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행복한 학교 유쾌한 교육 혁신을 말하다
김상곤.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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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같은 교육문제. 

우리 국민 모두가 전문가이면서도 해결이 안 되고 있는 문제. 

아직도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우리 현실. 

하지만 이제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보이면 가면 된다. 길이 있는데도 가지 않으면 그건 우리들의 책임 방기다. 

이 길을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이 보여주고 있다. 

그가 무상급식을 전국적인 화제로 만들어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는 논쟁을 이끌어냈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그동안 학생인권의 사각지대였던 학교를 인권이 살아있는, 모두가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하고 있으며, 

혁신학교를 통해 대안학교만이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다른 교육, 학생들이 행복해 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그동안 실천을 못 하고 있던 일을,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그가 해내니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시도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교육은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진보교육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교육감에 당선됨으로써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고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온 김상곤 교육감의 말처럼 교육에는 진보-보수를 가르기보다는 교육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들이 아직 실현되지 못 했기에, 진보-보수 교육감을 떠나 교육에서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가능성을 보게 된다. 

한 때 언론에서 김상곤을 얘기할 때는 부정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켰는데, 그럼에도 그가 두 번째로 교육감에 당선된 이유는 그가 실시한 여러 교육정책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또 그 당연한 일을 그 나름대로 잘 실천해냈다는데 있다고 본다. 

그의 리더쉽이라고 하는데, 독단과 독선을 배제하고 남의 말을 듣는 경청의 자세를 지닌 그, 자신의 말을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듣고, 옳다고 결정된 일은 뚝심있게 추진하는 모습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들과 김상곤의 교육철학, 그리고 교육감으로서의 자세를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잘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참 읽기 쉽다. 읽기 쉬울 뿐 아니라, 읽으면서 즐거워진다. 우리 교육은 답이 없다고, 정말로 대책이 없다고 자포자기 하던 마음에 빛이 들어온다.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 끝난 건 아냐. 이제 시작이야. 길이 여기 있잖아. 우린 그 길로 가야해. 그러면 우리 교육은 조금씩 조금씩 더 좋아질거야. 

이런 희망을 주는 책.  

꼭 교사들은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고,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 그리고 미래에 학부모가 될 사람들, 우리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정치인들, 직접 당사자가 된 학생들 모두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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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 국어시간에 읽기
충북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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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이 그랬던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고전적인 정의가 있듯이 생각할 수 있는 힘, 그건 바로 인간을 규정짓는 중요한 조건이 되리라. 

그런데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 

그냥 생각해, 생각 좀 해 하면 생각을 할 수 있나? 

몇 년 전에 학생들의 사고능력이 떨어진다고, 학생들의 사고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논술을 강화해야 한다고 대학입시에 논술을 반영한다고 했었다. 논술을 통해 종합적 사고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시행되었는데... 

학생들은 이 논술을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철학자들, 사회학자들의 글을 읽어야 했다. 아니 읽으면 좋은데,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시간은 없는데, 내용은 알아야 글을 쓸 수 있고,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학원을 찾아가 요약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사고력을 측정하겠다고 도입한 논술이 결국은 학생들의 암기력과 글쓰는 요령만을 평가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결국 논술은 많은 대학에서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렇다고 논술이 필요없는 것일까? 아니다 논술은 필요하다. 학생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데는 논술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삼다(三多)방법은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삼다를 실천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조건은 학생들의 여유이다.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바쁜 학생들에게 별도의 과제를 내주지 않고, 수업시간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읽고 생각하고 내용을 정리하기 알맞게 구성이 되어 있다.  

또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글을 엮었다. 이런 일이 있었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도 한 번 내 주위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성이 나로부터, 사회, 역사까지 나아가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소재는 원심형으로 더욱 깊고 넓게 나아가고 있으며, 글 하나 하나의 구성이 우선 읽고, 그 다음 생각하고, 직접 써 보는 쪽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레 삼다의 방법을 활용하게 되어 있다. 

이 밖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지 생각하는 요령, 글쓰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어떤 삶이 옳은 삶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하는데 있다. 즉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욱 바람직한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 점이 이 책이 학교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학교가 아니더라도 그냥 집에서도 읽을 수 있게 한다.  

