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지 않는 웹소설 연재의 기술 - 유료 누적 조회수 5천만 산경 작가의
산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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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회장이 국밥집에 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단돈 천 원 때문에 화를 내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장이니까 값싼 국밥집엔 안 다닐 거라고, 천 원 정도는 돈으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밋밋하게 나오는 겁니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쓰기 전에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p.34~35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김비서가 왜 그럴까?> <저스티스> 등 인기 드라마의 원작들이 모두 웹소설이었다.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13년 100억원에서 2018년 4000억원 규모로 5년 만에 40배 이상 커져 이른바 '대세'가 되었다. 웹소설은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인터넷 소설’의 계보를 잇는데, 스마트폰을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라 그 파급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로맨스 소설뿐만 아니라 무협, 판타지, SF 등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읽히던 장르소설들이 인터넷 소설로 불렸을 때는 소수의 마니아들이 모이는 웹사이트에서만 읽히거나 값싸게 출간돼 ‘도서대여점’에 공급됐던 것과 달리,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자유롭게 읽고 즐긴다는 점이 다르다.

 

 

웹소설은 스마트폰으로 짧은 시간 집중해 읽는 콘텐츠인 만큼 스토리 진행이 빠르고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독자는 조금만 흥미가 떨어져도 ‘뒤로 가기’를 눌러 읽기를 포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웹소설의 경쟁 상대는 “소설책이 아니라 웹툰이나 유튜브”라고 말할 정도이니, 일반 소설의 작법과 웹소설의 작법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만난 책은 <재벌집 막내아들>, <비따비 : Vis ta Vie> 등의 대표작을 통해 10만 명이 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웹소설 작가 산경이 알려주는 '웹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산경 작가는 월 매출 1억, 편당 유료 조회수 3만 돌파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자신이 경험해온 성공의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웹소설 작가가 목표인 사람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몇몇 작가들이나 지망생들은 필사를 하기도 합니다.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베껴 써보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독도 아니고 다상량도 아니고 다작도 아닙니다. 그냥 베끼는 노동 행위일 뿐입니다. 필사를 해서 성공했다는 웹소설 작가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필사를 해서 뭔가를 얻었다면 여러분이 그 작품 하나만 아주 깊이 읽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웹소설은 깊이 읽는 소설이 아닙니다.     p.173~174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야말로 '웹소설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웹소설의 소재 선정부터 캐릭터 설정, 자료조사, 작품 구성법, 연재 시 꼭 지켜야 할 규칙, 작가로서의 마음가짐까지… 웹소설을 집필하고, 연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이야기의 소재를 정하고, 주인공 캐릭터를 고민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 알려주고, 플롯을 만들고, 자료 조사를 통해 그것을 이야기에 적용시키는 방법,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쓰는 법과 가독성을 높이는 법 등등... 단계별로 실제 글을 쓰기 위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웹소설 시장이 급성장하고, 대세가 되다보니, 웹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웹소설과 일반 소설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소설 작법서’가 아닌 ‘웹소설 작법서’가 필요하다. 시중에 작법과 글쓰기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넘쳐나지만, 이렇게 특화된 분야에 대한 글쓰기 책은 아직 많지 않으니 말이다. 나도 작법과 관련된 책은 종류 별로 꽤 많이 읽어본 편인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일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통칭하는 웹소설, 이제 콘텐츠 산업에선 대세가 되었다. 그래서 인기 드라마, 웹툰, 영화가 ‘알고 보니’ 웹소설이었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퇴근 후 웹소설 써서 10억 벌 수 있다면 작가 지망생 누구라도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자,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여기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웹소설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또 연재를 시작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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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부터 별을 사랑한 쇠똥구리 까지 우리가 몰랐던 곤충의 모든 것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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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은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았다. 공룡은 약 2억 4000만 년 전인 세 번째 대멸종 이후 세상에 나타났다. 그러니 앞으로 곤충이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면 이 동물은 공룡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그 사실만으로도 최소한의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은 있으니까.    p.22

 

한 캐나다 곤충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작은 경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눈은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곤충이란 그저 작고 하찮은 존재, 위험하고, 때로는 혐오스럽고, 성가신 존재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곤충은 이상하고 복잡하고 웃기고 희한하고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독특하고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곤충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신기하고, 놀랍고, 흥미진진하다.

