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이 지은 밥을 먹지 못한지 햇수로 7년째가 된다. 무척이나 밥에 대한 집념이 질기게도 강했던 모친이었다. 7년 전부터 모친이 해주는 밥은 영영 이별이나 마찬가지이다. (병원에 누운지 햇수만큼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와이프가 출근 전에 해 놓은 밥은 저녁에 한 끼 먹는다. 식어버린 밥에 온기의 맛은 없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려면 바쁠 텐데 제발 밥하지 말라고 강권해도 와이프는 밥에 대한 집착도 역시 강하다. 해놓은 밥을 먹지 않으면 가끔 화도 낸다. 체념할 만도 한데 끝까지 밥해놓는 수고를 버리려 하지 않는다. 하루에 해줄 수 있는 최적치가 밥이라도 해놓는 거라고 하지만, 다 식어 버린 밥에 매달릴 것도 아니라고 설득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차마 맛없어서,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다고 실토할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하루에 한 끼만 먹겠다고 선언하고, 특히 탄수화물로 대변되는 밥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별 효과도 없었다. 밥을 안 먹으면 압력 밥솥에 그대로인 밥을 보고 상당히 섭섭해한다. 해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먹긴 해야겠지만 지겹다는 말도 못하고, 밥의 답습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는다.

 

와이프는 아직도 달걀 물 입힌 옛날 소시지 반찬을 좋아하고 자주 먹고 싶어 한다. 어릴 때 도시락 반찬에 노란 달걀을 입혀 지진 소시지 반찬의 부러움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나도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아직도 그 부러움을 떨쳐내지는 못한 것에서 역시 사람은 어릴 때 먹었던 밥의 기억은 평생을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난 좀 다르다. 그 결핍과 부러움을 현재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 이어간다는 것의 답보성에는 난 저항하고 싶었다. 이젠 그런 그리움의 소시지 반찬에 여전히 연연해서 그 맛을 찾겠다고 하기에는 잊어도 되는, 아니 그보다 더 나은 맛의 음식이 널렸는데 굳이 찾는 것도 일종의 그 시절의 향수처럼 그리움일 것이다. 그리움이라고 모두가 다 다시 재현되어 저야 할 의무도 없지 않은가. 그런다 해서 같은 환경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대신의 다른 걸로 치환하면 될 일이다. 연연할수록 사람은 집착을 만들고 다시는 되돌릴 수없는 것들에 마음을 쓴다는 게 된다. 그런 결핍은 그때 시절로 똑같이 보상심리로는 해결될 수 없는 밥의 정서이기도 하다. 과거의 맛에 집착이란 오늘날의 보상심리의 맛과도 연결되니 찾으려 하는 거다. 그러나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시간은 집착과 아집을 낳기 마련이다. 과거의 부러움과 결핍이 상흔이 되어 아직도 비가 오면 욱신거려야 할 기억의 신경통처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밥의 정서는 어릴 적에 먹은 부족의 희소성에 대한 맛이다. 없으니 마음껏 채울 수없는 그 허전함이 만든 맛일 따름이다.

 

한민족 역사상 산업화가 되기 전 5,000년간 굶주린 사람의 유전자에는 배고품의 고통이 새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밥에 고깃국이다. 잘 살기 위한 것도 결국 이밥에 고깃국을 마음껏 먹고 싶은, 그 부족함이 오늘날의 과식 문화로 이어진 건 아닐까 싶었다. 부족이 과잉을 부른다. 당장 바빠서 시간이 없어 패스트푸드로 때웠다고 하면 당장 밥 먹을 시간도 없었음에 대해 측은지심도 발동되기도 하고 배고픔의 증상에 대해 안절부절할 수없는 두려움을 만들었다. 다 못먹고 살아왔던 민족이 피할 수없는 집착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밥상을 받기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주말이나 휴일 아침은 와이프의 수고를 덜고 특히, 내가 지은 밥으로 함께 먹고 싶었다. 나도 밥 정도는 할 줄 아는 남자이고 싶었고 밥상을 받는 것에서 이제는 밥상을 차려 내는 것으로 변환하고 싶었던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에 먹는 밥에서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밥에 대한 메인이 되는 밥상을 차려 주고 싶었다. 밥을 어떻게 해서 새롭고 창작적인 밥맛을 만들어 내는 저자의 새로운 밥의 발상이 참으로 위대하기까지 하다. 받기만 하는 밥상에서 차려 주는 밥상의 매인이 밥으로써 전달되는 마음의 감정이입은 확실한 밥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시골에 땅을 보러 갔다. 언젠가 시골 정착해서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밥이라도 시골의 담백한 밥 한 끼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온통 판매되는 식당의 혀끝에만 매달린 매식의 밥이 아니라, 자연의 근사한 밥상에 따스하게 갓 지어낸 밥으로 시골의 풍미가 한껏 들어가서 각종 재료들의 원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의 밥과 어우러짐을 퍼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루라도 어느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의 결핍은 당장 매일매일 끼니는 해결하지만 너무나도 무미건조한 정서에 마음이 갈 리가 없다. 어떻게 하면 한 끼를 때우는 식의 사 먹는 밥은 그저 배를 채우는 허기의 대체일 뿐이다. 밥 한 끼를 먹음으로써 그 심리적인 정서의 포만감이 드는 밥상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저자의 노력이 만든 각종 밥의 레시피를 보고 꼭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의 이유이기도 하다. 밥에 넣을 각종  주 재료를 장만하는 과정은 도시의 식당에서 사 먹는 밥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시골의 밭과 산에서 얻어낸 재료들과 어우러지고 그 계절과 부합되는 시간을 밥에 저장하며 새로운 맛으로 과정을 즐기는 묘미는 식당에서 사먹는 밥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는 그 부족함의 결핍의 정서를 이겨내고 기아의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밥상 위에 피어오르는 밥의 냄새에서 우리의 행복이 밥 한 그릇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끼 그저 때우는 밥보다는, 한 끼조차도 근사한 예술적이고 창작적인 밥 한 그릇으로 우리 삶이 만들어내는 과정과 함께, 더불어서 윤택함이 밥의 찰기에 좔좔 흐르는 면면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한다.

