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려면

어디의 방향성을 결정해야 한다.

 

이 방향성의 기준점을 알아야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 이 순간의 현재의 싯점과 장소가 기준점일텐데

대부분의 방향성의 모호함은

지금 이순간의 기준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건, 환경, 시간, 위치에 따른

현재의 기준.

 

인생이 그래서 늘 모호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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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19 0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시점은 태어날 때와 죽을 때인 것 같습니다. 태어날 때는 잘 몰랐고, 아직 죽을 때는 겪어보지 않아 확인하긴 어렵지만요. 우리는 평생 불안속에서 살아야하는 존재라 생각되네요^^:

yureka01 2017-09-19 08:46   좋아요 2 | URL
네 따라서 이 좌표의 기준점이 어디인지 독도법을 하듯 자신의 좌표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렵죠..
누가 알려준다해서 내껏도 아니라서요..

五車書 2017-09-19 08: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현재에도 살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서 현재가 금방 과거가 돼버리는 시간의 연속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나는 현재라고 여기지만, 나의 조건, 환경, 시간, 위치 등의 기준이 어느새 과거가 돼버리지요. 그래서 현재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대개 과거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재를 좀더 확실하게 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가 되는 미래를 살아내고 있고요.

yureka01 2017-09-19 08:4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과거가 현재를 결정하고..현재가 미래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니까요..

북프리쿠키 2017-09-19 14: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다르고, 특별하게 살아간다 생각하며
방향을 잡아보려 하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지는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요^^;

yureka01 2017-09-19 16:04   좋아요 2 | URL
그럴지도 모르겠어요..뜻대로 살아가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면서
욕망만 잔득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내모습을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싶어요..^^..

강옥 2017-09-19 16: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온만큼 더 가야하는데... 우짜지예?
아제 겨우 반환점을 돈 것 같은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꾸역꾸역 가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해결 못한 걸 낸들 우짜라꼬 ㅠ.ㅠ

yureka01 2017-09-19 22:0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왔던길 되돌아갈 수도 없고..더 나갈려니 길은 보이지도 않고..ㄷㄷㄷㄷ

2017-09-19 19:35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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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22:06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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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21:16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22:09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리뷰나 페이퍼가 뜸했습니다.

업무에 치이다 보니 집으로 퇴근하면 파김치 한 접시 먹은 기분입니다. ​

​책은 고사하고 손가락 까딱하기도 싫어지더군요.

그렇게 좋아하는 평생의 업인 사진조차 찍으로 간지 언젠지 기억도 안납니다.

 

저녁은 있으되, 피곤이 저녁을 압도해버립니다.

그런가 봐요.

먹고사는 일이 이렇게 지난하죠.

네 지난함. 난제들의 줄줄 딸려서 쿨하지 않습니다.

내부적으로 업무에 게을러서 미루는 거라면 얼마든지 열심과 노력~할 수 있지만 대부분 업무에 브레이크가 걸린 이유가 외부적이거든요.

아무리 혼자 발버둥 친다 한들 내부적 외부적인 요인들이 합쳐져서 시너지가 없으면 별 소용도 없죠.

왜 일을 이렇게 꼬이게 만들까라고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과욕을 부리니 정상적이지 않는 절차를 밟아 나가려 하니 매끄럽지 못하고 순조롭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일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과욕. 자본의 과잉을 바라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여튼 이 업무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참 피곤함이 밀려듭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고 어디선가 그랬죠.

네 태어난 이유가 일하고 돈 벌고 밥 벌어먹고 자 태어난 목적이었습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돈 벌지 않아도 되고 밥 안 먹어도 되면 또 왜 안되는 겁니까?


혹자는 말합니다.

태어남이 축복이라고 합니다.

전 글쎄요?라고 의문스럽습니다.

삶이란 굴레와 구속과 부자유스러움이라는 이 한계를 가졌는데, 왜 축복이라고 까불었을까요?

축복된 삶이란 대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본 적은 있습니까?

