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비행청소년 8
장성익 지음, 신병근 그림 / 풀빛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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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소외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여기에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서 최강의 강자로 살아남게 된 이유 역시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어떤 특정한 때에만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이 소통하는 존재였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시도때도 없이 소통하는 존재, 그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고, 공동체를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누려왔다. 근대화, 산업화가 되기 전까지는.

 

근대화, 산업화는 이런 공동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는 방해가 되었다. 따라서 공동체를 해체해야 했다. 사람들을 노동력으로 부려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협동하고 소통하며 살아간다면 노동력을 확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근대화 되면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떼어냈다. 그것을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공동체는 낡은 것, 개인의 자유를 옭아매는 것이라는 선전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파편화된 개인이 탄생했고, 공동체는 무너져 갔다. 무너져 간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렸다. 주변의 사람들은 함께 가는 사람들이 아닌 제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행복을 추구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왜지? 이런 의문이 생겼고, 여기서 경쟁과 이윤으로만 점철된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생활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지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연대하고 소통하는 동물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공동체들이 생겨났고, 그런 공동체를 확산시켜 나갔다.

 

이 책은 그런 공동체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쓰인 글인데, 공동체의 뜻부터 시작하여 전통적인 공동체, 지금의 공동체, 공동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에 대해서 살피고, 이런 공동체에 대한 다른 시각도 소개한다.

 

공동체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공동체에도 수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 해체된 공동체도 있다는 것, 지금 공동체는 다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 그러나 공동체는 늘 위기를 겪어왔고, 그것을 극복해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청소년들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사회가 변할 수 있으니까. 나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이기에, 위기 상황에 공동체가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 공동체, 협동조합 운동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협동조합 운동도 소개해주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맺음말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가지 기둥은 권력과 통치와 지배의 논리로 무장한 국가 시스템, 그리고 이윤과 경쟁과 효율의 논리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 이에 맞서, 나아가 이를 넘어서서, 이윤이 아닌 호혜와 협동을 경제 규칙으로 만들고, 경쟁이 아닌 연대와 공생을 사회 원리로 만들며, 지배가 아닌 자율과 자치를 정치 규범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공동체 운동입니다. (286-287쪽)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면 바로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공동체는 한번에 훅 하고 오지 않는다.

 

공동체는 각 개인의 꾸준한 노력으로 오게 된다. 밑에서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지속적으로 행해질 때 강한 힘으로 어느 순간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학생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제시해주고 있다.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는 것, 무언가를 해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인공지능 운운하며, 인간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하는 이 때, 인간이 설 자리를 찾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살 자리를 찾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답은 '공동체'에 있다.

 

이런 공동체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동체의 앞날은 밝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마도 이 점을 생각했으리라.

 

이제는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주의가 필요한 때다. 그 점을 명심하고,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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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5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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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5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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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시민의회
이지문.박현지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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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대통령 선거. 그러나 무엇이 변했는가? 국민들에게 이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탄핵을 바라며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못했을지라도.

 

국민들은 거리로 나설 권리만 있었다. 탄핵소추는 국회(국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국민들을 대표 또는 대리한다는)에서 했으며, 탄핵 결정은 9명으로 이루어진(이때는 한 명이 임기만료가 되어 8명이) 헌법재판소에서 했다.

 

여기에 국민들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탄핵 소추가 될지, 탄핵 결정이 될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주권을 지니고 있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법이라는 이름으로 글자에 갇혀 있었다. 그냥 그렇게 국민들은 참여자가 되지 못하고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탄핵이 이루어지고 국민들은 주권을 행사한다. 투표라는 이름으로. 투표라는 행위로 정권을 바꾸어내었다. 하지만 그뿐. 바뀐 정권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아야만 한다. 이제 국민들의 주권은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몇 년에 한 번 행사하는 주권.

 

대선에서는 주권을 행사했는데, 총선은 아직도 멀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전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법이라는 글자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글자들이 막강한 힘으로 국민들의 실질적인 권리 행사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입법부라나 뭐라나... 여기에 국민들은 청원을 할 수는 있지만 더이상 어떻게 강제할 수는 없다.