 

PS : 본 포스팅 제목에 오타와 문법이 틀려 정정합니다. ~으로, ~으러.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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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1-14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취생활 20년차이다 보니 정말이지 엄마가 해주신 밥이 너무 그리울 때가 있더라구요.
일 년에 몇 번 고향에 내려가면 엄마가 해주신 밥은 쌀밥에 김치만 있어도 왜그리 맛있는지......
언젠가는 유레카님이 계신 시골로 초대받아 집밥 얻어먹을 그런 날이 오겠지요? ^^

yureka01 2019-01-14 11:57   좋아요 1 | URL
아고 어머님 차려주는 밥상이 그리움입니다...

그럼요..

언제 시골로 귀촌하면 꼭 초대해서 밥 한끼 근사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직접 담근 술까지 !~~~~~

레삭매냐 2019-01-14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보는 밥은 참으로 맛깔나
보이지만 정작 실천으로 옮기기
까지는...

그래서 저는 설거지를 주로 합니다.

yureka01 2019-01-14 11:56   좋아요 0 | URL
도시에서는 야외에서 가마솥에 불 때서 밥해먹는건 불가능이라서요..
장작불에 가마솥..아 꿈만 같아요..

2019-01-14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4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웃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글이네요.

yureka01 2019-01-14 13:03   좋아요 0 | URL
시골가면 곰발님 꼭 초대 하겠습니다..^^..

2019-01-14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1-14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참 잘 쓰십니다. 밥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셨을
줄은 몰랐네요.
저도 사실은 밥 하기 싫습니다.
우리 엄마들 누가 해 주는 밥 좀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누가 밥 안 먹었다 먹기 싫다하면 그게 또 왤케 신경 쓰이는지.
먹는 줄거움도 큰 법이긴 합니다만 한 2,3일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은 약이
빨리 개발됐으면 좋겠습니다.ㅎㅎ

yureka01 2019-01-14 13:18   좋아요 1 | URL
시골가서 밥하기 탐구생활해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무우밥.
시래기밥.
우엉밥.
바지락밥.
가지밥.
김치밥.
어떤 재료를 가지고 밥을 매번 달리해서 먹어 보는 게 즐거울듯합니다.

시골가면 밥의 탐구생활 해보고 싶어요..
물론입니다. 밥하기 싫은적 많지요..매일 매일 하는 밥이 재미날 일도 없겠고..
그런데 밥 못먹었다면 이게 또 어찌나 신경쓰이던지...맞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1-14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말씀처럼 밥에는 밥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가 하나의 맛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점에서 집밥이 밖에서 사먹는 음식보다 맛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 사람만 너무 고생하는 것은 피해야 겠지요...

yureka01 2019-01-14 13:43   좋아요 1 | URL
물론입니다. 가난한 시절 ..매번 가족의 끼니를 해결해야하는 모든 어머니들의 수고에 대한 맛은
평생을 따라 다니거든요..

요즘처럼 다른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라도,
더더욱 어머니의 밥상이 그립습니다....

cyrus 2019-01-14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음식 레시피 정보가 많아서 누구나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의 맛을 흉내 낼 수가 없어요. ^^;;

yureka01 2019-01-14 16:00   좋아요 0 | URL
그럼요.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각인은 평생가거든요..
이젠 맛의 그리움이 되었네요...

감은빛 2019-01-14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탄수화물에 대한 책을 두 권 가량 읽고 난 이후부터 밥에 대한 미련을 싹 버렸습니다.
어려서부터 밥만 엄청 좋아했거든요.
국이나 반찬이 없어도 맨 밥만 있어도 두세그릇씩 먹곤 했어요.
제 친구들은 누구나 기억합니다. 엠티가서 밥솥 끌어안고 먹었던 사람을 말이죠. ^^
그런 제가 요즘은 하루 한 끼도 밥을 안 먹는 일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오는 주말에 현미밥을 짓긴 하지만, 저는 거의 손도 안 댑니다.
애들이 다 먹어주면 좋고, 만약 남기고 돌아가면 그건 제가 먹긴 하죠.

대신 고향에 가면 무조건 하루 3끼씩 밥을 먹어야 합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도 밥에 대한 애착이 강한 분이이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밥을 먹긴 하되 매끼 반공기 먹는 것으로 타협합니다.
물론 고향에 다녀온 후엔 엄청 살이 찌고, 특히 배가 나오더라구요.

yureka01 2019-01-14 16: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백미상태로 도정한 쌀은
농경사회에서는 적합했지만,,,이젠 아니죠..탄수화물 과잉이 되기 쉽상입니다.
하루 종일 컴텨 자판 치는 일과 논밭에서 땀흘리며 몸을 써야하는 일은 먹는 것에서부터 차이를 둬야 되거든요..
그런데 밥은 계속 먹게 되면 건강에 치명적이라서요..

밥 자체의 양을 줄일 수 있는 밥짓기가 그래서 중요한 이유니까요..