 

 

세상을 지택하고 있는 가장 작은 존재들인 곤충은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고 해로운 생물의 수를 조절하고 식물의 종자를 퍼뜨린다. 그리고 인간에게 필수적인 꽃가루받이, 유기물 분해, 토양 형성에는 곤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곤충은 이 세계가 돌아가게 해주는 자연의 작은 톱니바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곤충은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그 수가 많다. 인구 한 명당 2억 마리가 넘는 곤충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곤충은 이 땅에서 인간보다 긴 세월을 살아왔다. 최초의 곤충이 무려 4억 7900만 년 전에 나타났다고 하니, 그들은 공룡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존재들인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지는 20만 년이니, 곤충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만한 서열이다.

 

 

독자 여러분은 곤충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초콜릿, 마지팬, 사과, 딸기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먹을거리가 곤충의 도움으로 생산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움이란 곤충의 꽃가루받이다. 곤충의 방문이 세계 야생 식물 80퍼센트 이상의 종자 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곤충의 수분은 전 세계 식용 작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과일이나 종자의 양과 질을 크게 개선한다.     p.118

 

개미 군단은 맨해튼에서만 한 해에 핫도그 6만 개 분량의 쓰레기를 처리한다. 아메리카동애등에 구더기는 자기 몸무게의 네 배나 되는 음식물 쓰레기를 하루 만에 없앤다. 갈색거저리 유충인 밀웜이나 꿀벌부채명나방은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을 빠르게 먹어 치운다. 성가시게 날아다니는 초파리는 실험동물로 과학의 발전을 이끈다.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진화를 통해 흰개미가 만들어낸 영리한 구조물은 친환경 고층 건물에 응용되고 습도에 따라 몸 색깔을 바꾸는 하늘소는 위조 불가능한 수표를 만드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검정파리 유충은 상처 주변의 죽은 조직과 고름을 먹어치우며 치유를 촉진하고 귀뚜라미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노인 정신 건강을 개선시킨다. 노화 과정을 제어하는 수시렁이나 꿀벌은 치매 예방 연구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하며 ‘회춘 약’ 연구에 기여한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120여 종의 곤충이 펼쳐 보이는 99가지 이야기는 솔직히 처음 듣게 된 내용들이 더 많았다. 곤충의 습성부터 독특한 생활사와 놀라운 성취들을 읽다 보면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그저 징그럽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의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토벤의 교향곡, 갈릴레이의 태양과 달 그림 등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작품과 문서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참나무혹벌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콜릿, 마지팬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먹을거리들 역시 곤충의 꽃가루받이로 생산된다. 곤충에서 시작한 생체 모방은 드론 비행, 열 추적 감지, 위조지폐 방지, 우주여행 등 미래 첨단 산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작고 복잡하고 희한 존재들이 보이지 않게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곤충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공생의 세계를 다각도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곤충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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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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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아주 다를 수도 있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고, 시야를 넓게 가지기만 했더라도. 일부가 그랬듯, 충분히 이른 시기에 짐을 싸기만 했더라도., 그래서 그 나라를 떠나기만 했더라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보같이 그 나라가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몸담았던 나라와 같다고 믿고 있었다... 두 갈래 길이 노란 숲속에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간 길을 갔다. 그런 길이 다 그렇듯 그 길에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당신도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나의 시체는 그 가운데 없다.     p.98~99

1985년 출간된 <시녀 이야기>의 34년만의 후속작이자,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이야기는 <시녀 이야기>로부터 15년 후를 그리고 있으며, 각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세 여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전작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와 함께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 과정을 다루고 있다. 원서처럼 양장본으로 나오길 고대했기 때문에, 양장이 아니라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름다운 표지이다. 표지에 그려진 녹색의 소녀는 또 다른 증언자인 '아그네스'를 상징한다. 붉은 옷을 입은 '시녀'와 대비되는 녹색 옷은 결혼을 앞둔 소녀의 복장으로서, 사령관의 양녀로 키워지나 결국엔 팔려가듯 다른 사령관과 결혼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이와 함께 전작에서 독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을 부른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생사와 그녀의 빼앗긴 딸에 대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매우 기대가 되었다.

 

 

'길리어드'라는 나라가 있었다. 여자는 직업도 못 갖고 차도 몰지 못하고,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여, 교묘하게 통제하고 착취하는 끔찍한 곳이었다. 특히 '시녀'라는 계급은 국가를 위한 출산의 의무에 동원되어 암소처럼 임신을 강요당하는 곳이었다. 전작인 <시녀 이야기>는 평범하게 살던 한 여인 오프브레드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딸을 뺏기고, 사령관의 '시녀'가 되어 삼엄한 감시 속에서 그와 주기적으로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상황을 그렸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겹치고 겹쳐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상태에 놓이게 되자, 국가에는 임신이 가능한 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해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들은 신체적 기능에 의해 하녀, 아주머니, 시녀, 아내 등등의 역할로 규정되고 그들에게 더 이상의 개인적인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푸른 옷을 입은 사령관의 아내들, 하얀 베일을 쓴 사령관의 딸들, 그네들의 초록색 하녀들, 그리고 출산이 가능한 생식능력을 가진 여성들로 구성된 '빨간색' 시녀들. 고위층 부부에게 할당되어, 그들 부부에게 '자궁'만을 임대해주는 도구에 전락한 여성의 시선으로 쓰여진 이야기는 그만큼 놀라웠고, 충격적이고, 강렬했다. 이야기는 그녀가 낯선 이들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도하면서 끝이 났다. 그것이 자신의 끝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 알 길이 없었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암흑 혹은 빛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딛으면서.

