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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여러 스타일의 배우들이 있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 외모는 출중하지 않아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 여러 가지 재능과 끼가 많아서 그 인기가 외국에서까지 높아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우쭐해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는 평소의 품행과 삶이 바람직하여 공인으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그를 생각하면 흐뭇해지는 사람도 있다. 배우 차인표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원어민 영어와 잘생긴 외모, 그리고 근사한 매너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은 그는 외국의 팬들까지도 우리나라로 초청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상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입 밖으로 쉽게 말 꺼내기 어려운 입양에도 앞장 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실천하는 그를 보면서 참 근사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기 역시 그 깊이가 더해가는 것이 보이고 그 삶의 깊이가 연기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삶을 성의있게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그가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책을 펴냈다고 했을 때, 사실 좀 우려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여러 유명인들처럼 자신의 인기를 이용하여 책을 팔아보려는 얄팍한 상술을 부릴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혹시나 그의 작품이 함량 미달이어서 그의 인품에 호감을 갖고 있던 내가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그로 인해서 그에게 팬들이 등을 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도 오지랖 넓게 했다. 그런 소심한 마음에서 그의 첫 작품 <잘 가요 언덕>도 읽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했다는 말, "이젠 작가로 불리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고 차인표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다른 시선으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마음과 이름을 걸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그와 그의 작품을 믿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예보>는 우리들의 인생을 예보하는 악명 높은 DJ데블의 멘트로 시작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작은 희망들을 무참하게 밟아버리는 그의 예보를 실제로 당사자가 듣는다면 세상 살 맛이 딱 떨어지게 생겼다. "저 태양이 떠올랐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 진 것(프롤로그 7쪽)"이라는 DJ데블의 대사는 어쩌면 그리도 콕 찍어서 미운 말만 하는 지 아주 얄미웠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소설 전개도 이런 식이라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DJ데블은 우리 모두의 인생을 예보했지만, 특히 세 사람의 삶을 관심있게 바라본다. 한 사람은 오늘을 죽을 날로 정한 40대 중반의 나고단씨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 작은 키로 놀림을 받았지만, 열심히 살았다. 밤업소에서 웨이터 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괜찮은 아가씨랑 살림도 차렸다. 아이는 안 생겼지만, 재미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다 헛것이라는 깨달음을 몸과 마음으로 얻어야 했고, 긴 시간 이리저리 치이던 그는 드디어 오늘을 죽을 날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성산대교에선 반포대교로 가라고 하고, 기어이 자리를 정했더니 촬영에 방해된다고 비키란다. 심지어 자기를 CG로 지워버린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는 “지우지 마, CG로 지우지 말라고 난 아직 살아있어. 너희들이랑 똑같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고…….”(본문 80쪽)라고 외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처절하게 외친다. 또 한 사람은 이보출씨이다. 사업을 한답시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온통 빌리고 갚지 못해서 사기꾼이 되어버린 이보출씨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보조출연자로 일하고 있다. 이 일도 지원자는 많고 수요는 적어서 눈치 잘 보고 줄도 잘 서야한다. 누나에게 맡긴 아들 태평이와 함께 살 방을 구하기 위한 이보출씨의 분투기는 정말 눈물겹다. 그는 반장의 눈에 들어서 다음번 작품에 함께 끼고 싶어서 온갖 어려운 일도 참고 또 참는다. “단 한 번도 진정 허리 굽혀 일하느라 땀을 흘려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나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본문118쪽)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이리저리 땀나게 뛰는 이보출씨의 아들 사랑은 정말 눈물겹다. 또 그런 이보출에게 돈을 사기 당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까운 딸 봉봉이의 골수 이식만을 기다리는 박대수도 캄캄하다. 어린 시절 싸움에 우연히 휘말렸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박대수씨에게 봉봉이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한 삶의 중심이다. 그런 봉봉이가 병에 걸렸는데, 김밥집 차리려고 모아둔 돈 9천만 원을 이보출이 떼어 먹은 것이다. 이보출이 빌려간 돈을 받는다고 해서 봉봉이가 나을 것도 아니건만 그는 오로지 이보출 잡기에 전력한다. 사실 그것말고는 할 일이 없기도 했다. 그야말로 세상의 변두리에서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삶은 눈물겹기 짝이 없다. 마치 인생의 낙오자 같은 그들에게 정녕 이 세상은 차갑기만 한 것일까? 어디 하나 벗어날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에도 좋은 날이 있을까? 작가 차인표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지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그는 나고단의 삶도, 이보출의 아들 태평이도, 박대수의 딸 봉봉이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가 평소에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가 소설의 말미에 잘 드러나는 것이다. 차갑고 우울하고 이기적이기만 한 이 세상을 작가는 따뜻하게 보고 싶은 모양이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이 소설의 완성도 면에 있어서는 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소설을 써 보진 않았지만, 글을 깨친 그 순간부터 소설과 함께 숨쉬고 살아온 그러나 결국엔 비전문가인 나의 눈에도 아쉽고 어색한 점들이 들어온다. 구성은 어색하고, 사건은 우연이 일어나며 인물들은 어딘지 작위적이다. 그러나, 문장이 다소 서툴고 읽기에 매끄럽지 않더라도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만큼은 명확하다.그가 바라는 세상은 한 마디로 '사랑'이다. 사람들이 서로 믿을 수 있는 세상, 타인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삼을 수 있는 여유를 그는 소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바람대로 이 세상이 더욱 따뜻해지고,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출처] 오늘예보 - 오늘의 인생을 알려드립니다.|작성자 에코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