책읽는나무 2019-01-14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밥에 대한 애착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이른 아침 자다가 눈만 뜨면 잠 깰새도 없이 밥부터 입에 집어 넣기 시작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었어요.
그리고 시계 보면서 12시 땡하면 또 점심밥을!!! 6시 되면 저녁밥을!!!
그냥 다들 그렇게 밥을 먹는 줄 알고 살다가 직장을 다니면서 자취생활 할때....아!! 밥 해먹고 살아가는게 너무 힘들다는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반찬도 제대로 할줄 몰라 물에 밥 말아 먹고 출근한적도 많아 위염을 그시절부터 달고 산게 아닌가?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습관이란게 참 무서운가봐요!!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서 요즘 제가 딱 친정부모님처럼 밥에 목숨 걸며 살고 있더라구요.부모님처럼 시간을 꼬박 지키진 못하지만..삼 시 세끼 다 챙겨 먹여야 속이 편하더라구요.내 마음 속과 나의 내장 속까지두요ㅋㅋ
늘 뭘 먹어야 하나?고민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식구들 밥 먹는 소리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저도 식구들이 밥을 먹기 싫어 깨작거리면 좀 서운할때가 있어요.
저희집 신랑도 탄수화물 섭취 줄인다고 밥 안먹는다고 그러면 섭섭하다 못해 눈을 흘기죠ㅋㅋ
주말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가족끼리 집밥 먹는데 동참을 하든,밥상을 차려 주든 둘 중 하나라도 하라고 시키면 마지못해 주방 가스렌지 앞에 서거나,식탁에 앉거나 그러긴 합니다만....억지로 먹이는게 맞는 것인지???미안하면서도 함께 밥을 먹고 싶어요.
가족들 밥 먹는 모습 바라보는 것만큼 좋은 시간이 없는 듯 합니다.^^

유레카님이 귀촌하시어 지인들에게 밥 해서 밥 퍼주는 상상을 잠시 했는데요~벌써부터 달디 단 새밥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무척 기대가 됩니다^^

yureka01 2019-01-14 23:12   좋아요 0 | URL
이젠 바뀌도 됩니다.
애달픈 마음 들더라도 그 잡착을 내려 놓음 한결 편합니다.
밥 이 자체에 주목한 저자의 밥짓기를 읽고..저도 생각을 고쳐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재료에 밥을 함께 지음으로써 수고를 덜고..밥 이자체에 맛을 배가시킨다면
밥으로 끼니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물의 레시피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김치밥..나물밥..우엉밥..가지밥. 무우밥 등등 수만은 시골의 흔한 재료가 밥과 섞일때는
우리가 백반만 먹을 때와는 또다른 흥미를 유발하더군요..
저도 밥하는 재미와 즐기는 재미 꼭 시골에서 터전 딱아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시골가서 초대 하면 꼭 오시면 좋겠습니다~^^.

강옥 2019-01-15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잖아요~~~
쌀 소비가 매년 줄고 있다고 하지만 저같은 구닥다리는 여전히 밥심으로 삽니다 ㅎ
김밥 먹고 나서도 맨밥 또 먹는 사람도 있던데요 뭐 ㅎㅎ
홍합밥도 맛있는데용
언제 통도사 오시면 맛있는 홍합밥 사 드릴게용 ^^*

yureka01 2019-01-15 14:54   좋아요 0 | URL
홍합밥..말씀만 들어도 침이 고입니다..
아고 언제 통도사 한 번 가 볼수 있을까요..ㅎㅎㅎㅎ

통도사에 홍매화 아직도 보러 가지 못했거든요..

아마도,,,
밥심으로 산다는 건 탄수화물의 중독애 대한 합리화시키는 거 같아서요.
이젠 좀 바꿔도 됩니다.^^..
지금 온통 탄수화물 과잉이라서요...
 

 

 

 

 

[그장소]님에게  받았던 책의 리뷰 링크( http://blog.aladin.co.kr/768030147/8971374 )


이제서야 알았네요.

잘 지낸다는 댓글이 무척 허망한 밤입니다.

잘 지내지 못한 건데 미쳐 알아차리지를 못했네요.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부디 영면하시고

당신의 이름처럼 그 장소로 먼 여행을 떠나셨네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그동안 잘 지냈어요?라고 다시 묻기로 하죠.


삶의 질곡에서 더 나은 그 장소로 가신 애서가의 마지막 길.

작별을 고합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알라딘에 있는 동안 문득문득 당신이 그리워질 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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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1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댓글들, 그장소님을 잘 모르는 저한테도 너무 그장소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말해주는 저 댓글들 ㅠㅠ

yureka01 2019-01-11 22:50   좋아요 1 | URL
책에 대한 사랑이 지독하셨지요..
그리고 무척 다량의 리뷰 페이퍼글 보여주셨기도 하고...

그런데 어느날 부터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뜸해진건지, 그러다 왜 멈추게 된건지 이제서야 알았으니 ....

너무 안타깝습니다........(심장이 저리네요...)

사과나비🍎 2019-01-11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작년 초에 댓글 남겨 주셨던 분인데요. 정말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2 07:3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도 여러 분들과 교류가 많았던 분이셨어요.....

서니데이 2019-01-11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 전에는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겨우 한달 전인데. 지금은 너무 슬퍼요.

yureka01 2019-01-12 07:35   좋아요 1 | URL
네 한달도 안된 건데 비보가 올줄은 몰랐어요..

이하라 2019-01-1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안에서도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군요. 그장소님과 많은 글은 주고 받지 못했지만 충격이 작지않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2 07:36   좋아요 0 | URL
자주 알라딘에 글 올리시던 분이었으니까요..너무 아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1-12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2 07:37   좋아요 0 | URL
좋은 곳으로 가셨길 두손모아 빕니다....

나와같다면 2019-01-12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만해도 할아버님 장례식 치르면서 남기신 글을 읽었는데, 이렇게 생생한데..

[그장소] 님 저의 두번째 북플친구. 처음 댓글을 남겨주신분. 섬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이렇게 있는데..

[그장소] 님 서재에 계속 들어가봐도 아픈 마음이 진정이 안되네요

yureka01 2019-01-12 07:37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활동하다보면 자주 그리워질 분이 되었네요..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blanca 2019-01-12 0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못 본 줄 알았어요.... 믿을 수 없는 작별이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2 07:38   좋아요 0 | URL
네 불과 한달도 채 되기 전까지 안부 주고 받았거든요..
너무 황망해서요..