축복은 고사하고 행복은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큰 문제가 없는 한 그럭저럭 불만은 없다거나 그럭저럭한 행복은 하고 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진정으로 스스로가 지금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답을 내는 몇이나 될까요?

 

몸은 사람으로 태어났을지언정, 살아가는 모양새가 꼭 멍에를 뒤집어쓰고 밭을 갈며 시간의 쟁기를 끄는 소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밭이라도 갈아엎어서 작물을 심는 누군가의 소 주인에게 노~~력을 지불하고 받아먹는 여물을 닮은 자본이 연봉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

넓은 초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육장 안에서 갇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에너지를 뽑아내어야만 산다는 것,

어깨를 짓누르는 굴레와 멍에가 무겁고 땅기는 힘도 부칩니다.

결국 더 이상 쟁기를 당겨도 힘에 부칠 때, 용도 패기 당하는 것이죠.

 

시골 가면 소에게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소야 넌 행복하냐?라고.

큰 눈망울을 하고 눈만 끔뻑 끔벅하며 여물을 되새김질로 대답을 대신할 것인지도 모르죠.

소의 큰 눈에 달린 눈곱은 지난밤에 흘렸던 고단한 눈물이 말라버린 흔적이었다는 것을요.

"이랴, 이랴.. 오늘따라 이놈의 소가 말을 안 듣네,

소 주인의 휘두른 채찍이 등줄기에 사정없이 날아옵니다.

아파라~~삶이여~​

그리고, 아픔에 비명 한마디 내지릅니다.

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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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3:06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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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3:1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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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3:39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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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 00:11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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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0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어난 게 축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태어난 이상 죽는 건 서글픔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죽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제야 좀 알겠더군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날이라잖아요.ㅠ

yureka01 2017-09-07 21:28   좋아요 2 | URL
아기 태어나면 모두 축하한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앞으로 살아갈 거 생각해보면 축하 보단 아득하기만해요..
사는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갖 태어난 아이게게 할 소리가 아니겠더라도,,,
살면서 얼마나 많이 울어야 할지..모를 일이거든요..

겨울호랑이 2017-09-07 15: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삶이 고단함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참 어려운 평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7-09-07 21:29   좋아요 4 | URL
그럼요.찾는다고 찾아지면 안찾을 사람도 없겠지요..
아무리 찾아도 환경과 여건과 조건과 구성과프레임과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있을리가 없다는게 참 어려운 과제죠...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나서는 행복은 쉽게 발견될수는 없을까 하고서요..ㅎㅎㅎ

cyrus 2017-09-07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까 오늘따라 소가 슬퍼 보입니다. 평생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사람을 위해 고기가 되어 희생합니다.

yureka01 2017-09-07 21:30   좋아요 0 | URL
솔까 다음생에 내가 소로 태어나도..할말은 없을듯합니다..ㄷㄷㄷㄷ

2017-09-07 19:00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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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21:32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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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9-10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무지로 사는 게 행복한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 너무 생각이 많아서 문제.....
그란디 단무지로 살고싶어도 쉽지 않은게 또한 문제.
그랑께 고마 생긴대로 살아봅시다. 버티는 데까진 버텨 보자구용~

yureka01 2017-09-12 08:41   좋아요 1 | URL
아고 그러게요..버티는데까지 버티는데 다리가 부들부들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五車書 2017-09-16 0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매일 생활이 이루어지는 건물을 오르내리는 계단의 중간 구석에서 거미가 쳐놓은 줄에 붙들린 곤충을 보았습니다.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그날 따라 유독 잘 보이더군요. 꿈쩍하지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쩌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피하지 못하는 굴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하는 처지가 그런 꼬락서니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유레카 님의 글을 읽고나서 다시 생각합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yureka01 2017-09-17 09:52   좋아요 2 | URL
아고 ......거미집에 걸려들려고 기다리는 거미는 대체 어떤 확률을 계산했을까요..
제가 거미가 된 기분.ㄷㄷㄷㄷ

