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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공간을 걷다
이경재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8월
평점 :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인상깊게 읽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일부로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 곳에서 다시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왠지 그 때 느꼈던
많은 감정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번에 읽은
<명작의 공간을 걷다>는 저에게 한국에서 여행할 곳들을 계속 추가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곳은
이전과 같은 풍경이 아닐 것입니다. 김연수의 자전적 소설 <뉴욕제과점>처럼 이미 사라진 공간이 더 많을 수도 있죠. 그 곳에서 제가
만들어갈 추억은 문학 작품 속의 풍경과 현재의 풍경이 교차하겠지요. 하지만 그 역시 나만의 추억이고, 나만의 시간이 되어줄 것입니다. 문학작품은 한 고장의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바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입니다. 가을 봉평에서는 ‘메밀꽃 축제’와 ‘효석
문화제’가 열리고, 봉평을 가보지 못한 저조차도 일단 그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니까요.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람들이 옛 풍경을 그리워하는 것은 비단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던 삶에
대한 향수만은 아닐 것입니다. 생겨난 것들은 사라지고, 또
다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와도 닮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사람들의 추억은 미화될 수 밖에 없다고 하죠.
자연의 질서를
떠올리니 절로 이육사의 “청포도”가 떠오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새롭게 발견한 인물이 바로 이육사인데요.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저항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아니죠. 이육사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필명이었다고 하네요. 워낙 문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분이다 보니, 시인으로서의 이육사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육사는 그가 대구은행
폭파사건에 연루되어서 대구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붙여진 수인번호이고, 그는 의열단 활동을 비롯하여 항일운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여름이면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과 같은 불변의 자연의 섭리처럼 광복이 올 것을
믿고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포도나무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죠.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었던 그이기에, 그가 가장 아꼈던 시라는 ‘청포도’와
제가 제일 좋아했고 그의 유언과 같은 시였다는 ‘광야’가
모두 퇴계이황의 후손들이 자리잡은 원촌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요. 원촌에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