책읽는나무 2019-01-12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못 읽은 줄.....
요즘 뜸하시다 여기던차,할아버님의 장례식 글을 참 오랜만에 올리셨구나!! 여긴지가 얼마전이었는데.....
많이 아프셨었군요...
안타깝고 슬프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yureka01 2019-01-12 07:39   좋아요 0 | URL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안부 묻곤 했는데 저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아프단 말도 못하고....미리 알아채지도 못했지요.

마녀고양이 2019-01-12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거기 계시던 분이었는데,
따뜻하고 밝고 섬세한 분이었는데,

마음의 한구석이 갑자기 비어서 뭐라 받아들여야 할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2 14:08   좋아요 0 | URL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빌었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19-01-12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2 14:08   좋아요 0 | URL
고통없는 피안의 그 곳에서 영면하셨음 좋겠습니다.......

stella.K 2019-01-12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감정 표현을 좋아요만 있으면 안되는데
좋아도 좋아요고, 슬퍼도 좋아요 누르려니까 참 어색하네요.
물론 이심전심으로 아는 거긴 하지만...

아프셨다는데 전 그것도 몰랐습니다.
그곳에서 맞는 첫날은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그저 명복을 빌뿐입니다.

yureka01 2019-01-12 15:11   좋아요 2 | URL
여기서 like는 Read 개념으로 쓰고 있습니다.
슬퍼요가 맞는 글에 좋아요는 감정을 나태낼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저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부디 좋은 곳에서 더 아프지 않는 평화를 얻었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2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yureka01 2019-01-12 21:59   좋아요 0 | URL
어제 알았습니다...그분의 아픔을 전혀 몰랐으니...

페크(pek0501) 2019-01-1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곳에서 편안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3 00:17   좋아요 0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9-01-1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01-14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밝은 모습 속에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던 분이셨는데... 저도 어제서야 알았습니자. 얼마나 충격이 크던지.. 이렇게 넷 상에서 책을 통해 교류한다는 게 정신적으로 서로에게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신 분 같습니다. 이제 편히 아프지 않은 곳에서 행복하길... 명복을 빕니다

yureka01 2019-01-15 09:02   좋아요 0 | URL
네 알려지지 않아서 다들 늦게 알게 되었지요..
책을 사랑한 애서가의 글이 그리울듯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Conan 2019-01-16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너무 뜸하게 들어왔더니 이제 알게 됐습니다. 안타깝습니다.....

yureka01 2019-01-16 11: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늦게 알게 되었지요..그래서 더 아쉬웠어요..
준비없는 이별은 항상 늦나 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따져보지는 않았으나, 하여간 흑백 사진을 가끔 찍게 되었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면 딱히 꼬집어서 "이거다"라고 자신 있게 설득할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흑백사진을 자주 찍게 되는 원인을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되다니, 아무튼 난 무던히도 늦다. 늘 한 템포씩 느리고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과 같은 헐렁한 태도는 항상 와이프에게 나에 대한 평가였다. 팽팽하게 긴장하고 조여진 삶은 여하튼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어디 한구석이 뻥 뚫린 모양으로 공동화되어 있는 듯한 헐렁함은 내가 살아가는 쓸모없는 방식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사진도 마찬가지로 치밀한 것은 별로 없다. 이것저것 자로 잰듯한 확실한 조건을 따지며 찍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성격과 사진 찍는 태도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겠나. 빨리 알아차린다 한들, 뭐가 좋고 나쁘고가 없으니 늦으면 늦는 거고 빠르면 빠른 것일 뿐이니 게의치는 않는다. 느긋하게 가면 무슨 큰 사단이라도 나는 것도 아니니까. 악착같이 성공하고 돈 벌어서 부자 되겠다고 바락바락 조이며 산 사람들의 끝은 역시나 타고난 금수저하고는 쨈도 안되던데 한 평생을 자신을 자학하듯 노력이란 채찍질은 차라리 인생의 굴레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 살기는 싫었을 뿐. 뭐 코 막고 5분만 있어 봐라. 골로 가는 허무한 인생이고, 목 조르고 5분만 있어도 뇌사상태의 치매가 되는 허망한 생명들이다. 5분 짜리 생명을 가지고 50년이나 버둥 거려도 허망한 거야 마찬가지겠다.