2017-09-17 08:54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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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7 09:51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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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7 10:53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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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7 14:18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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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이 부로 연결되던 시대에는 다산이 축복이었다. 이유 불문하고 많이 낳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유리했다. 가족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나아가 부족으로 확장하다 보면 역시 쪽수에서 나오는 힘은 소수보다는 항상 유리했다. 그래서인가? 가난한 사회일수록 노동력을 더 필요로 하고 더 많이 낳기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강권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력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며 따라서 노동력을 얻기 위한 다산이 양육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때, 출산율은 무조건 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 경제계에서 발표하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경제력으로 출산율은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하기야 쉬운 말로 먹고살기 편한 시대는 인구가 늘어나고 먹고살기 어려울 때는 인구가 줄어든다.

 

가임 여성 출산율이 1.4명인 시대에 무려 8남매를 낳은 가족을 인간극장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방영하고 있더라.(아침 출근 준비 때 하는 거라서 열심히 시청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와이프의 설명이 있었다.)

 가장의 나이 53. 이제 1살 배기 딸까지 있단다. 위 짤방에서 "낳을 수 있는 때까지 낳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1살배기는 나를 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입이 되기에 충분했다. 당신이야 많으니 좋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1살 베기로 태어난 아이가 살아갈 환경을 조금이라도 생각은 해봤는가? 물론 어디까지나 낳는 것이 자기 입장에서 였을 것이나 한 번이라도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

 

 나도 형제가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많은 늦둥이. 그래서 1살배기 막내 아이에게 이입이 곧잘 되던 이유였다. 당신은 나이 먹지 말고 그대로 멈춰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 나중에 지금 1살배기 아이가 커서 아버지에게 소주라도 한잔 대접할 시간을 당신이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아이가 자라면 자연히 당신도 늙어 갈 것이다. 아이가 30이 되고 나면 당신 나이는 얼마냐. 지금 53세면 그때 83세이다. 아버지 손잡고 놀이동산에서 어깨동무하고 즐길 당신의 육체는 남아 있을까? 아닐 것이다. 내가 얼마나 속이 회한으로 터지는지 모를 것이다. 아버지와 여행 한번 못 갔고, 아버지와 소주 한잔 터놓고 못 마셨다. 얼마나 억울한지 당신은 상상이나 할런가? 남들의 일상적인 삶조차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만든 환경과 숙명적 선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낳을 수 있을 때까지 낳고는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양육이란 어디까지나 일정 부분의 범위의 상정된 경제력과 자라는 환경과 지속적인 관심에 전폭적인 마음의 헤아림과 현명함으로 만들어진다. 아이가 어떻게 낳아 놓으면 물리적으로야 자라기야 하겠지만 마음에 담긴 그 숙명적 결핍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 정말 무모하고 무데뽀의 무계획적인 삶은 아니라고 근거를 제시해줄 수 있는가? 낳기는 자유지만 반대로,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자유롭게 태어난 것인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

 

 그런데 아저씨의 나이가 53세에 직업이 택시 운전이란다. 개인택시 사업자도 아니고 법인 소속 택시 운전의 수입이라는 게 하루 사납금 내고 얼마나 남는 돈과 쥐꼬리만한 급여로 어떻게 8명의 아이를 건사시킬 것인지, 또한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부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못 살 것은 없다하지만, 오늘날 절대적인 빈곤으로 나가떨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상대적이고도 비교론적으로 우울한 시대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나이 또래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을 것이고 그런 풍파가 당신 자신과 아이들 엄마의 시간을 다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53세의 택시 운전으로 하루 15시간 노동의 강도에 따른 피로는 끝이 없을 것이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다 투입시키게 되니 자연히 아이들과 함께해야 할 시간마저 부족하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 즉 방임으로 놓이게 된다. 형제가 부모 역할은 할 수 있으나 부모는 아니지 않는가? 제일 맏이와 차녀 차남들은 또 얼마나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건사시키는 육아에 내몰릴 것이 뻔하다. 자기의 삶을 동생들 보살피는데 써야 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동생을 양육에 동참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일까. 이렇게 뻔한 이야기에서 고민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왜 이런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이유를 예상할 수 있다. 출산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다둥이의 가정을 본보기로 다자녀의 행복이란 그럴싸한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많이 낳기를 바라는 사회적 합일된 것 같은 목적이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거 같았다. 누구나 아이들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그런 밑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왜 생각나는 것일까. 그럴싸하게 그려진 밑그림에 아이들이 많아서 겪는 에피소드들의 행복감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본보기 삼아 은근히 자녀가 적은 사람들에게 부추키는 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두고서 누구라도 함부로 비판하다가 돌팔매 맞을까 싶기도 하고, 혹은 그들의 문제이니 내 알바도 아니라는 무관심이 복합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렇기나 말기나 모른 척할 뿐이지만 속으로는 어휴~라는 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일단 나부터 그랬으니까.

