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 눈빛포토에세이 2
권철 글.사진, 고성미 옮김 / 눈빛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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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서러울 때가 특히 생긴 것으로 차별받을 때이다. 누가 차별받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닐 때,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들에 대해 차별적일 때, 존재의 슬픔을 느낀다. 차별로 슬픔을 준 사람들이 우월감으로 행복한 것도 아닐 텐데 차별로 분노를 표출하며 마치 벌레를 죽이듯 세상의 모든 벌레가 무용한 존재인 것처럼 사람을 학대할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혹시나 무슨 병으로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전염을 시키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는 격리를 당하고 분리를 시키고 배제를 시켜 버린다. 차별로 인해 분리의 장벽을 치고 생긴 것이 마치 죄가 된양 격리당했을 때이다. 차별은 무지해서이거나, 지독한 아집과 혹은 편견에 의해서거나 오류의 판단에 의해서거나 또는 의도적인 정치성으로 인해서 등등 그 원인은 실로 다양하다. 혹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피해를 입은 것과 같은 피해 망상 때문에 멀리하려 들 때도 있다.

 

시장에 가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열대 과일인 바나나는 단일 품종이라고 한다. 즉 사람으로 치면 한 인종 밖에 없다는 것과 같이 차이가 없다. 가장 평등한 것은 바나나가 아닐까 한다. 한가지 품종의 바나나를 보고 차별은 없다. 빨간색 바나나를 본 적이 없다. 때로는 지역에 따라, 토양의 성격에 따라 생김새는 다 비슷해도 맛은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도 맛의 차이에서 바나나의 특유의 독특함은 거의 일정하다. 달리 말해서 바나나는 단일 품종으로 유전적 대가 끊기면 바나나는 멸종할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바나나를 맛볼 수가 없다. 왜 바나나에 비유하는가 하면 사람도 단일 품종의 인간만 존재한다면, 차이가 없다면 모든 것이 공평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차이가 없으니 인종 간의 차별을 없다고 바나나처럼 모든 것이 단일한 맛을 낸다고 보장도 없다. 특히 인종 간의 차별로 인한 인간의 차별성에 대한 편견은 그래서 아주 지독하다. 생긴 것으로부터, 피부색으로부터 나와 다름 이질성에 대해 가혹한 역사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더더구나 사람의 생김새로 인한 차이는 이질감에서부터 시작되고 나와 다름에 대한 이질적인 거부감은 배척으로 나온다. 인종적, 성별적인 차이를 이내 제도적 권력과 결부되면서 더욱 가혹하고 지독하고 악랄했다. 빨간색의 바나나를 상상한 적이 있는가? 어쩌면 이 책의 사진에서 나오는 나균에 감염되어 평생을 나환자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나환자를 은유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린 얼마나 생김새의 편견이 지독한 것인지 우리 스스로는 모른다. 설사 안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만큼 낯선 모습의 생김새에 때로는 혐오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질병을 치른 후유증에 시달린 아픈 사람이었음을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알려 주었다.

 

권철 작가는 한센병이라 불리는 나병환자에 대해 사진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나병환자들이 사회에서 잘 드러 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숨기려 하며, 또한 사회 체재가 나병환자에게 철저한 격리를 목적으로 했다. 나병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인류와 함께 상존했던 질병이었으나, 그 특유의 후유증으로 인체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감염의 두려움으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감염되지 않거나 완치되는 병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혐오와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분리시키려 했다. 집단 수용시설로 강제 이주시키고 개인적 사생활을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병원균에 감염된 것만으로도 인생은 그냥 사라지는 것처럼 학대를 당했던 역사이다. 이런 편견을 사진작가는 다큐와 르포의 형식으로 한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에게 집중하며 그와 교류하면서 그 삶을 추적했다. 그야말로 빨간색 바나나 같은 이질 당한 편견에서 하나의 인간적 휴머니즘을 한센병 환자에게서 발견하는 것. 그러함으로써 나병환자들이 질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모양만 다른, 색이 다른, 엄연한 인격체임은 사진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정상적인 직업도 구할 수 없고, 격리당한 삶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었던 한센병 사람들의 고통은 사진의 전체에서 흑백으로 암울하게 처리됨으로써 우울로 표현될 수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편견과 차별의 질곡에서 살았던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삶의 수긍의 적응하며, 그런 사진을 통해서 한센인들이 사회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자신의 삶을 시로 노래하는 표현이 어쩌면 역설적 긍정을 사진으로도 표현되었던 거다.

 

사진 주인공이었던 텟짱의 삶을 통해서 평생토록 존재의 저주처럼 살았음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은 그의 삶을 노래한 시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보다는 오히려 한센병으로 겪은 삶을 시적인 미학으로 승화시켜 냈던 한 사람의 일대기 같은 사진은 존재론적인 그늘과 그 빛의 교차점을 은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사자가 아니면 도저히 겪을 수 없고, 혹여 사진작가처럼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 삶에서 한센인에게 손을 내밀며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진작가가 새삼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삶이란 그런 거다. 내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들에 대해서 비관과 긍정의 흔들림은 그의 사진에서 투영된다.

