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 1호.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떠나가고 있는 존재.


  망망한 우주를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우주선.


  시집 표지가 캄캄하다. 우주는 이렇게 암흑이다. 그리고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 역시 모른다. 캄캄할 뿐이다.


  다른 생명체가 우주에 있을까? 태양계를 겨우 지금 벗어나고 있는 지금, 빛의 속도로도 200만년이 걸린다는 안드로메다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그 밖의 우주에 도달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인간이 만든 물체가 그때까지 버텨줄까?


우리가 그린 그림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고 사라지듯이, 보이저 1호 역시 언젠가는 제 수명을 다하지 않을까?


우주 공간에 산소가 없으니 부식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나지 않을까? 그냥 관성의 법칙으로 앞으로만 나아갈까?


이 모든 일들은 미지의 세계에 속한다. 그럼에도 보이저 1호는 우주로 나아간다. 일말의 소통 가능성을 안고.


다른 외계 생명체를 만났을 때 우주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지구의 언어, 지구의 문화를 담고서.


이렇게 캄캄한 암흑에서도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통하기 위해서 하나로 통일하지 않는다.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언어들을 레코드판에 담고, 또 다른 예술작품도 담아두었다.


소통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소통불능의 시대에 소통을 추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로 계속 나아가는 보이저 1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소통의 방법이 담겨 있는데... 암흑 우주가 아닌 푸른, 창백한 푸른 점, 아주 작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란...


마치 보이저 1호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 그 속에 담긴 지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이 그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저 1호가 찍어서 보낸 지구의 모습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는데, 그 속에 사는 우리는 마치 우주와 같이 거대한 지구라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으니...


지구에 살고 있는 각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외계인 바라보듯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또 한 나라 안에서도 서로를 외계인 보듯이 보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 자기 말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보이저 1호에 담긴 메시지들이 이해받지 못하고 계속 우주로 나아가고 있듯이, 우리 역시 이러한 소통불능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적어도 보이저 1호에는 소통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담겨 있는데... 류성훈 시집을 읽다가 제목이 된 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보이저 1호. 언제 보이저 1호는 그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만날까 하는 생각. 그러다가 우리 모두가 보이저 1호처럼 아직 소통불능의 세계에 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각자의 메시지를 담고서.


다만, 보이저 1호는 다양한 언어를 담고 있으니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언어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판치는 세상은 소통불능의 세상이 된다. 


류성훈 시를 읽으면서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봐도 좋겠다.


       보이저 1호에게

 

     물통 속에 밤이 퍼졌다

     내 붓은 차갑게 씻기고


     안부라는 건

     대개 꿈풍선일 뿐, 눈부신

     우주 방사선 속에서


     버릴 꿈이 없어서, 널 닮은

     연체동물을 그렸다 저 외행성 출신의

     물기 없는 입을, 활짝 핀

     중력 없는 팔들의 짙푸른 기별을


     축하한다

     악수하는 법도 몰랐으면서

     우리는 늘 몽상이라는 교신 위에서

     지구에서의 너를 그렸으니

     한때 색색 풍선보다 더 필요했던

     날숨을, 더운 붓을 휘갈겨 본다


     화장실 창밖이 밝아 오고

     벌어진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그 금빛 껄끄러움 또한

     교신, 이라 생각했던 물음을 안고

     나는 지금 태양권의 어디쯤을

     쫓아가고 있을까


류성훈, 보이저 1호에게, 파란. 2020년.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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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그런 사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 평범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는, 삶을 보려는 사람들 이야기다.


2023년 봄호다. [삶이보이는창]도 오래 발간되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지. 그럼에도 이렇게 꿋꿋하게 버티면서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책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미처 생각 못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지만, 이번 호에 나온 노동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노동시간, 단순하다. 줄이면 된다. '더 짧은 노동시간과 더 긴 여유시간'(6쪽)을 원한다고 되어 있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는 여유시간이 필요하다. 69시간 노동 운운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이 된 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하려는 나라들도 있지 않은가.


하루 6시간 5일 노동. 그러면 주당 30시간이다. 정부에서 처음에 내놓은 시간의 반도 되지 않는다. 노동시간이 줄면, 생산력이 떨어지나? 아니, 노동시간이 준 만큼 다른 노동자들을 더 고용하면 된다.