 

 알만한 사람들은 다 느낀다. 요즘처럼 젊은 후배들의 생존이 얼마나 기꺼운 상황인지를 말이다. 누구는 배낭여행이다 해외 어학연수이다 스펙 쌓기에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만큼 다 하는데 또 어느 누구는 등록금이 없어서 한한 기 등록하고 또 알바로 학비를 벌충하며 졸업장 따기 바쁘고 이도 아니면 결국 학자금 대출로 직장 시작부터 빚 갚기 바쁜, 이런 선상에서 인생의 출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는 인생 달리기 100미터에서 50미터  앞에서 달리는데 나는 0미터도 아니고 마이너스 50미터부터 출발한다면 과연 비슷하게라도 달릴 수 있을까. 게다가 내 발목에 모래주머니 1킬로나 주렁주렁 달린 채로? 그럴지도 모르지. 살면 다 살아질 것이다. 못 살 것도 없다. 하지만 인생이란 역시 편한 삶과 불편한 삶은 곧 편리함이 행복을 결정짓는 상대적인 요인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가끔 형제가 없으면 많이 외로울 것이란 소릴 듣는다. 그런데 형제가 많아서 고민덩어리가 될 수 있음에 대한 감안을 왜 하지 않는 걸까? 형제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외로움이 해소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형제가 많아도 외로울 수도 있다. 어릴 때같이 자란 형제 사이라고 해도 다 커고 나서 서로의 입장이 얼마나 갈릴 수 있는지에 대한 확률은 또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 든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경험칙상 많다고 다 긍정적이 될 것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다. 형제지간도 부모 재산 가지고 소송전까지 불사하는 경우는 주위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분배는 형제를 원수로 만들 뿐이다. 그런데 단지 외로움이나 해소하는 용도로 형제를 바라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또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차라리 고민과 걱정덩어리의 대상이 되느냐, 아니면 외로움의 해소가 될 것이냐를 비교하기보다는 없어서 결핍이 차라리 나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 부터도 형제들이 원만하게 남들과 비슷하게 그런대로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상으로 평탄하게 살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나보다 전부 나이 형제가 몇몇 있으니 한 둘의 형제들의 삶에 여간 고민스럽지도 않을 만큼 머리가 아프다. 다 잘 살면 까짓 꺼 형제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겠지만 그러지를 못한 현실이고 특히 먹고 살기 허덕이는 형제를 보면 어떻게 해결도 못해주는 무력한 상황에 부딪히면 마음이 편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은 자명하다. 더더구나, 먼저 태어나서 일찍 부모에게 챙겨 받은 형제들과 또 그렇지 못한 형제들 간의 형평성 문제에 대하여 부모가 현명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형제간의 갈등은 또 어떻게 각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있어서 고민보다야 없어서 외로움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말이다. 어차피 인간은 본질적 태생으로 외로운 존재들이다. 아무리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 부모 친지 친구들이 있다 한들, 상대적으로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형제가 많아서 즐거운 삶도 분명 많이 있지만 형제 때문에 고민덩어리보다는 차라리 형제가 없어서 외로움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후자의 상황이었으니 형제가 많은 것을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형제 간의 살아가는 형편이나 나이가 비슷하면 그나마 어울림이 좋아서 분란이 적을 것이고, 형제지간이라도 나이 차이가 십 년 이상 나고 살아가는 경제적인 형편이 심각한 차이를 발생한 상태라면 머리가 꾀 골치가 아픈 경우는 널리고 널린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형제간의 시간적 세대 차이의 분배와 경제적인 분배와 양육에 대한 균등성은 부모가 된 자라면 필수적으로 고려할 우선적인 항목들이다. 나이가 십 년 이상 나는 형제는 친구처럼 지내기도 어렵다는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존재에 대해 섬세하지 못할수록 행복의 밀도와 디테일은 항상 달아나고 만다. 자신에게 태어날 자식은 나의 자유이지만 태어날 아이의 입장은 운명이고 숙명이다. 나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태어날 자식의 무선택적 상황에 놓였을 때의 자식의 입장을 십분이나마 고려의 대상으로 여겨져야 한다. 누군들 아이 많은 걸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가기에 있어서 행복이란 만족감의 근원적인 고민과 지혜와 살아가는 경제적인 형편 등을 고려했을 때 나의 선택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상당히 제한적이고 자유의 축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낳고 싶다고 다 낳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힘이 닿는데 까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야 여자의 가임 능력에 따라 남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임신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번식의 능력이 단순히 자유로운 섹스의 욕구와 결합되었을 때의 뒷감당에 대한 능력의 문제는 낳는 능력보다 키우는 능력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다. 낳는 거야 첩을 들여서라도 얼마든지 낳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키울 수 있는 능력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벌써 "가지 많은 나무"라는 소리를 해대는 형편을 보니 안 봐도 비디오이다. 꼭 찍어 먹어 봐야 된장인지, 똥인지 구분해서야 되겠는가?

