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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나의 힘 - 카프카의 위험한 고백 86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가시라기 히로키 엮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절망,좌절,슬픔,실패라는 말들이 잘 어울리는 카프카의 글을 읽으며 그를 잠식하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꽤 부정적인 사람이기에,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라는 이야기에 질릴때도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빠지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머리와 가슴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밀어내고만 있는 듯 했다. 도리어 카프카의 절망적인 고백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기분이다. 적어도 난 이 정도는 아니잖아.. 라는 비교가 아니라, 내가 겪었던 절망과 좌절이 나만의 것이 아니였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슬픔의 깊이를 스스로 더해가기만 해 결국 건강까지 해쳤던 카프카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질효과라고 한다. 슬플 때는 슬픈 음악을 듣는 것이 좋다는 것인데.. 우울할때면 버릇처럼 우울한 음악에 한없이 빠져들면서, 늘 생각만은 밝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쉽게 몰입하는 성격탓인지.. 카프카의 글을 읽으며 내 감정을 너무나 절묘하게 글로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 일이 나는 왜 안될까? 누군가에게는 단숨에 여러개를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일지라도 나에게는 단 한칸이 그렇게 어렵고 힘겹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복을 위한 첫 시도조차 불가능 한 것입니다" 라는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다. 난 눈물이 참 흔한 사람이였다. 특히 엄마에게 한소리 들으면 일단 눈물부터 시작했다. 그럴때면 원래 하고 싶으셨던 말에 운다는 지적이 늘 더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눈물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의지(意志)나 의도(意圖)와는 관계없이 나타나는 이상운동이라는 "불수의운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 바로 엄마가 떠올랐던 것을 보면 꽤나 나에게는 컴플렉스였던 것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이 말을 엄마에게 했어도 큰 효과는 없었을 듯 하다.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일단 그 말을 울지않으면서 하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했던 카프카의 아버지, 어쩌면 카프카의 절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가 36세때야 비로소 쓸 수 있었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열흘에 걸쳐서 쓴 그 긴 편지를 결국 아버지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카프카.. 만약 그 편지가 전해졌다면 과연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스스로가 만든 늪속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립했고 현대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것이 흥미롭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카프카는 그 존재 자체로도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