이야기가 옆 가지로 셌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시광선의 자연색을 찾지 않고 흑백을 찍는 이유는 뭘까. 색을 빼고 나니 또 지루하지만 새로운 색이 보인다. 흑백에는 흑과 백. 두 가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흑에서 백까지 무한대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걸 늦게 깨닫는다. 흡사 먹의 농담으로 형태를 입체감으로 만드는 것이 동양화라면 흑백사진은 동양화를 닮은 건가 싶었다. 빛으로 농담의 조절, 즉 흑백 사진은 빛의 스펙트럼을 먹의 농담이며 자연색이  흑백으로 치환되어 농담으로 표현되는 양식이었다. 어쩌면 색을 빼고 나니 심저를 더 끔찍하게 울린다고나 할까, 혹은 사진으로 떠올릴 주제가 더 강화되는 느낌도 들었다. 자연색이 때로는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었다. 역시, 사진의 처음 시작이 흑백이었으니, 사진을 보는 것에서도 사진의 본질적인 추구를 따지게 된다. 처음 사진을 찍으면서 색이 화려한 것들을 찾고 색의 감각을 쫓았다면 사진을 찍을수록 이제는 색을 빼는 것을 찾게 된 원인이 흑백을 찾게 되고 찍게 되는 이유이다. 색을 걷어 냄으로써 일련의 흑백에서 만들어지는 사진의 관념은 치밀해지고 농밀해져 가는 걸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흑백사진은 색을 제거 함으로써 추출하려는 관념적 성향은 강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흑과 백이라는 무수한 계조 속에서 단순하게 보이는 선이 뚜렷한 사진이 자칫 심심하지만 결코 심심함의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저자인 사진작가가 지난 연말에 사진 개인 전시회에서 걸었던 작품을 사진집으로 출간한 흑백 사진 책이다. 이른바 전시회 사진 화보이다.. 그런데 대부분 작가들이 전시회에 사진 화보나 혹은 전시 작품을 팜플렛으로 출판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 책을 정식으로 퍼블리싱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 정식 출간 절차를 거치지 않는 건지 나도 너무나도 잘 안다. 안 팔리는 거라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낸다 해도 사진 책은 소비가 되지 않으니 내봤자 출판사 돈 벌어다 주는 일만 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이 책 또한 거의 판매가 안되는 사진집일 터. 그러니 사진집을 찍어내도 출판 등록을 하지 않고 전시 관람자들에게 배포되는 걸로 종결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운 사진 책들이 있을까 싶다. 전시회는 거리와 공간의 제약 때문에 자주 가지도 못한다면 책은 거리와 공간을 넘어설 수 있으니 전시된 작품의 사진은 대부분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다만 타이틀만 남을 뿐이다. 어디에서 무슨 전시회를 했다는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지 그 전시회에서 어떤 사진이 걸렸는지는 숨겨진다. 퍼블리싱이 되지 못한 사진들이 얼마나 많을까. 또는 그런 사진을 다 볼 수는 없을까. 각기 작가 저마다의 주장과 소감과 전시회의 주제는 어떤 것인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책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사진을 세상에 주유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사실 전시회가 다 돈이란 비용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누가 보기는커녕 구입할 만큼 재정적인 문제는 늘 멀리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각기 저마다 자기의 직업이 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사진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진으로 밥 먹고사는 사람은 그래서 참 대단하다. 숨겨 놓은 재산이 많은 부자라면 모를까, 떵떵거리는 사람 몇이나 된다고 사진에 취향을 가지고 매진하는 사람도 상당히 드물다. 우리나라의 사진 시장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상업적인 사진이야 극소수의 사진 전업 자영업자들이나 하는 거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먼저 알아보고 찾아내고 그럼으로써 내가 사진 찍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사진 생활이 좀 더 고도화될 수 있다면 너무 좋으련만 현실은 사진 출간은 점점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진은 계속 찍을 것이고 시간을 기록할 것이고 자신의 삶에 내 사진의 내재적 의미를 치밀하게 새겨나갈 일만 남았다.

사진을 왜 찍냐는 말은 사진이 왜 좋은지를 묻는 또다른 질문이다. 사진 찍고 싶다는 사람에게 사진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맘대로 찍으세요 라면 그만이다. 이렇게 저렇게 찍어라고 말하기가 싫었으며 누가 찍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으니까. 누가 찍든 말든 찍겠다고 나선다 해서 굳이 뭐라 해주고 싶은 말도 없다. 찍음 찍고 말면 마는 것일 뿐이다. 사진은 홀로 찍으러 다니니 외로운 작업이자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다. 외로움과 고독이 사진의 사유에 대한 큰 힘이다. 부산을 떨며 요란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설사 여럿이 단체로 사진을 찍으러 간다 한들, 결국 사진은 시선의 위치는 혼자서 보는 시선이 전부이다. 서 있는 곳의 위치는 결코 공유될 수 없는 공간의 위치이며 시선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스타일도 다르니 비슷한 사진이라도 의도는 똑같을 수도 없다. 사진은 시간의 고유성이자 공간의 고유성과 맞물려 있다. 그러니 고독할 수밖에 없고 철저히 외로워져야 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 책의 작가는 홀로 산사 100군데를 찾았다고 하는데 추측건대 대부분은 혼자였을 것이고 그 100군데의 장소와 시간에 따른 사진의 철저한 사유가 스님의 동안거하는 묵상으로 사진을 담아내는 흑백의 동양화처럼 짙음과 옅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어두움은 짙음으로, 밝음은 옅음으로 바꿔서 봐도 무방하다. 밝음과 어두움. 진함과 옅음. 이러한 흑백 사진에서 작가의 사상은 치열한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반응을 하고 그러므로서 나오는 사유의 덩어리가 사진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진 이전에 깔려있는 근저의 밑바당에서 토해내는 주장에 사진은 덧대져 있도록 시선을 가져가는 이유도 될 것이다. 이는 흑백 사진이 심취하는 심리의 경향을 강조의 느낌이 되는 부분이다.


색은 곧 욕망으로 표현된다. 화려한 아름다움은 욕망의 화려함이다. 단순하고 소박함보다는 거창하고 현란함으로 욕망이 은유된다. 그러나 작가는 색을 빼고 단순한 선과 빛의 흑백으로만 사진을 표현했다. 사진의 공간도 다름 아닌 산사이다. 흑백의 질감으로 현시적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에서 욕망을 걷어 냈다. 속세를 떠나 무채색의 흑백은 그의 사상적 은유이다. 욕망을 비움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그 존재의 본질을 더듬으려 한다. 욕망에 사로잡힌 오늘날 현대의 자본주의에 실체를 색을 걷어 냄으로써 본질을 보려 든다. 욕망을 비우면 결국 공허이다. 공과 허는 둘 다 비움이다. 비워 냄으로 보이는 그 욕망의 걷음이 주는 본질. 매일 휩싸여 있는 탐욕과 갈구의 결핍에서 끝없이 차오르는 갈구함과 갈증은 존재적인 고통의 전형이다. 비우지 못해 결핍당한 존재의 본질적 고통은 존재의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욕망에 사로잡혀서 찾아 내려 버둥 거리는 불행한 일들이 욕망을 걷어 냄으로 찾는 길. 그래서 수행자가 치열하게 머무는 산사의 모습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고작 20컷의 흑백 사진들로 구성되었는데 책을 받아 들고 한 페이지 넘기는데 십분 이상으로 사진을 봤다. 단순 담백의 흑과 백의 어둠과 밝음은 우리의 인생이 욕망과 비움 이 사이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가엾은 중생의 구도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회한이 비워지는 삶을 그리고 평안함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길. 과연 무엇으로 가능이나 할 것인지 사진은 묵묵한 침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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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9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9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1-1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 옛날을 추억할 때 흑백사진이 더 따뜻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유레카님께서 색을 욕망이라 말씀하신 부분을 떠올려보면 당시의 소소한 감정들이 색으로 남는다면, 큰 줄기는 명암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yureka01 2019-01-10 10:14   좋아요 1 | URL
옛날 흑백사진에는 추억이라고하는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시간이 담겼으니까요..
그래서 흑백사진에서 그리움이 발견되기도 하죠..