 

 

몇 개월이 흘렀어요. 까치발을 하고 다니며 몰래 엿듣는 삶이 이어졌지요. 들리지 않게 듣고 보이지 않게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문틀의 갈라진 틈새와 거의 닫힌 문들, 복도와 계단에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기둥들, 벽체의 얇은 부분들을 발견했지요. 내가 듣는 것들은 대체로 조각조각 쪼개지고 심지어 침묵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 파편을 맞추어 말하지 않은 문장을 빈칸을 채워 넣는 재주가 늘고 있었죠.    p.145

독자들은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오랫 동안 후속편을 갈망해왔다. 그리고 마거릿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이 이 책에 모든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며, 무려 34년 만에 후속작을 출간했다. <시녀 이야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나오는 독자들의 질문은 '길리어드는 어떻게 붕괴했는가?'였고, 작가는 <증언들>을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썼다고 말한다. <증언들> <시녀 이야기>의 시점으로부터 15년 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길리어드와 엮인 세 여성의 증언을 담고 있다.

우선 전작에서도 등장했던 '아주머니'들의 대표자인 리디아, 그녀는 길리어드의 여성 관련 제도롤 만들고 총괄하는 권력자이다. 길리아드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판사였던 그녀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수치심을 자극하는 오랜 고문과 압박을 견디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 과정을 들려준다. 그리고 체제에 복종하며 귀하게 길러진 상류층의 딸 아그네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계모에 의해 비밀경찰 ''의 지휘관인 저드 사령관에 시집을 가게 될 처지가 되는데, 자신이 사랑했던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에 살면서 TV로만 옆나라인 길리어드를 접해온 '데이지', 그녀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길리어드 시위에 참석한다. 그리고 얼마 뒤 부모님이 탄 자동차가 누군가의 폭탄 테러로 폭발하고,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고 몰랐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들의 비밀 기록과 녹취록은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이야기로 정교하게 이어지고, 길리어드라는 체제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고, 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가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치중했던 전작이 충격적이었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광기에 휩싸인 독재국가 길리어드 정권의 비밀과 이에 맞서는 비밀 조직과 여성들의 투쟁을 들려주며 대단원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시녀 이야기> 1985년에 출간되었고, 2017년에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되어미투 운동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얀 보닛에 빨간 옷을 입은시녀의 복장은 여러 나라에서 낙태죄 폐지 등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데 사용되었고, 덕분에 <시녀 이야기>는 영문판 누적 판매부수만 1,000만부에 육박하는 인기를 얻었다.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되찾고자 싸우는 약자들의 반란은 비단 소설 속 상황만은 아니다. 실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소설 속 상황과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길리어드의 조혼, 대리모 문제는 제3세계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이며, 여성에게 재생산 기능만을 강조하며 낙태와 유산을 죄악시하는 규범은낙태죄를 둘러싼 논란을 시사하기도 한다.