자식을 둔 부모가 아이의 사고력을 키우게 하고 싶을 때 아이와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사족 : 한 가지 아쉬운 점..편집과정의 실수이겠는데... 244쪽의 조선일보 사설이 실린 날짜 

1969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1960년의 오타이겠지. 역사를 이야기 하는 부분인데, 연도는 중요하다. 4.19 전의 이야기이니, 69년일 리가 없고 이는 분명 60년이리라. 다들 한 번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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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교육의 방법과 실천
최광석 지음 / 역락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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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렀던 은행에서 우연히 펼쳐보았던 잡지. 여성잡지였는데, 온갖 화려한 화보들로 가득한. 그 책에서 '서양, 고전교육 열풍'이라는 내용이 눈에 확 띠었다. 

독일도, 영국도, 네덜란드도 학생 때 고전교육을 강조한다는. 

우리나라는 고전교육을 강조할까. 오히려 한 쪽으로 밀어넣고 관심을 두지 않지 않을까. 

홍길동전, 춘향전, 심청전 등 내용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끝까지 읽어보지는 않은 고전이 얼마나 많은가. 

말들이 너무 어렵다거나,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라거나 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학교 다닐때는 얄팍한 지식을 암기하느라 작품의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가지 않았던가. 

이 책은 이러한 고전문학에 대한 교육이 잘못되어 왔음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고전문학을 재미있게 학생들의 삶에 다가오게 할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을 엮었다. 

고전문학 교육의 방법론부터 학교에서 구체저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까지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을 필요없이 필요한 부분들만 읽어도 많이 도움이 된다. 

특히 2부에 실린 글들은 현직 국어교사들이 읽고 토의하고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다면 학교에서 수업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면서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이 각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이 중에 공통적으로 실려 있는 작품들도 교과서마다 학습의 방향이 다르니, 교사들이 이를 살펴 통합적으로 재구성해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홍길동전에 관한 내용으로 교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고,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구현해내는 소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고... 

적어도 수업하기 전에 한 번 이런 책을 읽으면 방향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간을 가지고, 또 자기만이 아니라 함께 교사들이 고전문학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을까. 

고전은 먼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삶을 규정짓는 한 요소라는 사실을, 홍길동을 통해서도, 춘향을 통해서도, 허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사실... 그걸 깨닫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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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언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 국어교육의 통합성을 지향하는 동국대학교출판부 국어교육학총서 1
김혜숙 외 지음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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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가. 매체를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이라고 하면 더 쉽게 다가오리라. 

우리나라 만큼 인터넷이 발전한 나라도 없을텐데, 이 인터넷이 좋은 쪽으로 쓰이면 무한히 좋지만, 안 좋은 쪽으로 쓰이면 그 해악이 말할 수 없을 지경으로 치달을테니, 인터넷을 바르게 사용하는 교육을 학교에서 해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단지 인터넷뿐이랴. 텔레비전이나 신문, 기타 다른 매체들도 올바른 교육을 받고, 바르게 사용하는 태도가 길러지면 그야말로 문화강국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특히 매체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물을 실었다. 인터넷 광고, 자막언어, 인터넷 신문, TV토론, 인터넷 공론장, 그리고 학습자의 태도에 관한 글들이 실린 전문적인 글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범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거나, 현직 국어교사들이 이렇게 수업을 해야 한다는 전범을 보이고 있다. 전문적인 책이므로 독자층이 얇을 수밖에 없다.  현직 교사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환경이나 성격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들도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그대로 따라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각 장의 내용들을 학교 현장에서는 통합적으로 수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광고와 인터넷 신문, 인터넷 공론장은 하나의 활동으로 묶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즉 인터넷 기사를 보고 그 내용을 정리하며 핵심어를 찾고, 기사의 관점을 찾으며, 그 관점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기사 내용을 다시 한 번 고쳐 쓰며, 기사의 내용에 맞는 광고를 만들어 보고, 다른 이들이 고친 기사와 비교해 보고 토론을 한다면 이 책에 있는 세 장의 내용이 하나의 활동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학생들 스스로 매체에 접근하고 내용을 생산하는 활동이 매체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활동을 수업시간에 하기 힘들다는 점을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정된 수업시간에 하기 힘들어 방과후에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렇담 수업시간에 할 수 있고, 또 자신이 한 활동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건 학교 홈페이지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학생기자단을 뽑고, 학생 기자들은 학교와 관련이 있는, 또는 학생과 관련이 있는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학생들은 수업시간을 이용해서(꼭 국어시간이 아니어도 된다. 매체 예절은 매체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하여 도덕교과와 연관이 되며, 사회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는 문제는 사회과와도 연계가 된다) 기사에 대한 댓글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며, 건의사항이나 문제가 되는 사안들에 대해서 공론장을 만들고, 그 결과를 확인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매체에 대한 태도 교육을 하기가 한결 수월해 지지 않을까 한다.  