 

사진은 빛을 통해 숨어 있는 것을 드러 내는 역할을 한다. 억눌렸던 아픔과 그늘을 고스란히 빛 속으로 끄집어 내어, 숨기고 싶은 것들 감추고 싶은 것들에 저항하게 한다. 차이를 부각시키고 차별이 결코 되지 않을 양지를 지향하면서 알게 모르게 작용한 편견을 깨는 것. 그들도 아픈 사람이었음을 들어내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인류애의 자기 치유력을 사진은 증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말 좋은 사진과 책이었음을 감사히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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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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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출판사에서 법정 스님의 책이 출간되었다. 의도야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며 유언으로 남겼다. 말빚이 너무 크다고 하셨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책이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음에 대한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하고 떠났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법정 스님의 기록문이나 예전에 남긴 글로 새로이 엮어서 책으로 냈다. 이는 유언에 의미하는 뜻에 반하고, 무시하며 따르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아무리 하려 해도 참아야 하는 게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태도가 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따르는 척만 할 뿐, 실제로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무소유를 설파하며 떠난 스님의 유언이 남은 자들의 어김에 대해 소유의 빚으로 남은 거다. 하지 말라고 부탁하면 하지 않는 게, 인간적인 도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은 절판하라고 했으나 이미 나온 자신의 책을 불 질러서 없애란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출간된 책만으로도 얼마든지 떠난 고인의 의사를 되새기고 삶의 방향성으로 삼는 가르침을 받기에 충분하다. 떠난 고인이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추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 가르침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미 차고도 넘친다. 불교의 종교관은 욕망의 헤탈을 수행으로 삼는다는 것이지만 의미만 가지고는 어렵다. 스님이 사신 것처럼 평생을 절제하고 욕망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를 그의 말을 통해서 안다고는 하나 실제론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스님은 말의 빚을 졌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다못해 우리들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찌들려 살면서 말의 빚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더해서 무수한 존재의 빚을 지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알게 모르게 공해 물질을 얼마나 뿌렸을까,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 시켰을 것이다.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에너지와 가공하고 만들기 위해 부산적으로 나오는 공해물질은 또 얼마나 될까 계산하기도 어렵다. 살기 위해서 자연의 공해라는 물질을 뿜뿜하는 가해자 거나 혹은 공범자가 되는 셈이다. 오늘날 많은 건축물이나 구조물에는 일일이 따져볼 수도 없이, 발생하는 에너지의 소비가 결국은 전 지구적인 자연환경에 일말의 안전에 도움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시대로 돌아가서 돌도끼를 들고, 동굴에서 기거하면서 풀잎으로 가린 옷을 입고 살지도 못한다. 절대 원시로 돌아갈 의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알게 모르게 뿜뿜하고 살아야 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도, 확답도 못한다. 우선 당장의 공해는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먼 훗날에 내가 알지 못하는 현상으로 벌어질 것인지 그 각자가 지는 책임은 1/n이 될 것이고 피해는 가난의 순서로 돌아간다.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존재론적인 빚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산 자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그 유언의 뜻을 무시해가며 뜻을 어기고 책을 낸다. 스님요. 당신이 떠난 후의 당신이 주장한 말씀은 더 이상 당신 자신의 소유가 아님이었다는 것을 스님을 몰랐을 것이다. 어찌할 방법을 잃어버렸으므로, 내가 떠난 후 당신 자신이 남긴 모든 것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의 소유였음을 법정 스님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모든 것을 더 이상 내 것도 아니다. 스님의 남은 말씀이 스님의 소유가 아닌, 살아남아 유지를 받들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소유가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무소유란 내가 떠난 이후의 소유가 무의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은 사람은 남겨진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이상 가타부타 할 것도 없다. 내가 떠나고 남은 말들이 결국은 스님의 빚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빛으로 환유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더이상 남기지 말고 절판하라고 해도, 절판하지 않는다 해도 법정 스님은 아무런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절판의 유언은 그저 유언만으로 남았을 뿐이다. 지키든 말든 남은 자들의 업,,,으로 남았다.

 

결국 남은 사람들은 유언의 유지를 받을까 말까라는 고민이 주어졌다. 남겨진 책의 말씀이 어떻게 사용되든 이용을 하든,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이 행할 자신들에게 남겨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의 말은 여전히 말의 빚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반짝이고 계속 돌고 돌아다닐 것이다. 빚지고 살지 말고 빛지고 살자. 이제 스님의 말은 개인재가 아니라 공공재가 되었다. 흔히 하루에 몇 번이나 호흡을 하며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뱉었을까. 공기도 물도 공공적 성격과 같이 스님의 그 뜻도 공공의 공기처럼 떠돌아 누군가의 탁한 가슴을 청량한 삶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재가 되었던 것을 아닐까 한다.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두루두루 돌려가며 삶아 가더라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 말의 빛이 쏟아나는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자본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약탈적 자본주의 시대, 야수가 들끓는 야만의 자본 시대에서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한 것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연봉이 몇 천에서 억대를 넘본다고 해도, 물려받은 게 많은 금수저가 아니라면, 서울에서 역세권을 품은 한강변에 아파트 하나 사기 어렵다. 평생을 모아도 내 편히 쉴 곳 하나 마련하기가 불가능한 시대가 된 거다. 욕망의 투기는 아파트값을 끝없이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아무리 국가 정부가 정책적으로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수단을 사용해도 그 압력을 이겨 내기가 버겁다. 그렇다면 부모의 찬스가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대기업 연봉으로 날뛰는 부동산 아파트를 번듯하게 하나 대출도 없이 마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기에 절망이 팽배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조적이고 자포적 사회에서 소위 사토리 세대처럼 득도한 것과 같은 체념의 상황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수십 채 갭투자로 싹쓸이 해서 점점 차액을 이익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극히 소수들이지만 다수에게 결정적인 포기의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어느 정부라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우려 노력하는 것만은 맞겠지만 서민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야 사회나 국가가 돌아가는 것쯤은 너무나 잘안다. 극히 일부의 소수자들만의 독식하는 사회의 체재에서 부조리함의 팽배 자포자기로 연결될 것이 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정책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누구는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없어서 욕하고, 독식을 하지 못해서 욕한다. 욕하는 그 불만과 욕망의 집착은 욕할 뿐이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이 채울 수 없는 자본을 향한 저주를 붓고 자신을 욕망을 학대한다. 스스로 행복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스스로의 행복은 커녕 누가 준 행복도 못 알아차린다.