강옥 2019-01-10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사진이 와락 마음에 드네요.
나도 저런 사진 함 찍어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만큼
먹의 농담처럼 흑백사진에는 칼라보다 더 다양한 색이 숨어있겠죠.
색깔은 욕망의 다른 이름. 현대인은 칼라에 열광할 수 밖에 없구요.

yureka01 2019-01-10 10:44   좋아요 0 | URL
사진에 대해 별로 따져 본적이 없는 분들이 이 책을 보면
너무나도 따분하고 지루하고 심심한 사진일거라 확신합니다..ㅎㅎㅎㅎㅎ
그러나 사진 깊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사진에 데해 오래 오래 이어가는 분들이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 심저의 싸이렌이 미약하게 울리거든요..
저도 표지 사진에 혹했거든요.흐...

2019-01-10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0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소한 날들
이상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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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사진인데, 사진을 자주 찍으러 못 나가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아무런 때라도 카메라 들고 훌쩍 떠날 수 없다. 게다가 삶이란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일 멋진 인생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게 정답이겠지만 대부분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슨 떼부자가 아닌 담에야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사는데 소비시켜야만 하다 보니 싫고 좋고 가 없다. 취향으로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게 아니란 거였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도 부족하니, 대신에 사진 또는 사진 관련 글이 많은 에세이류의 책을 지독하게 편식 중이다. 다른 책은 눈에 거의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또한, 다른 여타 블로그 사진도 많이 감상하곤 하지만 아무래도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은 대부분 시간적인 휘발성이 강해서 지나면 그만이라서 다시 찾아 본다는 것도 역시 시간적인 한계가 있고 블로그 사진은 아무래도 뭔가 진한 진액 같은 것도 찾기도 어렵다. 그러니 자연히 사진 책을 자주 보고 읽는 방향으로 치중하게 된다.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과도 비슷하다. 앞으로도 사진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란 짐작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사진으로 책을 만드는 것은 기획하여 원고를 단시간에 만들어 출판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사진이란 원재료가 오랜 기간 동안 걸쳐서 나와야만 가능하다. 사진이 곧 시간의 압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몇 날 며칠 동안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꾸준히 사진을 찍고 사진의 감성에 글을 덧대져야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원고가 나온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동안 책을 내겠다고 원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일상에서 꾸준한 사진 찍기와 글이 축적이 되어야 가능한, 그래서 원고로 뽑아내거나 다시 편집으로 수정하고 덧붙이거나 빼거나의 가공의 결과로써 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텍스트 글이야 기획하고 빨리 만들어 낼 수 있어도 사진은 기획하고 찍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이 책은 사소한 날들이라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사진을 찍고 내레이션 하듯이 글이 짧게 덧대져 있다. 여기서 첨부된 사진은 전부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진이란 무슨 기념적인 시간을 기억하려 기록으로 남기려 하는 주요한 목적도 있지만 여기 이 책에 나오는 사진 대부분은 일상적이고 흔한 주제들이다. 이 흔함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베어들지 못하면 무심히 지나쳐 버리고야 마는 것들의 기록인데도, 저자는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사소함들에 대해 농도를 더하고 자신의 생각에 사진을 매게로 해서 밀도를 더했다. 사소한 일상의 감각을 팽팽하게 부풀려서 흡사 밍밍한 요리에 소금을 더 넣으며 농도를 높이는 것과도 다름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우리의 삶, 대부분은 먹고사는 일에서 각자가 주어진 임무와 책임을 다하고서야 받는 대가로서의 일상들이다. 그래서 일상은 늘 일에 치이고 빨리 완수해내야 하며 크든 작든 성과로써 결과물을 보여주며 다달이 입금되는 통장에 찍힌 숫자로써 더하여지며 혹은 무슨 소비로써 빼기가 되는 적산법과 감산법에 의해 가감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시간이 참 속절없이 지나고 나면 분명 뭘 하며 살기 위해 유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이 훌쩍 건너뛴 것과 같은 황망함에 몸서리치며 세월이 빠르다는 한탄의 자조만 푸념처럼 내뱉기 일쑤이다.