21세기를 맞이하여 국어교육도 인쇄매체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교육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고, 거기에 대해서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이 책도 그런 연구성과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물이고, 현장 교사들이나 사범대생들은 이 결과물 위에 자신만의 결과를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옥의 티...149쪽의 표 맨 밑 수업설계의 주안점과 197쪽의 표 맨 밑 수업설계의 주안점이 같다.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이건 편집과 인쇄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났다고 보는데, 전문적인 전공 서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책에서 이런 실수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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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자유교육 -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송순재.고병헌.카를 K. 에기디우스 엮음 / 민들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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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하면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된다.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더 섞일 수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나는 미국식보다는 유럽식, 특히 북유럽식을 좋아하는데,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의 나라 교육제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 교육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어보면 부러움과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도 이런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대안학교가 많이 생겼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따라서 대안학교들도, 또 현재 논의되고,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혁신학교들도 이런 책을 참조해서 우리나라 또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자신만의 학교들을 만들어가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책에 나온 관심있는 내용과 내 생각이다. 

자유학교의 공통원리 ... 폴켈리(folkelig)적 요소, 즉 평면적 요소 ... 자기 자신과 타자를 위해 기꺼이 책임지는 자세 ... 평등을 지향하는 책임 (61쪽)   

-> 모든 교육의 기본이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남을 밟고 내가 올라서면 된다는 승자독식주의 교육이 아니라, 함께 모두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 그게 필요하다.  

부모의 권리 ... 법적으로 확정된 교육의 의무가 있지만, 학교교육을 의무사항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63쪽)   

-> 우리나라 대안교육계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의무교육을 의무 취학으로 판단을 한다. 따라서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는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은 부모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징계를 면하긴 하지만, 이 과정이 힘들고 복잡하다. 의무교육은 의무 취학이 아니라는 사실, 교육법에 이 조항만 추가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텐데, 아직도 학교만이 교육을 담당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으니 원.

학교는 교사가 특정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사가 학교 근무시간 안팎으로 이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살도록 요구할 수 있다(69쪽)  

자유증등학교의 해설서 .. 교육과정이나 이데올로기의 자유: 학교가 스스로 교육과정을 정치적 또는 종교적, 교육학적인 이념에 따라 정했다고 해도 국가는 간섭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어떤 교육과정이나 학교라도 인가한다. 곧 국가전복을 위해 학생들이 저항해야 한다는 교육목표에 따른 커리큘럼, 글자 그대로 성서를 강독하는 듯한 교육과정, 교실에서 배우지 않고 가게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학교, 과목이 하나밖에 없어서 교사나 학생이 그때그때 적당하게 학습주제를 정하는 학교도 있을 수 있다. (169쪽) 

-> 우리나라를 보라. 교사가 정당에 가입했다는 확정되지도 않은 혐의로 징계를 받도록 강제당하고 있으며,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정치적인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징계를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사는 사랍학교든, 공립학교든 공무원인 교사로서만 지내야 하지,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우리나라의 특수성이라고 생각하고 교사들이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에 발언할 수 없도록 하는 관습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과 교사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당연히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게 제도적인 면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인(全人)을 길러 내는 것을 교육의 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 (79쪽) 

-> 우리나라도 교육 목표는 전인이다. 그러나 사실 학교에서는 전인보다는 단편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너무도 많이 분절된 과목들, 그리고 그 과목들을 통해 인간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나를 공부하기에 목표와 실천이 따로노는 교육을 지금의 공교육은 하고 있다. 대안교육에서는 공교육보다는 훨씬 낫지만, 대학이라는 장애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는 대안학교도 있으니 목표와 실천이 어울리게 노력해야 한다. 