 

법정 스님이 그렇게 좋아했던 책, 데이비드 월든이 쓴 책은 한결같이 소박한 오두막에서 자연과 벗하며 산 삶을 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인지를 몸소 보여줬다. 자본이란 물질의 껍데기를 두르고 산 욕망의 겉옷을 걸친 몸은 야위고 지쳐가고 온통 상처를 받는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어디 주식 시장의 시황판이 나오는 게시판을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채울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 불능에 따른 분노의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몇개만 봐도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말의 빚들이 많다. 그래서 그곳에서 스님의 자연 회귀를 운운했다간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식일 수밖에 없다.

 

잠이 들면 눈을 감는다. 빛이 차단해야 숙면에 들 수 있지만 사람들의 행복은 늘 눈을 감고 잠만 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행복할 줄은 몰라도 스스로 불행한 방법도 너무 쉽게 안다. 모든 것은 스스로에 달려 있으니까. 뭐 어쩌겠나? 그렇게 살다 저렇게 가고 나면 존재의 그림자도 사라지면 그만이다.

 

주말에 또 강가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보고 반짝이며 반사되는 빛(윤슬)이라도 보고 행복에 젖어 보자. 사는 게 이게 다 뭐라고. 지랄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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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18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님은 가셨어도 우리가 아직 떠나보내드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2009년 즈음에 돌아가신 네 분(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 노무현 대통령, 법정스님)의 빈자리를 지금도 느끼기에 그렇다 생각됩니다...

yureka01 2020-01-20 08:50   좋아요 1 | URL
그 뜻과 유지를 받아 새기는 것이 남은 자들의 업이겠지요..그럼요~
든자리 난자리..대비되더군요,

강옥 2020-01-20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대산 쯔데기골, 스님 거처에 가본적이 있지요. 물론 돌아가신 후에.
스님을 존경하던 신도 한분이 오래전에 그 오두막(?)을 빌려드린 거였는데 스님 사후에 문제가 생겼어요.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거처를 수소문하여 찾아들기 시작한 거죠.
오두막의 소유권자는 마침내 철조망을 두르고 말았습니다. 하마트면 소유권 분쟁으로 비화될 뻔했던-
세인들은 유명인들에게 관심이 많죠. 인증샷에 열광하고요. 당사자의 심정 따위는 관심도 없겠죠 ㅎ

yureka01 2020-01-20 08:51   좋아요 0 | URL
그 의미를 알아차리는 게 그렇게 어렵나 봐요..ㅎㅎㅎㅎ
유심을 유물론적으로 치환해버리는 마인드가 의외입니다.

2020-01-21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1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2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아침에 네이버 사진 불로그 게스트 창에 오래전 이웃분으로부터 안부 글이 달렸더군요. 오래전 이웃분이라 당연히 링크로 이웃 블로그에 찾아가 보니, 강원도 분이신데 개인 주택을 신축하다가 거의 사기를 당하다시피  했더군요. 건축자금은 자금대로 쓰고 집은 하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먹고 나른 업자에 이어 새로운 업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더군요. (아 씨바. 자동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나도 건축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종사했는데 아직도 저런 비양심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과거에는 심심찮게 그런 비양심이 많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도 그런 지경이라고 한다니 기가 찰 수 밖에요. 건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비양심적인 사람에게 일을 맺겨 사달이 날까. 이건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인간 사회라는 세계의 궁금증이자 사진으로도 늘 생각하던 화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를 흔히 의식주라고 합니다. 주택은 바로 "주(거)"에 해당하는 필수적인 필요 충족의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집이 없는 원시시대에도 하다못해 동굴을 찾아 들어갔어요. 항온을 해야 하는 인체 구조상 따뜻해야 할 곳과 잠을 자야 하는 무방비의 상태를 집이 막아 주는 역할은 인간에게 그래서 필수적인 요소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누구나 주택은 필요로 하고 당연히 움막이든 초가집이든 집에서 잠을 자고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아마 분명 오늘도 다들 어떤 구조의 집이든 간에 밖에 노숙을 하지 않는 이상, 다 집이란 거주 공간에서 먹고 자고 했을 것이 확실하거든요. 야생에서 노숙할 수야 없거든요. 물론 등산 가서 백팽킹이야 재미 삼아 할 수도 있겠죠. 이도 텐트라는 집도 가설하거든요. 한두 번이야 노숙으로 침낭 속에서 잠잔다 해도 이게 수십 년간은 불가능하거든요.

 

집을 구하는 방법에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아마 일생에서 가장 예산이 많이 드는 것 중에 하나일 겁니다. 공동주택(아파트나 다세대 등)를 사든가 아니면, 시골에 주택을 신축하든가 이랬던 저랬던 돈이 듭니다. 아니면 직접 신축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한다 해도 기술력이 필요로 하고 자재를 구해야 하고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든가 장비들 들여야 하는 모든 것이 자본과 뗄 수가 없거든요. 제일 비싼 물건을 구입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사전에 지식이 없이는 돈만 있다고 해서 함부로 덤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면 이미 다 지어 놓은 집을 편하게 구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가격이 더 비쌀 수 밖에요. 그래서 사전에 대강의 프로세스를 공부할 필요가 있거든요.

 

집을 짓는데 절차 즉 프로세스는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부지 물색 (위치 용도지역 지구 검토)

2 부지 매입 

3 설계(설계 계약 후 도면 설계) 

4 허가 또는 신고(허가를 받고 나서) 

5 시공사 선정 (시공계약)

6  착공신고 

7 시공 

8 준공

9 보존등기 

10 입주라는 대략적 순서입니다.