 

탄핵 이후,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은 높아졌으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좁다. 기존의 제도가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집단들이 기존의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지내야만 할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들은 몇 번의 촛불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켰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도 했다.

 

힘이 경제에 넘어갔다고, 삼성에 넘어갔다고 하기도 했지만, 강력한 힘을 구사하는 정치가 앞에서 삼성도 꼼짝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힘은 정치에 있다. 경제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은 정치다. 그래서 문제는 정치다.

 

이때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는 몇십년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개혁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 그래야만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추첨민주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추첨을 통해서 민회나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제도로는 국민들을 제대로 대표하기가 힘드니, 국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자는 거다.

 

추첨을 통해서 뽑으면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갖출 수 있다. 또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의 임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할 수 없게 된다.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때 그 기간 동안 생활을 보장해주기만 한다면 좀더 책임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추첨을 통해 의회나 조직을 만들어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캐나다와 미국, 네덜란드 등의 사례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들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 의회보다는 더욱 민주적이고 더 책임감 있게 운영된 의의가 있다고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제 서서히 추첨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추첨민주주의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실천과 이론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함을 그런 사례들을 통해서 이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정치보다는 작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추첨배심원제를 이미 실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탈원전 선언과 관련하여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배심원단을 선정하여 탈원전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하니, 이도 일종의 추첨민주주의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에 몇몇 도의원들이나 국회의원들의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 행동 등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권위적이 된 데에는 지금의 제도가 갖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첨민주주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 책의 말미에 이야기하고 있듯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 제대로 논의만 한다면 좋은 제도,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이 책은 여기에 하나의 안내서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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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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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류는 지구상에서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자신들에게 종속시켰다.

 

야생에 살던 짐승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고,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게 만들기도 했으니,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불멸, 행복, 신성이라고 한다. 그렇다. 지구상에서 가장 최강자인 인간이 죽음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왔다.

 

당장은 죽음을 극복해 불멸로 가지는 않겠지만 엄청나게 늘어난 평균수명을 보면, 또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보면 조만간 인간은 불멸로 향해 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지 않는 존재, 불멸의 존재는 그냥 살아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행복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행복의 객관적 조건은 존재할까?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지 불행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은 기분좋음일텐데, 이 기분좋음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의식인가? 마음인가? 마음과 의식은 다른가?

 

그런데 의식이나 마음이 존재하는가? 과학자들은 이것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마음이, 의식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한다. 고유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도 이러한 마음이 있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으니,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이러한 마음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체들, 유기체들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요소가 마음이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하라리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추적한다. 마음, 이것은 알고리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여러 존재들이 얽혀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게 하는, 아직은 우리가 밝혀내지 못했지만, 유기체든, 무기체든 알고리즘에 의해 발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는 많은 약들을 보라. 이것이 마음은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알고리즘,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신성을 확보하는 길이 된다. 알고리즘을 이해하면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를. 이 존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 지금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와 있지 않은가. 자율주행차부터 다른 인공지능들까지...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이세돌뿐만이 아니라 세계 1위인 중국의 커제까지도 압도적으로 이겨낸 것이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이니, 이제는 알고리즘이 우리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알고리즘을 창조한 인간들, 그들은 신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인간은 곧 신을 배반하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신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제 신이 된 인간이 알고리즘을 창조했다? 그렇다면 다음 길은?

 

알고리즘이 인간을 신의 위치에서 내리고 자신이 신이 되는 것?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수많은 정보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제 그 많은 정보를 읽어내고 해석해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보들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다양한 분야가 아닌 특정 분야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문화, 파편화 된 것이 현대 사회 아니던가. 중세 때 의사라고 하면 모든 질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의사는 어떤가? 수많은 전공으로 나뉘어져 있고, 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 않은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르네상스적인 인간은 이제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는데, 알고리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관심을 가질 수도 없을 뿐더러, 할 수도 없다. 그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결국 그 해석은 기계에 맡길 수밖에 없다. 데이터교라고 나오는 신흥종교를 인간이 창시하지만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기계일 수밖에 없다. 이 기계들이 자기들끼리 연락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느 자리에 있을 것인가?

