로의 시간들, 개정판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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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참 근사하다는 생각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게다가 포토에세이라는데야 뭐. 아름다운 사진과 가슴에 문득 새겨질 듯한 명민한 문장들이 한동안 내가 만나러 갈 행복이 되어 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읽을 수록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 말투와 사진들이 너무도 눈에 익어서 서가를 찾아보았다. 있다.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2년 전에 읽었던 책의 재판인 것이다.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고서 웃음이 떠올랐다.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이 오렌지 색조의 따뜻한 오후를 말하고 있다면 이 책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는 가득한 햇볕이 부담스러운 나른한 오후를 이야기한다. 정말 낮잠이라도 자야할 듯이 말이다.

  한창 바쁠 때라서 그 책의 한적함에 눈이 부시게 부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깊은 감동을 주었던 한 할머니의 사진을 찾아 보았다. 길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시주를 올리는 사람들의 거친 발바닥도 또 다시 만났다. 그대로다. 루앙프라방에서 산책을 하고 위로를 받는 그 시간들은 여전히 부러웠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곳, 아름답고 조용한 사람들과 경건한 노비스가 조용히 지나가는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다. 그 곳에서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햇살을 즐긴다. 눈이 아름다운 소녀 펍피와의 행복한 산책으로 빛나는 오후들이, 열 세살이 너무 지루한 노비스 스그롱의 아이다움이 사진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써바이디" 인사를 나누며 지내는 그 시간들이 사진 속에서 손짓한다.

 

 "손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손이 진정으로 필요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그건 바로 누군가를 쓰다듬고 어루만질 때랍니다."

 본문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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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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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이슬람에 대하여 한 2주 정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을 통하여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고, 그들이 믿는 신과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교리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에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가질 수 있는 여러 즐거움 가운데 오랜 만에  '앎의 즐거움'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이슬람, 중동, 아랍이라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지만, 그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이슬람이란 종교에서 중요시하는 게 어려운 사람에 대한 자선이라는 점과 우리가 흔히 이슬람의 문화로 알고 있는 명예 살인은 중동 지역의 오래 된 풍습일 뿐 이슬람 교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도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슬람이라 하면 알 카에다, 빈 라덴과 그리고 테러를 연상한다. 그러나 그간 공부한 바에 의하면 우리 나라와의 오랜 관계도 그렇고, 고도로 발달했던 그들의 문화와 그 문화가 인류 발전에 끼친 영향 등을 알게 되면서 참 매력있는 문화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들 중 폭력 테러로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이슬람 신자들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배웠다.

  청명한 9월의 한낮 12시,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시간 월스트리트의 J.P.모건 은행 앞에는 짐을 잔뜩 실은 수레가 있다. 마부도 없이 짐만 가득 실은 그 수레는 트리니티 교회의 종이 열두번을 다 울리자 터지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그들 중 거의 모두가 자신들의 죽음의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아직까지도 그 배후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만약 이 사건이 지금 일어났다면 그 배후로 이슬람을 지목했을 것이다. 얼마 전 노르웨이의 테러 사건이 그랬듯이.

  법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러벤펠트는바로 여기서 소설을 시작한다. 마침 그 때 그 자리에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세 축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했던 부유한 가문의 스트래섬 영거, 딸린 식구들 때문에 비록 전쟁에는 참전하지 못했던 뉴욕 경찰 제임스 리틀모어,  그리고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 콜레트로 그녀는 마리 퀴리 부인의 연구실에서 라듐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폭발 당시 그 자리에서 죽은 빨간 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테러 현장을 수숩하던 콜레트는 어디론가 납치되어 사라졌다. 호텔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말 못하는 동생 뤽까지도.

  687쪽에 달하는 두꺼운 소설은 사건이 대단히 복잡하고 등장인물 역시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리틀모어 형사는 폭발 사건을 조사하던 중 너무 많은 의문점을 발견한다. 연방 경찰국장인 플린은 그 사건을 멕시코 소행으로 보고 사건과 증거를 몰아가지만, 리틀모어에게는 그 사건이 모건 은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의 추적은 점점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재무장관인 휴스턴은 그를 특별 요원으로 삼아 사건의 수사를 지시한다. 그의 수사 방향이 맞았던 모양이다. 한편 영거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유럽의 전쟁터에서부터 함께 했던 총명한 콜레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는 전쟁 중 약혼한 오스트리아 남자 한스 그루버를 찾으려는 생각에 빠져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콜레트를 죽이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또한 콜레트에게 다가오는 그 빨간 머리의 여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의 목에 난 또 다른 머리는?

 작가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 못지 않게 인류 역사에 중요한 인물인 퀴리부인과 프로이트가 등장하는 것이 이채로웠다. 콜레트의 위험에는 그 저변에 퀴리부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라듐이 있었고, 프로이트는 콜레트의 말 못하는 동생 뤽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역사적 사건과 절묘하게 연결되는 방법이 특이했다. 그 때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그것은 온 우주에도 존재하여 행성과 행성이 서로 끌어당기듯, 그 반대의 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살고자 하는 본능과 죽고자 하는 본능이 함께 있어, 마치 나방이 불꽃으로 날아가듯이 우리를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기 파괴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죽을 의지를 상실하여 고통받는 세포를 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거대한 테러 사건과 '죽음 본능'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단지 어린 뤽이 실어증에 걸린 원인을 찾기 위해서 사용된 용어라면 제목으로 하기에는 좀 포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혹은 거대한 테러의 원인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무 목적 없이 단지 파괴만을 원하는 누군가의 '죽음 본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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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왕강 지음, 김양수 옮김 / 푸른숲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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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이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을 왕야쥔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해.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본문 502쪽

 

 

  한 소년의 성장기로 이처럼 아름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문화 혁명이 일어나 모든 지식인들이 축출되고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주인공 류아이의 아버지는 텐산 자락의 우루무치라는 시골에서 건물을 지었다. 소련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게챠인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류아이의 어머니 역시 같은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들은 낡은 집의 4층에 살면서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한참 무식한 농군 출신의 당간부에게 아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아도 아버지는 그저 정신 빠진 사람처럼 웃기만 한다.