 

1. 그냥 아무 곳이나 토지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지을 수는 없거든요. 지역이나 지구에 정한 규모와 용도에 맞는 건축이라야 합니다. 이 넓은 땅에 아무 곳에나 집을 짓는다면 난개발이 되기 쉽고, 혹은 안전이나 방재, 및 사회 기간 시스템에 접근성 등 하고 공적인 서비스에 접근이 용이해야 사는데 불편이 없거든요. 심심 산골에 내 땅이라고 해도 그 지역의 용도와 지구에 맞지 않는다면 허가는 당연히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부지 선정에 대한 고민이 제일 큽니다. 이것도 알아보지 않고 시청이나 군청 건축과나 혹은 설계사무소 등에 의뢰하지 않고 단순한 공부상 근거로 해서 부지를 매입하게 되면 나중에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때는 부지는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거든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없는 땅을 매입하고 나면 대물릴 수가 없거든요. 그럼 돈만, 날리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지는 용도에 맞는다고 또 전부도 아닙니다.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하고 기반 시설의 접근성을 따지고 토지의 정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정형으로 토지 활용에 제약은 피해야 하니까요. 또한,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 통신 등의 시설 접근성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면 이게 전부 돈으로 커버해야 하니까 거리 때문에 자본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조건에 맞게 부지가 선정되어야 하고 매입을 해야 합니다. 저도 개인 갤러리를 지으려 많은 부지를 답사하고 공부를 발급하고 확인하는 과정 중에 있기도 했습니다만 현재까지 딱 맞는 곳을 선정도 못했고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부지 선정에 대해서 이런저런 정보과 지식이 필요로 하고 내가 직접 모든 것들 다 알 수 없는 것도 있으니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자문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설계사무소에 가도면을 만들어 보는 경우가 좋거든요. 비용이 들더라도 전체 건축 진행에서는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비용을 아까워해서 자문도 구하지 않고 덥석 토지 매매계약을 하고 등기 치고 나면 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문 구하는 비용을 왜 아깝니까. 전문가는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거든요. 그나마 좋은 방법은 해당 지역의 시청이나 군청 주변에는 설계사무소가 반드시 한두 개가 있습니다.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 똑똑하지도 공부도 안 해놓고 계약부터 저지르는 오류가 첫 번째 경우일 것입니다

 

2. 적정한 부지를 선정하고 등기 이전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설계를 해야 합니다. 건축에 있어서 설계만큼 중요한 작업이 없어요. 시공도 물론 하자 없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은 모든 것이 첫 출발이 설계부터 잘 돼야 합니다. 충분한 기간 동안 건축주가 건축의 의도와 방향, 그리고 디테일하게 설계자와 협의가 되어야 하고 세밀한 설계일수록 하자가 줄어듭니다. 기본 도면은 물론 가급적 상세 도면까지 완성된다면 집은 이미 반은 지어진거나 다름없습니다. 흔히 건축주가 설계를 의뢰하면서 설계비 평당 얼마?라는 따위로 하려는 건축주는 사기당할 수 있는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건축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의도와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하려면 그만큼 도면 작업이 많아야 합니다. 꼼꼼한 설계가 앞으로 시공 중, 시공 후의 하자에 대해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계가 세밀하려면 설계기간도 길게 됩니다. 평당 몇만 원식으로 돈 아끼겠다고 설계를 대충 했다간 나중에 몇 배로 뒷감당하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봤습니다. 왜 돈을 그런데 아끼려 드는 건지. 가급적 설계시 스펙을 제대로 정하고 해야 차후 분쟁을 줄이는 길이기도 합니다. 대충 기재된 설계도는 시공자로 하여금 임의대로 시공해버리는 화를 자초하게 되거든요. 설계가 정확할수록 시공도 깔끔하고 하자도 줄어들어 분쟁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냉방기 용량 설정할 때 몇 킬로 용량에 몇 대 이런 식의 기재는 옳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회사 어떤 제품의 용량을 가진 냉방기라고 정하면 딱 그걸로 지정하는 게 어려 모로 다툼이 없어지거든요. 벽지는 무슨 회사 어떤 디자인의 품명 넘버까지 해두는 치밀한 것입니다. 그러니 설계도서에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재하려면 가격조사도 되어야 하고 시공상의 문제가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게 다 설계에 반영할 문제입니다. 집을 신축하는데 설계비 평당 얼마. 이딴 식은 제발 지양하시길. 이렇게 모든 설계가 마무리되면 허가를 신청하고 혹은 신고를 하고 허가나 신고에 맞게 착공을 하게 됩니다

 

3. 착공은 요즘에 있어서는 60평(200M2) 이상의 모든 건물은 시공사(건설회사)가 반드시 있어야 가능합니다.(최근에 강화되었어요.) 오래전 변경되기 전에는 200평까지 개인이 신축할 수 있다 보니 무등록(무허가) 업자에게 공사비를 싸다는 이유로 시공을 맺깁니다. 특히 주택을 신축함에 있어서 도면 검토도 없이 무조건 주택은 평당 얼마?라는 식으로는 절대 금해야 합니다. 디테일하게 설계된 도면으로 물량을 산출하고 물량에 단가를 넣고 종합적인 원가 계산서를 더하여 내역서가 나와야 합니다. 이건 무등록 업자는 어떤 산출 근거도 없이 공사 1식 얼마라는 식으로 내역서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면 언젠가 공사비 때문에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너무 많습니다. 시공업자는 추가로 투입되었고 물량이 증가되었다며 돈을 추가로 더 달라는 식이 됩니다. 건축주는 기절할 노릇이죠. 예산 범위에 맞게 설계했다고 생각했는데 추가 비용이 계속 발생하면 진짜 난감하게 되거든요. 설계를 정확히 스펙도 정확히 넣으면 견적 또한 오차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충 그린 도면 가지고 평당 얼마라는 식의 견적은 그야말로 쓰레기이자 다툼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나중에 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소송까지 번지게 됩니다. 도면이 상세할수록 견적도 비례하게 디테일하게 산출됩니다. 평당 얼마라는 식의 견적서는 절대 금물입니다.

