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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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 그녀의 책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포인트를 잘 잡아낸 그림도 그림이지만, 특히나 좋았던 건 담백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그녀만의 표현들이었다. 정말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단어들로 구성된 간결한 문장임에도 그녀의 글을 언제나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읽다 보면 어느새 답답한 마음이 부드럽게 풀리며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된다고나 할까. 맞아, 내가 하고픈 말도 이거였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가 하면,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깊은 공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 『영원한 외출』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녀의 책이라서 다행이라고, 그녀의 책을 또 한 권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마스다 미리는 아버지의 죽음과 그 후 이어지는 일상에 대해 써 내려간다. 만화형식이 아닌 오롯하게 글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했던 시간들이라든가 아버지를 보낸 후 떠올려보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이 두루두루 담겨 있다. 무엇보다 마스다 미리는 죽음과 삶, 일상에 대해 너무 슬프거나 너무 밝게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차분하게 다뤄내며 독자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사르륵 녹아드는 것이다.

 


  책 곳곳에서는 마스다 미리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과자를 챙기는가 하면, 그녀는 취재 형식을 빌려 ‘아버지와 이야기하기’라는 이벤트를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은 나 자신의 무심함에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애교가 없고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늘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와 상관없이 마스다 미리처럼 어린 시절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좋아했던 간식이라든가 싫어했던 선생님(혹은 좋아했던 선생님)이라든가, 학교생활, 하다못해 지금 먹고 싶은 저녁 메뉴라도 얼마든지 대화거리가 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러는 대신 아버지가 무뚝뚝하니 나도 좀 무뚝뚝하면 어떤가,라는 생각으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아무리 대화에 영 소질이 없더라도 노력이 부족했음을 반성해본다.

 


  마스다 미리는 묘목 파는 가게 앞을 지나며, 혹은 거리의 음식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렇다. 추억이란 건 꼭 뭔가 특별한 곳이라거나 비싼 음식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냥 평범한 일상의 그 순간순간들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 물론 내게도 그러한 순간들이 있다. 아버지랑 함께 걸었던 동네의 골목길이라든가 아버지가 사 오셨던 겨울철 붕어빵이라든가 기타 등등. 한편, 아버지는 내가 타는 커피믹스를 맛있게 즐기시곤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추억은 거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p.146)’는 그녀의 말에 긴 여운을 느끼며 앞으로도 하나둘 그 추억을 쌓아갈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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