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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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나를 압도하는 기억 중 하나는 검푸른 밤하늘을 끝없이 가로지르는 은하수였다. 안 그래도 밤하늘은 저마다의 밝기로 별들이 빼곡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거기에 거대한 빛의 물줄기까지 더해진 하늘은 계속 보아도 전혀 질리지 않는 장관이었다. 공기가 맑고 높은 건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강렬한 장면. 어른이 된 지금에도 별이라든가 우주 저 너머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그때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담긴 소설들은 내게 다시 한번 설렘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 시절, 그곳의 밤하늘로 데려다 놓았다.
 

 

  이 책에서 그려낸 인간배아 디자인, 생각-표현 전환 기술, 웜홀 통로를 이용한 성간 항해라든가 사이보그 그라인딩과 같은 신체 개조, 그리고 외계의 지성 생명체 발견과 같은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일들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김초엽 소설가의 SF소설은 읽다 보면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된다. 선량함과 순수함, 따뜻함이 깃들어져 왠지 모르게 정말 그러한 세계가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다움과 유연함이 잔잔하게 우리를 휘감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어떤 의문을 품으며 그 이유를 찾으려 하는데, 답은 정해진 게 아니라 결국 그것은 사람이든 외계 지성 생명체이든 상관없이 상대에 대한 사랑과 이해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순례자들이 평화로운 행성 ‘마을’을 두고 고통과 쓸쓸함이 가득한 ‘지구’를 선택하며 그곳에 남았던 이유는 사랑하는 한 사람만으로 충분했다. 「공생 가설」에서 ‘그들’은 보통 일곱 살 전후로 기억과 함께 우리를 떠나지만, 류드밀라에게만큼은 끝까지 함께하며 곁에 있어 주었다. 그리고 「스펙트럼」에서 생물학자였던 희진이 우주탐사선에 올랐다가 실종된 지 40년 만에 발견되고도 외계 지성 생명체가 있는 행성의 위치에 대해선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은 이유 역시 그들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p.95, 「스펙트럼」중에서)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는 우주인 후보가 된 가윤이 자신의 우주 영웅이었던 재경이 미션을 앞두고 도망쳐버렸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재경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의아스러웠지만, 어느덧 가윤은 그것이 그녀의 이기적인 선택이었으나 그녀도 할 만큼 했다는 것, 그리고 차라리 그것이 그녀다운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너를 이해 못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곤 한다. 정말 이해하려는 노력은 해보기라도 한 것일까.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는 게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상황에서. 그런 의미에서 「관내분실」은 특히 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죽은 사람을 데이터로 기록해 가상현실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도서관이 존재한다. 지민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지만, 도서관 측은 기록은 어딘가에 있지만 인덱스가 지워져 검색되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사실 지민과 엄마의 관계는 보통의 엄마와 딸과는 조금 달랐다. 엄마는 지민을 출산한 후 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방치했다. 지민과 동생은 엄마에게서 아빠를 저주하는 말을 듣거나 자신들을 원망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다 보니 가족 간의 정이나 애틋함 같은 건 없었다. 지민도 딱히 도서관에서 엄마의 마인드를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관내분실 되었다고 하니 지민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 지민. 그녀는 엄마인 ‘김은하’의 마인드를 검색하기 위해 엄마의 유품들을 꺼내 봤지만 대부분 지민이 어릴 적 썼던 물건만 가득할 뿐 어디에도 ‘김은하’의 흔적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물건도 별다를 것 없었다. 엄마로서의 물건만 가득할 뿐, 엄마 ‘자신’, 그러니까 ‘김은하’의 물건은 없었다. 그나마 결혼 전 다녔던 출판사에서 펴냈던 책이 그녀의 흔적을 대신할 뿐이다.