 

또한 시공사 선정 또 마찬가지입니다. 알음알음 거처 거처 안다는 사람도 돈 앞에서는 태도가 180도 바뀌는 게 세상 살이 입니다. 하물며 그리 많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 거처 거처 소개받은 업자가 제대로 시공 경력이 있는지, 평판은 어떤지 왜 알아보지 않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시공업자가 다른 건물을 지었다면 그런 건물의 건축주에게 어떤 시공사인지 물어볼 수도 있는 좋은 참고입니다. 일을 개판으로 쳐놓은 놈인지 아니면 제대로 하는 놈인지 왜 알아 보지 않는지요. 많은 돈을 들여 집을 짓는데 있어서 시공사가 어떤지 모르면 정말 사기당하는 건 순간이거든요.

 

공식적으로 설계사무소에서 의뢰하면 시공사도 알아봐 달라 해서 견적도 설계사무소와 협의하는 절차를 생략하면 마찬가지로 당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견적을 서너 군데 받아보면 됩니다. 도면이 정확하면 대강의 견적이 엇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중에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시공이 꼼꼼한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하면 됩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시공 업체라면 계약에 따른 계약 이행을 위해 담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시공을 정상적으로 일정한 기간 내에 완료하지 못한 건축주의 손해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건축주는 시공을 위한 자금을 서로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믿음이란 것은 돈으로 해결되면 가장 좋은 방법 이기든요. 물론 이런 담보를 위해 건설사는 대부분 건설공제조합이라는 조합에 가입하고 조합이 계약에 대해 보증을 하게 됩니다. 무등록업자는 이런 조합에 가입할 수 없으니 보증서를 발급받지 못하겠지요. 또는 각 지역마다 건설 단체가 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건설협회입니다. 협회에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소개하는 업체가 우수한 업체를 소개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설계사무소나 건설협회 등 이런 전문 기관에 의뢰하면 과정을 몇단계 거칠지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공사 선정을 왜 소문으로 소개받아서 하는지, 게다가 몇몇 군데 견적은 받고 무조건 싼 가격의 업자에게 일을 맺기는 경우엔 왜 가격이 싼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무턱대로 견적서에 가격이 싸다고 덥석 물었다간  공사비 받고 일도 재대로 하지 않고 나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근무하는 회사도 설계사무소에서 의뢰받은 건축주가 있었습니다. 시공에 문제 없이 원활한 시공을 한 경력이 건축물 공사 수주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거든요.

 

4. 착공은 시공사로 선정된 업체가 건축주에게 제출합니다. 일반적으로 착공신고는 건축주가 하여야 하나 굉장히 전문적이라서 설계사무소는 건축주에게 그 업무를 위임받아서 대행을 합니다. 따라서 위임받은 설계사무소가 제출받은 신고서를 허가(신고) 기관에 제출하여 신고가 이루어집니다. 제대로 된 업체라면 도면에 정한 대로 시공을 하게 됩니다. 도면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물량 오류가 없고 스펙이 정확하면 시공사도 시공이 편리합니다. 현장 대리인(시공사 소장)이 임의대로 시공을 최대한 줄이는 것. 이게 도면의 디테일에서 나옵니다. 웬만한 건축기사는 도면대로 하려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마음대로 시공했다간 현장 대리인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공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계약 내역 금액과 차이가 발생할 때 벌어지는 다툼은 정말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심지어 오래전에는 건축 자격도 없는 자가 시공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돼야 하지 않을까요. 건축기사도 굉장히 전문자격이라서 고스톱 따듯이 취득한 것이 아니거든요. 대학에서 일정 수준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국토부에서 자격 검증을 거쳐서 취득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시공업무에 종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모든 것이 다 비용이 많이 든다라고 보고 무등록 업자나 혹은 무등록 업체에서 전문자격도 없는 자의 시공은 품질 저하 혹은 하자 발생 등 많은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현장 소장의 급여 또한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되어야 안정적으로 소장이 시공업무에 종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따지지 않고 무등록 업체에 일을 주게 되면 어떤 사단이 나는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하게 되면 시공비 뿐만 아니라 이외의 다수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합니다. 건축주의 명의로 전기 인입, 상하수도 인입, 통신 인입 등 다양한 비용이 들어야 하거든요. 이런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니까요. 통상 간접비라고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미리 예산을 가지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딱 건축비 이것만으로는 절대 집은 지어질 수가 없어요. 집만 지어놓고 각종 부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거든요. 가장 많이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시공상의 하자에 공사비 추가 부분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건축업자가 아닌 이상, 일생일대에 집을 자주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번 혹은 두 번일 텐데, 사전에 건축계획이 있다면 이 또한 기본적으로 공부가 조금은 되어야 합니다. 집은 정보나 지식, 기술, 자본의 집합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리 사전에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알고 하나하나 챙겨 나가야 차후에 골몰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비용명세서도 가급적 디테일하게 뽑아야 합니다. 차라리 임차를 하든가 아니면 지은 놓은 집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직도 시공 능력이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등록 업자가 시공하면 소송으로 번지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당장에 가격이 싸다고 덥썩 일을 맺겼다가 치르는 수업료는 과도하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분쟁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거든요. 한번 삐긋하면 지루한 다툼을 벌여야 하고 마땅은 피해를 보상받기까지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능력 있는 설계자를 만나야 하고 꼼꼼한 실력 있는 도면으로 집을 완성 시켰을 때라야 하거든요. 흔히 시골에서 집을 지으면 머리 왕창 빠진다고들 합니다. 처음이라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모르면 우선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순리라서요. 어중이떠중이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자격을 구비한 설계자와 시공자를 따지지 않는 실수는 두고두고 고통이 되거든요.