임금이 오른다고? 기업을 운영하는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지만, 인건비보다는 다른 여타 비용이 기업 운영에 더 많이 들 것이다. 


노동자의 수 증가가 생산력 증가로 이어진다면, 기업의 이윤에는 그다지 큰 손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인구절벽, 인구가 급감한다고 걱정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인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인구가 늘려면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즐길만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나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 후손들이 즐길 수 있는 사회라면 아이를 낳는다. 이래서 인구 문제 대책에 노동시간을 포함시키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전국민이 하루 6시간 노동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시간으로 활용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노동시간을 더 줄여서 하루 4시간 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노동자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하루에도 수많은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사회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이번 호다.


표지 그림처럼 따스하게,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는, 그런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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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 대하여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이 없다면 삶은 참 삭막할 것이다. 꿈이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꿈은 꾼다고 한다. 꿈꾼다.


  하지만 꿈꾼다는 말은 곧 실현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꿈꾸고 있네라는 말이 있듯이, 꿈은 실현불가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꿈은 실현이자 실현불가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꿈과 실현, 실현이라는 말을 앞뒤를 바꾸자. 현실이다. 꿈과 현실. 이것은 일치하기도 하고,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꿈은 움직임이다. 꿈은 명사지만 동사다. 동사였다가 명사가 되어야 한다. 명사가 되지 못한 꿈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꿈을 꾼다. 꿈이 없는 삶은 너무도 삭막하기 때문이다. 실현되지 않는 꿈이 있기에 꿈은 더더욱 필요하다.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몸부림이 있기 때문에 꿈이 명사가 되기까지 동사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승희 시집을 읽다가 해석이 안 되는 말이 나와 당황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떤 의미로 썼는지 도대체 모르겠는 말. 그럼에도 이상하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 시적인 효과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말이 있다. '토마토 어금니'라는 말.


이 말에 대해 생각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겠다. 어쩌면 답이 없는지도. 답을 만들어가야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이 쓴 시로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 이 말을 빼고도 꿈에 대해서, 우리가 꾸어왔던 숱한 꿈들에 대해서, 그 꿈들이 동사였기에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김승희 시를 소개한다.


               꿈틀거리다


       꿈틀거리다

       꿈이 있으면 꿈틀거린다

       꿈틀거린다, 라는 말 안에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이라는 말이 의젓하게 먼저 와 있지 않은가


       소금 맞은 지렁이같이 꿈틀꿈틀

       매미도 껍질을 찢고 꿈틀꿈틀 생살로 나오는데

       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김승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창비. 2021년. 10쪽.


이 시를 보면 꿈은 분명 동사다. 명사로 향해 가는 동사, 꿈. 결국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선다. 그러니 꿈은 우리에게 동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명사가 된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게 되니까.


빨리 실현할 수 없는, 그래서 네발로 기어갈 수밖에 없는. 또한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희망이라고 하는데, 희망과 꿈을 등치시킬 수도 있으니, 이는 실현되지 못하는 일이 꿈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도 된다.


시인이 예전에 쓴 시 중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라는 시 역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같이 죽자는 말'(22-23쪽)이라는 시도 마찬가지다. 결국 '꿈'이다.


이 시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차라리,라는 말을 구원하는 것은 / 오히려,라는 말이라고'(22쪽)


그렇다.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포기할까가 아니라, 힘들더라도 오히려 더 힘내서 가 보자가 되는 것, 네발로 기어서라도 가는 일, 그것이 바로 꿈이다. 


그 가는 과정이 '소금 맞은 지렁이 같이 꿈틀꿈틀'거릴지라도, 그렇게 꿈은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꿈꾸는 것은 아픈 것'이니까. 꿈틀거린다는 말, 아프다는 말은 곧 현실이 힘들다는 말, 이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니까. 아프지 않은 사람, 꿈꿀 일이 없는 사람. 그 자리에 멈춰선 사람. 결국 그 사람의 삶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움직임이 없는 상태. 


