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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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아주 다를 수도 있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고, 시야를 넓게 가지기만 했더라도. 일부가 그랬듯, 충분히 이른 시기에 짐을 싸기만 했더라도., 그래서 그 나라를 떠나기만 했더라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보같이 그 나라가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몸담았던 나라와 같다고 믿고 있었다... 두 갈래 길이 노란 숲속에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간 길을 갔다. 그런 길이 다 그렇듯 그 길에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당신도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나의 시체는 그 가운데 없다.     p.98~99

1985년 출간된 <시녀 이야기>의 34년만의 후속작이자,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이야기는 <시녀 이야기>로부터 15년 후를 그리고 있으며, 각기 다른 환경과 직업을 가진 세 여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전작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와 함께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 과정을 다루고 있다. 원서처럼 양장본으로 나오길 고대했기 때문에, 양장이 아니라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름다운 표지이다. 표지에 그려진 녹색의 소녀는 또 다른 증언자인 '아그네스'를 상징한다. 붉은 옷을 입은 '시녀'와 대비되는 녹색 옷은 결혼을 앞둔 소녀의 복장으로서, 사령관의 양녀로 키워지나 결국엔 팔려가듯 다른 사령관과 결혼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이와 함께 전작에서 독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을 부른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생사와 그녀의 빼앗긴 딸에 대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매우 기대가 되었다.

 

 

'길리어드'라는 나라가 있었다. 여자는 직업도 못 갖고 차도 몰지 못하고,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여, 교묘하게 통제하고 착취하는 끔찍한 곳이었다. 특히 '시녀'라는 계급은 국가를 위한 출산의 의무에 동원되어 암소처럼 임신을 강요당하는 곳이었다. 전작인 <시녀 이야기>는 평범하게 살던 한 여인 오프브레드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딸을 뺏기고, 사령관의 '시녀'가 되어 삼엄한 감시 속에서 그와 주기적으로 관계를 갖고 임신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상황을 그렸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겹치고 겹쳐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상태에 놓이게 되자, 국가에는 임신이 가능한 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해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들은 신체적 기능에 의해 하녀, 아주머니, 시녀, 아내 등등의 역할로 규정되고 그들에게 더 이상의 개인적인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푸른 옷을 입은 사령관의 아내들, 하얀 베일을 쓴 사령관의 딸들, 그네들의 초록색 하녀들, 그리고 출산이 가능한 생식능력을 가진 여성들로 구성된 '빨간색' 시녀들. 고위층 부부에게 할당되어, 그들 부부에게 '자궁'만을 임대해주는 도구에 전락한 여성의 시선으로 쓰여진 이야기는 그만큼 놀라웠고, 충격적이고, 강렬했다. 이야기는 그녀가 낯선 이들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도하면서 끝이 났다. 그것이 자신의 끝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 알 길이 없었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암흑 혹은 빛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딛으면서.

 

 

몇 개월이 흘렀어요. 까치발을 하고 다니며 몰래 엿듣는 삶이 이어졌지요. 들리지 않게 듣고 보이지 않게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문틀의 갈라진 틈새와 거의 닫힌 문들, 복도와 계단에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기둥들, 벽체의 얇은 부분들을 발견했지요. 내가 듣는 것들은 대체로 조각조각 쪼개지고 심지어 침묵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 파편을 맞추어 말하지 않은 문장을 빈칸을 채워 넣는 재주가 늘고 있었죠.    p.145

독자들은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고, 오랫 동안 후속편을 갈망해왔다. 그리고 마거릿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이 이 책에 모든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며, 무려 34년 만에 후속작을 출간했다. <시녀 이야기>에 대해 반복적으로 나오는 독자들의 질문은 '길리어드는 어떻게 붕괴했는가?'였고, 작가는 <증언들>을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썼다고 말한다. <증언들> <시녀 이야기>의 시점으로부터 15년 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길리어드와 엮인 세 여성의 증언을 담고 있다.

우선 전작에서도 등장했던 '아주머니'들의 대표자인 리디아, 그녀는 길리어드의 여성 관련 제도롤 만들고 총괄하는 권력자이다. 길리아드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판사였던 그녀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수치심을 자극하는 오랜 고문과 압박을 견디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 과정을 들려준다. 그리고 체제에 복종하며 귀하게 길러진 상류층의 딸 아그네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계모에 의해 비밀경찰 ''의 지휘관인 저드 사령관에 시집을 가게 될 처지가 되는데, 자신이 사랑했던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에 살면서 TV로만 옆나라인 길리어드를 접해온 '데이지', 그녀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길리어드 시위에 참석한다. 그리고 얼마 뒤 부모님이 탄 자동차가 누군가의 폭탄 테러로 폭발하고,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고 몰랐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들의 비밀 기록과 녹취록은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이야기로 정교하게 이어지고, 길리어드라는 체제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고, 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가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모습을 그리는데 치중했던 전작이 충격적이었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광기에 휩싸인 독재국가 길리어드 정권의 비밀과 이에 맞서는 비밀 조직과 여성들의 투쟁을 들려주며 대단원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시녀 이야기> 1985년에 출간되었고, 2017년에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되어미투 운동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얀 보닛에 빨간 옷을 입은시녀의 복장은 여러 나라에서 낙태죄 폐지 등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데 사용되었고, 덕분에 <시녀 이야기>는 영문판 누적 판매부수만 1,000만부에 육박하는 인기를 얻었다.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되찾고자 싸우는 약자들의 반란은 비단 소설 속 상황만은 아니다. 실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소설 속 상황과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길리어드의 조혼, 대리모 문제는 제3세계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이며, 여성에게 재생산 기능만을 강조하며 낙태와 유산을 죄악시하는 규범은낙태죄를 둘러싼 논란을 시사하기도 한다.

나는 되풀이해 거듭 읽고 싶어지는 소설들을 사랑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하다.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판타지이자,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소설이며, 그 의미와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만으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작품이니 말이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며 충격을 받았었다면, <시녀 이야기>를 읽고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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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1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얼렁 사서 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