 

시공업체는 등록만으로 안됩니다. 적정한 자본력과 기술력은 매년 검증받습니다. 조합에 가입해서 보증을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자본력에 포함됩니다. 지난해 연말, 제가 근무하는 회사는 허가 관청에서 적정한 업체인지 실태조사도 자주 합니다. 재무 상황을 검증받고 건설산업기본법상의 자본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기술자도 기술능력이 등록되었는지 보고도 해야 합니다. 시공사의 시공 능력을 자본력과 기술력 등 종합적으로 적격 여부를 가리는 제도가 법률상에 나와 있거든요. 그런 회사라야 만이 공사비 떼 처먹고 쉽게 도망을 못 가거든요. 그런 자격은 건설 관련 단체와 국가기관(국토부 등)에서 모두 공표되어 있고 얼마든지 검색하면 나와 있기도 합니다. 기초 정보는 이미 인터넷으로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업자를 선정하는 바탕이 되거든요. 건축비 싸게 들이겠다고 등록도 하지 않는 업체에게 의뢰했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법률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음에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편인데 하물며 이런 최소한의 정보조차 무시했다간 분쟁이 나면 차후의 다툼은 너무나 지난한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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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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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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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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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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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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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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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4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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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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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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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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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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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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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20-01-05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골에 집 짓는 거 잘 생각하셔야 할 거예요.
위에 열거한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 걸 생각하면 시골로 가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아요.
세컨하우스 개념으로 살다가 버리고 나오는 거라면 몰라도 -
제가 너무 현실적인가요?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 들어선 전원주택들.... 깊이 들어가보면 처치곤란인 집들 많아요 ㅠ.ㅠ

yureka01 2020-01-06 09:02   좋아요 1 | URL
그럼요..너무 잘 압니다..
시골에 빈집이 나날이 늘어가죠.
빈집으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도 않죠.
(그런데 땅은 나오지 않아서요.)
주택을 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가설로 작업실 하나 만들까 했거든요...
건축비는 건설회사 다니니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아직 땅을 못구했습니다.마땅한 조건의 땅이 거의 없어서요..

2020-01-06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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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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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0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저도 집 시공과 관련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유레카님에게 조언을 구해야겠어요. ^^

yureka01 2020-01-07 08:55   좋아요 1 | URL
현장에 있지 않아서 시공기술은 잘 모르지만
행정적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조언 가능합니다,^^..

페크(pek0501) 2020-01-12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건필을 기원합니다.

yureka01 2020-01-13 21: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새해에도 형통하는 해 되시길^^..

2020-01-14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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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19: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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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1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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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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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8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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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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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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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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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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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20-01-20 16:03   좋아요 1 | URL
네.언제든지..꼭 마음에 드는 책 나오면 말씀하세요..^^..
 



1. 일상의 사진에서 추출된 언어들이 곧 시가 되었다. 그래서 시가 사진을 다시 수식한다. 언어는 언어로써 제각각의 역할이 있어도 사진에서 추출된 시각적 이미지가 시로 도출될 때, 사진은 더욱 진득해지고 끈끈해지고 접착이 강력한 점액으로 마음에 척척 달라붙는다. 붙음의 감동이란 시와 사진의 앙상블에서 만들어지는 거 같다.



2. 모처럼 주말 아침 일주일 만에 처음 아침밥을 먹으면서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밥알 하나하나를 멍하니 씹고 있으면서, 거실 창밖에서 안으로 침투하는 빛을 본다. 창밖에 겨울의 나목이 아직 메마른 가지에 붙은 바싹 바른 잎사귀를 본다. 거실 안에 서 있는 커다란 화분에 나무 한 그루. 밖의 마른 잎과 안의 푸른 나뭇잎의 차이는 온도의 차이. 바로 이 세계에서 밖의 경계 너머의 세계와 대비되는 현실을 느낀다. 시와 사진이 만들어내는 창에 세워진 유리창을 투영되는 투명한 세계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랄까 싶었다.



3. 사진시집의 제목이 변곡점이라 마음에 들었다. 현실 세계의 시와 사진이었지만 현실을 넘어의 경계 밖으로 진출된 세계는 항상 변곡점 같은 점과 선의 이상 세계를 염원하는 것처럼, 아침에 시집 안의 글이 점액질처럼 달라붙는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집이 화두같이 던진다. 어떤 변곡점의 그 타이밍은 매 순간 결정적이었다던 앙리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결정적인 변곡점은 아니었을까라는 믿도 끝도 없는 생각을 밥을 돌돌 말아 삼키는듯하다.



4. 사진도 마찬가지지만, 책도 일종의 전달이란 수단이다. 그래 책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수단이라는 것. 책이란 도구. 책의 내용을 위해 우리 삶의 전부를 소모시킬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사진 또한 수단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버려질 수 있을까라는 비움을 위한 목적. 그래서 때로는 유용하기도 하고 무용스러울 때도 있다. 삶이란 어느 단편의 조각을 시간의 구성으로 퍼즐을 조립되어 간다. 그 단편의 각각의 시간 속의 일부가 책과 마주할 따름이다. 오늘도 운동하면서 한편을 한 페이지를 읽고 또 역기를 한 세트를 들었다 놨다의 반복이다. 그래 수단을 통한 목적은 존재의 이유이다. 가끔 벽돌같이 두꺼운 책을 만날 때에 벽돌 한 장 한 장 조적하듯이 이유의 존재라는 집을 짓고 이 집에서 영혼의 안식을 만나려는 수단. 책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5.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작년 이때쯤 어떤 마음으로 무엇으로 또 한 해는 365일의 시간이란 강을 건너왔던가. 그리고 또 앞에 놓인 시간의 강을 건너갈 것인가. 그동안 꾸준히 물에 비친 반영의 형상을 추상화처럼 찍었다. 우린 이렇게 삶에 대해 시간에 어떻게 투사되어 반영하여 무엇으로 비칠 것인가. 과거는 흡사 내가 흐려진 형상의 물상처럼 찍힌 은유나 같다. 그럼으로써 다시 앞에 놓인 강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시간의 USE PLANNING를 할 수 있을까.



