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도 힘들 때가 있다

우리 집 우렁이 각시 ㅣ 보물창고 북스쿨 1
이금이 글, 이영림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9월

<우리집 우렁이 각시>에는 아빠에 관한 이야기 세 편이 실려 있다. 책을 받던 날 남편은 제목만 보고 우리집 우렁이 각시는 "당신이잖아!"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집 우렁이 각시는 내가 맞는지라 소리 없이 애쓰는 엄마들의 모습을 그린 동화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책은 믿음직하고 든든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또다른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실직을 해서 가족의 눈치를 보는 <우리집 우렁이 각시>의 아빠, 남자는 집안일을 하면 안 된다고 믿는 할머니와 맞벌이하는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십자수>의 아빠, 시골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집>의 아빠가 그들이다.

셋 모두 집안에서 큰소리치는 아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만 서면 어깨에 힘이 더 빠지는 잘 나지 못한 아빠들이다. 상대적으로 엄마들의 힘이 더 세지고 있는 세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들은 실직한 아빠대신 돈을 벌러 나가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맞벌이를 하니까 남편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현실적인 여건을 들이대며 시골집으로 이사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아빠들의 외로움은 더 커진다. 참 다행인 것은 동화마다 숨은 아빠의 모습을 발견해내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수는 계단에서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를 보며 가족에게 환한 방을 갖게 해준 아빠를 미워한 것을 반성하고 아빠가 바로 우렁이 각시임을 깨닫는다. 

앞집이나 옆집이나 할 것 없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의 경계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할머니가 올 때마다 눈치를 보느라 엄마와 갈등을 하는 선재네 아빠. 여자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십자수를 아빠에게 권하는 장면에서 남녀의 거리를 좁혀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아빠와 함께 빈 집이 된 시골 할머니집에 갔다가 어린 시절 아빠의 낙서를 발견하고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석이의 모습도 좋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힘든 아빠를 이해하고 토닥여줄 마음의 여유를 배웠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퇴근해서도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아주는 남편이 새삼 고맙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책말미에 나온 것처럼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도록 해보아야겠다.

5학년 교과서에 실린 동화라고 하나 짧은 동화 세 편이라서 2학년 이상이면 읽을 수 있다.

민호야, 힘내!

나의 달타냥 ㅣ 창비아동문고 242
김리리 지음, 이승현 그림 / 창비 / 2008년 6월

책을 읽다가 작가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김리리. 그동안 내가 읽었던 그녀의 작품은 유쾌하고 따뜻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나오는 민호와 달타냥의 이야기는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해주는 주제를 품고 있어서 김리리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동안은 쉬쉬 하거나 조심스럽던 폭력 가정과 한부모 가정의 이야기가 동화의 중심으로 들어온 걸 보면 이젠 더이상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만큼 폭력 가정과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도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아빠의 폭력 때문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사는 민호가 떠돌이 개를 만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달타냥은 민호가 지어준 떠돌이 개의 이름이다. 마침 <삼총사>를 읽고 있다가 그런 이름을 말한 게 인연이 되어 달타냥은 민호와 관계를 맺게 된다. 슬픈 눈을 가진 민호와 외톨이 달타냥이 번갈아 화자가 되면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 주는 형식이 꼭 속마음을 털어놓은 일기를 바꿔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주인공 민호의 가정 환경은 아주 나쁘다. 가끔 한 번씩 나타나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는 민호에게 절망만 주고, 엄마마저도 언제 민호 곁을 떠날지 몰라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한 가정의 아이답지 않게 민호는 공부에 열중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그나마 달타냥을 데려온 정만이와 친구가 된다. 정만이도 엄마와 살고 있다. 서로 아빠에 대한 상처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두 아이는 금방 친구가 된다. 정만이는 외로운 민호에게 달타냥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다.

달타냥은 엄마개가 죽던 날 무서운 사육장에서 도망친 개다. 형과 함께 사육장을 도망쳐 나온 후 형은 달타냥을 보호하기 위해 덤벼들었다가 어디론가 끌려간다. 달타냥은 형을 찾아 다니다가 학교 앞에서 슬픈 눈을 가진 민호를 만난다. 말은 안 통하지만 바라만 보아도 통할 정도가 된 달타냥과 민호는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각자 품은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민호와 엄마를 때리는 아빠에게 대들던 달타냥은 결국 아빠에게 맞아 죽고 만다. 무슨 운명일까? 그후 투견장에 구경을 갔던 아빠는 투견이 된 달타냥의 형에게 물리고 만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사람을 육감적으로 알아보는 장면이 너무나 섬짓했다. 동물들에게조차 함부로 죄를 지으면 안 될 것 같다.