 

Ps : 어디까지나 개인적의 의견입니다.혹여 반대하셔도 얼마든지 수용가능하다는 점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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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9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 많아서 자식 낳으면 부모는 낳았다는 것에 방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 큰 자식이 키우는 거죠.
처음엔 부모님 돕자고 동생 키워주는 거지만 크면서 양육에 대해
자연스럽게 교육도 되고 꼭 나쁘다고는 볼 수는 없죠.
자식이 많으면 많은대로 그들 나름의 행복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보는 사람은 좀 한숨은 나오죠.
나라에서 좀 많이 도와주면 좋을 텐데...

그 보단 미국에선 낙태 반대법안이 통과 됐나 보더군요.
트럼프가 서명 했다던데요?
덕분에 <시녀 이야기>란 소설이 각광 받고 있다고.
우리나라도 갈수록 인구가 주니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겠죠.
아이를 낳는 건 권장 사항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나라에서
간섭하고 통제하는 건 왠지 섬뜩합니다.
아, 트럼프...ㅠ .

yureka01 2017-08-29 21:18   좋아요 1 | URL
다 큰 아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준비를 해야할 나이에 동생들 키우는게 선택은 아니었을 겁니다.
주어진 환경이 숙명처럼 받아 들였던 것이겠지요.
네 다둥이 가정에 복지차원에서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반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문제는 그런 지원 바라지 않고자 양육할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낙태는 반대입니다. 생기는 목슴 억지로 없애는거 죄짓는 거죠.