6.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듯이, 매시간이 우리 삶의 야금야금 변화하는 변곡점이다. 시간은 항상 변화의 일상이다. 변곡의 점점이 순간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지배하고 지배당한다. 10원을 은행에 예치해도 이자는 정해진 이자율만큼 불어난다지만, 시간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혹여 더 줄어들지도 모르는 마이너스 금리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의 변곡점은 항상 매 순간이 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섭리이다.



7. 당신만이


때로


지치고 힘든 것이

인생이라 해도


당신만은

나에게



그 무엇이기를

-변곡점, 김상일 지음, 2019, 44P


한 해 마무리 알라딘에서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한다.

"늘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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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12-30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효과로 만들고 싶을 만큼 멋진 사진이네요~ 좋은 밤 되세요~

yureka01 2019-12-30 08:55   좋아요 1 | URL
한해 마무리 멋찌기를 ..^^..

얄라알라북사랑 2019-12-30 10:3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댓글을 우아...로 시작하려다보니 초딩님꼐서 이미..

그런데 절로 우와...이 소리가 나오는 사진들입니다.

yureka01 2019-12-30 11:55   좋아요 1 | URL
현실의 현상에서 구상으로 추상화시키는 재미..솔솔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12-30 0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지난 한해 감사드립니다. 매 순간의 변곡점을 잘 포착하시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yureka01 2019-12-30 08:56   좋아요 2 | URL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stella.K 2019-12-30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사진 못 보고 새해를 맞이하나 했더니
막판에 볼 수 있게 됐네요. 올해 유레카님 사진을 보는 즐거움도 꽤 컸죠.
내년에도 좋은 작품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yureka01 2019-12-30 16:48   좋아요 1 | URL
한 해도 알라딘 서재에서 글로나마 감상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강옥 2019-12-30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마이너스 금리 ㅎㅎ
갈수록 살기가 더 팍팍하고 힘들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평생 할수있는 취미를 갖지 못한것, 이라고 하더군요.
100명 중 19명이 그런 대답을 한다고.
적어도 유레카님 블친들은(저를 비롯해) 그런 류의 후회는 없을 듯합니다.
그라모 잘 사는 거 아이라예?

yureka01 2019-12-30 16:47   좋아요 1 | URL
네 적립도 예치도 못하는 시간이었지요.

맞습니다...젊어서 사진찍을 땐 돌아 나다녔으니
늙어서는 찍어 놓은 사진 평생 감상하고 품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토록 취급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이거 맞습니다~

2019-12-31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1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조금 있으면 2020년 새해가 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엔 소원하는 것을 이루는 한 해 되시고
내년에도 좋아하시는 사진 많이 찍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yureka01 2020-01-02 09:06   좋아요 2 | URL
서니님도 새해에 늘 화이팅하입시다..
감사드립니다!!~

AgalmA 2020-01-01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이제 새 사진집 내실 때도 되신 거 같은데....^^?
최근 사진 보면 첫 책 보다 사진이 훨씬 더 좋아지신 거 같아요!
다음 책 내시면 꼭 제 돈으로 구매하겠습니다ㅎㅎ!
새해 사진 복 많이많이 깃드시길^^

yureka01 2020-01-02 09:06   좋아요 0 | URL
아고..다시 책을 낼 수 있을지....ㅎㅎㅎ
사진 책은 텍스트와 달라서...솔찍히 책내면 그 쪽팔림은 어떻게 견딜까 해서 말입니다..
새해 복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감사감사!~

2020-01-02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4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7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7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미 히피 로드 - 800일간의 남미 방랑
노동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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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로드.


오랜만에 아주 괜찮은 여행기를 만났다.(이웃분의 책소개 감사드린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어디로인가 이동의 수기처럼 나열이다. 이 나열 속에서 만나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풍경이며, 여행의 풍경이란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나의 이질감의 낯섬이다. 흔한 관광지라는 포인트, 즉 점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선으로 이어지는 노매드가 여행이라는 걸 여행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미 유명해진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와서 보라고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얻져 먹는 것처럼, 이미 세팅된 개량된 패스트푸드나 먹는 것과 같다. 관광에 따르는 자본의 입김은 여행이라는 그럴싸한 보여주는 밥상에서 그럴싸하게 차려낸 레시피의 맛일 따름이다. 눈요기 관광을 가고서 여행 갔다고 하는 착각은, 자본이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낸 상품이다. 푸드코드의 차림표에 보이는 사진을 보고 고르는 관광 상품을 보고서 여행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뻔하다. 관광은 정형화된 코스이고 여행은 중구난방의 바람처럼 구름 가듯 발길 닿는 선의 이음이고 보면 상수가 아니라 변수이다. 여행은 우리 삶에 있어서 X라는 변수. 낯선 곳에서 문득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라는 근본적 질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여행이다.