민호가 아빠의 지갑에서 발견한 할머니와 어린 아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아빠의 폭력과 미움과 불행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엄마와 자신의 처지가 할머니와 아빠의 처지와 너무나 닮았지만 민호는 아빠처럼 불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걸로 끝을 맺는다.

민호의 이야기가 더 슬프게 읽혔던 것은 아무래도 달타냥의 죽음 때문인 것 같다. 끝까지 살아남아 민호와 함께 불행을 이겨나가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호야, 힘내!

아슬아슬 스릴 만점의 모험 이야기

이 배는 지옥행 ㅣ 동화 보물창고 21
야마나카 히사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임수진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8월

4학년 딸아이에게 방학 동안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 배는 지옥행>을 꼽았다. 사실 남자 아이들의 모험 이야기라서 딸아이의 그런 반응이 오히려 신기했다. 딸아이는 '지옥행'이라는 제목 속에 뭔가가 있을 것 같았는데 자신의 기대대로 아슬아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재미있다고 했다.

딸아이는 자신은 비싼 텔레비전을 망가뜨렸다고 해서 주인공 가즈야처럼 집을 나가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집을 나갔다가 진짜 가즈야처럼 이상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동화로 즐기는 모험은 위험하고 아슬아슬할수록 더 신나고 재미있으니 책을 통해 모험을 대신하고 싶다는 우리 딸은 소심쟁이가 틀림없다.

가즈야처럼 아이들에게도 분명 재수없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가즈야는 망치를 잘못 휘둘렀다가 산 지 며칠 안 된 새 텔레비전을 깨고 만다. 4학년 아이에게 이 일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가족들한테 혼날 것이 두려웠던 가즈야는 집을 나가기로 한다. 마침 친구 마코토를 만나 항구에서 그림을 그리다 사람을 때리게 되고 겁이 난 아이들은 바다에 정박해 있던 배에 올라타게 된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를 피해 보려고 몰래 숨어든 배에서 더 큰 사건과 마주치는 두 아이. 그 배는 바로 보험 사기를 치기 위해 일부러 난파 당하러 떠나는 배였던 것이다. 살려고 탔던 배가 죽으러 가는 배였다니 아이들 생각에도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사기꾼들의 음모 때문에 수면제가 든 음식도 먹고, 얻어도 맞다가 마음 좋은 선장의 도움을 받아 폭풍 속을 탈출하면서 겪는 모험이 책장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과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지 내내 궁금하기 때문이다. 보험 사기극이 뭔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아찔하고 좀 잔인한 내용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면을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텔레비전 때문에 무서운 사건 한복판에서 떨다가 무사히 구출된 후 아이들은 유명 인사가 되어 텔레비전에도 나오게 된다. 텔레비전을 깬 가즈야는 엄마로부터 용서받았을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의 맨 마지막을 문장을 읽어보면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다. 

4학년 이상 모험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지루한 시간 때문에 고민인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뚱뚱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칼로리 폭탄 ㅣ 미래아이문고 1
야나 프라이 지음, 김민영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프리돌린은 정말 뚱뚱한 아이다. 똥자루, 비곗덩어리, 토네이도, 칼로리 폭탄, 지방 사태, 썩은 고깃덩어리, 뚱뚱벌레..... 이건 모두 아이들이 이름 대신 부르는 별명이다. 프리돌린은 새로운 별명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비밀 파일 목록에 기록하며 울기도 한다. 아이들이 별명을 부르며 놀릴 때마다 프리돌린은 죽고 싶을 정도로 외롭고 슬프다.

별명 하나하나가 모두 숨이 막힌다. 얼마나 뚱뚱하길래 저렇게 부르는 걸까? 프리돌린의 생활 습관을 보면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먹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할머니 덕분에 밤늦은 시간까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댄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뚱뚱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취미라고는 컴퓨터 게임이 전부인 프리돌린이 뚱뚱해지는 건 당연하다.