닷슈 2017-08-29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걸봤는데 이 아저씬 8아이덕에170정도 국가에서 나온다고하더군요 월급합해 350정도로 생활하는것같습니다
요즘세상은 희안하게 감당이안될수록 많이낳는것같습니다

yureka01 2017-08-29 21:19   좋아요 1 | URL
국가 보조도 역시 누군가의 세금을 낸거죠...공짜가 아닌 거니까요..
전 하나만 키워도 후달리더군요..ㅎㅎㅎㅎ

2017-08-29 22:38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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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22:42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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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4:31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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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4:44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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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15:11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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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08:49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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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4:00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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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4:16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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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4:22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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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14:53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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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9-01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9월입니다. 한 달동안 기분좋은 일들, 즐겁고 기쁜 날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좋은 날들이 매일같이 이어지시면 좋겠어요.
유레카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2017-09-01 23:56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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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9-02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영장에서도 요가교실에서도 화제가 만발했더군요.
대책없이 많이 낳아서 우짤라꼬....가 대부분의 의견이었어요.
각자 저 먹을 건 타고 난다-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지만
요즘같이 살기 팍팍한 세상에, 저 아이들이 무슨 죈가..... 싶기도 하더군요.
지금이사 좋겠지, 더 살아봐라. 뭐 이런 심정?
능력있는 사람들이 세금 열심히 내서 저런 사람들 뒷바라지해야지요. 인구도 줄어드는데.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방송사에 억하심정은 금물!

yureka01 2017-09-04 08:54   좋아요 1 | URL
먹을 복만 가지고서는 세상 살기 참 퍽퍽할텐데 말입니다....

아마 그 대책이란 걸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서부터
출산율 감소로 들어나는 부분은 아닐까 싶습니다..

네..정말 살기 퍽퍽하다는 말씀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2017-09-04 10:58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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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11:21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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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3:45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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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7:55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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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5:28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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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3:26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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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6:32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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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3:31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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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16:30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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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기의 기술 - 손질부터 굽기까지 재료별 숯불구이의 비밀
오쿠다 도루 지음, 용동희 옮김 / 그린쿡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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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는 자주 음식을 만들었다. 물론 요리급은 아니었다. 와이프가 다니는 직장의 특성상 오후에 출근하여 심야 퇴근이다 보니, 늦게 마치고 오는 와이프의 배는 항상 굶주림 상태이다. 조금이라도 밤늦게 먹는 것이 건강에 썩 도움 안되는 줄도 알지만 허기를 면하기가 좀 어려워서 집에서 뭐라도 만들어서 대령? 해야 할 의무가 집에 있는 자의 역할이었다. 오늘은 무얼 해서 만들어 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가급적이면 늦은 밤에 먹는 음식을 줄이려고 하는데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직업이 먹는 것도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왕 먹을 것도 잘 먹긴 먹되 부담스럽지 않는 음식을 찾게 된다. 뭐 가끔은 음식이 요리화될 때 와이프는 요리의 테스터가 되기도 하지만 이때까지는 대부분 만들어 주면 거절하지 않고 다 먹었다. 그래서 급조된 잡다한 요리의 상식으로  급조된 먹거리는 일종의 작은 기쁨이었다. 만든 사람이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먹는 사람의 반응이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언어를 만나게 되는 것. 맛에 대한 평가와 눈치. 맛이 성공이면 기뻤고 맛없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되새김질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간혹 식당에 꾸우러 가기만 하면 꿉기의 담당은 전적으로 내가 하는 편이다.

 