나는 되풀이해 거듭 읽고 싶어지는 소설들을 사랑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하다.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판타지이자,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소설이며, 그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만으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작품이니 말이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며 충격을 받았었다면, <시녀 이야기>를 읽고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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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1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얼렁 사서 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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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주로 ‘과거’ ‘기억’으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과거를 담은 ‘현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기억은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변화될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워온 사진의 전통적 방식, 순간을 최대 속도로 잡아내고 대상과의 일방적인 관계 맺기에 대한 나의 회의가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였다. 스튜디오 안에서 대상이 되는 인물들간의 교감으로 일어나는 미세한 기운들, 우리가 모르던 감각들을 깨우는 사진을 통한 이 경험들이 과정만을 드러내는 퍼포먼스의 발단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사진이 없는 확장된 사진, 비로소 시간의 양quantity이 아닌 시간의 질quality에 대한 필연적 구상들을 시작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p.189~192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버리고 싶거나 타인에게 주고 싶은 물건 하나를 가져오십시오." 인도 뭄바이의 기차역에서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요청한 질문이다. 익명의 여행자들을 참여자이자 조력자로 초대해 완성하게 된 공동작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물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주인을 떠난 수백 개의 때 묻은 사물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들, 하지만 할 수 없었던 질문들'을 여러 나라 100명의 참가자들로부터 모아 전시하기도 한다. 당신이 오늘을 잃는다면 미래를 잊게 될까요? 당신은 오늘 하루 한 번 이상의 거짓말을 하였습니까? 질문은 반드시 답을 필요로 할까요? 당신은 벙어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까? 지금 울고 싶나요? 누군가의 물건을 훔쳐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삶이 오늘 끝난다면 그것에 동의하겠습니까? 등등 생각에 잠기게 하는 질문도 있었고, 바로 대답이 나오는 질문도 있었고 다양했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의 내용도, 그에 대한 대답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만남이자 대답할 때의 나를 지각하는 시간 그 자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사진작가이자 공공미술가 천경우, 그의 지난 20여 년간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기록한 첫 에세이집이다. 인도 뭄바이의 기차역, 스페인의 작은 섬마을, 프랑스 교외 지역, 런던올림픽 현장, 뉴욕 타임스 스퀘어, 중국 허난성의 시골 마을, 서울 한복판 을지로, 경남과 전북의 사찰 등 전 세계 곳곳의 전혀 다른 별개의 공간을 무대로 그곳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질문(요청)을 던진 후, 그들이 질문에 반응하여 어떤 경험과 조우하는지를 '예술적 중계자'로서 제안하고 지켜본다. 이 책은 그러한 작품들의 준비, 진행 과정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 참여자들과의 시간 그리고 그 후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간 꺼내놓을 기회가 없었던 퍼포먼스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작가 노트'이기도 해서 더욱 흥미로웠다.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돌이켜보면 온통 모순투성이이다. 카메라 뒤에서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은 작가가 정작 보지도 못한 순간이며 필름 카메라 안에 맺힌 상은 늘 거꾸로이다. 대상의 방향도 반대이지만 음과 양도 반대여서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의 눈 역시 실제로는 대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그저 조그만 뇌에서 균형을 잡는 훈련에 익숙해 있을 뿐임을 되새겨보면 가끔 눈이 잘 안 보이는 무력감에 대해 위안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을 선명히 볼 수 없음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p.253

 

이 책에 수록된 익명의 수많은 참여자들과 함께한 소셜 퍼포먼스들은 굉장히 낯설었지만, 그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파리의 환경미화원들에게 일과를 마친 후 자신이 새벽 거리에서 청소를 하면서 떠올리는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연필로 도화지에 그려달라고 하거나, 스페인에서는 스카프 크기의 보자기를 만들어 "당신이 생각하는 고통의 무게만큼의 돌알 모아 보자기에 담아주십시오"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과연 고통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을까. 암스테르담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1분 동안 떠오르는 대로 벽면에 적어주십시오"라는 요청을 했고, 이 퍼포먼스는 6일간 이루어졌다. 인도의 고아에서는 긴 테이블에 서로 알지 못하는 참가자들을 앉혀 놓고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순서와 선택으로 앞에 앉은 상대에게 먹여줄 것'이라는 지침을 알려 준다. 한 사람이 먹는 음식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하니, 이 퍼포먼스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궁금해지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들에 대한 과정과 완성된 작품들이 모두 글과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어, 공공미술이라는 장르가 낯선 독자라고 해도 무리 없이 빠져들어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 같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 교감을 중시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구어온 예술가답게 대단히 인상적인 퍼포먼스들이 많았다. 시간과 경험, 기억과 반응, 관계와 소통, 실재와 부재에 대한 질문들 앞에서 그저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 조차 직접 참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당신은 지금 카메라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을 변주해, 나는 독자로서 이 책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미처 몰랐던 나 자신 앞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저자가 보여주는 '소통과 교감의 소셜 퍼포먼스'는 놀라웠고,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답을 찾으면서 나의 기억과 경험들과 조우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작은 공감이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기적'을 만나보고 싶다면, 진짜 소통과 교감의 순간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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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8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강원주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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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구가 시즈코는 박식하기 짝이 없어. 하지만 그녀는 색인 같은 여자야. 모든 기억이 장기판 조각처럼 정확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렇지, 그야말로 정확성은 비길 데가 없지 그래서 독창성이나 발전성과는 인연이 없는 거야. 첫째, 그렇게 문학에 감각이 없는 여자에게서 어떻게 비범한 범죄를 계획할 만한 공상력이 나오겠나?"
"도대체 문학이 이 살인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야?" 검사가 따졌다.    p.104