 

인간이 밀어낸 신처럼 알고리즘의 저편에만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지금 진화하고 있지 않은가.

 

"호모 데우스"라는 책 제목이 인간이 신이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인류를 또 다른 천국으로 이끈다고 생각했는데, 읽어가면서, 또 끝부분으로 가면서 호모 데우스는 인류를 천국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이끌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됐다.

 

수많은 영화, 책에서 보고 읽었던 디스토피아의 모습, 그것을 창조한 호모 데우스, 어쩌면 우리는 이제 영화나 책이 아닌 현실에서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알고리즘의 세계로 갈 것인가, 아님 다른 세계로 갈 것인가 하는.

 

이 책의 저자인 하라리는 말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개 현시점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시스템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이, 2050년에 직업시장, 가족, 생태계가 어떤 모습일지, 어떤 종교적, 경제적 시스템과 정치구조가 세계를 지배할지 실제로는 아무도 모른다. (542-543쪽)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들에서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543쪽)'는 것이 오늘날의 힘이라고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무시해야 할 것과 받아들여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 인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가 될 것인지, 호모 사피엔스로 남을 것인지. 갈림길에서 이미 들어섰다고 하더라고,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그런 갈림길.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너무도 거대하고 도도해서 개인이 바꿀 수가 없다. 개인은 그 흐름에 휩쓸려 갈 뿐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우리가 고민을 한다고 해도, 인류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단계를 넘어 섰다. 저자도 인정한다. 인류는 호모 데우스가 되고 있다.

 

갈림길이 아니라 이미 선택을 하고 그 길에 들어섰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호모 데우스의 길로 들어선 인간...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맺는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544쪽)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 될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고민에 대해 논의하면서 무언가를 찾아가야 하는 때,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어렵다면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간 저자다. 이것이 바로 재주다. 우리 인류의 모습을, 미래의 모습을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쉽게 전달해 주다니...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이때에, 호모 데우스, 인류의 미래 모습,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 또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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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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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3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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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일제 침략사
임종국 지음 / 한빛문화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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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으로 내게 알려진 분이다. 다른 사람들이 연구를 등한시 하고 있을 때 그는 방대한 자료를 모아 친일행위를 한 문인들의 행적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가 쓴 책이 밤의 일본 침략사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침략을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어두운 면에서도 침략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술과 계집이다. 일본 군인들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일본 게이샤들까지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사실.

 

일본인들이 조선에 거주하는 시간과 인구가 늘수록 일본의 향락문화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 이들은 이러한 향락문화를 한껏 누리면서 그곳에서 조선 침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는 것.

 

일본인들만이 이랬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우리나라 친일파들이 함께 놀아났으니... 한 나라가 망해갈 때는 경제, 군사, 정치만이 아니라,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망해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일제시대에 통감부터 시작하여 총독까지 시간 순서대로 그들이 우리나라에 들여온 퇴폐문화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기생집부터 요정까지 이들 문화가 어떻게 기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일제말기로 가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가 죽음을 당하게 되는 그런 사실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 하나만으로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조선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 밤의 문화까지도 조선에 들여온 것이다.

 

일제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근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밤의 문화를 보면서도 과연 일제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은 멀다면 먼 조선에서 자신들의 향락을 마음껏 누리면서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런 권력과 향락의 면들이 조선에 온갖 밤의 문화로 나타났던 것이고...

 

정치, 경제, 군사적인 면만이 아니라 이렇듯 문화적인 면에서도 우리를 침략한 것이 일제라는 것,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총만으로 한 민족을 정벌할 수는 없다. 그들은 퇴폐문화를 들여와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려 한 것이다.