 인류가 진화되기 전부터 무엇을 먹을 것이고 어떻게 먹을 것인지는 활동하는 모든 생명의 숙명이었다. 아마 이 법칙은 지구상에 인간이 있는 이상, 변하지 않는 룰이고 이 룰에서 벗어나는 순간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 먹는 것의 비루함이다. 먹기에 하는 모든 활동과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지 않을 방법을 연구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이 먹기의 룰을 따랐으며 이 룰에 의해서 어떻게 하면 이왕 먹는 바대로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했다.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나서 화식을 함으로써 건강은 획기적으로 진보를 거듭했을 것이다. 날 것으로 먹기보다는 익히거나 구워 먹음으로써 먹거리를 부드럽게 해서 소화를 촉진시키고 맛의 풍미를 배가시키는데 잔머리를 굴려 왔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먹기에 노예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굽기라는 화식의 기본에서 시작한다. 단순히 원재료에서 꿉는 것으로 식재료에 불과 접촉함으로써 화학적 변화의 작용이 어떻게 분자구조를 바꾸고 맛으로 변모하는지에 대한 화공적 분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순히 굽는 것의 미학을 설명한다. 굽기 그래, 구워야만이 나오는 맛의 변화는 인간의 발견은 획기적인 혁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류 최초에 불을 발견하고 이 불로써 먹는 것을 익히거나 구웠을 때의 맛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기본 중에 하나였다. 그런 말도 있잖는가. 구워야 제맛이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굽기는 식당의 불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이 되고 보니 고깃집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고기를 굽든 생선을 굽던 구이에 대한 냄새와 향기는 요리의 시작이자 끝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굽기에 있어서 특별한 점은 혼자서 구워 먹으면 맛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맛도 맛이지만 상당히 번거롭다는 이유도 있다. 여럿이서 도란 도란 모여 불판을 중심으로 앉아 굽는 재료의 느낌과 혼자서 불판에 굽다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를 연출하게 된다. 모르겠다 우선 관념부터가 혼자 꿉는 모양새가 뭔가 하나 빠진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또 이상한 일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더라도 혼자 꿉는 것은 좀처럼 잘하지 않는 것과 같이 역시 최초의 인류가 고기를 잡고 장작에 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서 굽고 나눠 먹었던 그 습성이 여전히 유효한 습성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하게 되는 이유이다. 어쩌면 구워 먹는 것은 함께 나눠 먹는 공통 체적인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대부분의 밥을 혼자 먹는 편이다. 딸아이는 고삼이라 늦지 와이프 퇴근도 늦으니 늘 저녁밥은 혼자 때운다. 혼자니 조절도 어렵고 안 먹자니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안 먹을 수도 없다. 역시 밥은 혼자보다 누구라도 같이 먹을 때 먹는 즐거움은 생길 텐데 혼자 먹기의 고역은 이제 혼자 어느 식당에서 불판에 고기를 굽기에도 싫다. 아마 식당 장사하는 사장님도 혼자 고기 구우러 오는 손님은 그리 반갑지도 않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한적한 시골에서 마당에 불을 피워 놓고 구워 먹는 맛은 흡사 야생의 맛과 같이 유독 더 풍미를 자극하는 느낌은 홀로가 아닌 것에 대한 의식과 닮았던 것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가 일본 요리사인 관계로 일본 요리의 생선 굽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제시된 사진으로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굽기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데, 언젠가 나도 시골로 내려가서 마당에 정교하게 세팅된 굽기 스킬을 맛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충동질을 해대게 만드는 책이었다. 굽는 것이 단순히 굽기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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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28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세상에서 가장 솜씨있는 요리사가 만든 요리도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요리솜씨가 좋고 식재료가 좋아도 함께 하는 식사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yureka01 2017-08-28 13:47   좋아요 2 | URL
그럼요.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 모여서 구워야 제맛이죠..
식당에서 혼자서 고기 구우면 참 모양새 빠진다는 느낌이랄까요.

2017-08-28 15:10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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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15:22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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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28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모일 때 항상 고기를 굽는 담당을 맡는 친구가 한 명씩 꼭 있어요. 고깃집 알바를 한 경험이 있어서 고기를 잘 익는 방법을 잘 알아요. 그 친구들은 혼자서도 고기를 잘 구울 거예요. 그런데 고기 먹고 난 후 혼자서 뒷정리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요. ^^

yureka01 2017-08-28 22:36   좋아요 0 | URL
고기집 알바하면 고기 굽기의 기술이 프로급이죠..ㅎㅎㅎㅎ

네 혼자서는 번거로워서요..
아마 대부분 혼자 먹는 밥은 간단함이 생명입니다..