함께 협동으로 작업하기를 그리 내켜 하지 않는 학생들,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학교 안의 분위기는 신임 교사들을 힘들게 하기에 충분하다(95쪽)  

-> 신자유주의를 덴마크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못한다. 이 나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에 손질을 하려고 하고, 자유학교들에 대해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나 보다. 이 구절을 보면서 덴마크 교사들도 우리나라 교사들과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럼에도 이들은 자유학교라는 틈새를 이용해서 아이들을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질은 소수가 어떻게 취급되는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99쪽)  

사회시스템 가운데 10% 정도의 '틈새'를 열어 놓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야말로 교육개혁에서 중요한 포인트... '비주로' 또는 '비주류의 권리'를 표방하는 일이 많은 것(173쪽)  

 이런 교육이 가능한 진짜 배경은 대화를 중시하고 자유로우며 비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151쪽) 

-> 가장 좋은 말이고, 소수가 존중되면 다수는 행복해 진다. 소수를 존중했을 때 왕따라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소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이다. 대화는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담 우리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대화이다. 열린 마음으로 하는 대화, 그것이 교육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닫혀 있다. 이 닫힘을 풀 수 있는 길,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라도 확보해내야 한다.

지역 행정당국은 기본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부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일반 사립학교나 자유학교에서 공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부모들은 학비의 20% 정도를 부담해야 하고, 동시에 학교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권리를 갖는다(103쪽) 

-> 이런 점은 우리나라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안학교가 귀족학교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7학년까지 숙제를 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과제를 해내야 할 빚진 자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당연히 집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210쪽)  

-> 얼마나 부러운가. 이 아이들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아이들을 보라.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숙제에,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학원 숙제에 시달려 도대체 어른들도 주장하는 8시간 노동제를 훌쩍 넘어서 과중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부모 한 명 한 명의 의지에 맡겨두기엔 이미 너무 힘들어진 이 사회에서,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학원 교습시간 제한이 아니던가. 여기에 한 발 더 나간다면 의무교육에서는 과제를 내주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고, 학교 시험에서는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으로만, 결코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경시대회 문제라든지,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내지 않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제도로 강제해야지만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편해지고, 또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고치려는 실천을 하지 않을까 한다. 

시민대학에 관한 그룬트비 교육의 의도... 첫째는 참된 자아를 찾는 일로 학교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도. 둘째는 학교는 공동의 선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가는 곳 (217쪽)  

-> 이거 참. 지금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은 교육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학은 취업기관이지 교육기관이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란 무엇인지, 공동선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학과는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런 교육을 하려고도 하지 않아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가 꽤 되는데, 아직도 우리는 기업이 원하는 학생을 배출하려고 하지 전인적인 인간을 양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수라는 직업이 파편화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되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 집단이 안 된 지가 오래되어서인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만큼 책임을 지려는 자세들을 교수들도 가질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교사회의조차 아이들에게 닫혀 있지 않다. 끼어들기를 조장하지는 않지만 나가달라고 말하지도 않는다(251쪽)  

-> 꿈같은 얘기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교무실은 신성한 공간이어서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고, 한 번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경례를 하고 용무를 말한 뒤 허락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과 단절된 공간 그곳이 교무실이었다. 그리고 교사들의 회의시간에는 어디 감히 학생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다 우연히 교사들이 회의를 하는데 학생이 교무실에 있으면 대뜸 "야, 너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즉 본다는 행위가 교육에 매우 필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교사들의 회의 모습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 학교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결정한다는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생들의 참여는 봉쇄되어 있다. 어쩌다 참여해도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할 뿐이다. 최근에 교사회의, 학생회의를 법제화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제도화하면 교장 선의 여부에 의해 학생들의 참여가 결정되는 일은 없어지겠지. 조금 더  학교가 민주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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