  외모가 서양인처럼 생긴 위구르족들과 한 고장에 살면서 아름다운 위구르인인 아지타이에게 위구르어를 배우던 아이들의 학교에 영어 선생이 온다. 양복을 입고 행커치프를 한 그의 이름은 왕야쥔이다. 향수를 뿌리고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는 왕야쥔에게 류아이는 홀딱 반한다. 영어 공부를 더 잘하고 싶어서 같은 반의 예쁜 여자아이 황쉬성을 질투하기도 하지만, 황쉬성은 불행하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이나 당에서는 왕야쥔의 사고 방식을 못 마땅해 하고,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도 힘들어 한다.

  아름다운 여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으로 아픈 가슴을 간직한 류아이의 섬세한 정서를 부모나 친구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처럼 무감각하게 혹은 원초적인 욕망의 충족만으로 만족하며 살기엔 류아이는 너무도 가녀 정린 영혼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격랑 속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당시 중국 인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이 작품에서 가족 간의 뜨거운 사랑도, 사춘기 소년의 설레는 첫사랑도 좋았다. 아이에게 영원한 롤모델이었던 잉글리시 보이의 가여운 말년의 `모습이 가슴 아프지만, 평생을 가는 이런 우정이 부럽다.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듯, 사람에게 이상이 있어야한다는 그의 말이 오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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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뉴욕
이숙명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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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 돌아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의 여행기로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을 가장 큰 호사로 삼는다. 덕분에 뮌헨에 가면 뭘 먹어야할 지, 런던까지는 어떤 교통편을 이용할 지, 산토리니의 숙박료가 언제 쯤 가장 비싼 지도 안다. 벨기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시도 알고, 이스탄불에 가면 모스크와 성당이 나란히 있다는 것도 안다. 게다가 뉴욕이라면 뭐, 관계된 책들만 해도 읽은 것이 수십 권이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어쩌면 우리 동네보다 더 많이 돌아다녔을 지 모른다. 심지어 맨해튼의 지도까지 머릿 속에 그릴 수 있다. 물론 이론으로는 그렇단 말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매력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휙 다녀온다는 것이다. 다들 알만한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관광객을 상대로 급히 만들어 놓은 천편일률적인 음식을 먹고, 심지어 똑같은 물건을 사 들고 들어온다는 게 심히 못마땅하다. 내가 무거운 물건을 들고 걷는 것을 딱 질색으로 한다는 것을 일단 빼놓고 보면 말이다. 내 생각에 멋진 여행이란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한가롭게 공원을 산책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동네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사 먹는 것이다. 이왕이면 동네 사람과 눈도 맞추고 싶다.

  그러니 이 책 <어쨌거나 뉴욕>은 참 근사한 책이다. 지은이는 연속되는 야근과 지겨운 인터뷰와 해도해도 끝이 안 보이는 일을 집어 치우고 스스로에게 긴 휴가를 주기로 한다. 7년이나 일을 했으니 쉴 만도 하다는 거이다. 난, 20년이나 일을 했는데 ......

  그리고 찾아간 뉴욕에서 집을 구하다가 프랑스 여자에게 사기를 당해 미국 경찰의 도움을 받고 재판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한다. 물론 돈도 날렸다. 할 수 없이 뉴욕에서 일을 하는 후배의 집에서 빌붙어 지낸다. 지은이 표현대로 '섹스 앤 더 시티'를 꿈꿨으나 '프렌즈'가 된 것이다. 뉴욕에서 옷을 사서 인터넷으로 장사를 하는 L과 함께 온 뉴욕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는 바람에 늘 후줄근한 청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지만, 각종 매장의 정보를 꿰게 되고, 심심할 때면 뉴욕 탐정 놀이도 한다. 그저 아무나 찍어서 미행하기다. 그러다가 뉴욕 토박이 고등학생들이 가는 만화가게도 들어가 보고 근사한 악기 상점에서 기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몇 달 후에는 다른 뉴요커들처럼 살 집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면서 돌아다닌다. 뉴욕이라는 데는 우리나라 서울보다도 더 집을 구하기가 힘들다더니 지은이의 고생을 보니 이해가 된다. 생각 외로 다정하고 친절한 뉴욕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외국인인데다가 영어가 시원찮아서 사기도 당하면서도 그는 '어쨌거나 뉴욕'을 외친다. 다른 어떤 곳보다 쉬고 산책하고 구경하고 놀고 수다 떨기에 좋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 책을 잘못 선택히면 여행기가 아니라, 쇼핑기거나 제 자랑인 경우가 있다. 간혹은 문장이 너무 유치하고 수준 미달인 경우도 있고, 그저 문장을 예쁘게만 쓰려고 한 경우도 있으며, 이국의 삶을 들여다 보고 온 것이 아니라 한인 민박집과 한국 동행인에 대한 스트레스 넋두리인 경우도 많았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기자답게 그의 글은 재밌고 위트가 있다. 사는 얘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아 공감이 가고, 낯선 곳에서 당차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장 과정에 대한 유머러스한 표현들과 뉴요커들 앞에서도 당당한 자기 표현들이 매력적이다. 그의 표현들에 대한 공감으로 읽는 내내 킥킥 거릴 수 있었다. 지금은 또 어디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지 모르지만, 또 다른 그의 글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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