인생은 거대한 맹목의 강에 조각배를 타고 떠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기야 우리의 생존이 본능적인 맹목으로 시작하였다면, 이 과정도 맹목적 과정을 거처 맹목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을 거절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맹목적 존재들이라는 거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삶의 최대 목적이 맹목적이라는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 다름 아닐 거 같더란 거다. 존재의 이유가 맹목이었으니 대부분은 지나고 난 인생의 뒤안은 허망이고 허무이고 허상처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뭐 하느라 여태까지 살아왔으며, 또 뭐 하자고 살아갈 것인지, 왜 또 기어이 사라지고야 말할 것인지에 대해서, 사진은 이런 사소한 일상의 모습에서 감각이라는 촉각의 안테나를 돌린다는 점이다. 무심하면 무심히 가버릴 수밖에 없는 일상을, 작가의 감각 안테나는 사진으로 집중하고 그런 맹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 감지하려 든다. 무심을 유심으로 바꾸고, 무의미를 유의미로 바꿈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의미에 저항하며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의 전부는 우리 일상으로 들고 다니는 핸드폰 카메라였다는 것도 상당히 의미롭다. 일상의 사소한 것을 잡아내고 감정을 쏟아내는 훌륭한 도구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으로 보여 주고 있다. 카메라를 들면 카메라의 시선과 카메라의 화각이라는 뭔가 사진 찍음에 대한 형식을 갖추게 되지만, 핸드폰의 카메라는 그런 카메라의 마음가짐이라는 형식에서 탈피하여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순간순간의 피사체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는 효율성을 나타낸다. 존재의 자각이란 가성비라는 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밀도 있게 사는 사람만이 나올 수 있는 일상의 단상은 농도가 높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일상은 참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일쑤라는 건 오늘을 산 사람이라면 대부분 크든 적든 느끼는 부분이다. 그러나 작가의 감성이나 감정은 순간순간 핸드폰의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피사체로 조준한다. 삶이란 이 거대한 허무 앞에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는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용점이 별로 크게 없다는 것들 더 크게 있음을 사소한 것들에 유념한다는 사실이다. 사진이 무슨 거창한 행사의 표상처럼 내세우지 않고도 충분히 자신의 삶에 녹여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치밀하고 세밀한  그리고 농도 진하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작가인 저자는 학교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면서도, 농촌 라이프의 삶도 산다. 얼핏 시골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의 많은 분량이 시골에서의 풀과 나무들 구름들 곤충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작아서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에 시선을 멈추고 마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일상의 사소한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삶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 낸다. 시골 라이프의 감성에 최대로 끌어올리는 추임새도 역시 술이 빠질 수 없음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라이프의 모습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느낌은 너무나도 부럽기까지 한다. 마침 저자의 노모도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나오는 모친의 상념들은 내가 당장에 모친이 치매로 병원에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동질감은 더더욱 끈끈하게 보이기도 했다. 역시 처지의 비슷함과 지향점의 비슷함은 이해라는 감성적 연대로 이어지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사진 글에서 나오는 말이 " 사는 게 별거 없다"라는 것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작가도 이 생의 달관을 이룬 느낌도 들었다. 그래 사는 게 별거 없다. 컨테이너에 누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불면으로 잠도 못 이룰 때 독한 고량주 한 잔으로 간 밤에 지나가는 비구름을 안주 삼에 보는 것도 존재의 운치를 더하고도 남는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마지못해 벌어먹고 살아도 돌아갈 시골로 작은 오두막이라도 있다면 삶에 있어서 큰 위안이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지난번에 마저 다 먹지 못한 술이 기다리고 있다면 다시 찾아갔을 때 담가 놓은 술은 또 얼마나 익었을지 조바심과 안달 내고 그런 시간의 기다림으로 한 세상 흘려 거쳐도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사는 게 별거 없다는 말. 참 와닿는다. 그래 우리 별거 없는데 왜 이렇게 별 거 있는 것을 찾으러 오늘도 헐떡 거리며 살아가는 걸까?


다음 주 휴일이 오면 시골로 머물 곳 찾으러 가야겠다. 몰론 카메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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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출사를 응원합니다~

yureka01 2019-01-06 23: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주말까지 또 기다려야겠어요.
언제쯤이면 월요일이 홀가분할까 싶어요.흐..

설해목 2019-01-06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주 휴일 어떤 사진을 찍어오실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

yureka01 2019-01-07 00:06   좋아요 2 | URL
일상의 소소한 것들도 휴대폰 가지고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데,
찍을 수 있는 마음이 쉽게 올라 오지 못한다는 게 포인트일 거 같더군요...
카메라를 들고 찍는 태도와 핸드폰을 들고 찍는 태도의 문제도 좀 있기도 하고..ㅎㅎㅎ
또 한주 기다려야겠습니다.오늘도 사진 못찍었어요..핫....

雨香 2019-01-07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책을 만드는 것은 기획하여 원고를 단시간에 만들어 출판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사진이란 원재료가 오랜 기간 동안 걸쳐서 나와야만 가능하다. 사진이 곧 시간의 압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몇 날 며칠 동안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꾸준히 사진을 찍고 사진의 감성에 글을 덧대져야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원고가 나온다. ˝

유레카님 덕에 사진에세이를 좀 더 진중하게 대할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9-01-07 09:01   좋아요 0 | URL
사진은 시간성과 장소성 때문이죠..
현장성이라고도 하죠..그곳에 가서 찍어야 하니까요..

아마 사진 책이 1년에 출간되는 량이 다른 책보다 적은 이유일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9-01-07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역시 끊임없이 삶이 배어나오게 만들어야 하는 예술임을 유레카님 덕분에 배워 갑니다^^:)

yureka01 2019-01-07 11:10   좋아요 1 | URL
사진은 무한대의 시간에 잠깐의 유의미를 찾는 예술이거든요..
허투로 보낸 오늘이 가급적 적어지길 바랍니다^^..

강옥 2019-01-08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는 게 별거 없다.... 허망하고 부질없단 말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인간이지요.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걸 잊기 위해서, 혹은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

스마트폰 활용법을 강의하는 곳이 많더군요. 폰 사진으로 전시회도 하구요.
DSLR도 한물 간지 오래고, 미러리스도 뭐 그닥.
그래도 사진교실은 꾸준히 유지되는 게, 은퇴자들의 취미생활로 각광받기 때문은 아닌지.

그런데, 실은 유레카님처럼 사진책을 많이 읽는 분을 저는 주변에서 별로 못봤어요.
카메라의 기계적인 혹은 기술적인 부분은 너무나 박식한 분들이 많이시던데.... ㅎ

yureka01 2019-01-08 12:52   좋아요 0 | URL
그렇더군요..노년에 가질 수 있는 취미중 그나마 괜찬은게 사진이거든요..
문학은 어렵고..다른 예술은 악기 하나라도 연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카메라 기능은 워낙 좋아서 버튼만 누르면 사진이 되거든요..

네 부질없는 인생..부질 있게 찾는건 결국 자존감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물론 허망한거야 다름 아니지만 그런 착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기도 하죠..

카메라관련 메뉴얼 책이야 이제 새로울 것도 없으니...
사진의 깊이를 더하는데는 사진 책만한 게 없거든요.