하지만 꿈은 명사가 아니다. 동사다. 움직여야 한다.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상자 밖으로 나와 기든, 뒹굴든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꿈이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꿈을 꿔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덧글


'토마토 어금니'란 말에 대한 의미 파악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이 시집에 실린 정과리의 해석을 참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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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4-21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우연히 보았는데 차라리라는 말을 구원하는 것은 오히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kinye91 2023-04-22 12:09   좋아요 1 | URL
저도 김승희 시인의 그 구절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어요.
 

  4.3추념식. 


  대통령이 참석을 하지 않았다. 여당 대표도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말았다.


  정치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민주주의란 자기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인데... 어떤 국민이 그들에게 4.3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지...


아마도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국민도 있겠지... 태영호와 같은 국민의 힘 국회의원은 4.3을 왜곡하는 발언을 해놓고도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했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적어도 4.3 추념식을 망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뉴스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모든 국민이 한 사상으로 똘똘 뭉친 사회도 끔찍하지만, 과거를 이렇게 왜곡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행동하는 사회도 끔찍하다.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데... '서북청년단'이라니, 제주도민들 중에 '서북청년단'이라면 이가 갈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21세기에 어떻게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단 옷을 입고 4.3 추념식을 방해할 수 있단 말인지... 그것이 용납이 되고 있다는 말인지... 답답했다.


대통령, 여당 대표가 참석 안 했다는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최소한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건 단체가 4.3추념식에 나타나는 일은 막았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4.3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사람에 대한 예의 아닌가.


예의와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있음을 이번 4.3추념식에서 보고 이건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영화 '지슬'이 있다. 이들이 영화 '지슬'을 볼 리가 없겠지만, 적어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봤으면 좋겠다.  


영화 볼 시간이 없겠지... 정치를 하시느라 워낙 바쁘신 분들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왜곡된 시각을 지니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북한에서 외교관 활동을 하시다가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되신 태영호 의원은 특히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점에서 사과해야 하는지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테니.


영화 볼 시간이 없으면 20-30분만 투자하면 되는,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책 '지슬'을 읽기 바란다.


거의 끝장면에서 '그만 죽이세요'라는 말...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말로 4.3을 그만 죽이고, 극우단체가 시위를 통해서 또 한번 죽이는 그런 행동은 그만하라고.


영화 포스터에 있는 문장처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인가 보다. 나라에서 추념식을 하는 4.3인데도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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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3-04-08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외면하는 가장 큰 댓가는 저열한 인간들에게 당신이 지배를 당하게되는 것이다 ㅡ국가론, 플라톤
같은 내용의 댓글을 2번째 씁니다. 메르켈이라는 정녕 위대한 인물을 가졌던 독일인들이 하염없이 부러울 뿐입니다.

kinye91 2023-04-08 15:4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을 정치인이 명심하게 해야 하는데, 몇몇 정치인이 생각하는 국민의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국민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지시킬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Vanessa 2023-04-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정채봉.


  동화작가로 알고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를 쓴 작가.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니... 세월은 그렇게 갔구나.


  정채봉 작가가 원하던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몇 해 전에 순천 여행을 할 때 김승옥과 정채봉 문학을 기념하는 곳이 있었다.


두 작가가 한 곳에 있는 모습. 서로 다른 문학 작품을 썼다고 하지만, 그렇게 문학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


이 시집은 정채봉 동화와 마찬가지로 따스하다. 그리고 순수와 사랑이 넘친다. 세상에 이런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일찍 세상을 뜨다니.


이런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더 많아지면 질수록 세상은 더욱 따뜻해질텐데.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다투는 일이 줄어들텐데.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이 우주에 평화와 사랑이 넘칠텐데.


시집에 있는 시들이 모두 따스하고 좋지만, 특히 이 시. 이런 마음, 이런 행동. 허투루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


                들녘


  냉이 한 포기까지 들어찰 것은 다 들어찼구나

  네 잎 클로버 한 이파리를 발견했으나 차마 못 따겠구나

  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


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샘터. 2020년 개정증보판. 13쪽.


풀잎 하나도 생각하는 마음. 세상에 그냥 있는 존재, 쓸모 없는 존재는 없다는 생각. 모두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


세상에 내려온 천사다. 이 세상에 따스한 마음을 전해주려고 내려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시로 나타났다. 이 시집이다.


이제 곧 봄이다.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은 아직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봄이 왔으면 좋겠다. '차마'라는 마음.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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