 

조선을 거쳐간 총독들과 관료들이 어떻게 이런 밤의 문화를 즐기면서 조선에서 생활했는지, 이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기에 일제시대가 끝나고도 일본인들이 기생관광이다 뭐다 해서 우리나라를 찾은 적이 있지 않은가. 또다시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한다.

 

알아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일본의 군사, 경제적 침략에 대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밤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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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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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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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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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시민은 자유주의자로 각인되어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던가, 그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이. 어쩌면 그보다 그의 '항소이유서'를 먼저 만났는지도 모른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문장들, 그 문장들은 바로 우리가 겪었던 현대사였다.

 

그런 그가 자유주의자로 다가오게 된 것은 그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다. 국회의원 명패에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던 때에 한글 이름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도 잘 안 되던 그렇게 보수주의, 형식주의에 갇혀 있던 국회에 그가 자유로운 복장으로 나타난 것.

 

아마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가 복장에서 어느 정도 타협했다고 기억하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굳이 정장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의 행동에 동조했었다.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국민을 대표하는 행동을 하느냐가 문제였다고 생각했고, 국회가 너무도 형식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런 형식으로 국민을 대리한다기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으니.

 

그런 참에 유시민의 그 시도는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발랄했다. 물론 그 한 명으로 우리나라 국회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국회라는 경직된 땅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그는 복지부 장관도 하고, 그 다음에는 정계에서 멀어져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은 그가 살아온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현대사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태어난 해부터 이 책이 나온 때인 2014년까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겪어왔던 시대를 유시민이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이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는 주관적이다. 이 주관들이 얼마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공과가 결정될 것이다.

 

격동의 현대사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 기간, 그는 치열하게 살았다. 격동의 순간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현대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것도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서술을 하고 있으니, 유시민의 관점에서 우리는 반세기를 따라갈 수 있다. 아마도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보다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우리 현대사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이 구분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난민촌 시대 - 병영 시대 - 광장 시대

 

6.25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가 태어났다. 우리나라가 절대빈곤에 허덕일 때다. 이때를 난민촌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때. 독재권력이 극악무도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다.

 

정치권력의 민주화보다는 먹고 사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쓸 때고,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치권력이면 나름 인정을 받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가 지속될 수는 없다.

 

독재권력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 사람들은 이제 정치에 서서히 눈을 돌리게 된다.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데, 권력을 분점하고 싶지 않은 독재 권력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다.

 

이때 발현되는 것이 바로 병영 시대다. 사회의 군대화. 군대처럼 꽉 조여 사회가 돌아가게 된다. 뭐든지 명령과 지배만 있다. 명령에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다.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유신독재, 또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우리나라는 병영국가라 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여차하면 위수령, 계엄령에, 법을 무시한 대통령 긴급조치에 대학에 경찰이 상주하는 그런 시대였으니. 그럼에도 경제는 계속 발전한다. 시민들의 의식은 더욱 성장한다.

 

산발적으로 고립되어 벌어지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독재는 삶을 옥죄는 더욱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때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형식적 민주주의가 형성되어 간다. 이제는 광장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삶을 사는 시대, 자유가 보장된 시대가 된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광장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 이제는 누구나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이런 광장을 위협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 갈등이라고 하고 있지만, 국민을 배반하는 정치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장치는 되어 있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이 책이 일찍 나와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총으로 끌어내렸던 독재권력을 이제는 시민의 힘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부패권력을 끌어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광장의 시대다. 우리는 이런 광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55년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 보았던 일, 들었던 일들과 자료를 모아 정리해 놓고 있으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갈 수 없다는 것, 잠시 뒤로 갈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시 난민촌 시대로도 병영 시대로도 갈 수 없다. 그렇게는 우리들이 살아내지 못한다. 그런 시대를 거쳐 만들어 낸 광장 시대, 우리가 더욱 자유롭게 지켜내야 한다. 역사 책을 읽는 이유, 역사의 바퀴를 계속 앞으로 굴리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작가인 유시민 역시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안에 와 있다고. 그 미래를 밖으로 꺼낼 일이 남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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