여행의 정의가 비정형적이라고 한다면, 그동안 나는 노매드가 아니라 정착민으로 살았다.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탈것으로 이동하기보다는 걸어야 하는 한계가 늘 도사리고 배낭을 메고 아픈 다리를 끌고 가야 하는 것에서 여행은 고역이라는 것과 정형화되지 않는 노동같은 이동이 여행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는 평생 미결 유기수로 감옥에 갇혀 산 거나 다를 바 없다. 누군가의 고착된 정착민의 성실함과 근면함의 주장이 부지불식간에 교육이란 이름으로 사육당했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서 사회적 개인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한자리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의 삶의 결과는 무엇이었나라고 생각해보면 참 서툴렀다는 생각이 가끔은 억울할 만도 하다. 어느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떠남의 동경이 늘 상존했던 거 같다. 이름 모를 지명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의 삶을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이질감에서 찾아내는 자신의 동질성에 대해 갈구하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옥을 만들고 자발적인 구속을 시키는 게 아닐까 한다. 나이 차면 학교에 가야하고 군대를 가야하고 때가 되면 여자를 만나야 하고 결혼이 늦어지면 왜 결혼하지 안 하느냐라고 하더니 결국 결혼하고 나니 왜 아이는 안 낳나라고 오지랖들에게 속은 결과가 결국 아이 가지고 낳아 양육하고 그러다 보니 집도 얻어야 한다느니 예금도 해야 한다느니, 그런 일률적인 강제성의 교육이란 이름의 사육당한 느낌이 깨름직하다. 말로는 창조성 운운해도 일탈을 창의성으로 여물게 하지 않는 사회의 정체된 사고방식들이 그러하다. 그대로 그들 누군가의 오지랖과 권유형 강요와 협박과 모두 그렇게 사는 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자기 합리화가 덧붙여짐으로써 자의반 타의반의 구속 같다. 결국 시간만 훌쩍 건너뛰듯이 어느새 고개를 들어 보니 머리엔 흰머리가 난다. 늙었구나. 흡사 태생이 야생마로 살아갈 수 없이 우리 막사에서 태어난 말의 운명이 거의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육당해서 길들여진 채로 노매드를 잃어버린 채 순치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마사에 갇혀서 꼬박꼬박 때 맞혀 조련사가 주는 여물을 안 죽을 만큼 먹고, 죽을 만큼 채찍질 당하며 준비된 사로에서 죽어라 달리는 상태랑 비슷하다면 비유가 과한 걸까 싶다. 결국 마사 우리를 활짝 열어 제쳐 놓아도 나갈 수 없는 적응성 때문에 야생으로 놓아지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해버린 것은 아닐까. 타의적 구속이란 권유와 강요가 자본의 안락과 편안과 확정된 여물 같은 연봉에 구속당해서 뛰쳐나갈 수도 없는 자발성은 자기 스스로의 최면을 걸고 여기서의 삶이 나름대로 나쁜 것이 아니라는 그러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굴복의 굴욕만 늘어가는 건 아닐까. 흔히 월요일이 두려운 사람은 월요일에 고정적으로 갈 곳이 있다는 안도하는 등치이다. 경주마의 운명은 초원의 더 넓은 곳을 한 번도 달려 보지 못한 채로 안락사 당하는 거나 뭐가 다를까. 누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세끼 배불렀다고?, 아니야 배고파서 그래. 먹어도 허기는 왜 계속 생기는 줄 알아? 배만 부르면 잠 온다면 분명 마사 우리 속에서 스스로 자유를 의식 못하고 순응당한 자일 거야.


흔히 그렇게 갇혀 있다가 나이 들어서 그동안 못해봤던 걸 은퇴하고 마음껏 하라고 해도 못하는 이유는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근육이 전혀 없이, 늦은 후에서야 근육을 키우려 하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근육도 젊을 때나, 한창일 때 붙이고 굵게 키워서 평생 써먹어야 할 자산인데 자산도 없이 이제 자산을 모아서 하겠다는 게 얼마나 늦어버려서 한계를 들어 나는 건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은퇴하고 늙어서 여행을 실컷 가야지, 영화라도 실컷 봐야지,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가보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등등등의 바람들을 한껏 풍선 부풀리며 불지만, 삶이란 예상치 못한 바늘 하나에도 부푼 풍선의 바람은 일시에 터져 버리고, 빈 껍데기의 잔해만 너덜너덜하게 공웡을 배회하듯 남는다. 덩그렇게 남아도는 걸레가 되어버린 시간의 조무래기나 붙들고 공원에서 하릴없이 내가 뭐하고 살았나 싶을 테니까 말이다. 직업이 만들어준 인위적인 사람과의 관계는 직업이 끊기면 이미 끈 떨어진 관계의 지나버린 미련 따위는 없는 인간관계일 뿐, 결국 누굴 만날 사람도 오라는 곳도 없이 어딜 가도 자산 없이 너덜거리는 껍데기의 시간만 가지고는 빌붙어주지를 않는다.


이런 점에서 책은 모름지기 평소에 바람대로 추구하는 삶의 근육을 키우는 기초작업에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다. 비록 지금 당장 카메라를 매고 남미에서 떠도는 히피와 집시의 삶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사전 기초적 양식을 배양하는데 더없이 좋은 간접적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상상하고 여행 근육을 강화시키는 루트를 개발하는 선험적 경험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꼭 언젠가 나도 배낭 메고 여권을 챙겨서 여행,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가려 한다면 여행자가 쓴 다양한 수기를 읽어 보는 것이 유용한 이유이다. 그들의 새로운 경험과 낯선 곳의 이미지와 감상을 통해서 익히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여행기를 읽는 목적이다.


히피와 집시, 그리고 보헤미안. 이 단어만 들어도 이미 가슴부터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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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9-12-26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마드의 삶
이번 생엔 어려울 것 같네요
동경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
꿈조차 꾸지 못하며 사는 삶이 대부분이니까요
여행은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줄수 있는 큰 선물이랍니다.

yureka01 2019-12-26 08:4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ㅎㅎㅎ 꿈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꿈이라도 찬란히 ^^..

2019-12-26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6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30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밖에 비가 오는 겨울밤이라서 그런지, 사진 속의 불빛이 따뜻해보여요.
유레카님 따뜻한 밤 되세요.^^

yureka01 2019-12-30 08:56   좋아요 2 | URL
한해 ..쓴 글 보게 되네요..엄청 많이 !서술한 글이었어요~
한해 마무리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