직접 작가의 사진을 보고 작가를 만날 수 없다면
사진 책으로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편이 훨씬 좋지요..

사진이 예능이 되면 카메라 장비를 찾게 되거든요..ㅎㅎㅎㅎ
 

 




(흐, 산문 시처럼 읽어 주시길 !~)

 

 

 

 


 

오늘이 무슨 날일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날이어야 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오늘이 굳이 무슨 날이라고 억지로 붙여 본다면, 죽기 딱 좋은 날이라는 겁니다. 아니 반대로 살기에도 딱 좋은 날이라는 겁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었든 간에 어차피 오늘을 지낸 모든 사람은 오늘만큼, 딱 살았던 만큼 죽었던 것이죠. 네 죽기 좋은 날이 사소하게도 특별할 일도 없는 그런 날입니다.

 

오늘 누군가와 싸웠나요. 싸운 사람을 죽였네요. 오늘 고객과 한바탕했습니까? 네, 그 고객의 죽은 입에서 나온 말들이 나를 죽였지요. 오늘 사장에게서 한 소리 거하게 들었습니까? 내 자존심이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에게 이 씨파 더러워서 그만둔다고 말도 못했습니다. 그럼 또 한번 더 내가 나를 죽였습니다. 오늘 마누라에게 잔소리 들었습니까. 경멸의 눈초리로 자신에게 마음의 심장에 비수를 꼽은 마누라가 오늘도 나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술 먹고 마누라에게 "야 짜증나. 너네 집으로 가라 제발"이라고 했습니까? 그럼 마누라(마누라의 마음을)를 죽였습니다. 슬픕니까? 우울합니까? 짜증 납니까? 네 다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죽었다고 있는 거라서요.

 

소주 한병 일병 나발 불어봤습니까? 네, 간을 죽이고 뇌세포 수억 개를 죽였습니다. 우린 오늘도 수없이 누군가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를 죽이고 있습니다. 죽인 수 이상으로 나도 죽었거든요. 왜 살려고 발버둥 칩니까. 다들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났거든요. 미워하는 것도 죽이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혐오스럽죠? 네 그만큼 죽였습니다. 사랑합니까? 네 사랑 때문에 죽어 갑니다. 욕망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이 욕망으로 죽게 태어나게 할 겁니까. 왜 살려고 죽입니까 죽이면서 살리려 애를 씁니까.

 

시간은 죽어 갑니다. 죽어 간만큼 비례적으로 내가 살았고 살았던 모든 것이 사소할 따름입니다. 살고 싶습니까? 그럼 죽으세요.'윤회를 믿습니까. 그럼 죽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죽지 않고 윤회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오늘 죽으세요. 죽기 딱 좋은 날입니다. 네. 오늘 죽었으므로 새로운 시간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낸 나는 그 정도로 죽었습니다. 사소한 일상은 늘 빛이란 미래를 보려 들고 과거의 죽음을 보았던 것일 따름입니다. 살았으니 죽어가야죠.

 

죽어가니 또 삶을 태어나듯, 시간은 새롭게 다가서야죠. 변화는 모든 것을 바꾸게도 하지만 바꿈의 전(前)은 죽었습니다. 죽는 게 별거 아닙니다. 오늘 열심히 살아 낸 내 생의 얼마나 남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었잖아요. 힘! 힘내서 죽어갑시다. 사소한 날을 열심히 죽이는 짓. 그만둘 때까지 죽어가야죠. 죽어나는 모든 분들 화이팅. 사실 죽는 것도 지겨워요. 사즉생 생즉사. 다 집어치우고 죽이나 한 사발 합시다. 물론 죽에는 소주 한 됫병이 죽이는 안주 ~

 

죽는 것보다 더 싫은 말. 사즉생 생즉사라는  겁니다. 죽으려면 죽는 것이고 살아야 사는 것이라야 되잖아요. 사즉사, 생즉생 이게 재대로죠. 죽기는, 사는 것 보다 어렵고 죽는 건 사는 것보다 어렵죠. 죽는 거나 사는 거나 어렵습니다.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거라지만 결국 다 죽지 않습니다. 다만 변할 뿐이죠. 변하는 것을 죽는 거라 여기면 됩니다. 내가 죽어 무엇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오늘 이순간, 즐겁게 죽어야죠.아니 변하죠. 그것도 무려 짜릿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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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1-05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유레카님 말씀처럼 모든 것이 좋기도 어렵고 좋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나쁘기만 하지도 않겠지요. 날씨도 고작(?) 몇 도의 변화에 움츠러들기도 하고, 활기차게 지내는 자신을 돌아보면 결국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유레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yureka01 2019-01-05 10:41   좋아요 1 | URL
그럼요..죽기 좋은 날의 이면에는 살기에도 좋은 날이죠..사실 틀린 날은 없듯이 나쁜 날도 없습니다.
나쁜 것의 결과론과 좋은 것의 인과론이란 오늘이 마지막이듯이 살면 마음을 넓게 가지는 무장해제가 필요하죠.
오늘도 살기 좋은 날 되시길 ^^..

stella.K 2019-01-05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달관한듯하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특히 마지막 말씀은 짜릿하게 맞습니다.ㅋㅋ

yureka01 2019-01-05 11:47   좋아요 1 | URL
네..죽을 때까지 늘 짜릿한 감동과 감탄과 감흥으로 !~~^^..

강옥 2019-01-05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기 좋은 곳이 죽기도 좋지요
성산포 시인이 하신 말씀 ㅎㅎ

살기보다 죽기가 어렵다는 건 나이가 더 들어야 절실할 겁니다.
이태리 영화(제목은 잊어버렸는데) 대사에 나오죠
˝삶이 너무 길어요˝
주인공 남자는 결국 아내를 질식사시키고 자신도...

yureka01 2019-01-05 19:46   좋아요 0 | URL
삶의 시작과 끝은 늘 비선택적이라는 게 근본 문제더라구요.^^..

시작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