프리돌린이 옆집에 사는 티파니를 만나게 된다. 비쩍 마른 몸에, 주근깨 투성이, 눈에 띄는 옷차림 때문에 티파니도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다. 아빠가 유명한 화가지만 엄마가 떠나버린 후 집도 티파니도 돌보지 않고 술에 빠져 살고 있다. 그래도 좀 심하다.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진 것도, 딸이 옷이 없어 가을에 반팔 티를 입고 다니는 것도 모른다.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집에서 티파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외롭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일뿐이다.

이렇게 외로운 두 아이가 만났다. 티파니는 프리돌린에게 보면 볼수록 화가 치미는 별명들을 비밀 파일에서 지우고 살을 빼라고 충고한다. 티파니가 들려준 다람쥐의 먹이 관리 비법을 듣고 충격을 받은 프리돌린은 살을 빼기로 결심한다. 그 첫번째 방법은 먹는 걸 엄청 줄이는 것, 두번째 방법은 바로 티파니의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는 일이다. 

쓰레기 더미 같은 티파니의 집을 치우는 데 몇 주가 걸리고, 그 사이 프리돌린의 살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쓰레기가 많았는지 와인병만 해도 백 개가 넘었고, 2,3일 사이에 쓰레기 봉투 백 개가 가득 찼을 정도다. 티파니의 아빠는 깨끗해진 집에서 이웃들의 관심에 고마워하며 정신을 차리고 취직도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일은 프리돌린과 티파니도 더이상 아이들의 놀림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

너무 외로울 때 만난 두 아이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도와주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친구가 엄마보다 나을 때도 많다는 사실을 프리돌린과 티파니를 보면서 느꼈다. 엄마한테 들었으면 잔소리가 되었을 이야기도 티파니에게 들으면 훌륭한 충고가 되니 친구가 좋긴 좋다. 

성악을 하는 젊은 할머니와 아직 젖병을 물고 다니는 조반니 삼촌, 박물관에서 일하는 뚱보 엄마의 유쾌함까지 어우러져 참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 딸은 이 책을 읽은 후 뚱뚱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반에서 가장 뚱뚱한 애를 보면 괜히 싫어했다는 고백과 함께. 대상은 주변에 뚱뚱한 친구가 있거나 비만이 걱정스러운 4학년 이상.

꿈이 많은 슬비가 너~무 좋아

나는 꿈이 너무 많아 ㅣ 다림창작동화 5
김리리 지음, 한지예 그림 / 다림 / 2007년 12월

책을 받던 날 두 아이가 이불을 널어놓은 빨래 건조대 아래로 들어가서는 킬킬거렸다. 살금살금 걸어가서 이불을 확 걷었더니 그 좁은 데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이 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 그림이 만환데 진짜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만화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수 있다며 좋아했다. 사실 내가 더 먼저 책을 읽었는데 난 그림은 별로 보지 않고 내용이 참 좋다는 생각만 했다. 이게 엄마와 아이들의 차이인가 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아이들이 발견한 좋은 그림과 엄마가 발견한 좋은 내용이 딱 맞아떨어진 작품이다. 

2학년인 슬비는 나의 꿈에 대해 써 오라는 숙제 때문에 고민을 한다. 글쓰기 숙제가 있을 때마다 고민하는 우리 아들의 모습이랑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슬비는 글을 잘 써서 상을 받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자신의 꿈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막막하다. 되고 싶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엄마는 슬비가 되고 싶은 문방구 주인이나 미용사, 빵 만드는 사람, 파티플래너는 너무 한심한 꿈이라서 그런 걸 쓰면 안 된다고 하니 더 고민이다.

사실 2학년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꿈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무턱대고 돈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라고 강요한다. 눈에 와 닿는 대로 되고 싶은 게 변하는 나이의 아이들에게 엄마의 주문은 너무 어렵기만 하다. 재미있고 멋지고 특별한 직업을 갖고 싶은 슬비의 꿈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바라는 슬비 엄마의 이야기는 특별한 누구네 집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집, 그리고 아래층, 위층 집의 이야기라서 더 실감난다.

상을 받을 욕심에 엄마가 대신 글을 써주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슬비 엄마처럼 대신 써 주지는 않았지만 나도 이렇게 저렇게 써 보라며 참견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 결국 잘못을 깨달은 슬비가 엄마가 써준 원고를 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직접 다시 써 가는 모습을 보며 슬비가 엄마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포함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잠시 잊었던 엄마들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창 되고 싶은 게 많은 저학년 아이들과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