 

통칭 ‘흑사관’이라고 불리는 후리야기 성관에는 오래 전부터 언젠가 괴이한 공포가 생겨날 것이라는 풍문이 있었다. 후리야기 성관은 호화스럽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켈트 르네상스 양식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볼거리였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퇴색되어 거칠고 황폐해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저택 주위를 안개 같은 것이 둘러싸기 시작해 비밀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성관에서 기괴한 죽음을 연상시키는 변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동기 불명의 사건이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고, 연이어 성관의 주인인 산테쓰 박사마저 기괴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1년 뒤,  4중주단원 중 한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현악 4중주단을 이루었던 네 명의 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성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며 감금된 채 길러졌다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이렇게 갖가지 억측이 낳은 환상으로 둘러싸인 그곳,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넣어둔 성관과 닮았다고 하여 ‘흑사관’이라 불리는 그곳으로 노리미즈 탐정과 하제쿠라 검사, 구마시로 수사 국장이 투입된다.

 

자.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명탐정이 등장해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여느 추리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구성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초반부터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 작품이다. 수사 진행은 매우 느리고, 탐정은 사건 해결보다 자신의 편집광적 지식 나열에 더 열을 올릴 뿐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분명 단어 자체게 크게 어려움은 없는데도, 대체 내가 무슨 내용을 읽고 있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작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노리미즈의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한 현학적 지식 나열이다. 그는 시종일관 신비주의, 점성술, 이단 신학, 종교학, 물리학, 의학, 약학, 문장학, 심리학, 범죄학, 암호학 등에 대한 지식을 읊어대는데,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극중 함께 등장하는 이들도 대놓고 불평을 해댈 정도이다. '아아, 미칠 것 같은 이야기군' 이라던가, '도대체 문학이 이 살인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야?' 라던가, '이제 저는 당신의 그 현학주의에 구역질이 납니다'라고 직접적으로 쏘아붙이기도 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노리즈미에게 한 소리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등장 인물이 대신 해주니 속이 시원할 법도 하지만 사실 그런 걸 느낄 겨를도 없이 탐정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질리는 게 더 먼저라는 사실이 아이러니긴 하다. 일단 상황이 이러하니, 추리소설 자체의 재미를 느끼기 보다 역대 가장 현학적인 탐정 캐릭터를 만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한 것 같았다. 마침내 가면이 벗겨지고 이 광기 어린 연극은 끝났다. 항상 심미성을 잊지 않는 노리미즈의 수사법이 여기에서도 또 초기 화약 기술과 연관된 종교전쟁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기 짝이 없는 결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검사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담배를 입에서 뗀 채 멍하니 노리미즈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노리미즈는 빈정거리는 듯 웃으며 하트의 역사책을 뒤져 그 페이지를 검사에게 내밀었다.    p.314

 

이 작품은 벌써 국내에서 세 번째 출간되는 버전이다. 2005년에 동서 미스터리 북스로 출간되었었고, 2011년에 북로드의 스토리콜렉터로도 나왔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상미디어의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가능한 한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선정하여 번역하고자 했다는 취지로 기획되어 그 동안은 다소 낯선 작가들의 작품이 출간되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오구리 무시타로의 작품을 새롭게 번역하여 다시 선보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되었던 것이 9년 전이니, 지금의 독자들에 맞춰 현대의 어법과 표현으로 바꾸어 가독성을 높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는 '악명 높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유메노 규사쿠의 <도구라 마구라>와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공물>과 함께 일본 추리소설 사상 3대 기서 중 하나로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현학적 문장의 나열이 가장 큰 장애물로, 그 난해함으로 인해서 읽고 있는데도 이해가 어렵다거나,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등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 나 역시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평범한 독자들에게 '완독하기 어려운'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명탐정의 지루한 장광설로 완독 포기자 속출'한다는 그 명성 때문에 오히려 추리 소설 독자들에게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추리소설 마니아라고 자부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만나 보아야 할, 끝까지 완독하는 걸 도전해봐야 할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이 작품이 1935년에 일본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서문을 썼던 가가 사부로는 “탐정소설계의 괴물 에도가와 란포가 등장한 지 만 10년째 되는 해에 똑같은 괴물 오구리 무시타로가 출현했다”고 말했다. 함께 서문을 썼던 에도가와 란포는 서문에서 “이 작품은 이미 쓰인, 또 이제부터 쓰일 모든 탐정소설의 소재가 집대성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고 말이다. 자, 이제 도전 욕구가 샘 솟는다거나,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거나, 대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아마도 추리소설 마니아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특별한 추리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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