  지민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없다고 여겼겠지만, 아니다, 엄마는 그곳에 있었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며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로서. 물론 그런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지민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민이 감당하기엔 당시 그녀가 너무 어렸고, 가족이기에 더 힘들고 버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정말 알게 되는 것은 나름의 타이밍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이해라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선명하고 명확한 무언가가 아니라,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스며듦 같은 것.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중략...)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271, 「관내분실」 중에서)

 


  한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노인이 된 안나는 이미 폐쇄된 우주정거장에서 가지고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떠나려 한다. 누가 봐도 그런 낡은 우주선으로는 그 먼 곳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생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곳에 남편과 아들이 있기에 그녀는 떠나기로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에게는 비이성적이고 무모한 선택처럼 보일지라도 그녀에게는 ‘함께’이기 위한 결정이었을 테니까. 그 선택, 그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빛의 속도를 넘어 서로에게 닿아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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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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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 그녀의 책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포인트를 잘 잡아낸 그림도 그림이지만, 특히나 좋았던 건 담백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그녀만의 표현들이었다. 정말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단어들로 구성된 간결한 문장임에도 그녀의 글을 언제나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읽다 보면 어느새 답답한 마음이 부드럽게 풀리며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된다고나 할까. 맞아, 내가 하고픈 말도 이거였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가 하면,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깊은 공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 『영원한 외출』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녀의 책이라서 다행이라고, 그녀의 책을 또 한 권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마스다 미리는 아버지의 죽음과 그 후 이어지는 일상에 대해 써 내려간다. 만화형식이 아닌 오롯하게 글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했던 시간들이라든가 아버지를 보낸 후 떠올려보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이 두루두루 담겨 있다. 무엇보다 마스다 미리는 죽음과 삶, 일상에 대해 너무 슬프거나 너무 밝게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차분하게 다뤄내며 독자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사르륵 녹아드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는 마스다 미리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과자를 챙기는가 하면, 그녀는 취재 형식을 빌려 ‘아버지와 이야기하기’라는 이벤트를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은 나 자신의 무심함에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애교가 없고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늘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와 상관없이 마스다 미리처럼 어린 시절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좋아했던 간식이라든가 싫어했던 선생님(혹은 좋아했던 선생님)이라든가, 학교생활, 하다못해 지금 먹고 싶은 저녁 메뉴라도 얼마든지 대화거리가 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러는 대신 아버지가 무뚝뚝하니 나도 좀 무뚝뚝하면 어떤가,라는 생각으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아무리 대화에 영 소질이 없더라도 노력이 부족했음을 반성해본다.

 


  마스다 미리는 묘목 파는 가게 앞을 지나며, 혹은 거리의 음식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렇다. 추억이란 건 꼭 뭔가 특별한 곳이라거나 비싼 음식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일상의 그 순간순간들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 물론 내게도 그러한 순간들이 있다. 아버지랑 함께 걸었던 동네의 골목길이라든가 아버지가 사 오셨던 겨울철 붕어빵이라든가 기타 등등. 한편, 아버지는 내가 타는 커피믹스를 맛있게 즐기시곤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추억은 거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p.146)’는 그녀의 말에 긴 여운을 느끼며 앞으로도 하나둘 그 추억을 쌓아갈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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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인다 일본어 첫걸음 - 회화 & 문법, 저자 직강 영상강의 무료, MP3 듣기 무료, 2021 개정판 한눈에 보인다 첫걸음 시리즈
Mr. Sun 지음 / oldstairs(올드스테어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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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일본어에 대해 잘 한다거나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기에 간단한 문장 정도는 알아듣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좀 더 일본어를 공부하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만나게 된 '한눈에 보인다'시리즈의 일본어 첫걸음!