2017-08-28 17:09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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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8-28 22:35   좋아요 0 | URL
앗..쑥님 소주 느낌 아시는 군요..ㅎㅎㅎㅎ네 저도 바로 소주는 사랑입니다.ㅎㅎㅎ

마르케스 찾기 2017-08-29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고백이겠지만ㅋ
저도 삶는 것보다 굽는 게ㅋㅋ
굽는 건.. 왠지 모르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ㅋㅋㅋ
그래서 더욱 더.. 그 장작속에서 타닥타닥하는 익어가는 소리가ㅋㅋ

굽는 그 느낌을 사진으로도 보고 싶은 건 욕심인가요??

타닥타닥,,, 굽는 건 움직이는 불을 보는 시각, 소리,, 익어가는 냄새...
와~~ 오감이 자극
그런 냄새나는 사진이요ㅋㅋㅋㅋ

yureka01 2017-08-29 00:35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한 상황을 만나는게 쉽지 않죠..
시골에서 두런 두런 모여 앉아 장작불 피워 놓고....
석쇠에 쩍 얻져서 꿉는 맛...

그런 사진....ㅎㅎㅎㅎ

雨香 2017-08-29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서점에 갔는데,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습니다. <굽기의기술> 음식 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한 책도 적지않은데, 이 책은 좀 과하지 않을까 싶어서 내려놓긴 했습니다만, 굽기의 달인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혼밥도 즐겨하긴 합니다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마음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박찬일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고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yureka01 2017-08-29 09:00   좋아요 1 | URL
보셧으면 대충 아실 겁니다..굽기의 스킬만 잔득나오죠..
이렇게 저렇게 구워라..등등..

전 굽기 기술보다 사진 볼려고 구입했습니다.^^.

네 아무리 맛나는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맛 안나죠..

AgalmA 2017-09-02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인 고깃집 문화도 슬슬 자리 잡아줘야 되지 않나 합니다. 현실적으로 1인 생활자가 더 많은 환경이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집에서 고기 구워 먹는 거 분위기 안 나요ㅎ;

yureka01 2017-09-04 08:52   좋아요 0 | URL
아마 앞으로 점점 더 많아 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야생의 유전자가 아직 남아 있으니 밖에서 먹는 고기맛이 더 좋은 건가 라는 검증되지 않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겠다 싶습니다.
 

사진은 관찰을 전제로 한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본 것을 내 갈망에

접목시킬 수 있는 의미일까.


그런데, 지금 관찰할 수가 없다.

관찰이 안되면 관조도 안된다.

관찰이 안되면 고찰 불가능하면

인생이 여전히 뻔할 것이다.


어쩌면 말이다.

우리는 다 눈뜬 장님처럼

여전히 깨우침은 멀었고

이다음 나중에,

또 왜 그렇게 살았나라고

처철한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해봐도,

지나버린 삶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우리네 삶이

시간 앞에서는 모두 불쌍한 존재들로

가버려야 할 것만 같다.


난 아직도 모른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게다가 왜 눈을 감고 사는 건지를....

 

요즘 사진을 전혀 못찍고 있다.

지금의 삶을 바꾸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사는게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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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2:40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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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4:47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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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8-25 0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부터 지루하면 안 되는데예.....
나이들면 점점 지루해지는데예...... ㅠ.ㅠ

저도 카메라 안 잡은지 한참 됩니더.
가끔 나갔다가도 셔터 한번 못 눌러보고 돌아옵니더.
타성에 젖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 시선에 왈칵 짜증도 나구요

yureka01 2017-08-25 10:41   좋아요 1 | URL
아고 그래서 찾아야 하거든요..
찾을려면 일단 관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ㅎㅎㅎㅎ

요즘 특히나 관찰이 안되서 카메라 들고 나가도 역시 마찬가지로
한장도 못찍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진 그래서 어렵나 봐요..아놔...

五車書 2017-08-26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마지막 문장이 짧지만, 함축된 의미가 엄청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yureka01 2017-08-26 10:01   좋아요 2 | URL
아마도요.ㅎㅎ
관찰을 못하니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혹시나 관찰주의자가 관찰력이 딸리면, 겪게 되는 지루함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