이 책은 제목처럼 그야말로 한눈에 보이도록 페이지들이 구성되어 있어 다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조사, 인칭대명사부터 명사, 형용사, 동사, 수식 표현에 이르기까지 크게는 목표문법-주요 표현-대화 연습의 패턴으로 학습하게 되어 있는데 해석은 물론 한글로 독음되어 있어 그대로 바로 따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그림들이 함께 있어 금방 파악하기가 쉬웠고 책 후반부에는 주의 표현이라든가 헷갈릴 수 있는 조사들을 한데 모아 잘 정리해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어공부는 반복학습이 중요한데, 이 책은 자주 들여다보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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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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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말한다. 연애를 하고 싶다, 혹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그리고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기만 하면 저절로 행복이 찾아올 거라 여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는 것만은 아님을 넌지시 말해볼까 한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막연한 생각이요,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개인적 바람에 가깝다. 누구를 만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사랑이 완성된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러한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연애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p.13)라며 어떻게 하면 관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가꾸어 나갈 수 있을지 이 책을 통해 차분히 조언해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남들은 잘만 하는 것 같은 연애나 결혼도 자신의 이야기가 되면 어렵기만 하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게 되고 포기하게 된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컨트롤 할 수 없으며, 관계 역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사랑은 이해타산도 비교도 아니며 소유할 수 없음을 잘 일러주고 있다.

 


  ‘관계’ 속에서 나와 너는 ‘우리’가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냐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앞세우는 것도 안 되겠지만, 그 반대로 사랑받지 못한다고 하여 자신의 가치가 없어지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상대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으며, 상대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연애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해당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나는 혼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에 의미를 더 크게 둘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서로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의존관계가 아닌 이상적인 사랑의 관계를 쌓을 수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상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사랑해주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p.161)

 


  이 책의 4부에서는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사랑의 기술>들이 서술되어 있다. 두 사람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한 뒤,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부분으로써 읽으며 많은 공감을 한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상대의 관심에 관심을 가지라는 문장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사람들은 흔히들 상대를 이해할 때는 자신이 다 안다고 착각하며 자신의 기준을 적용하고는 하는데, 우리는 상대가 자신과 다르다는 걸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상대의 생각과 선택과 행동에 열린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대신 지금 여기, 현재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랑에 집중할 것. 그러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기쁨과 행복감으로 매일매일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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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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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 그 시대와 국가, 사람들을 관통했던 사상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ism)들을 소개하며 각 사상의 대표적인 특색을 잘 알려주는 책이다. 여기에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공산주의처럼 이미 귀에 익숙한 사상들, 해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한 번쯤 들어는 봤으나 정확히는 모르는 사상들, 그리고 포퓰리즘이나 니힐리즘처럼 생소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어렵거나 지루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 문장들이 술술 읽히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그 시대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중간중간 그림이나 사진 자료를 활용해 읽는 이의 시선과 흥미를 붙잡기도 했다. 그리고 각 장의 끝은 ‘철학물음’과 ‘더 읽어 볼 책’ 소개로 마무리되는데 이런 구성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로인해 우리는 그 사상과 관련해 사고(思考)하는 힘을 키워나갈 수 있으며 추천 책들을 통해 더욱 심도 있게 그 사상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해 고민이라면 이 책의 2장, <불안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계몽주의의 시각도 필요하겠지만, 2장에 나온 내용처럼 감정과 감성이 풍부한 낭만주의도 필요하다고 본다. 인간적인 매력과 공감, 친밀함은 감정과 감성의 교류에서 더 많이 느껴지는 법이다.

  한편 ‘니힐리즘’의 내용은 꽤 흥미로웠다. 니힐리즘(nihilism)은 라틴어 니힐(nihil)에서 왔는데 니힐은 허무라는 뜻이니, 니힐리즘은 우리말로 허무주의라고 한다. 죽음으로 끝날 우리의 인생도 세상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허무하다고 해서 되는대로 살거나 포기하듯 사는 게 아니라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 오히려 매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존주의’에 대해 읽을 때는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 할 때 불안해한다. 이 점에서 인간은 ‘의미 중독자’인 셈이다.’(p.119)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의미를 찾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개인에게 있어 목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또한 그 의미를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함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다.주변 여건이 좋은지 나쁜지도 내 뜻대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을 할지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힘주어 말한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실현하는 한에서만 실존한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남의 결정과 환경에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뜻이다.(p.122)

 

빅터 프랭클은 생활 속에 '참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라는 뜻이다. (...중략...) 사르트르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앙가주망'(참여)하는 데 있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는 일이다. 남들이 나를 받아들일지, 사회가 나를 인정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매 순간의 결정과 행동이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할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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